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余海 송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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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여행!
여행의 가치는 떠나기 전 설레는 기대감에서 또는 여행 중의 짜릿한 경험에서도 느껴지지만 다녀온 후의 추억에서 더 진하게 우러나오는 듯하다. 그만큼 이번 여행의 여운은 진하다. 이 여행을 통해 많은 것들을 얻었고 깨달았다. 말 타기, 일주일 동안 면도 안하기, 여행을 즐기는 법 터득하기, 몽골인과 친해지기, 더 나아가 몽골인이 되어 보기 등 피상적인 부분에서부터 내면적인 부분까지 골고루 느끼는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그래도 이 여행의 백미는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주제가 여행 일정 속에 양푼이 비빔밥처럼 잘 버무려진 점이다. 나를 찾았고, 남을 알았고, 그리고 우리를 발견했다. 이것만큼 의미 있는 여행이 또 어디 있겠는가? 꿈을 찾는 여행이었고 꿈같은 여행이었다.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들은 많이 있지만 여행의 주제를 떠올리면 뇌리에 새겨진 장면이 하나 있다. 몽골이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드넓은 초원을 떠올릴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끝없는 초원 위를 말을 타고 질주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 장면을 내가 직접 재현해 보고자 이번 여행기간 동안 무척 노력하였다. 결과를 놓고 보면 실패로 끝나긴 했지만 그보다 더 큰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5박 6일의 일정 중에 3일이 말을 타는 것으로 잡혀 있었다. 잘만 한다면 꿈에 그리는 ‘초원 위의 질주’도 가능해 보였다. 승마 첫날은 승마하면서 주의해야 할 점을 듣고 말과 친해지는 시간으로 승마의 기본을 익히는 시간이었다. 사부님은 첫날부터 능숙한 솜씨로 말을 다루며 홀로 초원을 달리며 자유로움을 만끽하였다. 강렬한 태양 아래 검은 썬글라스에 승마 장화를 싣고 신나게 초원을 달린다. 나도 조만간 저런 모습으로 말을 탈 수 있을까.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둘째날은 첫째날보다 먼 거리를 말과 함께 이동하며 때로는 걷고 때로는 달렸다. 아직 혼자 타기는 부족하지만 말이 달리는 리듬에 나의 몸을 어느 정도 맞추어 나갔다. 리듬을 잘 못 맞추면 엉덩이가 무척 고생을 한다. 일행 중의 일부는 벌써 엉덩이에 불(?)이 난 사람도 있었다.
셋째날은 드디어 나 혼자 말을 타고 다니게 되었다. 혼자 타고 다니니 자유로웠지만 말과 호흡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중심 잡기가 어려워 말 위에서 떨어질까 두렵기도 하였다. ‘자유로운 영혼’이라며 부러워하는 일행의 시선에 잠시 우쭐해지기도 하였다. 아직은 말과 완전히 호흡을 맞추지 못했고 나의 말이 말을 제대로 듣지를 않았다. 말은 주인과 손님을 구분한다고 한다. 주인이 다루던 솜씨와 손님이 다루는 솜씨에 차이가 나서 말은 손님의 어설픈 행동에 콧방귀를 뀐다고 한다. 그래도 혼자 독립한 이상 제대로 달려 볼 욕심에 채찍으로 말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려 보지만 달리는커녕 연신 방귀만 뀌어 댄다. 실제로 말이 달리면서 방귀를 뀐다는 사실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강물에서 더위를 식히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드넓은 초원을 혼자 달리게 되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초원 위를 질주해 보겠구나’ 하는 기대감에 ‘츄우’하고 큰소리를 지르고 마음은 조금 아프지만 채찍을 사정없이 휘둘러보았지만 역시 말은 또 말을 영 듣지를 않는다. 순간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넓은 초원에 혼자 남겨졌다. 말을 타다 잘못하면 크게 다칠 수 있다는 두려움보다는 넓은 초원 위에 길을 잃고 홀로 남겨졌다는 사실이 더욱 두려웠다. 앞서간 일행을 쫓아가 보려고 연신 채찍을 휘둘러보지만 말은 어디를 가려는지 뚜벅 뚜벅 엉뚱한 곳을 향해 걸어가기만 했다. 매번 멈추고 주위를 살펴 나의 위치를 확인해 보았지만 도통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앞뒤를 살펴보았지만 일행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순간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나침반도 없으며 이정표도 없으며 앞서간 이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누가 오기를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가? 아니면 말을 믿고 말이 가는대로 내버려두어야 하는가? 말은 어디를 갈려고 하는지 계속 움직이려 하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말은 집의 방향을 본능적으로 인식해서 가만히 놔두어도 집을 찾아간다고 한다.
뒤늦은 깨달음이지만 드넓은 초원은 인생이고 타고 있는 말은 나의 기질과 재능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인생의 목표가 없다는 것은 초원에서 갈 방향을 잃었다는 뜻이고 말과 호흡하지 못하고 따로 놀았다는 뜻은 자신의 기질과 재능을 살리지 못하고 지금껏 살아왔다는 뜻일 것이다. 말을 타면서 말과 따로 논다는 느낌처럼 이제껏 나의 기질과 재능과는 별개로 인생을 살아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사부님이 말을 탄 이야기를 들으면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사부님의 말은 어린 말로 달리려는 본능이 무척 강하다고 한다. 달리려는 본능이 강해서 자주 달렸고 어린 말이어서 끝에는 힘이 부쳐한다고 했다. ‘달리는 흰점박이’라고 이름까지 지어 주었다. 이미 말의 기질을 파악을 하고 애정을 쏟으며 말을 탔다. 이것이 차이점이다. 개인적으로 사부님과 나와의 차이점이며 기질을 알고 타는 것과 모르고 타는 것에 대한 차이점이 아닐까 한다. 이 점이 이번 여행의 주제이며 핵심이다.
이번 여행은 여러모로 뜻 깊고 의미 있는 여행이었지만 ‘나를 찾는 나의 여행’이어서 진정으로 행복한 여정이었다. 주위 사람들에게 몽골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하면 몽골은 숙식도 불편하고 볼 것도 없는데 뭐 하러 갔냐고 되묻는다.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그저 웃는다. 속으로 ‘니들이 몽골을 알어?’라고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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