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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2일 08시 22분 등록
지금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쓰고자 펜을 들었지만 더 이상 나아가질 못한다. 그래도 쓰려고 애를 써보지만 한 문장을 쓰고 멈춰버렸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고민은 꽤 오래 전부터 시작된 것이다. 원래 글쓰기의 재능이 부족한 탓도 있고 글쓰기 방법이 잘못일 수도 있다.

이번 7월 연구원 주제가 자신의 기질과 재능에 대해 생각해보는 달이어서 나 자신과 대화를 어느 때보다 많이 해본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나는 글쓰기에 타고난 재능은 없다’는 점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재능이 없다는 사실에 그다지 실망스럽지는 않다. 연구원을 시작하면서도 글쓰기에 소질이 있어 이 재능을 살리고자 시작한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생각을 제대로 말과 글로 표현하고 싶었다.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나 매번 느끼지만 나의 말과 글에는 무언가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부족함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알 듯 말 듯 눈앞에 나타났다가는 바람같이 사라지곤 했다. 매번 뒤 쫒아 가보지만 얼마나 날쌘 놈인지 뒤꽁무니조차 보지 못했다.

그러다 며칠 전 구본형 선생님이 그 녀석의 정체에 대해 한 가지 힌트를 주셨다. 진작 주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힘들게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그동안 숱한 머리카락도 빠지지 않았을 텐데. 직접 고민을 해보지 않으면 그 의미도 깨닫지 못하고 해결방법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할지 뻔히 알면서도 섭섭한 기분이 먼저 앞선다. 하긴 선생님도 이 고민을 무척 하신 모양이다.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부담스럽다. 얼굴은 놀랄 만큼 유연한 물체다. 교교한 달보다 더 요염할 수도 있고, 얼음보다 더 차가울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뻔뻔하게 우리 신체 가운데 늘 벌거벗고 나타나는 부위다. 햇빛이 너무 강한 날이면 선글라스를 끼기도 하는데, 가린 몸이 더 성적이듯 더욱 은밀해진다.

문득 내 얼굴이라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나를 소설처럼 묘사해보고 싶었다. 가끔 내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다. 언젠가 아주 지루한 날 오후, 커피숍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며 낙서라도 하고 싶은 때가 있다. 그때 생각나는 것이 내 얼굴이다. 어디 한번 그려볼까 하면 머릿속에 내 얼굴이 없다. 마음속에도 없다. 어디에도 없으니 그릴 수 없다. 사진을 보면 사진마다 그 정조가 다르다. 같은 얼굴이건만 어떤 미세한 변화가 그렇게 다르게 보이게 할까?”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p98)

그동안 나의 글은 메말라 있었다. 살아 숨쉬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겠지만 일차적인 원인은 사실적으로 묘사만 하고자 애를 쓴 것이다. 사진을 보고 아니 실물을 직접 보더라도 그릴 수가 없었다. 사물이 내가 아니고 내가 그 사물이 아니었다. 그러니 글 속에 생명이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내 얼굴조차 내 생명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 나의 글에 생명이 없었던 이유를 알았다. 이유를 알았으니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도 해결방법 또한 선생님께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셨다. 매번 가뭄에 콩 나듯이 가르쳐주시더니 이번에는 이유와 해결방법까지 자상하게 알려주셨다. 내가 힘들었던 고통이 전달이 된 것일까. 아니면 해결방법을 알아도 실천하기 어렵기 때문일까. 아무튼 몇 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다.

“초상화를 그릴 때 몇 가지 공통적인 어려움을 겪는다. 우선은 초상화가 실제 인물과 달라 보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떨쳐버려야 한다. 실제 인물과 비슷해 보이려는 노력을 하다 보면 생명력이 없어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물의 내면을 그려내는 것이다. 초상화의 생명은 정밀묘사보다 그 인물이 풍기는 분위기와 느낌을 담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초상화의 매력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초상화 그리는 것을 가르쳐주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신이 그리는 선 하나하나가 실물과 닮기를 원한다. 그들은 주로 윤곽부터 그린 다음 그 안을 채운다. 즉, 밖에서부터 안으로 그리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난 초상화는 그 반대로 그려야 한다. 즉, 안에서부터 밖으로 그려야 한다. 왜냐하면 안만 제대로 그려지면 밖은 저절로 완성되기 때문이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p99)

바로 이것이었다. 겉치레에만 신경을 쓰고 밖에서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글을 쓰는 출발점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지만 대학로에 나가보면 캐리커처를 그리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들은 5분 만에 손님들의 얼굴을 순식간에 그려낸다. 그 짧은 시간에 그린 그림이 실물과 똑같다. 하도 신기해서 그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가 알려준 방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먼저 얼굴의 특징을 찾아내고 그 특징을 중심으로 얼굴을 그려나간다고 한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쓰고자 하는 주제의 특징을 잡고 그 특징을 중심으로 글을 써나가면 된다. 그동안 어떻게 시작해야 될지 출발점을 찾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그동안 엉뚱한 출발선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러니 실물과 다른 엉뚱한 곳으로 나아갈 수밖에 ….

이제 제대로 된 출발선을 찾았으니 매일 뛰는 연습을 해야 한다. 글도 달리기와 마찬가지로 꾸준히 쓰지 않으면 장거리를 뛸 수가 없다. 매일 달리지 않으면 달리기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없듯이 글쓰기의 묘미를 느낄 수 없다. 글쓰기도 글쓰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 항상 의문의 해답은 기본에서 찾게 된다. 기본이 부실한 결과이리라. 이번 글쓰기는 조급하지 않고 천천히 써나가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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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22 10:18:29 *.70.72.121
나도 아직 막막한 데... 나는 내 글이 너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늘 걱정을 하는데, 나무 하나로 글이 이어지긴 하죠.
그래도 그대의 균형감과 메시지 전달력 그리고 항상 노력하며 다듬는 글의 정성은 못 따라 갈 것 같아 마음이 바쁘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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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7.22 13:53:24 *.209.101.160
요며칠, 정혜신 블로그에 올려진 글을 훑고 있는데요.
그림이 있는 에세이는 물론이고, 모든 글들이, 상당히 감각적이고, 솔직과감해서 깜짝깜짝 놀랄 정도에요.

창용님이 고심하는 문제의 반대 극에 있는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말해보네요. 한 번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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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07.22 14:45:35 *.73.2.75
창용 오빠. 댓글에 오빠글이 없으니 허전하고 궁금했더랬어요.
휴가다녀오셨나요? 아니면 여러가지 생각들에 잠겨계셨나요?^^

전 재능이 없다고 느껴지면 그냥 놔버리는 사람이에요.
오빠의 글을 읽다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나는 글쓰기에 타고난 재능은 없다’는 점이다.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은 있지만 재능이 없다는 사실에 그다지 실망스럽지는 않다'라는 구절에 정말 많이 놀랐어요.

이렇게 생각하시는 줄도 몰랐고
또 그렇게 생각하심에도 그런 성실함을 가질 수 있다는것에 다시한번 놀랐어요. 그런 확신의 근원이 무엇일까요?

음.. 절 많이 되돌아보고 생각하게 하는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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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7.22 17:42:32 *.72.153.12
쓰신 것 중에 몇개는 정말 좋았어요. 글쓰기에 재능이 없는 것 같지는 않으신 것 같은데.....
우리는 매번 안타나 홈런을 때리지 않아도 되지 않나요?
3할 3푼? 2할 대의 타자라도 좋던데... 헤헤헤.
책 쓰려면 3할 이상이 되야 되나요? 윽.

창용 오라버니 글도 나름 매력 있어요. 양념이 많이 들어간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깔끔한 맛을 내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 그 특색을 살려도 좋을 듯 해요. 매번 부드럽기만 한 음식을 먹어야 한다면... 으 글쎄요. 그것은 글 맛이 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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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07.23 11:21:01 *.211.61.252
이번 주는 내가 내가 아니네요.

써니님/ 숲과 나무를 동시에 보기가 쉽지는 않죠. 그래도 숲과 나무의 시스템을 전공하는 저보다는 훨씬 나아보여요.

평범한 사람은 노력밖에 공들일 것이 없네요. 써니님이 칭찬해주시니 힘이 납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명석선배님/ 추천해주신 글들 꼭 보겠습니다. 애정어린 조언 감사드리고 선배님의 글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아직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만... 감사합니다.

소현님/ 조금 바빴네요.
소현님은 색다른 글의 향기가 있어요. 이것 자체가 매력이에요. 스스로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닮고자 하는 욕망때문일겁니다. 그 욕망을 자신의 색깔에 맞추어 보세요. 나도 나의 욕망을 나에게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뿐입니다. 그래도 가끔은 힘들기도 하지만.

정화님/ 옳은 이야기예요.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먹고 싶은 음식이 되는 것도 즐거운 일이겠죠. 귀한 말 고맙네요. 명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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