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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0일 04시 05분 등록
글이 숨쉬는 소리

누군가 내게 자기 소개서 쓰는 법에 대해 묻길래, 조금 도움이 될까 싶어 나의 지난 개인사 20페이지를 다시 꺼내 보았다. 이제 막 겨우 돌 지난 아기처럼 다섯 달도 채 안 되는 나의 ‘작품’인데 다시 읽어보니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면서도 많이 낯설었다.

왜일까.

그것은 그 개인사 20페이지를 쓸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가 전혀 똑같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노력을 다섯 달 동안 했으니 그 때 당시의 나에 비해 나는 다섯 달의 시간만큼 성장해 있고, 변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믿어줄는지. 지금에 와서 그 개인사 20 페이지를 다시 쓰라고 한다면 나는 예전과는 또 다르게 쓸 것임이 분명하다. 그렇구나. 글을 쓴다는 것은 인생을 산다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구나. 글이란 내게 있어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다. 선생님께서 괜히 연구원 졸업 요건으로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과 책을 내는 것을 동등한 위치에 두신 게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사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보면, 그것이 바로 글을 잘 쓰는 방법이 되겠구나 하는 내 나름의 추리를 해본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나 기본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쯤은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글도 기본에 충실해서 쓰게 된다면 그것이야말로 잘 산 인생처럼 읽는 이들의 마음과 영혼을 울릴 것이다. 너무 진부하고 뻔한 얘기처럼 들리는가. 어찌하겠는가, 내가 해줄 얘기는 이것뿐이니 말이다.

나에게 글이란 그냥 단순히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니라, 또 다른 ‘나’이다. 이름 있는 생명체란 말이다. 나의 색깔과 나의 기분과, 나의 감정을 품고 있는 나의 그림자 같은 생명체.

사람은 생각한 대로 행동하게 마련이라 했다. 고로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그 행위 자체가 좋은 글의 밑거름이 되는 법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같은 것을 경험해도 그것에 대해 곱씹어 보고 생각해보고 고민해보는 자가 그러지 않는 자에 비해 보이지 않는 경험의 연결고리들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연결고리들이 바로 케익 위에 얹은 다양한 장식과도 같은 ‘창조적 발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많이 고민해라. 고민은 질문을 낳고, 그 질문은 답을 가져다 준다. 고민하는 시간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진심을 담아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지나치게 진지하거나 불필요하게 심각해질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진심의 냄새를 풍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나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행위이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진심이 담기지 않은 글을 쓴다는 것은 나 자신을 속이는 일일 뿐이다. 진심이라는 잣대는 글의 균형을 잡아준다. 왜냐하면,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지 쓰고자 하는 글의 소재와 재료들을 걸러주는 체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많은 이야기를 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할 이야기가 부족하지도 않음은 글에 대한 예의이자 그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한 배려와 책임이다. 진심은 언제나 통하게 마련이라고 했다.

우리에게는 황금률이라는 것이 있다. 남이 나를 대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내가 남을 대해야 한다는 황금률 말이다. 혼자 사는 인생이 아니기에 우리는 나 아닌 너를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글을 쓸 때에도 쓰는 주체는 나이지만, 읽는 독자도 항상 염두에 둬야 하는 법이다. 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어느 정도는 가미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하면, 이것 자체만으로도 좋은 필터링의 과정이 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나의 글을 바라보기 때문에 고집스러움을 넘어 융통성을 불어넣어 준다. 이때 비로서 글은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되는 것이다. 나의 모놀로그가 아닌 우리의 오케스트라.

그렇다. 이 세 가지 이외에 나는 해줄 말이 없다. 왜냐하면 인생이 일직선이 아니듯이 글도 그때 그때마다 다른 궤도를 따라 흐르기 때문에 정해진 기술이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지, 정해진 기술이 하나 있는 셈이다. 바로 ‘정해진 기술이 없다’ 라고 하는 법칙.

자, 오늘은 어떤 글이 나올까. 거친 숨을 쉬고 있는 글일까, 아니면 잘 들리지도 않는 참새 숨소리를 내는 글일까.
IP *.6.5.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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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7.20 05:51:34 *.72.153.12
윤~ 내겐 글쓰기가 너무 어려워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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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2007.07.20 06:01:26 *.6.5.195
언니... 산다는 게 그저 어렵기만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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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7.20 08:37:05 *.72.153.12
난 지금 시점에서는 그러네. 어려워.
사는게 안 어려울 때는 그냥 즐기지.
어렵지 않는 것, 그걸 나중에 글로 풀어 쓸라면 그것도 어려워.(내 머리 속 지우개 알지? ㅋㅋ) 그걸 어찌 글로 풀어 내리오.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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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07.07.20 20:36:48 *.227.204.113
오호, 윤아~ 벌써 5개월만에 도통했느냐? 역시 스마트해. 따뜻하게 펄떡거리는 글이다. 윤이가 이 글을 쓸 때 입가에 살포시 번지는 미소가 보인다,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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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2007.07.21 02:31:32 *.6.5.241
언니... 지금 시점에서 어렵다면 다음 시점에서는 조금 수월해질거야^^

뱅곤 오라버니!!! 오랜만이에요~ 5개월만에 도통했음 1년 지나면
하늘로 올라가게요? ㅎㅎㅎ 팔딱 거리는 소리가 막 들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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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7.21 10:44:00 *.209.114.145
윤의 감성과 표현력은 타고난 것 같아. 본격적으로 글을 써봐도 좋겠다는 생각.
분야를 잡아서 좁혀나가서, 윤의 소망대로
파트너와 공동으로 창조해낸 작업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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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2007.07.22 13:09:49 *.6.5.210
한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 그래요? 틈날 때마다 무엇에 대해 쓰면
좋을까 조금씩 고민하고 있어요. 정말 그런 날이 올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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