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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23일 23시 06분 등록
원시적인 생명력이 불끈 느껴지는 냄새, 작열하는 태양과 그 사이에 떠 있는 당당한 구름들, 사방을 찬찬히 둘러보아도 시선을 방해 받을 일이 없는 초원, 그 곳에는 탄력 있는 멋진 엉덩이에 선한 눈을 가진 말들이 있었다. 그리고 순한 양과 염소, 무리를 지은 소들이 그 대지에서 살고 있다. 어슴푸레 어둠이 시작되면 청바지를 입은 젊은 양치기들이 말을 몰며 그들의 귀가를 재촉하고 있었고 커다랗고 착한 눈을 가진 개들이 그 주변에서 제 몫을 하고 있다. 그곳의 생명들은 다 역할이 있다. 한쪽 다리를 절던 검정 개도 주인 곁에서 충실한 보조 노릇을 하며 제 임무를 다한다.

초원의 말들은 일사불란하다. 사람은 몇 가지 동작으로 그들과 의사소통을 한다. 그들을 성가스런 인간의 의도를 이해한다. 마구간 근처에 가게 되면 그곳이 자신의 집이라는 신호를 보내며 안락한 주거지로 들어가고 싶다는 사인을 보내온다. 목적지를 한참 남겨둔 사람은 조금 더 가자며 말에게 박차를 가한다. 그들은 우리의 절절한 심정을 받아들이는 듯 익숙한 자신의 집을 지나쳐 인간의 요망에 동의해 준다. 미안하다. 그러다 또래의 친구들을 만나면 저희들끼리 반갑다는 인사를 한다. 그들에게도 언어가 있음이다. 소통은 문자를 가진 인간보다 항상 동물이 더 능숙하다는 느낌이다.

유목민들의 몸에는 삶을 절절하게 살아온 흔적이 여실하다. 그들의 질겨 보이는 근육은 헬스클럽의 머신으로 단련된 것이 아니다. 말을 달리고 양을 치면서 생존해 오며 만들어진 몸이다. 펄펄 뛰는 생명력은 세상이 만들어 놓은 미의 기준을 훌쩍 뛰어 넘고도 남는 듯하다. 살이 패여 피가 나도 항생제를 찾지 않는다. 그들의 선조들이 그렇게 살아왔 듯 오랫동안 그렇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곳에선 오히려 문명은 낯설기까지 하다. 그곳에 살고 있는 많은 생명체들처럼 유목민들 또한 더불어 그렇게 공존하고 있었다.

한국인의 원류를 말하는 사람 중에 바이칼호 근처 부족 출신이 바로 우리들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있다. 몽골인들 역시 그 주변에 살았으며 한국인의 원조가 되는 이들과 결혼했으리라는 설이다. 아기들의 엉덩이 푸른 반점은 그 때 신석기 시대부터 그 주변의 부족에게 나타나는 특징이고 나중에 징기스칸이 세계를 정복하는 바람에 몽고 반점으로 불리게 된다고 한다. 이 이야기의 진위는 학자들에게 맡기겠지만 이번 몽골 여행에서 너무나도 비슷한 골격과 얼굴 모습에 고개를 끄덕끄덕하게 된다. 거부할 수 없는 것, 그것은 정말로 유전자일까?

내 안의 유목민 유전자의 강렬한 질주 본능은 말 등에 오르면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두려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옅어져 가고 있었고 안장에 걸친 엉덩이의 마찰이 조금씩 익숙해질 즈음 말은 달리기 시작했다. 속도가 붙자 바람이 전신을 감싸기 시작한다. 마치 태양과 바람이 한 여행자의 외투 벗기기 대회를 하는 마냥 바람은 모자를 벗기고 스카프를 날리게 하며 나의 유목 유전자를 유감없이 발휘하게 하고 있다. 바람이 부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내가 바람을 만들어 내는 착각이 든다.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들고 다리를 세웠다. 살짝 말 머리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나는 속도에 탐닉하기로 했다.

눈이 크게 떠지고 입술이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옆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자외선 차단용 햇빛 가리개를 벗었다. 모자도 뒤로 제치고 머리칼도 바람에 날리도록 두었다. 시원하다. 달리는 말의 몸통에 두 다리를 꼭 붙이곤 크게 숨을 들이 마신다. 두려움을 잊은 심장이 생전 처음 맛보는 짜릿함에 아우성치고 있다. 앞 사람도 옆 사람도 흙먼지에 가려져 희미하게 보인다. 맹렬한 속도의 질주다. 유목민 아이들이 조랑말까지 데리고 합세한다. 그들도 우리도 그저 말과 함께 달리고 또 달렸다. 청정한 고요 속의 대지에는 오로지 생명력 넘치던 요란한 말발굽 소리만이 진동하고 있었다.

스스로 달리는 말들은 신나 보였다. 초원을 울리는 듯한 유목민들의 “쵸우! (이랴!)” 라는 발성이 여기저기서 우렁차게 들려오자 곁에서 걸어 가던 말들이 뛰기 시작한다. 점잖기만 하던 나의 말도 드디어 달리고 있었다. 녀석들은 그 순간 그들의 숨겨진 열망을 표출하는 듯 일제히 앞으로 전진하며 달려 나갔다. 뛰는 발길질엔 폭발적인 힘이 느껴졌다. 등에 실린 사람은 넘실대는 거친 출렁임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말들은 모처럼 자유로워 보였다. 스스로 달리는 자의 아름다움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입이다. “이래서, 저래서” 하며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기 시작하면 그것은 결국 타의에 지시에 의해 겨우 움직이게 되거나 아니면 스스로 달릴 수 있는 기회를 반납하게 돼버리고 만다. 채찍에 맞아 움직이는 말은 어딘가 강제성이 있다. 수동적인 움직임이다. 그러나 자유롭게 자신이 원해서 달리던 말들처럼 스스로 달려가는 사람들에게는 빛나는 광채가 있음이다.

인간은 누구나 주변의 현실에서 무한대의 자유를 가지기는 힘들다. 그러나 틀을 깨고 나아가는 사람들이 반드시 우리들 주변에 존재한다. 바람을 가르며 스스로 달려가는 말처럼 그들의 특성은 목적을 향해 그렇게 스스로 달려간 사람들이다. 전형적인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입이다. 우리들의 인생, “어떻게 살 것인가?” 선택은 개인의 자유이다. 누구도 타인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다. 존엄 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인간에게 강요란 그저 조롱 받는 행위에 불과하다.

몽골여행의 진수는 달리는 말이었다. 질주하던 녀석의 등에서 나는 강한 생명의 기운을 느꼈다. 이글거리는 태양 광선, 얼굴을 세게 부딪히는 바람 속에서 나는 내가 원초적인 자연인임을 알아챘다. 서울로 돌아와 첨단 문명의 이기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때 그 순간을 생각하면 밥을 먹다가도 침대에 누웠다가도 심장이 꿈틀거린다. 내 안의 유목민 유전자의 화려한 부활이다. 이들이 그 동안처럼 잠자코 있어줄까? 그 아이들이 무엇을 하고자 할지 아직은 모른다. 그저 내가 아는 건 기회가 왔을 때 망설이지 않고 재빨리 올라 타겠다는 다짐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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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07.08.23 01:06:54 *.233.201.30
'그렇기 때문에' 난 할 수 없어.가 아닌,'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해내고 말거야.
외부의 조건에 흡수당하지 않고, 악조건 속에서도 자기 일을 기어이 해내는 당찬 삶이 아름답고 빛나는 것이지요.
향인님! 오랫만이에요.
바람과 초원을 달리는 말과 푸른 하늘의 싱그러움을 마음것 호흡하고 쓰신 그대의 글이, 생명을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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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8.23 22:58:25 *.48.32.74
몽골 여행에서 돌아와 따끈따끈 할 때 일단 써보자고 올렸지만 아직 썩 마음에는 들지 않는 글입니다.그래도 제 나름대로 표현하고자 했던 말들을 희주님이 정리해 주셨군요.네 바로 그것,생명력에 관한 느낌들이었지요. 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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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언
2007.08.24 07:52:05 *.128.229.42
말들의 엉덩이에 매혹된게 저뿐이 아니었군요. 하하;
기운껏 달리고 나면 심장이 쿵쾅쿵쾅 뛰지요. 그 달리고 나서의 황홀감이 너무 좋아서 '아직도 몽골이었으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글 재미있게 읽었어요. 유목민 유전자의 화려한 부활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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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8.24 16:13:37 *.48.32.74
함께 해서 좋았네요. 해언의 구김없는 밝음이 여행을 즐겁게 해 주었지요. 초원을 달리던 그 느낌, 오래오래 기억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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