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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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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3일 01시 13분 등록
첫 문장 쓰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무엇을 쓸지 모르는 사람에게 첫 문장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목적지를 모르면 떠나기 어렵다. 무엇을 쓸 것인지 알고 있는 사람도 첫 문장에 마침표를 찍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떤 때는 주제가 확실하고 이미 첫 문장을 생각해놓은 경우에도 머뭇거리곤 한다. 왜 일까? 기발하게 시작하고 싶기 때문일까? 완벽한 문장을 만들고 싶어서일까? 처음부터 독자에게 감동을 먹이고 싶어서일까?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첫 문장을 시작하는 원칙은 간단하다. 두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첫째, 일단 써라. 그냥 시작하라. 어떤 식으로든 첫 문장을 써야 한다. 첫 문장을 써야 두 번째 문장도 쓸 수 있다. 문장이 문단이 된다. 그렇게 써야 한 편의 글을 완성할 수 있다.

둘째, 고쳐라. 첫 문장을 포함하여 모든 문장은 고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문장이든 쓸 수 있다. 그리고 그 문장은 어떤 식으로든 고칠 수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나이고, 고치는 사람도 나다. 나만이 고칠 수 있고 나는 고칠 수 있다.

유의할 점이 있다. 두 가지 원칙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좋지 않은 첫 문장을 썼다면 고쳐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다면 역시 고쳐야 한다. 첫 문장이 괜찮아도 개선할 점이 있기 마련이다. 고쳐야 좋아진다. 허나 쓰지 않으면 고칠 것도 없다. 그러니 먼저 쓰자. 그리고 고치자.

‘첫 문장을 그냥 쓰라니, 그게 무슨 원칙이야?’, 이렇게 물을 수도 있다. 원칙은 보편적으로 통용되어야 한다. 그래야 원칙이라 불릴 수 있다. 첫 문장을 일단 쓰라는 원칙은 내가 보기에 보편적인 원칙이다. 쓰지 않고 글을 시작하는 방법은 없다.

그냥 쓰지 않고, 멋지게 출발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글을 시작하는 몇 가지 방법을 알아두자. 유용하다.

하나, 사례로 시작한다. 스토리가 탄탄하고 재미있는 사례는 그 자체로 훌륭한 출발점이 되어 준다. 사례는 사실이나 기억을 가져오는 것이다. 다른 책이나 기사에서 발췌할 수도 있다. 내 경험이든 남의 경험이든, 나의 머리에 나왔든 책에서 나왔든 간에 사례는 옮기는 것이다. 옮기는 것이 만드는 것보다 쉽다. 예를 들어보자.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회사의 사보에 실을 원고를 작성해야 할 때였다. 주제는 정해져 있고 사례와 결론 역시 명쾌한데, 글을 시작할 수 없었다.”, 괜찮지 않은가? 사례로 시작하면 첫 문장을 시작하기 쉽다.

둘, 인용으로 시작한다. 속담과 격언, 혹은 다른 사람의 글과 말로 시작해보자. 이런 재료들은 이미 있는 것이다. 이미 있는 것을 사용하면 부담 없이 글을 시작할 수 있다. “‘첫 문장의 유일한 목적은 두 번째 문장을 읽게 하는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카피라이터인 조셉 슈거맨의 말이다.”, 이런 식으로 시작하면 된다.

셋, 핵심과 결론을 제시한다. 기자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이다. 대개 기사의 첫 문장은 해당 기사의 전체 내용을 압축하여 제시한다. 가장 중요한 정보를 가장 처음에 제시하기 때문에 역피라미드 방식이라고도 불린다. 나는 이 글을 다음과 같이 시작할 수도 있다. “첫 문장을 쓸 때는 두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첫째는 일단 쓸 것, 둘째는 고칠 것, 이게 다다.” 이렇게 시작하고 나서 부연설명을 해나가면 된다.

넷, 질문을 던진다. 질문은 힘을 가지고 있다. 질문은 쓰는 이와 읽는 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친다. 질문을 하면 답을 하고 싶기 마련이고, 이내 머리 속에는 어떤 실마리나 답이 떠오른다. 읽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질문을 보면 궁금증이 따라오고 관심이 고개를 든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이 정도면 훌륭한 시작 아닌가. 쓰고 싶은 주제에 대해 질문을 던져라.

다섯, 수수께끼나 문제를 제시한다. 이것은 사례를 들거나 질문을 던지는 것과 유사한 방식이다. 특히, 글의 전개를 미스터리를 풀어나가듯이 풀어 나가면 금상첨화이다. 조금씩 단서를 제시하면서 읽는 이의 흥미를 유지시키다가 끝 부분에 쾅하고 해답을 제시하면 된다. 이 방식은 글의 오프닝과 엔딩을 일관되게 이끌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오프닝과 엔딩 사이에는 오르막과 내리막, 반전과 클라이맥스가 있어야 한다. “아주 오래 전에 톨스토이와 세익스피어를 능가하는 문학적 재능을 가진 남성 작가가 있었다. 그는 세상을 놀라게 할 글감과 흥미진진한 플롯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작품을 가지지 못했고 아무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다. 왜일까?”, 1분도 안 되어 급조한 수수께끼이다. 이런 수수께끼가 흥미롭지는 않겠지만 이렇게 시작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혹시 이 수수께끼의 답이 궁금한가? 답은 바로 이것이다, “그 작가는 첫 문장을 시작하지 못했다.”

이런 방법을 활용할 수 없다면 첫 생각을 써라. 여섯 번째 방법이다. 글을 쓰는 시점에 머리와 가슴 속에 떠오른 것을 적어라. 이런 식으로 쓰면 된다. “글을 써야 하는 데, 첫 문장이 떠오르지 않는다. 우선 쓰자.” 이상한 시작이다. 맞다. 하지만 어쨌든 시작은 시작이다.

글쓰기 전문가 중 많은 사람이 첫 문장에 대해 강조한다. 그렇다. 첫 문장의 내용은 중요하다. 허나 모든 글에서 그런 것은 아니다. 광고, 신문기사 같은 글에서는 첫 문장이 나머지 전체 문장을 좌우할 수 있다. 하지만 일기나 수필, 보고서 같은 글에서는 다르다. 첫 문장의 내용보다 중요한 것이 첫 문장을 쓰는 것이다. 나는 이 글의 첫 문장을 “첫 문장 쓰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했다. 사실 더 깔끔하고 멋진 문장으로 시작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평범한 첫 문장으로도 글을 시작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는 글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신문기사라면 첫 문장에 결론을 제시해야 한다. 추리소설이라면 첫 문장에서 호기심을 유발해야 하고, 광고는 첫 문장에서 읽는 이를 반하게 만들어야 한다. 수필이라면 핵심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첫 걸음을 떼도 좋다. 일기는 날짜나 날씨로 시작할 수도 있다. 어떻게 시작하든 첫 문장으로 찌를 수도 있고 간지럼을 태울 수도 있다. 엉뚱한 곳에서 시작할 수도 있고 먼 곳에서 첫 발걸음을 내 딛을 수도 있다.

이밖에도 글을 시작하는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방법 자체가 아니다. 첫 문장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것은 기교나 재료가 아니다. 그것은 ‘용기’이다.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없는 사람은 어떤 글도 쓸 수 없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글쓰는 사람을 전사라고 표현했다. 동의한다. 용기야말로 글을 시작하는 최고의 자세이자 원칙이다.

글쓰기는 쉬울 때보다 어려울 때가 더 많다. 어려운 일을 어렵게 시작할 필요가 없다. 쉽게 시작하자. 첫 문장을 멋지게 시작한다고 해서 글 전체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거의 모든 초고는 거칠고 허술하다. 고쳐 쓰지 않을 수 없다. 첫 문장이 좋든 그렇지 않든 간에 고쳐 써야 하는데, 첫 문장이 어색하고 엉성하면 좀 어떤가. 초고가 나쁜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나쁜 초고를 고쳐 쓰지 않는 것이 나쁜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첫 문장을 일단 써라. 그리고 나중에 고쳐라. 어려울 것도 복잡할 것도 없다. 어떻게 고쳐야 하냐고? 다음 글에서 보자.
IP *.147.1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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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23 10:40:51 *.75.15.205
그래요, 그렇군요. 우선 쓰고 우선 사랑한다 덤벼들어야 겠군요.

솔직히 무턱대고 까마득한 날들의 글쓰기를 하면서 헉헉대고 있지요.
그러면서 아, 좀 더 체계적이고 쉬운 글쓰기에 대한 기본기를 익히고 쓰기시작 했더라면, 지금도 어떻게 써야하는 건지 책을 읽고 싶지만 놀시간은 있어도 책볼 시간은 왜 그다지도 없는 겐지... 좋아요, 역시 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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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해
2007.07.24 10:15:01 *.93.112.125
승완아, 고맙다.
글쓰기팀으로서 책임감을 갖고 칼럼을 써주어 고맙구나.
그리고 글자체도 그동안 느꼈던 경험과 고민들이 녹아있어 좋구나.
이렇게만 진행된다면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겠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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