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호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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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으로 특별해지고 싶은가>
사실 알고 보면 모든 사람은 나면서부터 특별한 존재다.
얼굴 생김새는 물론이요, 성격을 비롯해 신체적인 면에서 정신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은 각자 다르다.
태어난 나라, 태어난 시기, 인종, 감정, 살아가는 방식이 서로 다른데다 특히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지문조차도
똑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이것만 보더라도 모든 사람은 서로에 대해 특별한 존재인데 더 이상 어떻게 무엇으로 특별해져야 하는 것일까?
도리어 이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구는 ‘유독한’ 인간에게 상당히 위험한 생각일 수 있다.
자신이 원래 특별한 사람임을 깨닫지 못한 이 부류는 더 특별해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기 때문이다.
남의 눈에 특별하게 보이기 위해 보편적 상식에 어긋난 괴상망칙한 언행을 벌이는 사람들 부류다.
같은 인간임이 부끄러워지는 사람들이다. 떠올리기만 해도 그날 하루가 망쳐질 것 같은 사람들이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부류이다.
반면에 그저 아무 것도 모른 채, 묵묵히 자신의 특별한 모습 그대로 살아가다가 어느 날 문득 더 특별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 미담의 주인공들이다. 날마다 어제보다 오늘을 더 낫게 사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향기로 채우는 진정 특별한 사람들이다.
또 처음부터 더 특별해지려고 고군분투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창조라는 이름으로 남이 생각 못한 것이나 안하는 것, 틈새를 찾아 멋있게 때로는
기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특별함 중에 개성이 더 추가된 사람들이겠다.
이렇게 다들 특별한 삶을 살아가지만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닥치는 특별하지 않은 것, 보편적인 것이 딱 하나 있다.
바로 누구나 죽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죽음에는 2차 죽음까지 있다.
사람들에게 잊혀진다는 것이다. 그게 무서워서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도 자신을 추모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쏜살같이 내달리는 세월 앞에 잊혀지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극히 위대하거나 큰 업적을 남긴 극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렇다면 죽음이야말로 내가 특별하게 살아갈 힘을 주는 틈새가 아닐까?
그 특별하지 않은 죽음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 특별한 삶이 아닐까?
누구나 죽어야하는 죽음을 특별하게 죽을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똑같이 닥치는 죽음도 특별하게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다. 남을 위해 희생했다거나
각종 사고로 죽거나 의연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세 가지는 다 내 인격이나 삶의 수준으로 봤을 때 할 수 없는 일들이다.
내게 특별한 죽음이란 그러므로 나의 특별한 모습 그대로 살다가 죽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자연의 아름다움을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감탄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 마음도 자연을 닮아 날마다 아름다워져서 늙어도 고약하지 않고 이기적이지 않으며
아리스토텔레스나 몽테뉴의 늙은이에 대한 조롱이 내게는 하나도 나타나지 않도록 내 자신을 다잡는 일이
누구에게나 닥치는 죽음 앞에서 특별하게 살 수 있는 일이다.
늙어가는 모습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이므로 그 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업적이 없는 나는 사람들 앞에서 더 특별해질 일은 없겠으나 나를 만드신 하나님 눈에
특별하게 보이고 싶은 것이다.
더 나아가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쓸 수 있는 필력이 생겨서 더 특별하려고 하다가 좌절하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은 것이다.
‘세상이란 물거품끼리 만나서 만드는 것이다
물거품끼리 만나서 터지고 사라지면서 안타까워한다.
원래는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다 사라지나 좀 전에 분명 물거품들이 서로 부딪혀 터졌다.
안 부딪힌 것들은 스스로 터졌다.
물거품끼리 만날 때 터지지 않고 봉긋봉긋 할 때 서로 만남을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물거품이 기쁨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물거품이 기쁨인 줄 모른다. 그리곤 터지고 난 후에야 슬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