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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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지금 명동 거리를 걷고 있다.
숨가쁘게 움직이며 웃고 떠드는 사람들. 그 속에서 느닷없이 어여쁜 한 여성이 당신 옆으로 다가온다. 자세히 보니 카메라를 든 우람한 체격의 남자도 옆에 서 있다. 돌발상황! 그녀는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KBS 9시'라 적힌 마이크를 들이대고는 당신에게 묻는다.
"요즈음은 대량실업의 시대입니다. 그러면서도 웰빙시대라고 강조 하는데요,
젊었을 때에, 일과 건강. 그 중 어느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자,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5분이다.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어떻게 말할 것인가? 이빨을 허옇게 드러낸 채 승리의 뷔(V)만 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순서로 말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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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는 이렇게 말한다.
"일과 건강이요? 건강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의견
"왜냐하면, 건강을 잃으면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으니까요." – 이유
"실제로 저는 실명할뻔 한 적이 있었어요.. (어쩌고저쩌고)" – 사례
이것은 사람이 생각하는 프로세스를 그대로 반영한다.
즉, 우리의 뇌는 무의식적으로 이런 순서로 반응하는 것이다.
* 어떻게 생각하는가? (메시지)
*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이유)
* 구체적인 증거는? (사례)
이러한 생각의 과정은, 그리하여, 자연스레 말하는 것에도 적용된다. 글도 마찬가지다. 먼저 주제를 말하고, 증거와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다. 허나 이렇게 쓰여진 글을 보는, 늘 바쁘고 읽을 것이 넘쳐나는 독자의 머릿속을 한번 들여다보자.
(당신) "일보다 건강이 훨씬 중요하다. 왜냐하면.."
당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견해를 가진 독자의 머릿 속은,
'바쁜 세상에 건강 챙길 사이가 어디있어? 그런 건 좀 나이 들면 챙겨야지'
라고 생각하며 (읽고는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당신은 독자의 반을 잃는다.
동의하는 독자의 머릿 속은,
'음.. 건강 무척 중요하지. 나도 그게 얼마나 중요한 지 안다구. 나는 잘 알고 있지.'
라고 하며 역시 집중하여 듣지 않는다. 독자의 나머지 절반을 놓친다.
두괄식의 문단은 명쾌하고 군더더기 없다는 장점이 있다. 주제가 명확히 드러나야 하는 보고서나, 오해의 소지를 줄여야 하는 이론서들을 쓸 때는 두괄식이 합리적일 것이다. 허나 일상적인 글쓰기에서 의견을 먼저 제시하는 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편견을 갖게하여 몰입도를 떨어뜨린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주로 보고서난 논문을 쓰는 학자들의 책이 재미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사람은 호기심의 동물이다. 궁금증이 생기지 않는 명쾌한 문장에는 쉬이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해야 하는 이유이다.
만약 생각의 과정을 거꾸로 뒤집어서 이렇게 썼다면 어떨까? 사건을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시작하는 것이다.
"99년 겨울, 나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잠시 잠이 들었다가 일어났는데 눈이 떠지지 않았다. 눈곱 때문에 그런가 보다 생각하며 손을 들어 눈을 비볐다. 가시가 찌르듯 눈이 따가웠다. 손 끝에 눈동자 특유의 부드럽고 촉촉한 얇은 피부가 느껴졌다. 나는 내 눈알을 더듬고 있었다. 맙소사! 팔이 힘없이 의자위로 떨어졌다. 눈은 떠져 있었다. 눈을 감고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이 보이지 않은 것이었다...." - 사건
"그렇게 된 후로 한학기 내내 울었다. 공부가 전혀 손에 잡히질 않았다." - 이유
"무엇보다 건강을 소중히 하라. 그러면 나처럼 부모님 가슴에 피멍을 남기는 일은 없을 것이다." - 메세지
데일 카네기는 이러한 ‘거꾸로’의 순서를 '마술의 공식(Magic Fomula)'이라 불렀다. 이름은 유치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마술처럼 열어준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이것은 [사건-행동-이익]의 순으로 진행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기법을 설명한다. ‘사례’로 시작하여 독자로 하여금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라고 끊임없이 궁금하게 하는 것. 그리고 마지막에 짧은 메시지(행동/이익)로 강력한 펀치를 날리는 것이다.
어떤 식물의 씨앗은 동물의 내장을 통과하여 강한 산성물질에 씻겨져야 비로소 발아하게 된다. 그러기 위해 동물이 먹을 수 있도록 맛있는 유혹의 물질로 그 씨앗을 감싸둔다. 그것이 바로 달콤한 과육이다. 새가 먹고 하늘을 날아가다 배설하면 그곳이 그 씨앗들이 자라는 터전이 된다. 과육의 달콤함이 있기에 씨앗의 발아도 있는 것이다. 달콤한 사례로 유혹해야 감동이 독자의 마음에서 피어난다.
광고 하나를 떠올려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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