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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6일 08시 35분 등록
멘터



[위대한 승리 Winnig]에서 잭 웰치는 ‘다수의 멘터 구하기’에서 자신이 만났던 멘터들을 3페이지 정도를 할애해서 짤막하게 기술했다. ‘다수의 멘터 구하기’는 4부 ‘당신의 경력’ 부분에서 기술한 '당신이 해야 할 일' 3가지 중에 하나이다.

잭 웰치는 자신이 만난 사람들에게 다양하게 배웠다. 그들은 짧은 기간 동안 혹은 몇 년 동안 잭웰치와의 직위에 관계없이 각각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로 그의 옆에 있었다. 자신의 생에 가장 의미 있는 멘터는 그의 경력과 성장에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 대목을 읽으면서 내게 직장에서 첫 번째 멘터가 되어주었던 선배가 생각났다. 멋진 선배라서 생각만 해도 웃음이 절로난다.

그녀는 내가 발령받은 것보다 몇 달 쯤 후에 상위부서인 광주에서 그곳으로 이동해 왔다. 승진하면서 부서 이동을 한 모양이었다. 나보다는 기상청에 5년 먼저 입사한 선배였다. 나는 그녀를 송주임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녀도 나처럼 군산기상대는 처음 근무하는 사람이었다. 나 만큼이나 배워야 하는 게 많은 그녀였다. 그녀는 자신이 배워가는 것을 나와 공유해 주었다.

송경희 선배와 같이 이동을 해온 사람 중에 한 명은 우리 기관의 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최고의 자리에 있는 부서로는 처음 발령받은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의 지시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의욕이 넘쳤다. 당시 나는 그런 것들을 파악할 만큼 눈치가 있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 상활을 인식시켜 준 것은 경희선배였다. 경희선배는 대장과 광주에서 같이 근무를 했었다. 비록 부서는 달랐지만, 옆 과에서 근무를 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상사인 대장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대장은 성과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대장은 내부적으로 가장 크게 치르는 행사인 1년에 한번 있는 정기적인 발표회에 우리대가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를 바랬고, 미리서부터 준비를 시켰다. 그리고 또 많은 직원들이 관련 자격증을 취득하기를 원했다. 나는 당시 그런 것이 언제 있는지도 모르는, 눈 앞에 닥친 자질구레한 일만을 하는 신규 딱지가 아직 안 떨어진 어린애에 불과 했다.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것들의 준비과정부터 결과를 내기까지 지도해준 사람이 바로 송경희 선배이다.

송 선배는 내가 보조자로서 일을 돕는 사람이 아닌 주체자로 일하도록 가르쳤다.
우선 대장이 지시한 것들을 어느 선에서 해야 할 지를 파악한 후에 그녀는 내게 우리대의 자료실을 정리하는 일을 맡겼다. 도서들의 대부분은 기상청에서 발간한 자료로 그것을 정리하다보면 기상청에서 무슨 일을 하는 지 대충 정리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내가 직접적으로 해야 할 것은 책이름과 발행연도, 발행처 목록을 만드는 일이었다. 비교적 간단한 일이었지만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었다. 스케줄 근무는 도는 틈틈이 책을 정리해 나갔다. 그러다 보니, 우리대에는 어떤 책이 비치되어 있는지, 어떤 책이 어느 부서에서 어느 시기에 발행되는지, 그 책들에는 어떤 내용들이 남겨 있는지 파악이 되었다. 그것이 파악 되고 나니, 기상청 각 부서의 주요 업무가 무엇인지 파악되었고, 기상청의 큰 행사들이 1년에 한번씩 정리되서 책으로 나온다는 것을 알았고, 그 행사에는 어떤 내용들이 다루어지는 지를 알게 되었다. 또한 궁금한 것이 있어도 직원들에게 물을 수 없는 야근 근무 시에, 참고할 자료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도서목록을 정리를 다 마쳤을 때, 경희선배는 또 다른 것을 알려주었다. 자신의 근무하는 지역의 특색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선배는 그 일의 결과가 내가 근무하는 동안 매번 하게 될 날씨(기상) 관측과 예보에 참고 자료가 될 것이라고 중요성을 짚어주었다. 지역 특색의 파악에 쓸 자료들은 바로 앞서 행한 정리한 도서목록을 훌터보는 것에서 출발했다. ‘호남지방 기후분석’ ‘예보사례분석’이라고 이름이 붙은 책들 속에서 군산 기상대를 거쳐 간 선배들이 작성한 보고서들을 찾았고, 그것들을 읽고 정리했다. 군산기상대의 가장 큰 특징은 해안 기상대로서 바다 날씨 예보가 아주 중요하다는 것과 해륙풍, 즉 바람을 빼고는 날씨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파악한 특징은 업무 수행하는 데 베이스가 되어주었다.

송 선배는 내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것들을 직접 알려주는 방식으로는 하지 않았다. 배알야야 할 이유를 설명하고, 어떻게 해보면 좋을 거다라고 조언을 해주었고, 과제 내주기 방식으로 가르쳐 주었다. 신규자로서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은 누군가가 내게 일일이 설명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그렇게 하기에는 내가 배워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리고, 나는 질문도 너무 많았다.

하나워드를 배울 때도 송선배가 곁에 있었다. 내가 처음 직장생활을 하는 그때는 관공서는 대부분이 하나워드를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대에서도 그랬다. 관공서에 아래 한글이 막 도입되고 있었던 때였다. 내게 ‘하나’ 워드프로세스는 무척 불편한 것이었고, 나는 별로 배우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몇 가지 기능만을 썼고, 하나로 워드로 작업을 하는 동안은 문서를 날리기 일수였다. 몇몇 젊은 층에서는 아래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썼고, 이전에 입사하신 많은 분들은 하나워드를 썼기 때문에 문서 양식들 대부분이 하나워드로 되어 있었다. 툴을 사용하지 못하니, 나는 문서를 제대로 고쳐내질 못했다. 수정을 못하니 문서를 보고 새로 타이밍을 했다. 그러나 내가 만들어둔 문서는 하나워드 세대인 상사는 고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한 것은 송선배였다. 사장될 프로그램이라는 핑계를 대며 당장 써야할 툴을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을 미루어서는 안된다며 되도록 빨리 배우라고 조언해 주었다.
배우는 동안 내게 기능을 알려주었던 사람은 신경희씨였다. 하나로 문서작성하다가 날씨가 나쁘고 업무가 많은 날, 예보발표시간에 쫒겨서 급박해지면 경희씨가 작성해주곤 했다. 경희선배는 그걸 말리고 나섰다. 아무리 급해도 절대로 대신 해주지 말 것. 그래야 제대로 배운다는 것이었다. 맞는 말이었다. 위기상황에 항상 헬프를 외치면 언제 그 대처법이란 것을 배울 수 있겠는가.

엑셀 프로그램도 송선배의 조언이 있어서 배우게 되었다. 1997년 그때는 엑셀이 막 보급되기 시작할 때였고, 나는 엑셀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모르고 있을 때였다. 경희 선배가 내게 그것을 배우기를 권했던 것은 내년에 지역특색을 연구한 것을 발표해야 하는 데, 통계분석 프로그램을 사용법을 미리 익혀야 한다는 이유였다. 기회 있을 때 배우라고. 무료강좌가 어디에서 열리고 있으니 가보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비교적 쉽고 빠르게 배울 수 있었다. 그해 겨울에 엑셀을 이용해서 자료를 분석했고, 다음해에 발표회를 참가하라는 상사의 지시를 걱정없이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송선배에게 배운 또 다른 한가지는 문서를 보는 법이었다. 당시 나는 교대근무를 했기 때문에 근무일 3일중에 단 하루만 다른 직원들과 같이 근무했고, 일요일이 일근하는 날이면 어쩌면 일주일 내내 사무실 돌아가는 사정도 모르고 지내기도 했다. 직원들의 출장이나 교육일정 등에 대해서 정보가 어두웠다. 문서수발을 맡고 있는 신경희씨가 매번 체크하고 전달하는 상황이었지만, 사내 정보가 내게 오기까지는 상당히 시간이 걸렸고, 많은 것들은 전달되지 않았다. 송선배가 가르쳐준 것은 그것을 스스로 극복하는 법이었다. 전달받는 사람이 아니라 정보를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었다. 문서대장들을 규칙적으로 살필 것, 본 문서 중에서 상부에서 내려 준 업무지시에 관한 것은 다른 직원들과 공유할 것, 자발적으로 문서 보고 시일 및 교육일정 등을 체크하여 미리 준비할 것이었다.

송선배는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이 주도적으로 자신의 일을 해나가길 바랬고,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왔다. 송선배는 진정한 팀플레이어였다. 송선배와 같이 일하게 된 것은 내겐 행운이었다. 송선배와는 1년 정도를 같이 근무했다. 송선배가 다른 부서로 전근을 가게 되었다. 같이 오래 근무하고 싶은 사람인데 아쉬웠다. 그 후에 그 자리에 다른 주임급 선배들이 발령받아 전근왔고, 또 내게도 후배가 생겼다. 후배가 생겨서 같이 일해보니, 내가 얼마나 어리숙한 후배였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후로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서 많은 선배들을 만났고, 후배들을 만났다. 선배들로부터 무엇을 배운다거나 혹은 내가 후배에게 뭔가를 배우라고 요구하는 것에는 같은 부서에서 일한다는 것 이상이 필요했다. 인간적인 끈끈함이었다. 마음으로부터 동료가 되고 싶은 것, 그(그녀)와 함께 뭔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송경희 선배와는 그런 게 있었던 것 같다.

내게도 후배가 생기면 그때 나는 또 달라질 것이라고 경희선배는 말했었다. 다른 선배들도 대부분이 그랬었다. 내게 뭔가를 가르쳐준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그랬다. 가르쳐주어 고맙다고 말했을 때, 후배가 생겨보면 알거라고 했다. 고마워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 다음에 후배(다른이)에게 갚으라고.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그렇게 하겠다고 매번 속으로 다짐했지만, 나는 내가 그것을 제대로 행했는지는 의문이다. 일생을 통해 계속 연습해야 할 것으로 내게 가르침을 남겨 준 것 같다. 그들과 헤어진 이후에도 그들이 내 기억 속에서 계속 멘터로 남을 수 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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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8.07 12:48:02 *.99.242.60
직장에 입사를 하면서 가장 먼저 만나는 사수의 유형에 따라서 전반적으로 직장생활의 패턴이 정해지더군요. 업무를 잘하는 사수를 만나면
업무를 잘하고, 술을 잘마시는 사수를 만나면 술로 업무를 보고.
업무를 잘하시는 분을 만나는 것도 큰 행운인 것 같아요.

공자님도 三人行에 必有我師焉(세사람이 가는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라는 말처럼 주위에 배울만한 살마들이 꽤 많은것 같아요.

잭 웰치의 경우에는 스스로 겸손하고 자기를 정확하게 알기에 멘토가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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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8.07 22:29:26 *.72.153.12
영훈님, 그 분을 만난 건 행운 맞네요. 멘터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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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7.08.08 15:05:21 *.46.151.24
좋은 윗사람을 만나는 것은 복이지

나도 아버지의 교훈을 항상 기억하지...

'사람은 큰 나무 그늘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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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8.10 00:35:56 *.72.153.12
여기 소개한 제 사수는...
복은 받는 것이 아니라, 복은 짓는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새해 인사가 복 많이 지어라.

복 많이 짓지 않은 것 같은데, 좋은 분들 많이 만나서... 그래서 행운이라고 할 밖에......

지금도 그렇죠. 사부님 그늘은 따뜻하고, 그 그늘에서 만난 멋진 꿈벗들과도 교류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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