- 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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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밖에는 굵은 빗방울 소리가 요란하게 들립니다.
마음은 봄꽃이 피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당에는 풀이 먼저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복수초가 먼저 노랗게 올라왔습니다.
매화와 산수유도 봄비를 맞고 꽃봉오리가 더욱 탱탱해지고 있습니다.
날씨만 요란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한 여검사의 고발로 시작된 미투 운동이 산불처럼 번지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지고 함부로 휘두르던 사람들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꺼져가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것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생각이 나를 행복하게도 만들지만 한편으로는 우울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내가 만약 돈과 권력을 가졌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그런 데서 자유롭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젯밤에는 빗소리를 들으면서 두부김치에 막걸리를 한잔 했습니다.
행복한 마음과 우울한 마음이 교차되었습니다.
남자들이 조심해야 할 것이 세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돈, 여자, 술'입니다.
나는 세 가지를 다 지키기가 어려워서 한가지만 지키기로 했습니다.
그것은 '돈 여자와 술을 절대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한번도 어긴 적이 없습니다. ㅎㅎ
그저께는 영국으로 시집간 큰딸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에 밝던 아이가 처음에는 머뭇거리며 한참 뜸을 들이다가 울먹이면서 이야기 했습니다.
순간 가슴이 출렁 내려앉는 것 같았습니다.
국제결혼 한지 2년 반이 되었지만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드디어 뭔가 큰 일이 생겼구나 하며 아랫배에 힘을 주고 숨을 천천히 쉬며 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떤 큰 일이 있더라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화의 요점은 '사소한 일로 최근에 너무 자주 싸운다'는 것이었습니다.
딸은 울면서 말했지만 나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부부싸움은 누구나 다 하는 것입니다.
결혼 한지 2년 반 정도 됐으니 신혼은 아니고 슬슬 상대의 단점이 보이기 시작할 때입니다.
딸도 그런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라 생각하며 말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같이 살면서 다툼이 없을 수가 있겠느냐.
특히 너는 말과 문화가 다른 영국 사람과 결혼했으니 성격이 맞지 않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느냐.
지금 자주 싸우는 것은 상대가 바뀌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너의 생각이 바뀌어서 그런 것이다."
딸은 처음에는 내 말에 수긍을 하지 않았습니다.
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또 한 마디 했습니다.
"원래 부부싸움은 사소한 것으로 하는 것이란다. 싸우면서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이 부부란다.
너만 그건 일을 겪는 것이 아니다. 그건 모두가 겪는 일이다,
엄마 아빠도 그런 과정을 다 겪었고 지금도 진행형이다."고 말하면서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딸의 목소리가 조금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결혼식 때 신랑 신부에게 <지금 그대로 사랑하라>고 한 말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좋을 때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좋지 않을 때는 사랑하라.
사랑할 조건을 갖추었을 때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나의 욕심이다'는 말을 내가 그때 하였습니다.
딸은 '그말을 지금까지 잊고 살았다'고 하였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신랑이 지금 공부하느라 힘들어서 너에게 찡찡대고 있는 걸지도 모르니 받아주어라.
상대를 바꾸려고 하면 절대 바뀌지 않는다. 내가 먼저 바뀌면 상대는 그때 바뀐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딸은 그렇게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딸은 신랑과 3월말에 한국에 옵니다.
그때 자세한 이야기를 하자고 했습니다.
인간관계중에서 가장 어려운 관계가 상사와의 관계와 부부간의 관계입니다.
둘 다 피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도저히 안 되면 사표를 쓰거나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만약 사표를 쓰고 다른 회사에 가거나 재혼을 하더라도 그런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을 다스리면서 지금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라 생각합니다.
3월말에 두 사람이 집에 오면 마당에서 술 한잔 하면서 여러가지 이야기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때 영어로 해야 할지 우리말로 해야 할지 헤깔립니다.
2개국어가 동시에 쓰여질 것 같습니다.
오늘도 비가 와서 더욱 좋은 날이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김달국(dalkug@naver.com)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