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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12일 10시 52분 등록

몽골 초원의 어느 마을에서 머무를 때였다. 몽골 친구들이 함께 말을 달려보지 않겠냐고 했고 아무 생각 없이 그러마 했다. 나는 초보니까 알아서 살살 다뤄주겠지 라고 생각한 것은 나의 오산이었다.

 

내가 타는 말에는 내가 잡을 고삐와 그들이 각각 내 옆에서 잡을 고삐 총 3개가 걸려 있었다. 단단히 잡으라고 하더니 그들은 나의 좌우에서 마구 달렸다. 워밍업 따위 없었다. 당황하고 놀라서 어쩔 수 없는 것은 잠깐, 어느 순간 광활한 초원 위를 세 마리의 말과 세 명의 사람이 바람을 맞으며 함께 달리고 있었다. 헬멧이고 뭐고 없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안전불감증이라 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렇게 현지인과 함께 제대로말을 달렸고, 그 때의 감각, 말과 하나로 연결된 감각은 바람이 불면 여전히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떠날 때가 되었다. 아이를 좋아하는 나는 마을에서 알게 된 몽골의 건강한 아이들이 너무 예뻤다. 그런 나와 달리 이별의 자리에서 아이들은 그렇게 아쉬워하는 것 같지 않았다. 서운하기도 했다.

 

짚차를 타고 마을을 떠나 제법 갔을 때였다. 기사님이 웃으며 백미러를 가리켰다. 세상에! 나랑 이별인사를 했던 몽골꼬마 3형제들이 말을 타고 내가 탄 차를 좇아오고 있었다. 백미러에 비친 세 마리의 말과 꼬마 3형제의 이미지는 그 후로도 오랫동안 마음 속 감동과 함께 강렬한 이미지로 내 기억에 새겨졌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는지 ! 저래서 마력(馬力)이라고 하는구나!’하고 감탄했다.

 

꼬마들은 짚차 바로 옆까지 따라 잡아 차와 함께 달렸고 나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했다. 좀 전에 겔(Ger – 몽골 천막)에서의 인사는 그들에게는 진짜 이별 인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길 위에서의 인사를 한 후, 일제히 말머리를 돌이켜 그들은 집으로 향했다. 백미러에 비치는 바람에 흩날리는 말꼬리와 꼬맹이들의 늠름한 뒷통수의 이미지가 주는 감동이란!

 

내가 아이를 낳으면 꼭 말 타기를 가르쳐야지!’ 그 다짐은 바로 그 때 생겼다. 아직 어려 등자(말을 탈 때 두 발을 딛는 기구)에 발도 닿지 않는 어린 아이들이 말과 교감하며 초원을 달리는 자유롭고 늠름한 모습이야말로 내가 지향하고픈 자연과 함께 하는교육으로 보였다.

 

마침 내가 사는 화성시에서는 유소년 승마 지원사업이 활발한 편이다. 적지 않은 승마장들이 차로 20-30분 거리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도 좋다. 운이 좋아 큰 아이가 승마지원사업에 당첨되었고 승마를 좋아하는 아이는 주말이면 연달아 기승을 한다. 말을 타는 딸 아이를 보니 몽골꼬마 삼형제의 뒷통수를 보며 아이를 낳으면 꼭 말타기를 가르쳐야지!’했던 기억이 새삼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났다. 몽골에서의 기억과 동시에 어린이 교육의 괘로 알려진 산수몽(山水蒙)이 떠올랐다.

 

몽고(蒙古)는 중국이 몽골을 비하하는 뜻에서 우매할 몽()을 쓴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주역의 산수몽(山水蒙)에서의 몽()은 단순히 비하의 뜻만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니다. 괘사를 살펴보자.

 

蒙亨. 匪我求童蒙. 童蒙求我. (몽형. 비아구동몽. 동몽구아)

初筮告. 再三瀆. 瀆則不告. 利貞 (초삼고. 재삼독. 독측불고. 이정)

 

어리석음은 형통할 수 있으니 내가 어리석은 어린 아이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어린 아이가 나를 찾는 것이다. 처음 묻거든 알려주고, 두 번 세 번 물으면 모독하는 것이다. 모독하면 알려주지 않으니,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

 

위 괘사의 대략적인 뜻은 동몽(童蒙)으로 표현되는 어린 학생의 교육에 있어서 스승이 학생을 찾는 것이 아니라 학생이 스승을 찾되, 처음에는 대략적인 방향을 알려주나 끝내는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무지몽매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결국 몽은 형통하다(蒙 亨) 하였다. 학원이 학생을 유치하여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자연이라는 스승을 찾아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산수몽괘는 말한다.

 

자연과의 교감, 자연의 일부로서의 동물과의 교감. 승마야말로 산수몽을 따르는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가 되면 아이들은 운전을 배울 것이다. 브레이크를 밟으면 멈추고, 악셀을 밟으면 나아가고, 핸들을 꺾으면 방향을 틀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승마는 그 전에 말과의 교감이 이뤄져야 한다. 이럇! 한다고 꼭 나아가는 것은 아니고, 워워~ 한다고 반드시 멈추는 것이 아니다. 고삐를 왼쪽으로 당겨도 수틀리면 꼼짝하지 않는다. 당근을 주며 먹여주고 쓰다듬어 주고 솔질도 해주고 말의 이름도 불러주며 교감하고 길들이는 소통 후에 함께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집, 학원, 교실보다는 산수몽괘와 더불어 자연과의 교감 속에서 시 한편 읊을 수 있는 아이로 자라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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