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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3일 00시 40분 등록
지지난 번 연구원 모임에서, 글 쓸 때 어려운 점을 브레인스토밍 방식으로 풀어놓았다습니다. 개수로 셀 수 있는 것을 추려보니 57개였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에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나는 이들을 몇 가지 항목으로 다시 분류해보았습니다. 물론 의견을 낸 이가 의도한 것과 내가 해석한 바가 달랐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항목에 해당되어 한 곳에 분류하기 어려운 것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따로 묶었습니다. 사실 이것 하나하나에 대해 쓰려면 끝이 안날 겁니다. 저는 뒤쪽에 저에 해당되는 점을 적어보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부분에서 어려운 점을 겪고 있는지 아래를 참고하고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1.글의 동기, 타이밍.
-써야 하는데 전혀 FEEL이 없을 때, 페이지를 메꿔 나가는 느낌이 들 때
-술 마시고 글 쓰기?
-글을 써야 할 때? 적정 타이밍?
-글쓰다가 너무 울어서 이미 감정이 다 풀려버렸을 때
-글을 쓸 때 가장 좋은게 지나가버릴 때.. 그래서 글이 쓰기 싫어질 때

2. 주제 선정
-아예 주제를 잡지 못하겠을 때
-쓰다보면 도덕책처럼 쓰게 되었을 때
-내가 쓰고싶은 주제를 이미 다른 사람이 써 버렸을 때
-너무 많은 주제 때문에.. 어떤 주제가 가장 적합한 것인지 모르겠을 때
-정치나 역사 등의 거대한 글 쓰기 – 감히 건드릴 수 없을 때
-책을 읽고도 줄기가 아닌 작은 나뭇잎만 붙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
-글쓰기 주제가 지나갔는데 까먹고 다시 기억나지 않을 때
-결론이 늘 똑같아질 때.. (다양한 관점으로 보이지 않을 때) – 다양한 나를 끌어내고 싶을 때

3. 소재 선정
-소재가 너무 평이할 때
-피하고 싶은 소재를 써야 할 때 (예:아버지O 어머니X)
-글감을 찾지 못할 때
-글을 썼는데 쓸데없는 것들로 주제가 희미해 질 때

4. 구성 및 전개
-오프닝과 클로징을 어떻게
-앞 뒤가 연결이 안될 때
-쓰다보면 논리전개가 다르게 갈 때
-주제에 맞는 단락의 비중 조절을 못할 때 (균형을 잡지 못할 때)
-주제는 뚜렸했으나 마무리를 못해 결국 글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소소한 일상의 작은 이야기가 갑자기 거창해져서 수습이 안될 때
-감정을 점점 끌어올리고 싶은데 갑자기 내려가 버릴 때

5. 근거 미약
-주제에 대해 구체적 지식이 없을 때
-적절한 인용문을 넣고 싶은데 아무리 찾아도 없을 때
-사실인지 아닌지에 대한 검증

6. 표현 관련
-감추면서 쓰고싶은데, 그러면 못알아들을까봐 쓰기 어려울 때
-주제는 잡히나 묘사가 잘 안될 때.
-글 쓰다보면 문장이 길어지고 꼬일 때(문장이 불명확)
-자신의 전문용어/ 자기가 만든 용어를 계속 쓰게 될 때
-쓰다보면 너무 감성적으로(또는 이성적으로) 나아갈 때
-전문 용어를 쓰지 않으면서 쉽게 알리고 설득하는 글을 쓸 때
-이미지가 있는데 단어와 1:1 대응이 되지 않을 때
-거인 같은 주제, 소인 같은 묘사,.. 혹은 그 조차도 안떠오를 때
-‘여기까지 나를 표현해도 될까?’ 덜컥 겁이 날 때, 언제까지 뽀록낼 것인가?
-쓰던 용어를 자꾸 반복해서 쓸 때 (그놈이 그놈같을 때)
-베껴오면서 절대로 안베껴 온 것 처럼 글 쓰기
-나만의 문체를 가지고 싶을 때.
-글을 딱딱하고 교과서적으로 쓰고 싶을 때
-글이 딱딱하고 교과서적으로 자꾸 써질 때
-남의 것을 베껴다가 단어만 바꿔서 다시 구성해보고 싶으나, 베꼈다는 비난 -받을까 두려울 때

7. 평가
-내 글이 불특정 다수에게만 오픈된다는 공포가 들 때 (처음 쓸 때)
-주위 사람들의 평가에 너무 신경쓴다는 느낌이 들 때
-쓰고나서 돌맹이 맞을 것 같은 글을 쓸 때.. 두렵다면
-쓰고보니 주제도, 단어도, 표현도 평이할 때

8. 복합 요인
-자꾸 다른 사람의 글이 내 글에서 나타날 때(베끼고 있는 듯한 느낌)
-곧 밑천 다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
-유쾌하게 딴지걸며 글쓰기 (그러나 비판만 하고 있을 때)
-성스러운 느낌이 드는 글을 쓰고 싶은데 감히 건드릴 수 없을 때
-심하게 욕을 쓰고 싶은데 자기 검열에 걸려 안될 때
-창의적으로 글 쓰고 싶으나 진부하게 나아갈 때
-한줄을 두 페이지로 늘이는 법(아포리즘)
-글쓰기가 늘 비슷해서 다르게 쓰고 싶을 때
-나를 드러내고 싶은데 잘 안될 때
-책을 읽고 그것이 글로 가지 않을 때
-필요에 의해 줄여야 하는 데, 줄일 내용이 없을 때


여기서 저에게 해당되는 것을 뽑아 보면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써야 하는데 전혀 FEEL이 없을 때, 페이지를 메꿔나가는 느낌이 들 때
-아예 주제를 잡지 못하겠을 때
-글감을 찾지 못할 때
-주제는 뚜렸했으나 마무리를 못해 결국 글이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소소한 일상의 작은 이야기가 갑자기 거창해져서 수습이 안될 때
-거인 같은 주제, 소인 같은 묘사,.. 혹은 그 조차도 안떠오를 때
-글이 딱딱하고 교과서적으로 자꾸 써질 때
-내 글이 불특정 다수에게만 오픈된다는 공포가 들 때 (처음 쓸 때)
-한 줄을 두 페이지로 늘이는 법(아포리즘)

주제, 소재, 표현, 평가 등 골고루 뽑아지는데, 정리해보면 두 가지 정도로 좁혀집니다. 우선, 주제던 소재던, 쓸 만한 무엇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만약 범위가 제한되어 있을 때, 아예 그 범위에서는 관심이 가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흥미 유발이 잘 안 된다. 머리 속이 다른 고민과 번뇌로 가득차 있을 때도 그렇습니다. 한 마디로 끌어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하려 합니다. 그 범위라는 것이 좁을 수도 있고 넓을 수도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작은 것에서 글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 하나 작은 것에 평소에 관심 기울이지 않았던 것에 그윽한 눈길을 줍니다. 눈을 감고 그것을 떠올리며 다가갑니다. 그리고 말을 건넵니다. 왜 이런 모양을 하고 있니. 왜 그렇게 된 거니. 기분은 어땠니.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했니. 나는 널 보니 이런 게 떠오르더라. 내가 너라면 이랬을 거야.

책을 읽으면서 주제나 소재를 찾아야 하는 경우라면, 순간을 스치는 생각과 감상을 잡아둡니다. 책을 읽을 때 메모지와 필기구를 준비하여, 표시하고 적어둡니다.

머리 속이 온통 어떤 생각 뿐이라, 다른 것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면, 그래서 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그 주제 말고 어떤 것도 끌어 낼 수 없다면, 나는 일단 접습니다. 아니면 그 주제를 글로 쓰면서 쏟아내며 마음을 추슬러 봅니다. 마음이 편해야 몰입이 됩니다. 그럼, 글도 잘 나올 것이겠지요.


그리고 또 하나는 주제를 뜻대로 풀어내지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보통 주제나 소재 잡기가 어려워, 조그마한 발상 하나로 ‘일단 쓰고 보자’로 출발하면 이런 현상이 잘 나타납니다. 그러다가 욕심은 과해져, 수습하기 어려운 거대 국면으로 빠지기도 합니다..

우선, 주제를 명확히 하고, 글을 쓰면서는 주제를 향한 시선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주제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글을 쓸 때는, 일단 쓰다가 중간중간에 길을 잡아갑니다. 거창하고 허황된 곳으로 빠지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그리고, 처음 쓸 때는, 초고를 쓸 때는 그냥 써봅니다. 편하게 마음 가는 대로 주욱 쓰는 것입니다. 거창하게 자꾸 뭘 말하려 할 필요 없습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속에서 명령하는 나를 내려 놓고 편하게 풀어봅니다. 분석과 비판과 자의식의 칼은 잠시 내려 놓고 편하게 끄집어 내어봅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의 글을 쓰는 것일 것입니다. 글마다 자기다움이 묻어나오고 개성이 있을 것입니다. 남의 글의 어떤 면이 좋다고 쫓아 보는 것은 훈련의 측면에서 유용할 지 모릅니다. 하지만 언제나 ‘자기의 글’ 을 향해야 함을 잊지 않아야겠죠. 자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글은 역시 자기다움에서 출발할 것입니다. 자신을 사로잡는 글이 남도 설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다운 글은 자신이 압니다. 글은 나를 닮습니다. 글로 내가 묻어나기도 하지만, 어떻게 풀어낼지는 자기가 가꾸어 나가는 것입니다. 적어도 저에게는 그렇습니다.
IP *.142.242.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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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24 01:37:28 *.70.72.121
세상을 향한 의문으로 가득한 개구장이^^ 사부님 생각이 떠오릅니다.

'사는 법은 죽는 법에 있다.'라고 말씀 하신 역발상적 전환이 재미 있다.

또한 '얼굴의 윤곽부터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 , 코 , 입 등을 먼저 그리고 얼굴형을 그린다.' 는 초상화 기법도 재미있었다.

그리고 진정 '살고 싶어야 한다' 는 것처럼 '쓰고 싶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쓴다고 입력시킬 필요가 있다. 쓰고 싶지 않아도 쓴다. 그보다 더 나은 실체 더 나은 좋은 훈련과 진보란 없다.^^ 그러므로 무조건 무조건 쓰는 거야.~ 가수 박상철을 불러야 할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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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7.24 10:40:48 *.209.98.137
연구원들이 브레인스토밍 해 놓은 것을 보고, 참 좋다~~ 생각했는데, 호정씨가 분류해놓은 것을 보니 더 좋네요. ~~

혹시 내 방법이 참고가 될지?

책이나 일기, 대화, 광고카피.... 무엇이든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를 따로 적어놓아요. 글이 되기에는 깊이나 분량이 턱없이 부족하지요.

살다보면, 이전에 메모해두었던 단상과 연결되는 느낌에 부딪칠 때가 있어요. 글이 되기에 아직도 부족하면, 또 묵혀둬요.

짜투리 시간에 메모된 것을 술술 훑다보면, 문득 뼈와 살이 붙여질 때가 있어요. 그 때 기분 참 좋아요. 대강 마인드맵을 해 보면, 끝까지 내 호흡으로, 내 의도대로 끌고 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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