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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6일 11시 36분 등록
지난 주말은 제 큰 외삼촌의 일흔 번째 생신이었습니다.

외가 쪽에 가장 큰 어른이신 외삼촌의 고희연이라 비가 많이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토요일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했습니다. 외가 식구들이 모여 사는 울산으로 향하는 내내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큰 외삼촌께서는 얼마 전, 중풍 증세를 보이시며 하반신에 마비가 와서 도움 없이는 혼자서 걷기도 힘드신 상태였습니다. 연세가 적지 않으시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으면서도 요즘처럼 건강하게 노년을 보내는 분들이 많은 세상에 멀쩡했던 외삼촌의 건강 악화는 가슴을 아프게 했습니다.

대략 육십 여명의 사람들이 울산의 한 호텔에 모였습니다. 일흔이 넘으신 큰 이모부터 이제 갓 돌이 지난 제 아이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몇 명은 멀리 다른 나라에서 바다를 건너 왔고, 또 몇 명은 전국 각지에서 억수로 내리는 빗 속을 뚫고 왔습니다. 남매 중에 여섯 째이신 저희 어머니를 포함해서 여덟 형제자매에 그 자손들까지 한 자리에 모이고 보니 한 가족의 모임치고는 규모가 대단합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두 분의 만남에서 이렇게 많은 자손들이 번창했다는 사실이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전문 사회자에 밴드까지 동원한 고희연은 화려하고 유쾌했습니다. 가족끼리의 조용한 연회를 기대했던 저로서는 조금 놀라기도 했지만 흥겨운 시간이었습니다. 팔 남매의 가족들이 이런저런 차례로 무대에 올라 노래도 부르고 조금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춤까지 추어가며 놀았습니다. 남의 잔치에서였더라면 얼굴이 붉어졌을지도 모르는 소란함 속에서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즐겼습니다.

재치 있는 사회자의 입담에 우리는 함께 웃었습니다. 또 어린 아이들의 쏟아지는 장기자랑에 어른들의 마음이 덩달아 맑아지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앞서 잘 살아온 인생의 황혼을 축하하는 어린 생명들의 천진함은 아름다웠습니다. 거창하게 윤회를 떠올린 것은 아니지만 소멸과 탄생의 순리가 자연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건강이 나빠진 외삼촌의 고희연에서 저는 문득 생명의 아름다움을 떠올리고 있었습니다.

한참 동안의 떠들썩한 잔치가 끝나갈 무렵, 사회자가 마련한 작은 이벤트는 연회장을 울음 바다로 만들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무대의 중앙에 위치한 외삼촌 앞으로 육십 여명의 가족들이 차례로 지나며 감사와 축하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누군가는 외삼촌의 가슴에 안겨 울음을 터트렸고, 또 누군가는 외삼촌의 볼에 입맞춤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금 앞서 외삼촌과 포옹을 하고 내려와 뜨겁게 마음이 오가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저도 눈가가 뜨뜻해졌습니다. 그렇게 벌개진 눈시울과 울컥거리는 마음을 달래고 있는 틈에 인생의 의미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번 주 연구원 과제의 주인공인 잭 웰치는 그의 책, '위대한 승리'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승리는 위대하다. 단순히 좋은 것이 아니라 위대하다.

승리는 위대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거기에 비하면 패배란 참으로 비참하고 암울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떤 것이 승리이고 또 무엇이 패배인지에 대해서는 쉽게 결론을 낼 수가 없습니다. 외삼촌 앞에서 따뜻한 마음과 인사를 나누는 가족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잭 웰치가 말한 승리만이 인생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잔치를 시작하면서 사촌 형이 외삼촌께 드렸던 축하의 인사가 마음에 잘 자리했습니다.

"정해진 식순에 외삼촌의 약력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이 것은 생략할까 합니다. 외삼촌이 사회적으로 이루신 성취가 미약해서가 아니라 이렇게 화목한 가족을 만들고 또 이렇게 한자리에 모으신 그 노력과 성공에 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외삼촌, 일흔 번째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오래도록 건강하게 저희 곁에 계셔주세요.




IP *.227.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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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
2007.08.07 01:08:51 *.245.4.120
종윤님의 외삼촌님이 부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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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8.07 12:50:21 *.99.242.60
저는 2005년도에 아버지 칠순을 고향 마을 회관에서 했습니다.
동네 잔치로다가...회관을 지은지 고희같은 행사를 처음 했고,
온동네가 떠나갈 듯 했죠...
고희연의 방법에 대하여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인생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생전에 다시 본다는 의미에 중점을 두어
기억에 남는 고희연이 되었답니다.
다시 그날의 기억이 살아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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