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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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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27일 05시 13분 등록
입안 가득한 들깻잎 향기가 목젖을 타고 식도를 지나 몸 깊숙한 곳으로 내려간다. 몇 일 전에 마신 진토닉 한 잔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지금 환상의 세계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면 아마 대다수 사람들은 나의 표현 방법에 의구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분명 환상의 세계를 걷고 있다. 아직 씻지 않은 깻잎이 넉넉잡아 300장 정도는 족히 되니 내 몫을 80장으로 잡았을 때, 나는 적어도 대 여섯번은 환상열차는 더 탈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어제 내가 한 거래는 누가 판단해도 미친 것이나 다름없다. 시골 푸성귀 한 보따리에 100만원을 지불했다면 누가 믿겠는가? 속아도 단단히 속았던지 아니면 나의 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판단 장애를 가져왔던지 둘 중 하나일 게다. 그러나 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거래를 했다. 오히려 판매자가 푸성귀의 본래 가치를 읽어내고 거래 무효를 제기 할까봐 서울행 밤차를 타고 부랴부랴 상경을 했으니 물건의 가치에 대해서는 의심을 접어도 괜찮을 듯 싶다.그리고 좀 더 신빙성을 위해 덧붙이자면 다음 이야기도 필요할 듯 하다.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이 12시를 훌쩍 넘은 시각이라 할증이 적용된 택시 비용까지 합치면 들깻잎을 비롯한 푸성귀 한 장 값은 상상을 초월한다. 하지만 난 아직도 내가 판단한 제품의 가치는 평가절하 되어 있다고 믿는다.

시부모님이 살고 계신 곳의 행정상 주소는 울산광역시다. 그러나 지리적 주소는 산골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마을 앞뒤는 산으로 겹겹이 둘러 쌓여 있고 한낮에도 적막이 감돈다. 소울음 소리가 가끔은 마을이 깨여 있음을 상기시켜 주지만 마을은 고요속이다. 불가에서 말하는 하안거 동안거를 빌려 온다면 춘하추동 안거에 가깝다.
어제 시부모님을 뵙기로 작정하고 고속버스에 몸을 실은 것은 명분상이었다. 내심은 그 고요속에 묻여 있는 마을 속에서 잠시 유영하고 싶었던 갈망이 더 컸었다. 굳이 좀 더 솔직해 지라고 말한다면 경영자의 통찰적 눈으로 숨어있는 보물 찾기에 뛰어들고 싶음이었다. 마을은 짐작한 대로 깊은 침잠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마을 사람을 비롯한 온갖 것들의 움직임은 기도였고 묵상이었다. 홀로 계시는 시어머니는 내가 내려 간다는 연락을 받으시고 부추 부침을 해놓으셨다. 귀한 손님이 찾아올 때만 사용하는 튀김 가루도 넣으셨으니 나는 귀빈이었다. 실제는 튀김가루는 부엌근처에도 두지 않지만 오늘 만은 예외다. ‘꿀맛이다’라는 말로 표현을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앞마당에 위치한 우물물 앞으로 간다. 깊이를 가늠키 어려운 저 대지 깊숙한 곳의 기운을 담고 있는 물을 펴 올린다. 벌컥거리며 마시는 한사발의 냉수가 온몸을 적신다. 몸은 다시 생기를 찾고 기지개를 켠다.
대소쿠리 하나를 준비해서 뒷산 중턱을 오른다. 50년은 족히 될 법한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작은 언덕을 내려서면 밭이다. 내가 즐겨 사용하는 표현을 빌리면 ‘우리 밭.’ 소유를 강조하고자 함이 아니라 시어머님과 나, 그리고 우리 네 식구의 관계가 하나임을 각인 시키고자 함이다. 밭은 숲이었다. 꽉 들어찬 들깨들의 키는 나의 것을 훌쩍 넘어서고 향기는 마을을 유혹할까봐 겁이 날 정도였다. 마을이 파괴승 되기를 자처한다면 이는 분명 들깨 향기 책임이다. 뒤돌아 보지도 않고 들깨잎을 따기 시작했다. 나의 쉼없는 감탄사에 어머님은 함박웃음이시다. 들깻잎 향기 속에서 플라톤을 읽고 소크라테스를 찾아낸다. 대학원 과제의 해답을 발견하고 연구원 글쓰기 글감을 찾아낸다. 내일 새벽차로 귀경할 결정을 수정하고 어머님의 용돈이 30만원에서 단번에 일 백만으로 올라간다. 물론 어머님은 사양을 하신다. 아이들 학비도 많이 들텐데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머릿속에서 산술적 계산은 이미 끝났다. 전혀 밑지는 거래가 아니다. 오히려 순수한 시골 노인네를 속이고 덤핑으로 물건 가져가는 기분이다.
깻잎과 뒤늦게 딴 풋고추가 상할 까봐 떠날 준비를 서두른다. 계획된 일이있어서 얼른 올라가 보아야 겠다는 어설픈 핑계를 대고 막차에 오르는 것은 나의 정직성이 허락하지 않지만 슬쩍 눈감은 수밖에 없다. 부모자식간에 거래의 용어로 해석함에 미안한 감정은 며칠 후면 엷어지리라.

현대 기업경영에 있어서 비전은 나침반이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성을 결정하고 경영의 삿대를 저어감은 경영의 기본 원칙이다. 미래에 대한 통찰적 안목은 필수불가결의 요소이며 기업의 성패가 달린 절박함이다. 제품은 사람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하며 내가 중심이 아니라 고객이 최우선임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숨 고르기를 위한 서점가 나들이는 더 이상 산책의 즐거움이 아니다. 여유와 기쁨의 나들이가 나를 옥죄는 사슬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기업경영을 비롯한 경영서가 주요 코너를 자리잡고 있다. 내용들 역시 ‘어떻게 해보라’는 협박성이 다분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에게 펴먹이고 씹을 시간도 주기 않는다. 나도 덩달아 조급해 지고 열등감에 빠진다. 내일은 누가 또 무엇을 하라고 할것인가?
오늘은 용기를 냈다. 나도 명령해 보자. 이멜트 회장의 표현을 빌려 확실히 해 보자
Do it on my way.
기업은 이윤추구가 제일이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고객은 그들에게 이윤을 안겨다 줄 때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나는 그 최고의 자리를 과감하게 던지며 말한다. 기업은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읽어낼 때 진정한 기업인으로 태어나며 영원히 사는 길이다. 겉포장은 언젠가 뜯기어 나가기 마련이다. 고객을 일순간 유혹하려는 생각은 갖지 말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이윤을 읽어 내는 통찰력이 필요하다. 내가 좀 더 진솔해 지자면 ‘환경’이나 웰빙 등으로 포장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세계 최고의 경영자들, 발명가 등 인류의 문명 발전에 앞장서 준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것은 과연 무엇인가? 발전이라는 것이 어떤 행복을 가져다 주었는가. 그대들 모두 지금 행복한가! 핸드폰이 있고 에어컨이 있어서 황홀한가. 잠깐 멈추어 서 보라. 그리고 뒤돌아 보라.우리가 걸어온 길을 은근한 눈으로 바라보라. 그대가 지나온 자리에 하늘을 향해 마음껏 날개를 펴고 있는 들깨잎들의 나풀거림이 보이리라. 그것이 황금가지임을 아는데는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으리라 진정한 고객 만족의 길이 그 곳에 숨어 있음을 그대는 알게되리라. ‘이윤’이라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보라. 지금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윤만 이윤이 아니라는 것, 그 현명한 판단의 힘으로 판단해 보시라. 산도 웃고 사람도 웃고, 그리고 미래 세대까지 웃을 수 있는 그러한 이윤을 남겨보라. 이는 분명 가능하다.


IP *.86.17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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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07.08.27 09:30:04 *.233.202.214
우제 선생님! 그 귀한 깻잎과 풋고추, 저도 한 입 먹어보고싶군요.

그래요, 기업은,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읽어 내면 이윤은 절로 따라 오는 것이지요.

앞으로는 이런 기업인들이 많이 나오리라 믿어요.
소비자의 눈과 판단력이, 더욱 예리하고 현명해졌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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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8.27 12:16:45 *.75.15.205
몽골 뭉근머리트 태초의 땅 같은 광할한 초원지역에서 말을 타다가 테를지로 옮겨 근사한 양식건물이 들어선 건물을 보는 순간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과는 달리 왜 그리 싫어지던지요. 나중에 울란바토르로 와서는 호텔에서 잠을 잘 수 있고 번화한 도시에서 시원한 맥주를 마실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핸드폰 벨이 울리는 것을 보는 순간 정말이지 절망에 가깝도록 그 아득한 초원이 그리워졌어요. 나 초원으로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는 영화 박하사탕의 설경구 같은 주인공들이 아주 많았지요.

우제언니 그리고 희주언니 우리 그런 여행 또 가요. 다시 가요. 울산으로 갈까요? 어머니 품속은 많은 것이 있는 게 아니고 진솔함이 있었던가봐요. 우리 생명력을 이끄는 원초적 아름다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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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주
2007.08.27 13:09:21 *.233.202.214
드넓은 풀밭을 보면, 바로 뒹굴어보고싶어져요.
나도 어렸을 적엔 아주 개구쟁이과에 속했거든요.
위로는 골목 대장이었던 오빠, 바로 아래는 똘돌한 남동생. 하고보니 별 무서울 게 없었지요.
정월 대보름 무렵엔 언덕에 불을 피우러 다닐 정도였으니까요.
한데 지금은 여간 매력 없는 아줌씨or 할마시로 변해 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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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8.28 09:15:50 *.114.56.245
진솔함, 그리고 태초의 우리 모습이 오롯이 담겨있는 곳,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얼마나 행복한지요. 함께 느낄 수 있는 '우리'가 있다는 것. 어니도 보고 싶고 동생도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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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희 근
2007.08.29 14:37:45 *.186.7.118
샬롬!
울산 어디에 그런 멋진 곳이 있을까요?
우제님이 계시기에 그토록 아름답고 평화롭겠지요.
절대 손해본 장사 아닌것 확신합니다.
참 잘 하신것 같습니다.
사실 열심히 땀 흘려 농사지은 것을 단순히 엄마가, 오빠가, 시누가 지었다는 이유로 그저 먹는 얌체들도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정말 밑지는 거래를 하는거라고 정확히 판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많이 바쁘셨겠지만 전화를...
날짜를 보니 조모님 돌아가셔서 상중이었네요.
뵙고 싶었는데....
늘 정이 듬뿍 묻어나는 아름다운 글에 감동받고 있는것 아시죠?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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