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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1일 07시 01분 등록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 잘 안 써질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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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번호표를 뽑아 들고 앉아서는 글쓰기 준비를 한다.
이번 칼럼은 반드시 글쓰기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 젠장, 안 써져서, 못써서 죽을 맛인 내게 이번 칼럼 소재는 때려 죽여도 못한다고 하는 그런 소재인 것이다.

젠장, 젠장, 젠장 ....... 이건 그냥 하는 말이다.
난 해야하는 이유만 찾으면 죽어도 못 한다 같은 것은 결국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게 일(이유들)에 길들여졌다. 그래서 결국은 그걸 한다. 내 특성에 맞지 않는 것이라는 이유 하나를 달고 하는 거라, 썩 잘 해내질 못할 거라고 미리 도망갈 구멍은 파놓고 시작한다. 그렇지만 해보기는 한다.

내가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이유와 힘든 이유를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글쓰기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떤 이들에겐 영어를 배워 쓰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듯, 또 최고의 영어 강사 선생님들이 ‘영어는 쉽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단지 우리가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라는 것처럼, 글쓰기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내게만 어려운 것일 수도 있다.

내가 글쓰기를 힘들어 하고, 글을 어렵게 쓰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우선은 나는 너무 진지하기 때문에 어렵다.
‘맞선에 가면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해?’라고 친구에게 물었을 때, 친구 대답이 ‘그냥 나에게 말하듯이 해.’ 라고 답해주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맞선의 어려움에 몰두해서 하기 전부터 뒤죽박죽 만들지 말고, 글쓰기도 친구에게 얘기하듯 한다면 어렵지 않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칼럼에서 한 두 개쯤은 그렇게 썼던 것 같다. 친구에게 보낼 편지를 쓰듯이 썼다. 가볍게 이런저런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냥 쭉 썼다. 그렇지 않는 대부분의 경우는 무척 힘겨웠다.

그리고, 나는 한가지 주제가 떠오르면 다른 것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다. 어떤 것을 소재로 잡아서 글을 쓸 때는 재료가 충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재가 충분히 채워지지 않는 조건에서 조차 그것만을 쓰려고 고집한다. 그러다 보니 정말 힘겹게 쓰게 된다. 없는 것을 가지고 집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료를 더 수집하거나, 비슷한 상황을 더 찾거나 해야 한다. 같은 소재 중에 그때의 특성에 맞는 것을 더 골라보던가 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돌아서 다른 것들을 이용하려들지 않는다. 많은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여기에 한 몫을 거들고 있는데, 그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제 상황을 봐가며 소재를 잡아야 하는 데, 한번 잡은 소재를 못 버리고 미련스럽게 고집불통이다.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이건 조금 오만이기도 하다. 연구원 시작할 때 나는 전에 썼던 것에 대해서는 절대 쓰지 않는다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웠다.
칼럼쓰기는 내게 50번의 연습이기도 하다. 그 연습을 매번 진지하게 새롭게 하고 싶어서 어디엔가 글로 옮겨둔 것은 절대 이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봤자 별거 없다. 원래 글로 풀어내는 성격 아니어서 써둔 것도 없으니 그건 그리 지키기 어려운 것은 아닐거다. 그리고, 개인적인 특성상 두세 번 같은 이야기를 기술하는 것 자체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쓰기 교본 같은 것들은 같은 소재를 몇 번이고 써서 갈고 닦아 적절한 표현으로 고치고, 구성을 바꾸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아야 좋은 글을 쓰게 된다고들 말한다. 나는 그런 일에는 도통 흥미가 없다. 두 번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다. 한번 손을 떠난 것에 대해서 몇 번이고 다시 고치는 것은 싫다. 그럴 경우 대부분 차라리 처음부터 새로 하나를 쓴다. 그 편이 훨씬 수월하다.

글쓰기 어려운 또 다른 이유 중의 하나는, 나는 글 쓰면서 타인과 소통하는 것보다는 자신과 소통하기 때문에 글 쓰는 것이 어렵다. 자신과의 소통에는 세상에서 말하는 글쓰기의 원칙이 많이 들어가질 않는다. 타인과 효과적인 소통을 위해서는 어떤 형식이 적절할지 어떤 수사법이 적절할지 알아본 후에 그에 걸맞은 형식을 취해서 따라가다보면 어느 정도 틀이 짜여진다. ‘기승전결’이라는 틀 말이다. 큰 줄거리를 잡아서 짜고는 거기에 적절히 맞춰서 살을 붙여 나가면 된다.
그러나, 내가 쓰는 글쓰기는 나와의 소통, 나의 치유에 중심이 맞춰져 있어서 이런저런 적용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1차적인 목적이 나 개인의 치유이기 때문에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글이 무겁고, 쓰면서 힙겹고, 읽은 이도 부담스럽고 힘겹다. 좀더 나은 결론으로 이끈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만을 위한 치료를 위해 의식을 흘려보내고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가 쓰기를 거부하는 소재에 대해서는 완전히 죽을 쑨다. 그런 소재에 대해서는 객관적으로 그것을 기술할 만한 형편이 못된다. 주관적 감정이 극렬히 개입해 버려서 잘 떼어내 지질 않는다. 그럴 경우는 치유가 덜 된 채 마구 휘갈겨 써야 한다. 칼럼으로 제출하게 되는 글은 어느 정도 타인이 읽을 거라는 의식이 있어서 내부에서 검열이 엄청 심하다. 그러니, 내 사상과, 경험을 드러내길 거부하면서 그것을 써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글쓰기가 어려울 때,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브레인 스토밍에서 내가 냈던 것들은 자기검열 문제에 부딪쳤을 때, 마구 욕이 쓰고 싶을 때 어떻게 써야 하나 혹은 도덕책처럼 안 쓰고 싶은데 결론이 그렇게 흘러갈 때 등이다.

나는 치유에 도덕을 개입시키지 않기로 했다. 그거 개입시키면 치유, 재미없어진다. 타인에게 보다는 내게 집중하기로 했기 때문에 윤리책과 같은 결론으로 가지 않고 나를 만족시키는 쪽을 선택하기로 했다. 좀 뻔뻔해 지기로 한 것이다. 그런 결론이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독자도 제쳐 두기로 했다. 내가 내 생각을 쓰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기로 했다. 독자의 생각은 독자가 쓰면 된다. 내가 기술한 그거 마음에 안 들면 자기가 그냥 하나 쓰면 되지 하고 마음 편해지기로 했다. 우선 내 코가 석자다.

많은 글을 읽지 않았다거나 연습이 부족하다거나 하는 것은 글쓰기가 힘든 이유 중에 가장 손쉽게 답할 수 있는 뻔한 것들이다. 물론 내 경우도 그렇다.

이런 저런 잘 안써지는 이유를 알고 있는 지금도 나는 글쓰기가 편치 않다.
이유를 안다고 해서 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난 기계가 아니다. 그렇게 오류를 고쳐 셋팅이 쉽게 이루어지는 기계가 아니다. 한마디로 모순을 품고 사는 인간이기 때문에 글쓰기가 편치 않다고 하고 싶다.

모순에 휩싸인 나는 잘 안 써지는 수많은 이유는 다시 잘 쓸 수 있는 수많은 조건이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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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2007.07.21 02:37:12 *.6.5.241
언니 글이 울고 있는 소리가 들리네, 토닥토닥 ^^
다 울고 나면 까르르 웃는 소리 내는 글이 씌어질거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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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7.21 07:20:16 *.72.153.12
^----^
글보다는 다른 것에 치중하고 싶어. 이런 내맘을 글이 알고는 서운해 하나봐. 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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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7.21 10:40:22 *.209.114.145
너무 진지한 것에서 벗어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잠시 생각해보았네요. 내게도 있는 측면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이들면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다면 그것은 빈도로 해결할 수 있겠다는 생각.

가령 술자리가 한 두 번인 것과 대 여섯 번인 것에는 차이가 있겠지.
사람의 성격이나 행동반응, 방목의 끝, 술자리의 분위기.... 에 대해 사례가 쌓이고 이해가 쌓이고 카테고리화가 가능해지고,

남녀노소 누구나, 친해져서 속내를 알게되면 비슷비슷하다는 것
인생에도 주기가 있고
인생의 문제도 범주가 있다는 것을 알게되면,

조금은 가볍고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연륜'일지도 모르니,
부지런히 쫓아다니고, 자신을 거칠게 방목시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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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7.21 11:17:11 *.72.153.12
좋지요. 어떤 상황에 자신을 그냥 던져 놓는 것.
거칠게 방목하고 그리고 그것으로 '파란만장 다이어리' 한번 써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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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07.23 11:30:12 *.211.61.252
내가 글쓰기를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나의 글은 이래야 한다는 기준을 미리 정해놓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 틀에 맞는 것만 넣어려니 넣을 게 없고 빈약해지고 딱딱해지고 그러더군요. 혹시 정화님은 어떠신지?

우선 그 틀을 깨고자 노력중입니다. 그런데 변화라는 놈은 남의 눈은 보이는데 내가 볼 수 없으니 참 답답하네요. 누가 이야기 좀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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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7.23 11:40:46 *.72.153.12
여해님 저도 좀 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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