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박승오
  • 조회 수 4582
  • 댓글 수 8
  • 추천 수 0
2007년 7월 20일 11시 02분 등록

당신은 지금 명동 거리를 걷고 있다.
숨가쁘게 움직이며 웃고 떠드는 사람들. 그 속에서 느닷없이 어여쁜 한 여성이 당신 옆으로 다가온다. 자세히 보니 카메라를 든 우람한 체격의 남자도 옆에 서 있다. 돌발상황! 그녀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KBS 9시'라 적힌 마이크를 들이대고는 당신에게 묻는다.

"요즈음은 대량실업의 시대입니다. 그러면서도 웰빙시대라고 강조 하는데요,
젊었을 때에, 일과 건강. 그 중 어느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자,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이다.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이빨을 허옇게 드러낸 채 승리의 뷔(V)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순서로 말할 것인가?

……………………………………………………………………………………………………

대개는 이렇게 말한다.

"일과 건강이요? 건강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의견
"왜냐하면, 건강을 잃으면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요." – 이유
"실제로 저는 실명할뻔 한 적이 있었어요.. (어쩌고저쩌고)" – 사례


이것은 사람이 생각하는 프로세스를 그대로 반영한다.
즉, 우리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순서로 반응하는 것이다.

* 어떻게 생각하는가? (메시지)
*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유)
* 구체적인 증거는? (사례)

이러한 생각의 과정은, 그리하여, 자연스레 말하는 것에도 적용된다. 글도 마찬가지다. 먼저 주제를 말하고, 증거와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다. 허나 이렇게 쓰여진 글을 보는, 늘 바쁘고 읽을 것이 넘쳐나는 독자의 머릿속을 한번 들여다보자.

(당신) "일보다 건강이 훨씬 중요하다. 왜냐하면.."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독자의 머릿 속은,
'바쁜 세상에 건강 챙길 사이가 어디있어? 그런 건 좀 나이 들면 챙겨야지'
라고 생각하며 (읽고는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당신은 독자의 반을 잃는다.

동의하는 독자의 머릿 속은,
'음.. 건강 무척 중요하지. 나도 그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안다구. 나는 잘 알고 있지.'
라고 하며 역시 집중하여 듣지 않는다. 독자의 나머지 절반을 놓친다.

두괄식의 문단은 명쾌하고 군더더기 없다는 장점이 있다. 주제가 명확히 드러나야 하는 보고서나, 오해의 소지를 줄여야 하는 이론서들을 쓸 때는 두괄식이 합리적일 것이다. 허나 일상적인 글쓰기에서 의견을 먼저 제시하는 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편견을 갖게하여 몰입도를 떨어뜨린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주로 보고서난 논문을 쓰는 학자들의 책이 재미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사람은 호기심의 동물이다. 궁금증이 생기지 않는 명쾌한 문장에는 쉬이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만약 생각의 과정을 거꾸로 뒤집어서 이렇게 썼다면 어떨까? 사건을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시작하는 것이다.

"99년 겨울,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잠시 잠이 들었다가 일어났는데 눈이 떠지지 않았다. 눈곱 때문에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가시가 찌르듯 눈이 따가웠다. 손 끝에 눈동자 특유의 부드럽고 촉촉한 얇은 피부가 느껴졌다. 나는 내 눈알을 더듬고 있었다. 맙소사! 팔이 힘없이 의자위로 떨어졌다. 눈은 떠져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이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 사건
"그렇게 된 후로 한학기 내내 울었다. 공부가 전혀 손에 잡히질 않았다." - 이유
"무엇보다 건강을 소중히 하라. 그러면 나처럼 부모님 가슴에 피멍을 남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 메세지


데일 카네기는 이러한 ‘거꾸로’의 순서를 '마술의 공식(Magic Fomula)'이라 불렀다. 이름은 유치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마술처럼 열어준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것은 [사건-행동-이익]의 순으로 진행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기법을 설명한다. ‘사례’로 시작하여 독자로 하여금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라고 끊임없이 궁금하게 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짧은 메시지(행동/이익)로 강력한 펀치를 날리는 것이다.

어떤 식물의 씨앗은 동물의 내장을 통과하여 강한 산성물질에 씻겨져야 비로소 발아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 동물이 먹을 수 있도록 맛있는 유혹의 물질로 그 씨앗을 감싸둔다. 그것이 바로 달콤한 과육이다. 새가 먹고 하늘을 날아가다 배설하면 그곳이 그 씨앗들이 자라는 터전이 된다. 과육의 달콤함이 있기에 씨앗의 발아도 있는 것이다. 달콤한 사례로 유혹해야 감동이 독자의 마음에서 피어난다.

광고 하나를 떠올려 보자.



[사건] "어어어? 으앙- 엄마- ㅠ_ㅠ."
아이의 볼에는 빨간 핏자국이 선명하다. 분통이 터지는 엄마는 아이를 얼르면서 속상하게 울먹인다.
"사내자식이 무슨, 괜찮아 괜찮아” (아이쿠! 이걸 어째! 흉터 남겠네 ㅠ_ㅠ)

[행동] 이 때, 당당히 등장하는 옆집 아줌마. 손에 든 것은?
"얘는, 빨리 후시딘 발라줘"

[이익] “흉지면, 두고두고 후회한다 너”
후회 없는 상처 치료, 후시딘

실제로 많은 광고들이 이 마술의 공식을 설득에 활용하고 있다. 내용이 촌스럽지 않은가? 그러나 시청자의 머리에는 “상처가 났을 때 – 그 때 후시딘을 바르면 - 흉터가 안남는다” 라고 깊이 새겨지는 것이다. 영화 중간중간에, 실제로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짧은 순간의, 콜라 장면을 삽입하여 상영했을 때 영화관의 콜라 판매량이 배가 되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알게 모르게 설득당하는 것이다. 무섭지 않은가. 이처럼 사례로 유혹하는 글쓰기에는 마술 같은 힘이 있다.

한번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1. 사건 (증거)
사건을 어떻게 찾을 것인가? 많은 이들이 적당한 사건을 찾기가 어렵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어려움은 ‘거창한 무엇’을 찾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허나 생각이 거창할 수록 두려움이 커진다. 그럴 땐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자.
"아, 내가 또 두려워하고 있구나. 작은 것부터 시작해보자"

내 이야기(Me-Story)는 언제나 훌륭한 소재이다. 해외 유명 CEO들과 비교하여 아무리 경험이 작다거나, 고생을 안해보았다 하더라도 쫄지 말자. 독자들은 경험이 지니는 가치를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도 훌륭하고 나도 훌륭하다”라고 말하자.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말고 내 이야기를 하자.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모든 작가들은 위대한 애인이다. 작가들은 일상과 수시로 사랑에 빠진다. 자신에게서 빠져나와 누군가의 피부 속으로 옮겨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다. 좋은 글감은 어떻게 찾을 수 있는가? 왕도가 없다. 사례를 생각하는 또 하나의 좋은 방법은 바로 좋은 눈으로 일상속의 것들을 데려 오는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 살면서 어이없는 순간들 #



우리의 삶은 모든 순간순간이 귀한 소재들이다. 인생은 지극히 평범한 동시에 신화적이다. 이것을 알리는 것이 바로 작가가 펜을 쥐고 자리에 앉는 이유이다. 지금 눈 앞에 있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자.


2. 행동 (메세지)
글의 대부분은 사건과 상황을 묘사하는데 쓰자. 파고 들어가다보면 독자들은 배가 고파질 것이다. ‘그래서 뭐 어떻하라고?’ 적절한 타이밍에 메시지를 던져라. 굶주릴 때 먹는 밥보다 맛있는 성찬이 또 있던가.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다. 단, 주의할 사항 하나.

갑자기! 내가 당신에게 도토리 20개를 동시에 던졌다고 하자. 몇 개나 받을 것 같은가? 아마 하나도 받지 못할 것이다. 수익률 0 퍼센트다. 그렇다면 도토리 하나를 던진다면? 아무리 갑작스러워도 하나는 받을수 있을 것이다. 수익률 100 퍼센트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커뮤니케이션을 잘 못하는 이유중의 하나는, 한번에 너무 많은 메세지를 던지려 하기 때문이다. 한두가지면 족하다. 한번에 조금씩이다. 단칼에 베듯 짧고 강력하게 후려쳐라.


3. 이익 (영향)
"젓가락질 좀 똑바로 해" ----- '내가 왜?'
"운동 좀 해" ----- '도데체 왜? 너나 잘하세요'

메시지 다음의 반응 - '왜?' 는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독자가 게을러서가 아니다. 사람은 결코 명령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욕구’에 의해서만 움직일 뿐이다. 그의 욕구를 자극시켜 주자. 사람에게 ‘이성적인 판단’이란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감정적으로 결정하고, 그것을 이성으로 합리화할 뿐이다.

그 행동을 함으로써 그가 얻게 될 이익에 대해 짧게 언급하자. 단, 구체적으로 해야한다. "그렇게 하면 삶이 윤택해 질 것이다" 대신, "그러면 1년안에 1억을 모을 수 있다"라고 한다면? 이것이 구체성이 지니는 위력이다.

……………………………………………………………………………………………………

모든 글과 말에서 이 공식이 통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의 재미있는 도구일 뿐, 보편타당한 법칙이 아니다. 주제가 주어져있고, 1-2페이지의 짤막하되 재미있는 글 한꼭지를 써야할 때 이 공식은 훌륭한 길잡이가 된다.

긴장의 끈을 끝까지 놓지 마라. 설득하지 말고 유혹하라.
일상의 불을 밝혀 사건을 찾아 묘사하고, 행동과 이익으로 짧게 마무리하라.
그러면 귀를 쫑긋 세우며 '아!'하고 감탄사를 연발하는 독자를 보게 될 것이다.


IP *.218.205.7

프로필 이미지
도윤
2007.07.19 21:28:11 *.60.237.51
하하, 재밌다^^ 네게서 광고의 숨겨진 공식을 배울 줄이야... 간단하지만 설득력있는 마법의 공식이라... 땡큐~
프로필 이미지
한정화
2007.07.20 01:01:48 *.72.153.12
사진들 보면서 우껴 줏는 줄 알았다.
그런 것 쯤이야 일상에서 늘 겪는 것이고...ㅋㅋㅋ
그런데 이런 것도 글의 소재가 되는 구나. ㅋㅋㅋ
프로필 이미지
다인
2007.07.20 03:58:36 *.102.145.181
오ㅃㅏ 글을 읽는 순간
카네기 수업이 쫙 훑고 지나갔다는...
카네기를
'칼럼버전'으로 바꿨네...ㅎ

다양한 사례와 상황설정 & 우낀 사진들이
잘 버무려져서 '정성들였구나'라는 생각을 들게해.
특히 '좋은 눈으로 일상속의 것들을 데려 오는 것이다.' 이 구절이 좋다. 내게 필요한 말이었어.
재밌다...
프로필 이미지
옹박
2007.07.20 11:10:45 *.55.55.188
도윤옹.. 아핫 그러고 보니 도윤옹이 광고일을 하고 있구나. 거짓말 다 뽀록난것? 괜히 뻔데기 앞에서 주름 잡았네.. ㅋㅋ 빨리 동문 후배 술 사주세욧.

정화옹.. 누나가 제일 좋아할 줄 알았다. 턱을 뒤로 당겨 수줍은 듯 키득거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오.

귀똥아.. ㅋㅋ 오랜만에 귀똥이라 불러보는구나. 너는 P형이라 일상속의 일들을 네 말대로 풀어쓰는 것을 잘 할꺼야. 이번에 네가 쓰는 '욕망'부분도 너니까 잘 풀어쓸 수 있는 것이고. 어제 이야기 안했는데.. 네 글 좋아. 잘 썼어. 자신을 믿어도 된다.
프로필 이미지
명석
2007.07.21 10:51:52 *.209.114.145
보통 어떤 사람의 글을 보면, 논리면 논리, 감각이면 감각... 으로 특성이 드러나는데,
승오의 글에는 감성과 논리, 전달력이 모두 종합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배우는 속도도 빠르고 성취동기가 강해서, 조만간 자기브랜드를 가진 승오를 보게 되지 않을까, 기대가 크네. ^^
프로필 이미지
소현
2007.07.21 17:13:33 *.73.2.59
크크크크.. 재밌다. 넌 역시 보범답안.
어떻게 요리 똑!! 떨어지게 쓰는고..
프로필 이미지
기찬
2007.07.22 03:13:52 *.144.157.173
항상 놀라움과 더불어 질투심을 유발하는 옹박아.. 어찌 이리도 글을 잘 쓴단 말이냐.. 만약 탄탄한 논리의 위 글이 전개방식이나 논리를 증명하는 구성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저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을 것이야.. 아 부럽고 배아프다.. 재능해석 안해줄래..ㅜㅜ
프로필 이미지
옹박
2007.07.22 18:04:04 *.232.147.203
한선생님. 그 말씀만큼 듣기 좋은 말도 없네요. 가슴과 머리를 동시에 울리는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저도 언젠가는 한선생님처럼 좋은 글을 쓸 수 있겠지요?

모모누나. 난 누나 글이 참 좋다. 누나글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면 '싱그러움' 그래 누나는 싱그러운 사람이구나.

기찬형. ㅋㅋ 너무 띄워주시는데요..? 올 한 해가 형에게 큰 도약이 되길 바랍니다. '레인보우 파티' 정말 멋져요. 형에게 잘 어울립니다. 멋지게 기획해내세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952 [칼럼 17] 나에 대한 브레인스토밍 [7] 海瀞 오윤 2007.07.09 3586
4951 [칼럼017] '강점'이 화장실에 빠진 날! [10] 香山 신종윤 2007.07.10 2946
4950 (018) 나는 정상일까? [9] 校瀞 한정화 2007.07.12 3020
4949 (18) 역사속 영웅들과의 대화 - 옹박편 [1] 박승오 2007.07.14 3054
4948 [칼럼 18] 눈물 흘릴 줄 아는 마음 좋은 현명한 실천주의자 [2] 海瀞 오윤 2007.07.15 2475
4947 (18) 그들에게 물었다. [3] 香仁 이은남 2007.07.15 2217
4946 (018) 방황하는 젊은이 따듯한 영웅들을 만나다 校瀞 한정화 2007.07.15 2167
4945 [칼럼18]일장춘몽 [2] 素田최영훈 2007.07.16 2320
4944 [칼럼 18] 21세기에 나누는 역사 속의 위인들과 대화 송창용 2007.07.16 2335
4943 위인과 함께 산티아고를 걷다. [1] 최정희 2007.07.16 2313
4942 -->[re](018) 4人4色 : 낙서 [4] 한정화 2007.07.17 2550
4941 (17) 네 인생을 껴안고 춤을 춰라 [8] 素賢소현 2007.07.17 2773
4940 [칼럼018] 영웅들에게 길을 묻다. [2] 香山 신종윤 2007.07.17 2171
4939 [18] 4人의 사내들과의 은밀隱密한 대화 [2] 써니 2007.07.17 2369
4938 (18) 내 안의 그분들을 만나다. 時田 김도윤 2007.07.18 2524
4937 -->[re](18) 덧붙임 - '죽음'과 '풍경' [4] 김도윤 2007.07.19 2118
4936 [칼럼 19] 글이 살아 숨쉬는 소리 [7] 海瀞 오윤 2007.07.20 3069
» (19) 독자의 귀를 쫑긋 세우려면 [8] 박승오 2007.07.20 4582
4934 (19)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6] 교정 한정화 2007.07.21 5477
4933 (19) 내 안의 당신 [4] 香仁 이은남 2007.07.21 2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