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時田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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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비행기
새벽 일찍 호텔을 출발해서 공항으로 갔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하기 위해 버팔로를 가는 작은 비행기를 탔다. 창 밖으로 비가 내린다. 비행기를 타면 늘 그렇듯 가슴이 설렌다. '지금 난, 어딘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 아마, 이런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보들레르는 노래했다.
"열차야, 나를 너와 함께 데려가다오! 배야, 나를 여기서 몰래 빼내다오!
나를 멀리, 멀리 데려가다오. 이곳의 진흙은 우리 눈물로 만들어졌구나!"
보들레르가 열차와 배에게 부탁했다면, 이제 우리는 비행기에게 부탁한다. "비행기야, 나를 멀리, 멀리 데려가다오!"
비행기는 이런 이동의 수단일 뿐 아니라, '상승 혹은 변화에 대한 욕구' 또한 충족시켜준다. 우리에게 이런 꿈을 꾸게 해준다. '우리도 언젠가 이렇게 한번 솟구쳐 올라 보리라. 나를 한껏 피워내 보리라. 시원하게 툭 트인 저 하늘을 마음껏 날아보리라.'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런 이륙에는 심리적인 쾌감도 있다. 비행기의 빠른 상승은 변화의 전형적인 상징이다. 우리는 비행기의 힘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 자신의 삶에서 이와 유사한 결정적인 변화를 상상하며, 우리 역시 언젠가는 지금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많은 억압들 위로 솟구칠 수 있다고 상상한다."
우리를 태운 경비행기는 비를 뿌리는 구름 위로 솟구쳐 올라, 구름의 산맥과 평야를 지나 버팔로를 향한다. 폭신폭신한 구름의 산맥과 평야를 지나서.
#2. 구름
오랜 비행을 할 때는 복도 쪽이 편하다. 스튜어디어스를 부르기도 편하고, 잠시 돌아다닐 때도 편하고, 화장실 가기에도 편하고, 여러모로 편리하다. 그럼에도 나는 오랜 비행이든, 짧은 비행이든 언제나 창가 자리가 좋다. 비행기 여행은 무엇보다 구름의 풍광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제 맛이다. 1시간 반 가량의 짧은 비행이었지만, 나는 창가에 앉아 공기 속의 물방울들이 한데 뭉쳐 이뤄낸 그 멋진 풍경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면 그대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그대 낯선 이방인이여?
나는 구름을 사랑한다네… 지나가는 구름… 저 위에… 저 위에… 저 예쁜 구름들!"
구름을 사랑했던 보들레르가 노래했던 "저 위에… 저 예쁜 구름들!" 위를 나는 지금 날고 있다.
비행기를 타는 것에 흥분하고, 창 밖 구름을 바라보면서 기뻐하는 것은 어딘가 촌스럽게 보이기도 하나보다. 그래서 대부분은 여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인지, 혹은 여행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무척 무덤덤해 보인다. 아무렴 어떠한가. 나는 구름이 좋은 것을...
구름은 고요해서 좋다. 창 밖에 평화롭게 떠있는 새하얗고 포근한 구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곳에는 그 어떤 걱정이나 잡념이 머무를 여지가 없다. 저 아래 세상에 가득한 분노도 없고, 다툼도 없고, 전쟁도 없다. 오직 평화가 있을 뿐이다. 볼 수는 없지만, 구름 위에는 신들이 노닐고 있음이 틀림없다. 비행기 창문을 열고 폴짝, 뛰어내리면 나도 그들과 한바탕 신나게 놀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구름은 변화무쌍해서 좋다. 모두 같은 재료인 물방울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유로운 대기를 닮아서인지 언제나 변화하는 다양한 풍경으로 보는 이를 즐겁게 해준다. 구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종류의 흰색과 회색이 있음을, 또 그렇게 많은 종류의 다른 형체들이 있음을. 하늘 위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 그 곳에는 폭발하는 대기와 거침없는 바람이 빚어낸 산맥이 있고, 평야가 있고, 나무가 있고, 강이 있다. 가끔 새하얀 망아지 한 마리가 무채색의 풍경 속을 내달리기도 한다.
'변화'하는 것이 두렵다면, '변화'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훌쩍 비행기를 타고, 창 밖에 펼쳐지는 구름의 풍경을 실컷 즐기다 오는 것도 좋으리라.
#3. 나이아가라 폭포
버팔로에서 버스를 타고 캐나다 국경을 넘어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했다. 미국에서 캐나다로 들어가는 비교적 간단한 절차를 거쳐서 드디어 나이아가라 폭포를 만났다. 인디언들이 '천둥소리를 내는 물'이라고 불렀다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내 눈 앞에 세상이 무너져 내릴 듯,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워싱턴에 비해 여유 있는 일정 탓에,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앞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 배를 타고 보고, 아래에서도 보았다. 그 날의 풍경 몇 장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우리나라와는 참 다른 풍경이었다. 하늘빛도 물빛도, 바위들도 어딘가 조금씩 달랐다. 그런 이국적인 북아메리카의 자연 속에서 나는 여기 저기 셔터를 눌러댔다. 그 신비로운 풍경들을 담아내 보려 했다. 그러나 카메라와 나의 눈과 가슴 사이의 거리는 아직 멀기만 하다. 계속 찍어보는 수 밖에 없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사부님께선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연이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은 늘 같다. 먼저 우리를 감탄하게 하여 혼을 빼놓는다. 상상 너머의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을 굴복시키고 무릎 꿇게 한 후 신의 음성을 불어넣는다. 이 아름다움이 보이느냐? 너의 초라함이 보이느냐? 네 마음 속에 서식하는 그 벌레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느냐? 어째서 그런 짓을 하였느냐? 이 어리석은 것아. 우매한 미망의 어둠에서 나와 가고 싶은 길을 가거라. 숟가락으로 먹은 모든 것은 똥이 아니더냐. 마흔이 넘게 살아온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 다행히 아직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또,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한다.
"굴욕은 인간 세계에서는 항상 마주칠 수 있는 위험이다. 우리의 의지가 도전 받고 우리의 소망이 좌절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따라서 숭고한 풍경은 우리를 우리의 못남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익숙한 못남을 새롭고 좀 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준다. 이것이야말로 숭고한 풍경이 가지는 매력의 핵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나를 더욱 높이 일으켜 세워 주었다. 햇살이 무척 눈부셨던 아름다운 하루였다.
IP *.249.167.156
새벽 일찍 호텔을 출발해서 공항으로 갔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하기 위해 버팔로를 가는 작은 비행기를 탔다. 창 밖으로 비가 내린다. 비행기를 타면 늘 그렇듯 가슴이 설렌다. '지금 난, 어딘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 아마, 이런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보들레르는 노래했다.
"열차야, 나를 너와 함께 데려가다오! 배야, 나를 여기서 몰래 빼내다오!
나를 멀리, 멀리 데려가다오. 이곳의 진흙은 우리 눈물로 만들어졌구나!"
보들레르가 열차와 배에게 부탁했다면, 이제 우리는 비행기에게 부탁한다. "비행기야, 나를 멀리, 멀리 데려가다오!"
비행기는 이런 이동의 수단일 뿐 아니라, '상승 혹은 변화에 대한 욕구' 또한 충족시켜준다. 우리에게 이런 꿈을 꾸게 해준다. '우리도 언젠가 이렇게 한번 솟구쳐 올라 보리라. 나를 한껏 피워내 보리라. 시원하게 툭 트인 저 하늘을 마음껏 날아보리라.'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런 이륙에는 심리적인 쾌감도 있다. 비행기의 빠른 상승은 변화의 전형적인 상징이다. 우리는 비행기의 힘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 자신의 삶에서 이와 유사한 결정적인 변화를 상상하며, 우리 역시 언젠가는 지금 우리를 짓누르고 있는 많은 억압들 위로 솟구칠 수 있다고 상상한다."
우리를 태운 경비행기는 비를 뿌리는 구름 위로 솟구쳐 올라, 구름의 산맥과 평야를 지나 버팔로를 향한다. 폭신폭신한 구름의 산맥과 평야를 지나서.
#2. 구름
오랜 비행을 할 때는 복도 쪽이 편하다. 스튜어디어스를 부르기도 편하고, 잠시 돌아다닐 때도 편하고, 화장실 가기에도 편하고, 여러모로 편리하다. 그럼에도 나는 오랜 비행이든, 짧은 비행이든 언제나 창가 자리가 좋다. 비행기 여행은 무엇보다 구름의 풍광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제 맛이다. 1시간 반 가량의 짧은 비행이었지만, 나는 창가에 앉아 공기 속의 물방울들이 한데 뭉쳐 이뤄낸 그 멋진 풍경을 마음껏 즐겼다.
"그러면 그대는 무엇을 사랑하는가, 그대 낯선 이방인이여?
나는 구름을 사랑한다네… 지나가는 구름… 저 위에… 저 위에… 저 예쁜 구름들!"
구름을 사랑했던 보들레르가 노래했던 "저 위에… 저 예쁜 구름들!" 위를 나는 지금 날고 있다.
비행기를 타는 것에 흥분하고, 창 밖 구름을 바라보면서 기뻐하는 것은 어딘가 촌스럽게 보이기도 하나보다. 그래서 대부분은 여행을 많이 하기 때문에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인지, 혹은 여행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런 티를 내지 않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무척 무덤덤해 보인다. 아무렴 어떠한가. 나는 구름이 좋은 것을...
구름은 고요해서 좋다. 창 밖에 평화롭게 떠있는 새하얗고 포근한 구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곳에는 그 어떤 걱정이나 잡념이 머무를 여지가 없다. 저 아래 세상에 가득한 분노도 없고, 다툼도 없고, 전쟁도 없다. 오직 평화가 있을 뿐이다. 볼 수는 없지만, 구름 위에는 신들이 노닐고 있음이 틀림없다. 비행기 창문을 열고 폴짝, 뛰어내리면 나도 그들과 한바탕 신나게 놀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구름은 변화무쌍해서 좋다. 모두 같은 재료인 물방울로 이루어져 있는데, 자유로운 대기를 닮아서인지 언제나 변화하는 다양한 풍경으로 보는 이를 즐겁게 해준다. 구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렇게 많은 종류의 흰색과 회색이 있음을, 또 그렇게 많은 종류의 다른 형체들이 있음을. 하늘 위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 그 곳에는 폭발하는 대기와 거침없는 바람이 빚어낸 산맥이 있고, 평야가 있고, 나무가 있고, 강이 있다. 가끔 새하얀 망아지 한 마리가 무채색의 풍경 속을 내달리기도 한다.
'변화'하는 것이 두렵다면, '변화'가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훌쩍 비행기를 타고, 창 밖에 펼쳐지는 구름의 풍경을 실컷 즐기다 오는 것도 좋으리라.
#3. 나이아가라 폭포
버팔로에서 버스를 타고 캐나다 국경을 넘어 나이아가라 폭포를 향했다. 미국에서 캐나다로 들어가는 비교적 간단한 절차를 거쳐서 드디어 나이아가라 폭포를 만났다. 인디언들이 '천둥소리를 내는 물'이라고 불렀다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내 눈 앞에 세상이 무너져 내릴 듯, 시원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워싱턴에 비해 여유 있는 일정 탓에, 우리는 나이아가라 폭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앞에서 보고, 뒤에서 보고, 배를 타고 보고, 아래에서도 보았다. 그 날의 풍경 몇 장을 사진으로 담아 보았다.
우리나라와는 참 다른 풍경이었다. 하늘빛도 물빛도, 바위들도 어딘가 조금씩 달랐다. 그런 이국적인 북아메리카의 자연 속에서 나는 여기 저기 셔터를 눌러댔다. 그 신비로운 풍경들을 담아내 보려 했다. 그러나 카메라와 나의 눈과 가슴 사이의 거리는 아직 멀기만 하다. 계속 찍어보는 수 밖에 없다.
웅장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사부님께선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자연이 우리를 설득하는 방식은 늘 같다. 먼저 우리를 감탄하게 하여 혼을 빼놓는다. 상상 너머의 매력으로 우리를 사로잡은 다음 아주 '자연'스럽게 마음을 굴복시키고 무릎 꿇게 한 후 신의 음성을 불어넣는다. 이 아름다움이 보이느냐? 너의 초라함이 보이느냐? 네 마음 속에 서식하는 그 벌레의 꿈틀거림이 느껴지느냐? 어째서 그런 짓을 하였느냐? 이 어리석은 것아. 우매한 미망의 어둠에서 나와 가고 싶은 길을 가거라. 숟가락으로 먹은 모든 것은 똥이 아니더냐. 마흔이 넘게 살아온 긴 세월이 참으로 잠깐이고 꿈이 아니더냐. 다행히 아직 꿈이 끝난 것은 아니니 살고 싶은 대로 살아라. 죽음이 널 데려갈 때 좋은 꿈이었다고 웃을 수 있도록 하여라."
또, 알랭 드 보통은 '여행의 기술'에서 이렇게 말한다.
"굴욕은 인간 세계에서는 항상 마주칠 수 있는 위험이다. 우리의 의지가 도전 받고 우리의 소망이 좌절되는 일은 드물지 않다. 따라서 숭고한 풍경은 우리를 우리의 못남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익숙한 못남을 새롭고 좀 더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생각하도록 해준다. 이것이야말로 숭고한 풍경이 가지는 매력의 핵심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나를 한없이 작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나를 더욱 높이 일으켜 세워 주었다. 햇살이 무척 눈부셨던 아름다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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