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時田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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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rofiling
2007년 6월 13일, 나는 휘트니 미술관 1층의 '프로파일링_Profiling'이란 전시 공간 안에 서 있었다. 캄캄한 방 안엔 두 개로 분할된 큰 화면이 펼쳐져 있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하나는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의 궤적을 담아내는 화면이었고, 또 하나는 이 방에 있는 사람들과 다녀간 사람들의 모습들이 계속 바뀌면서 나타나는 화면이었다. 그렇게 관람객의 움직임과 동작을 담아내던 화면은 잠깐 동안 시점을 한 사람에게 맞추고는, 'Unsuspecting', 'Hungry' 등과 같은 모호하지만 의미 있는 듯한 문구를 내보내곤 한다.
그 곳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고 있었다. 현재 이 방 안에 있는 사람들과 앞에 이 방을 다녀간 사람들이 하나의 화면 안에 어지럽게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 방 안을 한참 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3번인가 스크린이 나를 주목했다. 마지막으로 화면 속에 등장한 나의 머리 위에 'Fully Understanding'이란 단어가 나타났고, 나는 방을 빠져 나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과거에서 미래로 시간은 흐르고 있다. '나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2. 다시 시작하다.
전철을 타고 가던 중 갑자기 마음이 푹, 놓였다. 사부님의 책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를 읽던 중이었다.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만났다.
"나는 지금 과거의 한 사건과 미래의 한 사건 사이에 있다. 하나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고 하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물론 미래의 일은 반드시 일어날지 아닐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이 매우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는 추억이고 하나는 꿈이다. 추억과 꿈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다. 마흔 아홉이 되어 지나온 삶을 되새겨보니 실제로 일어난 것과 상상 속에 존재했던 것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모두 한 줌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p. 206)
"추억과 꿈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란 말씀이 내 마음 속을 파고 들어온다. 나는 과거와 미래에 갇혀 있는 사람이었다. 사는 게 꿈이라면, 지나간 시간이나 다가올 시간이나 모두 한 순간의 꿈과 같은 것이라면, 과연 이렇게 한 순간 한 순간, 고민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좀 더 가볍게 여기 저기를 돌아봐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춤추듯 스텝을 밟아도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삶은 길 위에 있는 것이라면, 지나온 날들을 그렇게 후회할 필요가 있겠는가. 살아 있음에도 이미 죽어버린 해골처럼 살아가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추억과 꿈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일어났다고 믿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꿈이다." (p. 210)
나는 쉴새 없이 목을 뒤로 꺽은 채 닫힌 문을 아쉬워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닫힌 문들 또한 나를 여기까지 이끈 선택의 문들이었다. 내 앞에 수많은 문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 문들이 수천 개의 가능성으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가보지 않은 많은 길들이 남아 있다. 아직 해보지 않은 많은 선택들이 남아 있다. 모든 게 완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럴 수도 없다. 흔들리면서 가는 거다. 매일 쓰러지고, 매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꿈꾸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그런 가볍고 상쾌한 꿈을 꾸면서 한참 동안 지하철 환승역 벤치에 앉아 있었다.
#3. "우리가 머무는 장소"
한나 아렌트는 '정신의 삶 1 - 사유'란 책에서 다음과 같은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한다.
"충돌은 자신이 현재로 존재하는 사람에게만 야기된다. … 현재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나 두 방향을 눈을 돌리고 있다. 그에게서 과거와 미래는 서로를 향해서 달린다.", "즉 영원은 현재 속에 있으며, 순간은 그것이 관찰자에게만 존재하는 무용한 현재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충돌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사유할 때, 과거와 미래 사이의 이 틈새에서 사유하는 우리가 머무는 장소를 발견한다."
#4. 그래프타입 _ Graff-Type
한나 아렌트의 글을 읽고 낙서를 해본다.
나는 여기에 있다. "과거와 미래의 충돌" 사이에 있다. 동시에 나는 여기에 없다. 내가 사유하는 만큼, 꿈꾸는 만큼이 나의 공간이다. 나는 나의 공간을 창조해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현재이다. 과거와 미래 사이의,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나에게 들어와서 하나의 의미를 띄게 된다. 텅 빈 바퀴의 중심에 무언가 소중한 것들이 피어난다.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던 것들이 내가 된다.
시간과 공간. 그것이 나의 관심사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 있는 곳이다.
과거와 미래의 틈새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에 대해 나는 쓸 것이다. 낙서할 것이다. 사진을 찍을 것이다. 짧은 동영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작업들을 나는 '공간의 시, 경계의 미학'이라 이름 붙여본다. 내가 머무는 공간은 그렇게 현실과 상상 사이에 존재할 것이다. 그림, 사진, 영상, 공간, 건축, 음악, 미술 등이 하나가 되어 춤을 추는 그런 공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낙서와 글이 만난 이것을 '그래프타입 _ Graff-Type'이라 한번 이름 붙여본다. 새로운 놀이의 시작이다. 내가 꿈꾸는 만큼이 나이다.
#5. 기억의 조각들
1. 파도 조각들 _ 어린 시절 눈 앞의 바다는 햇살을 받으면 하얗게 부서졌다. 그 부서지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가라앉았다. 평온해졌다. 하얀 파도 조각들이 반짝였다. 사라진다. 흩어졌다. 하나가 된다. 따로 따로이지만. 큰 한 몸이 되어 덩실거린다.
2. 외로움 _ 삼각 지붕이 있는 그 곳엔 인적이 드물었다. 가끔 사람들이 들렸다, 갈 때가 되면 어린 난 그들을 붙잡았다. 울먹였다. 그런 감정들이 나를 만들었다. 내 감정의 8할은 외로움이다. 그래서 벽이 생겼다. 높은 벽이 생겼다. 이 벽이 나를 만들었지만. 이제 이 벽에서 나와야 한다.
3. 다리 _ 이 곳과 저 곳 사이에는 바다가 흐르고, 다리가 놓여있다.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다리이다. 내 기억의 시작은 잇는 것이다. 여기와 저기를 잇는 것. 연결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4. 언덕 _ 높은 곳이 좋다.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모든 것이 한 눈에 보인다. 같은 것도 다르게 보인다. 지저분한 것은 잘 보이지도 않고, 톡. 튀는 것도 조화가 된다. 난 높은 곳이 좋다.
5. 별 _ 가을이 되면 옥상에 누워서 별을 보았다. 산에서 들리는 풀벌레소리는 꼭 파도소리 같았다. 별자리도 모르고. 굳이 알려는 노력도 별로 안 했지만. 막연히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멀리 있는 것을 보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었다. 새로운 것을 찾고 싶었다.
#6. 글쓰기
기억의 조각들을 글쓰기와 연결시켜 본다.
1. 파도 조각들 _ 우선 빛나는 것들을 모은다. 그것이 한 단어일 수도 있고, 번뜩. 하고 사라지는 이미지일 수도 있고, 선뜩하게 가슴에 박힌 울컥한 감정일 수도 있다. 그런 반짝이는 순간을 모은다. 조각들을 모은다.
2. 외로움 _ 마구 쓴다. 감정으로 내달린다. 미친 듯이 갈긴다.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담아낸다. 내가 아닌 것을 풀어헤친다. 옷을 벗는다. 집어 던진다. 마구 마구 흩어 뿌린다. 이건 나다. 이건 내가 아니다. 그것들 사이에 온전한 것이 나온다. 무언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그 순간이다. 바로 그 순간이다.
3. 다리 _ 그리고 연결한다. 이리 저리 배열해본다. 섬과 섬을 잇는다. 다리를 놓는다. 점과 점이 모이면 선이 되고, 선들이 모이면 면이 된다. 하나가 되어 넘실거린다. 서로 부딪혀 깨어지고 부서진다. 그 사이에 리듬이 생긴다. 그리고 음악이 된다. 파도소리가 된다.
4. 언덕 _ 빠져 나온다. 벗어난다.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둘이 된다. 둘이 되어서 본다. 너는 누구니. 하고 묻는다. 코를 그려주고. 입도 그려주고. 귀도 그려주고. 눈도 그려주었는데. 너는 누구니? 하고 묻는다. 그 얼굴이 표정을 가질 때까지. 마음을 찾을 때까지. 웃음을 지을 때까지 멀리서 지긋이 바라본다. 기다린다.
5. 별 _ 그러면. 별이 돋아난다. 꿈처럼. 영혼처럼. 텅 빈 그 곳에서 드러난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당당하게 반짝인다. 작은 별이 된다.
#7. 에필로그
나는 산다.
"이래서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 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
나는 죽는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 안에서 죽고, /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 속에서 죽는다." **
----------------------------------------------------------------------
* 신경림, 돌 하나 꽃 한 송이,
** 플루타르크
IP *.249.167.156
2007년 6월 13일, 나는 휘트니 미술관 1층의 '프로파일링_Profiling'이란 전시 공간 안에 서 있었다. 캄캄한 방 안엔 두 개로 분할된 큰 화면이 펼쳐져 있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하나는 방 안에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의 궤적을 담아내는 화면이었고, 또 하나는 이 방에 있는 사람들과 다녀간 사람들의 모습들이 계속 바뀌면서 나타나는 화면이었다. 그렇게 관람객의 움직임과 동작을 담아내던 화면은 잠깐 동안 시점을 한 사람에게 맞추고는, 'Unsuspecting', 'Hungry' 등과 같은 모호하지만 의미 있는 듯한 문구를 내보내곤 한다.
그 곳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고 있었다. 현재 이 방 안에 있는 사람들과 앞에 이 방을 다녀간 사람들이 하나의 화면 안에 어지럽게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그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 방 안을 한참 동안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3번인가 스크린이 나를 주목했다. 마지막으로 화면 속에 등장한 나의 머리 위에 'Fully Understanding'이란 단어가 나타났고, 나는 방을 빠져 나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과거에서 미래로 시간은 흐르고 있다. '나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2. 다시 시작하다.
전철을 타고 가던 중 갑자기 마음이 푹, 놓였다. 사부님의 책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를 읽던 중이었다. 그 책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을 만났다.
"나는 지금 과거의 한 사건과 미래의 한 사건 사이에 있다. 하나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고 하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다. 물론 미래의 일은 반드시 일어날지 아닐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 두 사건이 매우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나는 추억이고 하나는 꿈이다. 추억과 꿈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다. 마흔 아홉이 되어 지나온 삶을 되새겨보니 실제로 일어난 것과 상상 속에 존재했던 것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었다. 모두 한 줌의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p. 206)
"추억과 꿈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진 것"이란 말씀이 내 마음 속을 파고 들어온다. 나는 과거와 미래에 갇혀 있는 사람이었다. 사는 게 꿈이라면, 지나간 시간이나 다가올 시간이나 모두 한 순간의 꿈과 같은 것이라면, 과연 이렇게 한 순간 한 순간, 고민하며 무거운 발걸음을 옮겨야 할 이유가 무엇이 있겠는가? 좀 더 가볍게 여기 저기를 돌아봐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춤추듯 스텝을 밟아도 되지 않겠는가. 어차피 삶은 길 위에 있는 것이라면, 지나온 날들을 그렇게 후회할 필요가 있겠는가. 살아 있음에도 이미 죽어버린 해골처럼 살아가야 할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겠는가.
"추억과 꿈은 같은 것이다. 하나는 일어났다고 믿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꿈이다." (p. 210)
나는 쉴새 없이 목을 뒤로 꺽은 채 닫힌 문을 아쉬워하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렇지만 닫힌 문들 또한 나를 여기까지 이끈 선택의 문들이었다. 내 앞에 수많은 문들이 열리기 시작했다. 갑자기 그 문들이 수천 개의 가능성으로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가보지 않은 많은 길들이 남아 있다. 아직 해보지 않은 많은 선택들이 남아 있다. 모든 게 완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럴 수도 없다. 흔들리면서 가는 거다. 매일 쓰러지고, 매일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꿈꾸며 사는 것이 인생이다. 나는 그런 가볍고 상쾌한 꿈을 꾸면서 한참 동안 지하철 환승역 벤치에 앉아 있었다.
#3. "우리가 머무는 장소"
한나 아렌트는 '정신의 삶 1 - 사유'란 책에서 다음과 같은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한다.
"충돌은 자신이 현재로 존재하는 사람에게만 야기된다. … 현재에 서 있는 사람은 누구나 두 방향을 눈을 돌리고 있다. 그에게서 과거와 미래는 서로를 향해서 달린다.", "즉 영원은 현재 속에 있으며, 순간은 그것이 관찰자에게만 존재하는 무용한 현재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충돌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사유할 때, 과거와 미래 사이의 이 틈새에서 사유하는 우리가 머무는 장소를 발견한다."
#4. 그래프타입 _ Graff-Type
한나 아렌트의 글을 읽고 낙서를 해본다.
나는 여기에 있다. "과거와 미래의 충돌" 사이에 있다. 동시에 나는 여기에 없다. 내가 사유하는 만큼, 꿈꾸는 만큼이 나의 공간이다. 나는 나의 공간을 창조해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나의 현재이다. 과거와 미래 사이의,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나에게 들어와서 하나의 의미를 띄게 된다. 텅 빈 바퀴의 중심에 무언가 소중한 것들이 피어난다. 의미 없이 스쳐 지나가던 것들이 내가 된다.
시간과 공간. 그것이 나의 관심사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 있는 곳이다.
과거와 미래의 틈새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에 대해 나는 쓸 것이다. 낙서할 것이다. 사진을 찍을 것이다. 짧은 동영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작업들을 나는 '공간의 시, 경계의 미학'이라 이름 붙여본다. 내가 머무는 공간은 그렇게 현실과 상상 사이에 존재할 것이다. 그림, 사진, 영상, 공간, 건축, 음악, 미술 등이 하나가 되어 춤을 추는 그런 공간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낙서와 글이 만난 이것을 '그래프타입 _ Graff-Type'이라 한번 이름 붙여본다. 새로운 놀이의 시작이다. 내가 꿈꾸는 만큼이 나이다.
#5. 기억의 조각들
1. 파도 조각들 _ 어린 시절 눈 앞의 바다는 햇살을 받으면 하얗게 부서졌다. 그 부서지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해졌다. 가라앉았다. 평온해졌다. 하얀 파도 조각들이 반짝였다. 사라진다. 흩어졌다. 하나가 된다. 따로 따로이지만. 큰 한 몸이 되어 덩실거린다.
2. 외로움 _ 삼각 지붕이 있는 그 곳엔 인적이 드물었다. 가끔 사람들이 들렸다, 갈 때가 되면 어린 난 그들을 붙잡았다. 울먹였다. 그런 감정들이 나를 만들었다. 내 감정의 8할은 외로움이다. 그래서 벽이 생겼다. 높은 벽이 생겼다. 이 벽이 나를 만들었지만. 이제 이 벽에서 나와야 한다.
3. 다리 _ 이 곳과 저 곳 사이에는 바다가 흐르고, 다리가 놓여있다. 이곳과 저곳을 연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다리이다. 내 기억의 시작은 잇는 것이다. 여기와 저기를 잇는 것. 연결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4. 언덕 _ 높은 곳이 좋다. 전체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모든 것이 한 눈에 보인다. 같은 것도 다르게 보인다. 지저분한 것은 잘 보이지도 않고, 톡. 튀는 것도 조화가 된다. 난 높은 곳이 좋다.
5. 별 _ 가을이 되면 옥상에 누워서 별을 보았다. 산에서 들리는 풀벌레소리는 꼭 파도소리 같았다. 별자리도 모르고. 굳이 알려는 노력도 별로 안 했지만. 막연히 천문학자가 되고 싶었다. 멀리 있는 것을 보고 싶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싶었다. 새로운 것을 찾고 싶었다.
#6. 글쓰기
기억의 조각들을 글쓰기와 연결시켜 본다.
1. 파도 조각들 _ 우선 빛나는 것들을 모은다. 그것이 한 단어일 수도 있고, 번뜩. 하고 사라지는 이미지일 수도 있고, 선뜩하게 가슴에 박힌 울컥한 감정일 수도 있다. 그런 반짝이는 순간을 모은다. 조각들을 모은다.
2. 외로움 _ 마구 쓴다. 감정으로 내달린다. 미친 듯이 갈긴다. 생각하지 않는다. 나를 담아낸다. 내가 아닌 것을 풀어헤친다. 옷을 벗는다. 집어 던진다. 마구 마구 흩어 뿌린다. 이건 나다. 이건 내가 아니다. 그것들 사이에 온전한 것이 나온다. 무언가 보이기 시작한다. 바로 그 순간이다. 바로 그 순간이다.
3. 다리 _ 그리고 연결한다. 이리 저리 배열해본다. 섬과 섬을 잇는다. 다리를 놓는다. 점과 점이 모이면 선이 되고, 선들이 모이면 면이 된다. 하나가 되어 넘실거린다. 서로 부딪혀 깨어지고 부서진다. 그 사이에 리듬이 생긴다. 그리고 음악이 된다. 파도소리가 된다.
4. 언덕 _ 빠져 나온다. 벗어난다. 완전히 하나가 되었다 둘이 된다. 둘이 되어서 본다. 너는 누구니. 하고 묻는다. 코를 그려주고. 입도 그려주고. 귀도 그려주고. 눈도 그려주었는데. 너는 누구니? 하고 묻는다. 그 얼굴이 표정을 가질 때까지. 마음을 찾을 때까지. 웃음을 지을 때까지 멀리서 지긋이 바라본다. 기다린다.
5. 별 _ 그러면. 별이 돋아난다. 꿈처럼. 영혼처럼. 텅 빈 그 곳에서 드러난다.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당당하게 반짝인다. 작은 별이 된다.
#7. 에필로그
나는 산다.
"이래서 이 세상에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 / 이래서 이 세상에 꽃으로 피었으면 꿈도 꾸면서" *
나는 죽는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 안에서 죽고, / 오늘의 나는 내일의 나 속에서 죽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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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경림, 돌 하나 꽃 한 송이,
** 플루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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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네 글을 읽으며 승완이가 나타나네. 둘이 닮은 점이 있나 찾아보렴.
도윤의 징징거림이랄까 욕심이 많아 약간 늘어지는 것 같던 느낌(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너가 나타내고자 했던 '길'에 기준한 것임.- 표현은 물론 내 방식이지만 ㅋㅋ)들이 형체를 이루며 수면 위로 떠오르는 느낌이 드네.
있잖아, 지난 번 4차모임에서 너의 강점을 들었을 때 말야, 문득 이 생각이 들더라. 너가 지금의 일들을 계속 꾸준히 하게 되면 아주 놀라울 만큼의 성취가 네게 주어질 거라는 예견 같은 것이 내게 들어오더라.
그리고 그 사이 약 3개월간 많이 진보된 느낌이 들어오네. 너가 점점 이 과정에 흠뻑 빠져드는 것이겠지? 암튼 좋으네.
그리고 말야, 신혼인 거 아는데 너 특히 사부님과의 off 모임에서는 먼저 자리 뜨지 말았으면 좋겠더라. ㅎㅎ 넌 들으면 들을 수록 느끼면 느끼는 만큼 크게 많이 담아낼 수 있다는 게 느껴져서 말이지. 색시가 화내실 라나? 그럼 언제 같이 모이자.^-^ 네가 엉덩이를 들썩이면서도 머문 시간보다 더 많이 잘 나타낸 느낌이 들어서 말야. 이 총각 아저씨 할아버지야. ^^
도윤의 징징거림이랄까 욕심이 많아 약간 늘어지는 것 같던 느낌(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너가 나타내고자 했던 '길'에 기준한 것임.- 표현은 물론 내 방식이지만 ㅋㅋ)들이 형체를 이루며 수면 위로 떠오르는 느낌이 드네.
있잖아, 지난 번 4차모임에서 너의 강점을 들었을 때 말야, 문득 이 생각이 들더라. 너가 지금의 일들을 계속 꾸준히 하게 되면 아주 놀라울 만큼의 성취가 네게 주어질 거라는 예견 같은 것이 내게 들어오더라.
그리고 그 사이 약 3개월간 많이 진보된 느낌이 들어오네. 너가 점점 이 과정에 흠뻑 빠져드는 것이겠지? 암튼 좋으네.
그리고 말야, 신혼인 거 아는데 너 특히 사부님과의 off 모임에서는 먼저 자리 뜨지 말았으면 좋겠더라. ㅎㅎ 넌 들으면 들을 수록 느끼면 느끼는 만큼 크게 많이 담아낼 수 있다는 게 느껴져서 말이지. 색시가 화내실 라나? 그럼 언제 같이 모이자.^-^ 네가 엉덩이를 들썩이면서도 머문 시간보다 더 많이 잘 나타낸 느낌이 들어서 말야. 이 총각 아저씨 할아버지야. ^^
VR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