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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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편지 -다섯번째 <언행일치>
어제는 입춘에 때 아닌 겨울비날씨였습니다. 비와 눈이 섞여 하루종일 내렸습니다. 지난 경칩 때 나온 개구리와 막 꽃망울을 터뜨린 꽃에게는 또 다시 시련의 시간입니다.
그러던 날씨가 오늘 아침에는 맑게 개었습니다. 비 온 뒤의 날씨는 한폭의 수채화같습니다. 꽃망울은 더욱 탱탱하고 매화에는 벌이 붕붕거립니다.
저가 쓴 책 중에는 시집이 세권 있습니다. 시를 쓸 수 있어 쓴 것이 아니라 말을 짧게 하다보니 시가 되었습니다. 집사람은 저가 쓴 시를 시라고 하지 않고 '짧은 글'이라고 합니다. 시라고 하든 짧은 글이라고 하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어차피 많이 팔릴 것은 아니니까요. 오히려 시라고 하지 않으니 부담도 없고 더 많이 팔린 것 같습니다.
저가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며 벤치마킹을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바로 고은(En선생)입니다. 그때만 하더라도 고은이 노벨상의 후보자로 기억될 때입니다. 그래서 고은의 시집을 비롯해서 10권 정도를 읽고 나서 자신을 얻었습니다. 저에게 시를 쓸 수 있도록 한 시를 세 편 소개합니다. 모두가 짧은 시입니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고은의 '그 꽃'이란 시입니다.
시인이 쓴 것을 보면 무릎을 치겠는데 나는 산에 수없이 올라갔다 내려오면서도 왜 그런 말을 할 수 없었을까.
고은의 또 다른 짧은 시가 있습니다. 제목은 '노를 놓쳤다'입니다.
『노를 젓다 노를 놓쳤다
비로소 넓은 물을 돌아보았다』
또 한번 무릎을 치게 되었습니다.
배를 젓다 노를 놓친 적은 없지만 실수나 실패한 일은 많았습니다. 그때 보는 세상은 전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짧으면서 강한 메시지를 주는 시를 하나 더 소개합니다.
이건 고은이 아니라 여러분들이 잘 아는 나태주의 '풀꽃'이라는 시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풀꽃조차도 자세히 보고, 오래 보면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우리는 왜 소중한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걸까. 이 시를 보면서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이런 시를 보면서 '나도 이런 시는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집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2015년부터 1년에 한권씩 시집을 냈습니다.
첫번째로 쓴 시집이 <지금 그대로 사랑하라>는 시입니다.
이 책은 저의 큰딸이 결혼할 때 쯤 나와서 하객들께 모두 한권씩 선물하였습니다.
그리고 결혼하는 딸에게 항상 책 제목처럼 남편이 잘 날 때나 못 날 때나 <지금 그대로 사랑하라>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온 시집은 <인생은 소풍처럼>과 <날마다 눈부신 나의 인생>입니다. 모두가 저가 살고 싶은 모습들이어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습니다. 시를 쓴다고 시처럼 살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시를 오래 가슴에 품고 살면 그런 삶이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고은 시인이 <#미투>로 '양의 탈을 쓴 늑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에 대한 생각이 천사에서 악마로 바뀌는 것은 한 순간이었습니다. 한때 벤치마킹한 사람이 혐오의 대상이 된 것이 가슴 아팠지만 그 사람을 내려놓기로 하였습니다. 시가 그 사람의 정신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사람과 시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외과의사가 나중에 보니 나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아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혼란스러웠습니다. 혼돈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의 결론은 '그 시인은 싫어하더라도 그 사람이 쓴 시를 버리지는 말자'였습니다. 그 사람의 시가 교과서에서 삭제되더라도 내마음에서 지워버리지는 않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와는 대비되는 분이 한분 계십니다. 그분은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같았습니다. 그분과 함께 보낸 날들이 많았는데 말과 행동이 한결같았습니다. 그분은 한 마디로 언행이 일치하는 분이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고, 삶을 시처럼 사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가셨습니다. 지금도 그분이 뿌린 사랑의 씨앗이 꽃피고 열매 맺고 있습니다. 저도 그 분이 뿌린 씨앗중의 작은 열매입니다. 그 분이 바로 구본형 선생님입니다.
사부님이 좋아하시던 벚꽃의 꽃망울이 봄비를 머금고 봄햇살을 받으며 통통하게 차오르고 있습니다. 열흘 정도만 있으면 활짝 필 것입니다. 벚꽃이 빨리 피었으면 좋겠습니다. 벚꽃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꽃이 필 무렵이면 사부님이 더욱 그리워지기 때문입니다.
김달국 드림 (dalku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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