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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27일 16시 52분 등록
'이천칠년칠월이십칠일, 새벽을 맞이하며
소라에게 편지를 띄우다'


접신녀 소라야, 잘 지내느냐? 접신은 잘 되고 있느냐? 새벽 종소리를 듣는 것이 좋구나. 초록빛 풀밭에, 꽃들에게, 그리고 살아 있는 물살에, 온전히 내가 깃드는 새벽이다. 이 새벽에 문득 네 생각이 났다.

접신을 통하여 이질적인 것들, 다른 삶들을 잘 받아들이고 있느냐. 너의 뒤에서 덮친 모든 사람들의 삶을 자신 속에 수용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사생아를 만들어내어, 동시에 자신 속에 그들을 담아 너와 접속되고 연결되고 내재화되고 확장되고 있느냐. 온 몸으로 접신의 묘를 즐기고 있느냐? 학습은 온몸으로 이루어진다. 춤만이 온몸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온몸이 다 배움을 위한 촉수며 성감대다.

몸을 통한 너만의 접신의 묘를 살릴 수 있다면 이해와 인식 너머에 있는 다른 차원의 무언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배우고 또한 익히다가 결국 자신을 바람결에 실어 하늘을 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라야. 어느덧 4개월이 지났다만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는구나, 너는 사납고, 분노에 차있고 폭발하려 하고 있었다. 너의 가장 큰 특성은 숯불처럼 늘 불씨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뜨거움은 타고나는 것이다. 그것이 너의 운명적인 장점이다. 나는 그것을 훌륭한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분노를 품고 있는 사람이다. 분노는 눌러 표현되지 않은 욕망이니 길을 발견하여 뜨거운 성취로 발현되어야 한다. 나또한 그것으로 나를 살려주었다. 그들의 방식이 아니라 나의 방식대로 살 수 있도록 분노를 자극했다. 나의 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분노를 키웠다. 이것이 내가 내속의 분노를 길들이는 방식이었다. 내 속의 욕망이라는 불길이 잘 타오르는 동안 마음의 평화를 즐길 수 있다. 그 불길 주위에 자리를 펴고 누워 타오름을 즐겨라. 스스로 먼저 자신을 구하고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거라.

그러나 너도 나와 같이 수동적인 사람이다. 수줍은 사람이고, 부끄러워하는 사람이다. 이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사람들이 너를 찾아낼 수 있도록 곳곳에 꽃을 피우고 향기와 매력을 뿌려두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은은함이며, 숨겨져 있으며, 힌트며, 감각적 포착이며, 눈빛이다. 너의 글은 안개와 같은 글이다. 열심히 노력하여 잘 다듬으면 명상이나 춤테라피를 주제로 다루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이 될 수 있다. 춤 같은 글이 되는 것이다. 자신만의 특색이 있는 글이 좋은 글이다. 실용적인 글로 너가 찾아 나서려 하지 말아라. 다른 사람을 닮아 가려 용쓰지 말아라. 자기 것이 아닌 것은 탐이 나더라도 마음을 접는 것이 좋다. 다른 사람이 되기를 거부하는 영웅이 되거라.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 지키고 이끌어 가도록 하여라, 한 송이의 꿈꽃으로 활짝 피어나거라.

가슴에 품고 있던 힘겨움은 어떻게 변화하였느냐? 변화라는 것은 본래의 자기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니 당장의 너가 생각하는 글쓰기를 하지 못한다고 하여 조바심을 갖거나 마음의 상처를 받지 말거라. 너가 쓰고자 하는 과거는 늘 엄격하고 위대한 스승이지만 정신적 감옥이기도 하다. 과거가 날 만들었으니, 과거를 버리고 벗어나는 것이 너의 미래의 과제니라. 만약 너의 상처가 다 나았다면 죽은 과거의 껍데기를 벗고 새롭게 태어나 그 푸르른 7월의 나이로 마음껏 일상을 사랑하기를 바란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상처가 나아 밖에서 일상의 빛남을 즐기는 것이 아니었더냐. 끊임없이 변화를 모색하다 보면 본래의 자기로 돌아가게 되어 있느니라. 변화는 자연이니라. 흐르는 강물에게, 바다의 물결에게 왜 변해야 하느냐고 물어 보거라. 그것이 존재의 양식이기 때문이다.

소라야. 너의 힘은 마음이 늘 얻어오는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얻은 치유력이었다는 것을 안다. 갈등이 너를 키워주고 있다는 것을 안다. 마음속의 싸움을 통해, 비록 더듬거리기는 하지만 너의 길을 가도록 하여라. 갈등이 던져주는 여러 상징을 해석하고 가능한 방법들을 모색하여 선택하도록 하여라. 갈등 없는 판단이란 반복하여 인숙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새로운 것에는 갈등이 따라다닌다. 흥분과 두려움 속에서, 세상의 기대와 자신의 기대 사이에서, 이익과 마땅함 사이에서, 꿈과 현실 사이에서, 욕망과 절제 사이에서, 편함과 배려 사이에서 늘 잠시 망설이게 된다. 단, 무엇이든 그 속에서 즐길 줄 알아야 한다. 너도 그리 말하지 않았더냐. 네 인생을 껴안고 춤을 추는 것, 그것이 영웅이라고. 피해갈 수 없다면, 데리고 함께 즐기며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너가 품어야 할 것들이 있느니라. 길거리에서 광약 파는 아저씨를 본적이 있느냐? 그 아저씨처럼 멋지게 해내려면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 그 지겨운 연습, 그것이 너의 목을 조르고 있다는 것을 안다. 노력이란 얼마나 지루한 가시 밭 길이더냐. 하지만 소라야, 어디에도 마술같이, 노력 없이,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을 바꾸어주는 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시 배우는 불편과 새로 배우는 흥미를 반죽하면 일상은 다시 깨어나고, 일은 같은 일이지만 새로운 얼굴로 다가온다. 너에게 주어진 멋진 활을 쏘기 위해서는 활 쏘는 연습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나도 가끔은 두려움을 느낀단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들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너의 훌륭한 상상과 꿈을 이루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할 ‘지금의 일’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걸 명심해야 한다.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혁명도 없다.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자신의 세계를 가질 수 없다. 하루를 춤추듯 보낼 수 있으면 행복한 것이다. 너가 춤추는 순간에 행복을 찾듯이, 매일 그럴 수 있으면 너의 행복을 찾은 것이다. 그러니 끊이 없이 연습하고 노력하거라. 매일 매일 춤추듯 살아가도록 노력하거라. 너는 위대한 순간들의 주인이며, 또한 그 초라한 순간들의 책임자이다.

또 하나, 니체가 ‘아곤적 행동’이라고 말한 경쟁의 행동이니라. 그리스인들은 이 경쟁의 힘을 ‘덕’이라고 불렀다. 경쟁을 늘 가슴에 품고 있어라.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경쟁하고, 선조들과 경쟁하고, 심지어 자기 자신과 경쟁해야 한다. 자신에 대해 치열한 사람이어야 한다. 치열하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다. 경쟁에 대한 에너지, 시기와 질투와 원망이 있어야 한다. 그것들이 끊임없이 모방하게 하고 배우게 하고 연습하게 하고 익히게 하는 힘이니라.

요즘도 부지런히 명상을 하고 있느냐. 명상은 자신을 즐기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괴로움으로 가득 찬 현실에 갇힌 소라가 아니라, 원래 있었던 아름다운 너를 찾아내는 것이다.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외부에서, 다른 사람에게서 평화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너의 내부에서 평화를 건져내도록 하여라.

소라야, 너는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다. 나는 네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다. 누구도 너가 아니다. 그렇게 유일한 사람이 되어라.

유일함이라니, 얼마나 황홀한 이야기더냐.

IP *.73.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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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07.27 16:38:36 *.73.2.102
이게 칼럼은 아닌데.. 긁적긁적.. 어쩌다 놀다보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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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07.27 16:47:39 *.249.167.156
정말 사부님께서 소라누나한테 말씀하시는 듯 하네. 책 안과 밖의 말씀들이 고스란히 들어가 있구나. 간이 참 잘 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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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7.27 16:57:45 *.70.72.121
사부님께서 한 통의 편지를 받으시겠네... 좋아 하시겠는 걸.

오른 쪽엔 소라 왼쪽엔 부지깽이님

완전히 책하고 말 달리고 놀다가 흐믈흐믈하게 양고기 스프로 끓여 먹었구나. "나 구본형의 변화이야기 & 삼땡에 시작하는 소라의 꿈이야기"로.

전화해라, 수다떨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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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7.27 17:12:05 *.72.153.12
나 잠깐 질투했다.
네가 썼다는 것을 알면서도 읽다보니 사부님이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사부님이 너한테만 편지 보낸 줄 알았잖어.

아프담서 숙제는 잘 하네. 아파도 소라는 소라네. 밥 잘먹고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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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07.28 14:24:56 *.73.2.61
잠시 외국에 계신 사부와 접신을 좀 했나보네.. 크크..

도윤이가 간이 참 잘 배었다고 하니 글쓰기가 요리라는 생각이 든다.
먹기좋은 음식으로 만들어내는게 내 손끝에 달려있겠구나^^
손맛이라, 이런걸 칼럼으로 써봐야 하는데..

나의 주책파트너 써니언니야. ㅎㅎ.. 알지?

정화언니, 나한테 복수만은 말아줘~~~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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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니콜슨
2007.07.28 17:13:48 *.227.204.113
오호, 나도 소라가 사부와 접신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는데...
사부랑 같은 기질이라서 그런가, 마치 장자의 호접몽처럼 소라인지, 사부인지 헷갈린다.
노환인가?ㅋ

내가 아는 소라는 여러 사람을 델꾸 노는 재주가 있다.ㅎㅎ
이제 사부까지 왔으니 다음은 누굴까?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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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7.29 07:13:46 *.72.153.12
소라~ 니, 복수와 질투를 오해하나 본데.
나 그런사람 아이야~.
그치만 니가 원하면 넌 특별관리(? !) 해주겠어.

요즘 왜 내 컨셉이 복수에 불타는 **으로 되었는지 모르겠어.
대체 언놈이 날 이렇게 만든거야? 누구야? 소라야 너냐?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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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07.29 10:55:59 *.73.2.61
잭니콜슨, 드디어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기 시작하셨구려. ㅋㅋ
나와 저자와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것, 이것이 내 스타일인거 같아요. 다음에 누구를 델꾸 놀려나. 그럴러면 내 맘에 쏙~~ 들어야 하는데.. 누굴까, 나두 기대되요.^^

정화언니, ㅋㅋ, 난 언니의 그런 말들이 신나고 좋은데,
사람들이 고상해서 언니같이 거침없이 하이킥킥하기 힘들잖아.
그래서 나두 가끔씩 언니핑계로 복수란단어도 써보고.. 히히
근데, 언니말대로 컨셉으로 굳혀지는건 기분이 거시기 하겠어.
앞으로는 다른표현을 찾아봐야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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