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07년 8월 13일 10시 14분 등록
여행전에 청소
==================================

집청소를 해야 할 때가 훨씬 지났다.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지 않은 것을 개미들이 좋아한다. 빈 복숭아 통조림 깡통으로 줄을 선 개미들이 보였다. 대청소를 해야겠다. 낼 모레이면 여행이니 청소가 필요한 시점이다.

여행을 앞두고 청소하는 버릇이 생겼다. 기상청을 퇴임한 선배를 만나고 부터다. 그날도 야근을 하고 난 다음 날이라 잠이 부족한 상태로 집에서 쉬고 있는 데, 저녁에 술자리에 직원들이 나를 불렀다. 한 달전쯤 회사를 그만둔 계장님이 멀리서 일부러 회사에 왔는데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곳에 발령받아 오기 전에 퇴직을 하셨기 때문에 이름만 들었지 안면이 전혀 없었다. 대학교를 같은 학과를 졸업했다는 것 말고는 연결될 고리가 없는 분이셨다. 처음 발령받아 간 군산에서 나의 사수였던 송경희 선배의 사수였다는 것, 워낙에 기이한 행동으로 유명한 분이라서 그분을 모르다면 간첩이라는 이야기를 학번이 높은 선배들과, 같이 학교를 다니셨다는 화가에게 들었던 것 말고는 없었다.

그날 밤은 술을 아주 유쾌하게 마시고 흥겨웠다. 선배는 2차 혹은 3차를 가자는 직장동료들을 후배인 나와 따로 한잔 하고 싶다며 보냈다. 핑계였던 것 같다. 그때는 이미 양계장님은 머리꼭지까지 술이 차 있는 상태였다. 나도 더 이상은 술을 마실 수가 없었다. 술기운과 부족한 잠으로 졸려서 미칠 지경이었다. 더 이상의 술은 그만하자고 하고, 다음날 출근해야 하니 자야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리곤 집에 가자고 했다. 방하나 내 주겠다고.

13평짜리 공무원 임대아파트를 기상청 입사동기언니가 얻어서 나는 그 중에 방 한 칸을 전전세로 쓰고 있었다. 내게 전세를 내준 언니는 목포로 발령이 나서 집을 빼야 했는데, 그것을 내게 몸만 들어와 살아라고 하고 내준 것이었다. 내게 전세를 준 언니는 일주일이나 2주일에 한번정도 집에 오는 사람이라 결국은 언니의 방까지 두 칸을 모두 쓰고 있었다.

집에 도착해서 좀더 깨끗하고 넓은 내 방을 선배에게 내주었다. 나는 아침에 출근할 테니 주무시고 문은 그냥 잠그지 말고 가시면 된다고 했다. 나는 언니방에서 골아 떨어져서 잤다.

아침에 졸리는 눈을 하고는 서둘러 출근을 했다. 근무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퇴근을 해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이 뭔가 달라졌음을 알았다. 집이 깨끗해져 있었다. 방도 깨끗이 정리가 되어 있었고, 이불도 잘 정리되어 있었다. 부엌에 설거지 안한 그릇도 없었다. 다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식탁에는 쿠키가 몇 종류 놓여 있었다. 냉장고에는 녹차 음료수 캔이 몇 개 들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아아~’ 했다.
뒤죽박죽된 미묘한 감정이 와락 덥쳐왔다. 캔과 쿠키를 붙들고 주저앉아 울었다. 아아---
그냥 내가 한심하고, 부끄럽고, 허탈하기도 하고, 고맙고 또 이상했다. 한참을 울고는 전주로 돌아가셨을 양계장님 전화번호를 눌렀다. 냉장고 채워주신거 고맙고, 그리고, 더러운 집 청소까지 깨끗하게 해주신 것 고맙다고. 냉장고 채운 것은 재워줘서 고마워서 그랬다고 하시고는 야근으로 힘들다고 밥 굶지 말고 잘 먹으라고 당부하셨다. 집청소는 자고 일어나서 할 일이 없어서 그냥 하셨단다. 할일이 없어서라니. 그냥 할만한 것이 아니었는데, 그런 말씀을 하셨다.

그 뒤부터 집 청소하는 버릇이 들었다. 나는 청소를 대충 했었다. 야근의 연속이어서 내겐 잠이 우선이라서 적당히 더럽고, 적당히 치워진 곳에서 잘 먹고 또 잘 잤다. 깔끔하게 치울 일이 없는 내가 바뀐 것은 그때부터 였다. 선배가 청소해둔 깨끗한 집을 보면서 교차했던 그 수만은 감정들 때문에....... 바뀌었다.
목포에서 돌아올 언니를 깨끗한 집에서 맞고 싶다는 생각에서 내가 출근했을 때, 집에 올까봐 집을 나서기전에 집을 치우게 되었다. 설거지를 다 마치고, 벗은 양말과 옷은 세탁기로 넣고, 침대 이불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집에 돌아왔을 때 청소할 것이 없도록 만들어 놓고는 출근했다. 며칠 정도 집을 비워야 할 때는 평소보다 더했다. 나 없는 새에 집에 방문할 누군가를 생각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그런다. 그리고, 또 여행에서 뭔일이 생겨서 집에 돌아오지 못하거나 누군가와 같이 집에 올 것도 생각해서.

낼 모레면 일주일간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갔다가 돌아올 때는 항상 새로운 것을 마음에 품고 돌아온다. 그러기 위해 떠나느 것이 대부분이니까. 돌아올 때는 다른 삶을 시작하는 사람이 된다. 내게 집에 돌아온다는 것의 의미는 일상으로 복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집에 돌아가면 이렇게 해봐야지.’ ‘집에 돌아가면 다른 삶을 살아야지.’ 그러는 것이다. 그렇게 집에 돌아올 때는 밝고 환한 잘 정돈된 집이 나를 맞기를 바란다.

집에 돌아올 사람을 환하게 맞을 공간을 준비하는 마음이다. 그 옛날의 선배도 그랬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내게 달라진 공간이란 선물을 준비한다. 새로운 사람이 되어서 돌아올 나를 반기는 의식을 떠나기 전부터 하는 것이다.
IP *.72.153.12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7.08.13 23:18:14 *.131.127.120
좋은 습관이구나...

나도 아침에 나갈 때
시간에 쫓기더라도 방은 정리해 놓고 나간다.

왜,, 저녁에 돌아 올 때는 참 피곤한데
너저분한 방을 보면 더 지치기 때문이다.

이나라 저나라를 떠 돌면서
혼자 오랜 세월을 살아온 습관이기도 하다. ^^

건강히 잘 다녀오기 바란다.
프로필 이미지
한정화
2007.08.14 05:10:23 *.72.153.12
옙. 댕겨오겠습니다.
스승님 잘 모시고, 잘 먹고, 신나게 말타고, 잘 놀다가 돌아오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김지혜
2007.08.14 13:59:30 *.75.250.110
지난번 연필스케치에 관한 글을 읽고...
한참을 '첫시도'에 대해 생각했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 또 여행과 청소라는 절묘한 조합에
눈물도 잠깐 글썽여보고 (요즘 눈물이라는 놈이 자주 등장을..^^)
누군가에게 작은 거라도 선물하고 싶다는 맘도 막 들고..
집을 비우기 전엔 깔끔하게 해야 한다는 엄마의 잔소리에
짜증냈던 과거도 잠시 후회해 보고..
앞으론 여행떠나기 전에는..떠나는 것 준비하는 것보다
돌아왔을 때를 준비하겠다 다짐도 해보고..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합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12 커뮤니케이션과 관계 [3] 교정 한정화 2007.08.28 2545
311 진정한 기업이윤을 생각하며 [5] 최정희 2007.08.27 2871
310 [칼럼 21] 니들이 몽골을 알어? [6] 余海 송창용 2007.08.27 3292
309 [21] 징기스칸의 나라 몽골과의 첫 키스 [8] 써니 2007.08.27 2908
308 [021] 삶이야말로 강력한 가르침의 자원 [4] 현운 이희석 2007.08.27 2592
307 내 안으로의 여행(축약본) [4] 海瀞 오윤 2007.08.24 3022
306 (20) 나는 춤추는 레인트리 [4] 素賢소현 2007.08.24 3183
305 (21) 달리는 말 [4] 香仁 이은남 2007.08.23 3405
304 나의 글쓰기 작업은- 태생으로의 회귀 [4] 최정희 2007.08.21 3083
» (020-3) 여행전 청소 [3] 校瀞 한정화 2007.08.13 2998
302 '나'다운 승리 [14] 素賢소현 2007.08.06 3203
301 [칼럼019] 승리가 성공을 이야기하는가? [2] 香山 신종윤 2007.08.06 2786
300 이제는 솔직해지고 싶다 [5] 현운 이희석 2007.08.06 3007
299 [20] 몸이 정신을 압도하는 날/ 屈服 [8] 써니 2007.08.06 3228
298 (020) 멘터 [4] 校瀞 한정화 2007.08.06 2387
297 직장생활 단상 - 상사편 - [1] 호정 2007.08.05 3013
296 [칼럼20] 도요새의 비상 [2] 素田최영훈 2007.08.05 4085
295 (20) 어느 날의 기억 하나. [4] 香仁 이은남 2007.08.05 2513
294 [번 외] 그냥... / 千年 安否 [6] 써니 2007.07.31 2796
293 우리 순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 [3] 교정 한정화 2007.07.30 27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