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최정희
  • 조회 수 2696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07년 8월 21일 15시 11분 등록
그대 마스게임을 보았는가!
한치의 어긋남도 없다. 옷에서부터 동작 하나까지 모두가 하나가 된다. 일사불란함 속에서 게임이 끝나면 관중은 환호와 갈채를 보낸다. 잘했다고, 정말 멋진 쇼였다고.

나의 글쓰기는 이 거대한 마스게임에서 일탈을 꿈꾸는 작업이다. 내게 부여된 역할과 위치에서 다소 엉뚱한 동작을 할 때면 가차없이 이상한 사람으로 전락시키는 집단에 대한 소극적 반항이다. 내면을 향하여 거부하는 몸짓이다.
내가 처음부터 ‘현대사회’라고 하는 거대한 조류에 편승되었더라면 함께 떠밀려감을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그러나 아쉽게도 히치 하이커였다. 마음 닿는대로 떠돌다가 나에게 잠재된 호기심과 변화라는 녀석 때문에 이 괴물적 요소를 안고 있는 시대조류를 얻어 탄 셈이다.
일단 타고 나니 나의 자유가 제한된다. 보편화와 통념이라는 것에 올가미가 채워진다. 자유를 꿈꾸는 사유가 제한되고 일탈의 행동에는 비난이 가해진다. 내려주지 않으면 뛰어내리겠다고 협박해도 소용이 없다. 무작정 뛰어내렸다가는 ‘대형사고’ 일 게 뻔하기에 차마 뛰어내리지도 못한다.

나의 태생은 산과 연결되어 있다. 산은 하루의 시작이요 마감이다. 지리산은 거대함 뒤에 감추어진 자비심으로 곳곳에 자락을 심어놓았고 그 자락의 따뜻한 자궁속에서 나는 태어났다. 온통 산이었고 물이었다. 훈훈한 대지의 온기로 산이 자라고 물이 흘렸으며 그들은 나를 키웠다. 남으로 향한 문을 열면 앞마당 가득 산이다. 울타리는 산의 정령들인 측백나무로 둘러쳐저 있고 마당은 숲이였다. 오갈피나무와 작설나무는 울타리에 함께 서고 밤나무와 개살구 나무는 그늘을 만든다. .초피나무는 향을 날리고 하늘을 향한 고욤나무는 달이 뿜어내는 환상의 세계로 이끌고 별들의 속삭임에 귀기울이게 한다.
마당 넘어에는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질경이 꽃들이 바닥을 깔고 토끼풀은 무늬를 만든다. 한 밭 가득 자란 목화는 꽃이요, 먹거리요, 숨바꼭질을 위한 최고의 장소였다. 놀이터 중앙엔 커다란 봉분이 자리잡고 있었고 그 곳은 깡통차기의 중심이 되었다. 삶과 죽음이 함께 있었고 노동과 놀이는 하나였다.

봄이면 산은 온갖것을 토해 낸다.
산수유향을 시작으로 해서 진달래꽃, 싸리꽃이 뒤를 잇고 산벗나무도 앞다투어 꽃을 피운다. 우리는 산의 너그러움을 안고 구석구석을 더듬는다. 고사리를 꺾고 산나물을 뜯으며 가재를 잡아 손바닥 위에 올려 놓는다. 산의 맏형격인 소나무들도 품었던 온갖 것들을 드러내 놓으며 마지막엔 껍질까지 벗어놓는다. 해거름녁에 산을 내려오며 질겅거리며 씹는 소나무 껍질맛은 산의 모든 냄새를 다 품은 달작지근한하고 내밀한 우리만의 언어였다.

여름산은 우리를 감싸 안는다. 굽은길을 72번 돌아오르면 산 정상에 오른다. 크고 작은 산들이 발아래 놓이고 거대한 바위기둥조차도 우리와 나란히 선다. 싸리나무는 우리의 노곤함을 달래주어 그늘을 만들어 주고 멀리서 날아온 바람은 이국의 언어들을 담고 있다. 그들의 언어는 달콤하고 향기로우며 무한한 꿈의 스팩트럼을 품고 우리곁을 끝임없이 맴돌았다.. 노란 꽃들은 우리를 유혹하며 아낌없이 자기를 바친다. 약초란 이름으로 잎을 내어놓고 뿌리를 내어놓으며 노동에 지친 어른들의 얼굴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산은 끝까지 너그러움을 잃지 않는다. 주고 또 내어 놓는다. 산열매를 매달고 산새알도 구경시켜준다. 고라니와 산비들기도 불러준다. 산아이들의 무료함을 염려함인지 온갖 산짐승들을 불러모아 놀이터를 만들어 놓고 동산을 꾸미고 놀이감을 준다. 그 속에서 우리는 귀빈이 되고 공주가 되고 왕자가 된다.

겨울산의 울림에 귀 기울어 보라.
윙윙거리는 바람은 온 골짜기를 안고 돌며 마을을 휘감아 들판으로 향한다. 그는 어디로 떠돌지 마무도 모른다. 자유와 허망함을 달고 미련없이 떠돈다. 설화는 또 어떠한가! 훌훌 털어버린 마른 가지마다 피어난 눈꽃은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어선다. 무아요. 해탈의 경지다.
물푸레 나무와 소나무 숲속에 앉아 바윗돌에 맺힌 고드름을 한입 베어 물고 눈 속에 앉아보라. 거대한 우주속으로 끝없이 침잠되어 간다. 어둠이 밝음이 되고 고요가 울림이 된다. 숲 속에 오또마니 앉아서 나를 지켜보는 토끼 한 마리는 꿈의 전령이다.

내 태생으로 돌아 가지 못함이 가슴에 사뭇침으로 남는다. 길을 걸어도, 웃어도 숨을 쉬어도 모든 것이 산에 대한 그리움으로 향한다. 산 정상의 노란 꽃들은 꿈속에 나와 놀고 겨울산의 아득함은 손가락 마디마디에 굳은 살로 박힌다. 가슴에 맺힌 그리움이 손가락 끝으로 환생을 시도함이 나의 글쓰기 작업이다. 글을 통하여 그는 뒹굴고 웃으며 그의 태생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내가 산으로 다시 돌아가는 날,
어쩜 이는 글 쓰기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지 모른다. 아니, 분명한 새로운 시작이 되리라. 산이 품고 있는 그 환상의 세계를 어찌 쓰지 않고 배길 수 있으랴.

IP *.86.177.103

프로필 이미지
한희주
2007.08.20 07:04:26 *.233.201.27
지리산의 품 안에서 성장하신 우제 선생님!
관계 속에서 세상을 배우고 만들어 가는 도시에서의 생활이 마감되는 날, 다시 산으로 돌아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새로운 삶이 시작되면, 본격적인 글쓰기 작업도 실행 될 거구요.
아름다운 삶의 노정이 계획되어 있어 행복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우제
2007.08.20 16:26:17 *.117.248.129
잘 지내고 계시죠?
푹 익은 메주냄새가 코끝에 진하게 와 닿네요. 지난 주에는 태안에 다녀왔습니다. 몽골여행에 비길수 있으리오만, 작은 오솔길을 발견했습니다. 그 길은 황홀하고 짜릿했지요.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08.20 21:22:35 *.70.72.121
언니야, 우리 몽골 잘 다녀왔습니다. 언니는 과제를 충실히하며 옹골지게 지내고 계셨군요. 다음에는 꼭 같이가요. 언니가 무척 좋아하실 거에요. 참 좋았답니다.
프로필 이미지
한정화
2007.08.21 05:07:57 *.72.153.12
우제 언니, 산 좋아하는 구나.
저도 산 좋아요. 다음에 가실때는 같이 가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12 커뮤니케이션과 관계 [3] 교정 한정화 2007.08.28 2282
311 진정한 기업이윤을 생각하며 [5] 최정희 2007.08.27 2595
310 [칼럼 21] 니들이 몽골을 알어? [6] 余海 송창용 2007.08.27 2982
309 [21] 징기스칸의 나라 몽골과의 첫 키스 [8] 써니 2007.08.27 2502
308 [021] 삶이야말로 강력한 가르침의 자원 [4] 현운 이희석 2007.08.27 2307
307 내 안으로의 여행(축약본) [4] 海瀞 오윤 2007.08.24 2558
306 (20) 나는 춤추는 레인트리 [4] 素賢소현 2007.08.24 2844
305 (21) 달리는 말 [4] 香仁 이은남 2007.08.23 3106
» 나의 글쓰기 작업은- 태생으로의 회귀 [4] 최정희 2007.08.21 2696
303 (020-3) 여행전 청소 [3] 校瀞 한정화 2007.08.13 2700
302 '나'다운 승리 [14] 素賢소현 2007.08.06 2928
301 [칼럼019] 승리가 성공을 이야기하는가? [2] 香山 신종윤 2007.08.06 2505
300 이제는 솔직해지고 싶다 [5] 현운 이희석 2007.08.06 2675
299 [20] 몸이 정신을 압도하는 날/ 屈服 [8] 써니 2007.08.06 2849
298 (020) 멘터 [4] 校瀞 한정화 2007.08.06 2083
297 직장생활 단상 - 상사편 - [1] 호정 2007.08.05 2719
296 [칼럼20] 도요새의 비상 [2] 素田최영훈 2007.08.05 3642
295 (20) 어느 날의 기억 하나. [4] 香仁 이은남 2007.08.05 2235
294 [번 외] 그냥... / 千年 安否 [6] 써니 2007.07.31 2502
293 우리 순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 [3] 교정 한정화 2007.07.30 24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