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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일 23시 20분 등록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을 키우는 엄마입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고 늘 책을 가까이하지만 독서를 제대로 한다고 볼 순 없습니다. 책장을 죽죽 넘기다 맘에 드는 페이지가 나오면 읽고 덮는 방식으로 독서를 합니다. 책의 처음 장과 마지막 장만 읽고 책 한 권을 다 읽었다고도 합니다. 엄마가 책은 그렇게 읽는 게 아니라고 잔소리를 하면 혹시라도 아이가 책을 멀리 할까 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이의 독서 이대로 괜찮을까요?”


지난 3월 29일 국립세종도서관에서 ‘마중물 부모교육’ 첫 강좌로 ‘가족에게 권하는 인문학’ 강연이 있었습니다. KTV파워특강 촬영하느라 방송 편집을 위해 강연 시간을 다소 줄여야 했습니다. 이번 가족처방전은 강연 중 촬영 때문에 충분히 답을 못 해드렸던 질문으로 대신합니다.


아이가 책을 읽는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 흐뭇하고 대견하기보다 한숨이 나옵니다. 도대체 책을 읽는 건지 가지고 노는 건지 분간이 안 갑니다. 진득하게 앉아서 꼼꼼하게 읽어 책의 내용을 마음에 새기고 삶으로 이어지길 바라는 엄마 마음과는 상당한 거리에 있습니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고 늘 책을 가까이하니까 아예 안 보는 것보다는 낫다고 위안을 해 보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 없습니다. 책이 심심할 때 가지고 노는 좋은 장난감이기도 하지만, 좋은 책 한 권에는 삶을 바꾸는 거대한 힘이 있다는 걸 아이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조선 시대 아버지들이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힌트를 얻었습니다. 정민, 박동욱의 <아버지의 편지>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아버지의 편지.png


조선 중기의 문신 유성룡은 ‘한 권을 읽어도 끝장을 봐야 한다’는 문장으로 정독의 중요성을 전합니다.


마음을 더 다잡아야 한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저 대충 시늉이나 하는 공부로는 이룰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덤벙거리지 마라. 진득하니 눌러 앉아 하나를 배워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고생만 하고 보람이 없다. (89p)


조선 중기의 문인 백광훈은 <논어> 읽는 법을 들어 책 한 권을 외울 정도로 읽기를 당부합니다.


<논어>를 하루에 한 권 씩 읽어 나중에는 아예 통째로 외우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옛사람들의 공부 방법이 잘 드러나 있다. <논어> g한 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줄줄 꿰어 머릿속에 넣어두면 평생 글공부한 선비로 사는데 조금의 부끄러움이 없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후의 운명은 하늘에 달린 것이므로 바깥일은 거들떠보지 말고, 고인을 모델로 삼아 그처럼 될 것을 기약하라고 당부했다. (52p)


조선 중기의 문신 박세당은 역사책 읽는 법을 들어 ‘나’와 ‘책’이 하나가 되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역사책을 읽을 때는 줄거리를 이해하고 핵심 내용을 기억했다가 틈틈이 앞뒤를 따져보고 생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또 깊이 음미할 만한 내용이나 말은 따로 메모해서 마음에 간직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종이 더미 속에 든 활자를 내 마음속으로 그대로 옮겨 놓는 일이다. 만일 그렇지 않고, 책을 읽은 뒤에도 책 따로 나 따로 놀면 그것은 책을 읽지 않은 것과 다를 게 없다. (134p)


이와 같이 조선시대 아버지들은 ‘정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여러 사람과 적당한 관계를 맺는 것과 단 한 명의 친구와 깊고 지속적인 관계를 맺는 것 중 어느 쪽에 우정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여러 사람과의 적당한 관계를 우정이라 부를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책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 책 저 책 심심할 때 들쳐보는 책과 내 마음 속 깊은 곳을 건드려준 책을 같은 책이라고 할 순 없을 겁니다.


그동안 아이가 표지가 맘에 드는 책을 골라 몇 페이지만 읽거나 책의 첫 장과 마지막 장만 읽으며 여러 책과 관계를 맺었다면, 이제는 자신의 삶에 영향을 주는 책을 선택해 깊게 읽는 법을 연습해야 할 것입니다. 친구를 사귀는 데 공을 들여야 하듯 나만의 책 한 권을 만나기 위해서도 공을 많이 들여야 할 것입니다.


아이의 책상 위에 새 책꽂이를 하나 놓아주세요. 그동안 아이가 만났던 책 중에 ‘나만의 책’ 한 권을 선정할 수 있도록 도와 주세요. 나만의 책을 새 책꽂이에 꽂아주세요. 많은 사람 중에 ‘베스트 프렌드’ ‘베프’ ‘절친’이 있듯, 많은 책 중에도 특별한 책 ‘베스트북’ ‘베북’이 있다는 걸 알려주세요. 아이가 직접 고른 베스트북과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할 수 있도록 지켜 봐 주세요. 아이의 '베북'이 한 권 씩 생길 때마다 깊고 깊은 우정을 나눌 친구가 생긴 것처럼 열렬히 환영하고 환호해 주세요. 아이의 독서가 깊어지길 바랍니다.


***


격주 월요일에 발송하는 마음을 나누는 편지 '가족처방전'은 필자와 독자가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가족 관계가 맘대로 되지 않아 고민하고 계시다면 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마음을 다해 고민하고 작성한 가족처방전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김정은(toniek@naver.com) 드림

IP *.202.114.135

프로필 이미지
2018.04.02 08:42:53 *.111.2.85

아이의 책상위에 새 책꽂이를 하나 놓아주세요. 라는 처방전을 읽고


저 자신에게도 베프, 절친, 소중한 친구 들을 담을 수 있는 "새 책꽂이"를 만들고 싶습니다.


좋을 글,,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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