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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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아들이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학원을 다니며 자격증 준비를 했다. 2월에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3월엔 실기시험을 봤다.
필기시험은 학원생 중 유일하게 자기만 합격했다고 한다. 대견했다. 그 많은 문제들을 혼자 풀어보고 공부했다. 그렇게 ‘열심’ 하는 모습이 언제였나 싶었다. 3월 실기시험을 보고 나서 지난 주 발표가 있었다. 아침에 학교를 가면서도 불안해했다. 시험을 보고 나서 안배운 게 나왔고 어려웠다고 했다.
두 시가 지나 카톡으로 불합격됐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많이 실망한 눈치였다. 이번에 합격하고 다음 달부터는 야자하면서 수능시험에 전력을 다할 계획이었다. 시험에 떨어져서 “개말렸어.”라며 짜증을 냈다. 다음 시험은 6월에 있다고 했다. 한번 실패한 거니 괜찮다. 다음엔 되겠지. 하며 위로했지만 위로가 되지 않았나보다. 전화가 왔다. “엄마, 인생 내 맘 같지 않아.”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웃음이 나는지... “그래, 이번에 됐으면 수능준비만 하면 되는데 맘이 편하지 않겠다.”며 다시 달래줬다. 결국 그날 기분을 풀어야 한다며 늦게 들어왔다.
며칠이 지났다. 저녁에 씻고 나와선 “나 인생 잘 산 것 같아.”한다. “뭔 소리야?” 했더니 “나 시험 떨어진 날 00이는 학원도 안 가고 나랑 같이 시간 보내줬고, 00이는 너라면 다음엔 꼭 될 거야. 라며 말해줬어. 이 정도면 나 잘 산거 아니야?” 한다. “그럼, 그렇지.”하며 맞장구를 쳐줬다. “나 원래 긍정적이잖아. 잘 될 거야.” 한다.
갑자기 그 순간 소년재판의 아버지라 불리는 천종호판사의 말이 생각났다. 10호 처분으로 소년원 2년을 보낸 아이들이 검정고시로 고졸학력도 취득도 하고 기술을 익혀 자격증도 딴다고 한다. 그리고 회사에 취직한다. 하지만 오래 다니지 못하고 그만둔다고 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다. 첫째, 격리된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둘째는 정서적 지지기반이 없다는 것이다. 즉,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질책도 받고 혼나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 보통은 부모에게, 친구에게 위안도 받고 같이 이야기를 하며 위기를 넘긴다. 그들은 우선 부모의 보살핌이 없다. 친구도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고비가 오면 그냥 그만둔다. 정서적 지지기반이 없다. 자격증과 기술이 있어도 경력이 쌓일 수 없다. 경력이 없으니 월급이 적다. 결국 쉽게 돈 버는 길로 간다.
그래서 격리 시설인 소년원이 아닌 그룹홈 형태의 유사가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부부가 십여 명의 아이들과 생활하는 형태다. 저녁을 같이 먹고 서로 정서적으로 교류하며 어른과 함께 생활하면서 사회성도 키우고 정서도 키우는 것이다. 이렇게 생활한 아이들은 원만히 사회생활에 적응도 잘 한단다. 결혼해서 가정을 이룬 청년도 있다고 한다.
아이들에겐 어른이 있어야 한다. 옆에서 말없이 지켜봐주고 격려해주는 언제나 내 편이 되어줄 어른이. 꼭 부모가 아니어도 된다. 노년에 청소년 회복센타 같은 기관에서 비행청소년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 어떨까 한다. 입양을 하려다 못했는데 이것이 또 다른 입양이 아닐까? 나의 노후 계획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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