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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1일 20시 48분 등록

”나는 오로지 꼭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 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각성시키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우리가 책을 읽겠는가? 자네 말대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도록?
맙소사, 책을 읽어 행복할 수 있다면 책이 없어도 마찬가지로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책이라면 아쉬운 대로 우리 자신이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해주는 불행처럼, 우리가 모든 사람을 떠나 인적 없는 숲 속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들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스무 살의 프란츠 카프카가 그의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쓴 편지입니다.
내면의 얼어 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 자살처럼 다가오는 글이란 도대체 어떤 글이 길래 이런 싸한 느낌까지 가져다 주는 걸까요? 카프카의 이 편지를 읽으면 저는 한 줄도 쓸 수 없다가도 이상하게 또 다시 제 눈 주변 근육이 긴장되면서 책상 앞에 앉게 합니다. 차가운 맥주 한 잔이 몇 초 만에 몸 안으로 전달되며 부르르 떨게 만드는 짜릿함처럼 흰 색의 워드 화면을 뚫어지게 노려보게 되는 거지요.

왜 글을 쓰냐는 물음에 어떤 분들은 외로워서 쓴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외롭다라는 말, 멀쩡한 얼굴로 이 말 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외로우면 다 쓰는가? 그렇지는 않지요. 보통 사람들은 글쓰기가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재능을 발휘하여 각자 나름대로 받아들이며, 때론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또 가끔 전혀 외롭지 않다라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 분들 정말 전생에 착한 일을 많이 하셔서 이 생에서 제대로 복 받으시는 분들이지요.

외로움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글 쓰기를 택한 이들 중에는 바로 저도 포함이 됩니다. 자신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다 어느 날 느닷없이 올라 탄 항해선 갑판 위에 오늘 저는 5개월 째 서 있습니다. 심했던 뱃멀미는 어느덧 익숙해졌고 가끔 몰아치는 파도소리에도 처음처럼 잠을 못 이루거나 하지는 않게 됐습니다. 요즘은 가끔 보트를 타고나가 낚시를 즐기기도 하고 바닷물 속에서 헤엄을 치기도 합니다.

그 동안 저에게 바다는 어땠을까요? 불면증의 존재조차 모르던 시절엔 조개를 줍기도 하고 모닥불에 둘러앉아 추억 만들기에 골똘하고, 또 수면에 찰랑거리는 물비늘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곤 했지요. 그러다 사랑을 잃어 버린 어느 겨울 날엔 그 사랑을 묻으러 갔었고, 희망이 넘실대면 소라구이와 불꽃 놀이에 정신을 팔다가 모래사장에 발자국만 남겨놓고는 이내 뒤로했던 바다였습니다. 낚시도 못하고 바다 품에 안겨서 헤엄을 치지도 못했고 가슴 뛰게 하던 서핀도 못하고 그저 멀리서 힐끗 거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바라보기만 하는 것은 절반쯤 바다에 대한 모욕입니다.

이대로 죽어갈 수는 없다고 내 안에서 굉음이 울리던 어느 날, 저는 햇빛 가리개를 걷고 업저버 자리에서 일어나 바다 속으로 뛰어 보리라 결심을 했습니다. 그 안에 존재하는 것들, 바다가 품은 것들이 무엇인지 직접 대면하고자 함이었지요. 그리고 강한 자석처럼 나를 잡아당기던 그 힘에 이끌려 오늘 이렇게 바다 한 가운데 서 있습니다.

제가 글쓰기에 있어 가장 가치를 두는 부분은 통찰과 소통입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그대로 받아 들여 좀 더 나아가 말씀 드리자면 우리들이 세상에서 하는 행위의 대상 저 편에는 내가 아닌 타인들이 있습니다. 나와 비슷한 모습으로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지요. 히트를 치는 드라마의 본질은 내 마음을 어찌 이리 잘 대변하는가 하는 대리 만족 속에 있을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임재범의 목소리는 가끔씩 터져 나오는 나의 절규를 폭발적인 그의 가창력이 대신 해 주고, 하루 왼 종일 허리가 휠 만큼 웃게 하는 걸쭉한 농담에는 또한 제 안의 짓궂음이 묻어있기 때문이겠지요. 그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그들이 있습니다.

통찰이란 점에서는 사유(思惟)만한 것이 없고 소통은 그에게 다가가지 않는 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저의 경험으로는 그것은 자신에게 가장 솔직해 지는 것과 타인의 내면에 부담 주지 않고 가까이 가는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사유를 깊게 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껍질 안에서는 웅크리고 있는 자신의 발가락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우물 속에서 그 안에서는 보는 하늘이 전부라고 생각하기 일쑤인 것처럼 말입니다.

“당신이 어떻게 벼랑에 떨어졌는가는 관심이 없다, 나는 당신이 거기서 어떻게 올라왔는지 알고 싶다.”
자기 연민은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 조차 환영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글 쓰기에서만큼은 이 과정이 필수가 됩니다. 왜 외로운가를 쫓아가다 보면 자신의 내부에서 끓고 있는 전혀 의외의 것들과 만나 이내 어색해지거나 쑥스러워지지요. 또 쓰기 위하여는 그것을 털어놓거나 인정하는 정화 과정이 필요한 데 그것 또한 간단치 않은 작업입니다. 소위 말해 초보들은 쪽 팔리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 힘이 듭니다. 익숙한 연장을 다루기 위해서는 손가락에 몇 번 피가 나듯 숙련과정이 필요할 것입니다. 조금 쪽 팔려야 됩니다. 내면의 얼음을 깨는 망치의 두들김에 견뎌야만 합니다.

그것을 도와주는 것은 삶에서의 깨달음이고 또 긴 성찰의 시간을 통해 스스로 체험하거나 또는 이미 그런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겠지요. 재미있는 것이 사람과의 만남에는 다행히 이 시대의 사람만이 아닌 수 백 년, 천년 전의 사람들과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쇄술의 발견은 그래서 경이롭습니다.

누군가의 글이 나에게 다가온 것은 내 속에 있는 감성과의 일치입니다. 누군가의 글이 그대를 울린다면 분명 그대도 그런 글을 쓸 수 있는 감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당신의 감성은 동일한 겁니다. 그러니 쓰고자 하는 사람은 두려워할 이유가 없으며 읽는 이 또한 편안하게 마음 가는 데로 맡기면 됩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내 마음을 묘사하는 것, 그것이 좋은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만약 당신이 솔직하고 감성이 느껴지는 마음으로 쓴 글이라면 그런 마음은 언젠가 누군가에게 전달될 것입니다. 단 한 사람에만 전달되어도 기쁜 일이며 또 설사 그렇지 못하다 하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토해내어 행복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혹시 이 글이 그대에게 무언가 전달되었다면 그래서 혹시 조금이라도 그대가 쓰고자 하는 숨겨진 감성이 자신의 존재를 알려온다면 기쁠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항해 중입니다.
이 여행이 끝나는 날, 그 땐 진정 그대 내면의 얼음을 깨는 그런 글을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동시에 제 안의 얼음도 녹아 내리기를 희망합니다.

IP *.48.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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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07.07.21 21:55:10 *.233.200.118
작가 이청준 선생은, '내 글이 상처받은 사람을 쓰다듬었는가.
누구의 빈 가슴을 채워주었는가.
이웃들과 따뜻한 눈빛을 나누었는가.'..에 대해 성찰해본다고 했습니다.
글 쓰기의 본을 명징하게 드러낸 말씀이라 여겨집니다.

글 쓰기의 바다를 항해 중이신 향인님!
자신에게 정직하고, 세상 공부 열심히 하고, 독자를 배려하는 영혼이 살아 있는 한, 내 안의 얼음장은 절로 녹아 내리고 독자와 뜨겁게 교감할 수 있는 글이 잉태되는 건 그리 멀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힘차게 정진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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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7.21 22:16:46 *.72.153.12
바다를 찾아가는 데 이정표가 되주시네요. 고맙습니다.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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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21 22:56:41 *.70.72.121
우후!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되겠는 걸. 아직 여름의 절정도 지나지 않았는데 완숙한 가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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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7.23 12:43:15 *.48.41.28
늘 읽어주시는 한희주님. 격려 감사합니다. 잘 지내시지요? 가끔 모임에도 나오시니 참 보기 좋습니다. 고마운 말씀 기억하겠습니다.
정화씨에게 이정표가 되었다니 기뻐요. 우리 열심히 가보자구여.
써니님, 아직 여름도 제대로 못 느끼는데 가을이라니요....청력검사 권해드려야 할까봐요. 다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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