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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16일 00시 39분 등록

[자유학년제 가족 독서 #01] 피터 히스토리아

 

큰 딸이 중학생이 되었습니다. 2018년부터 전국 중학교의 절반에 가까운 약 1500여 학교에서 1년간 자유학년제를 실시합니다. 자유학년제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1학년 성적이 고교입학성적에 반영되지 않아 시험 부담 없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꿈과 끼를 찾아 보는 시간이 곧 자유학년제의 취지입니다.

아내와 저는 올 초부터 자유학년제를 맞는 큰 딸과 함께 인문고전도서를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그동안 <신화의 힘>(조셉 캠벨), <신과 함께>(주호민), <구약성서, 마르지 않는 삶의 지혜>(구미정), <소크라테스의 변명, 진리를 위해 죽다>(안광복) 등의 책을 함께 읽고 주말 저녁시간을 이용해 가족토론을 벌렸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데로 토론내용을 한 꼭지씩 편지로 담아 보겠습니다. 오늘은 첫번째 정리로 <피터 히스토리아, 불멸의 소년과 떠나는 역사 시간 여행>(교육공동체 나다 글, 송동근 그림, 북인더갭)으로 가족토론한 이야기입니다.

피터히스토리아.jpg


<피터 히스토리아>2권으로 이루어진 역사만화입니다. 중학교 1학년 큰 딸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3학년 작은 딸도 즐겁게 읽었습니다. 몇 해 전 큰 딸이 학교 도서관에서 읽고 저에게 소개했습니다.

아빠! 이 책은 역사를 다루지만 철학과 문학이 녹아 있어요. 철학을 좋아하는 아빠와 문학을 좋아하는 엄마도 분명 좋아할 거여요.’라며 반짝이는 눈동자를 굴리던 큰 딸의 얼굴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그 동안 작은 딸은 당연히 읽었고 이제 가족토론을 앞두고 엄마도 지난 주에 완독했습니다. 작은 딸은 엄마의 독서 진도를 매일 매일 확인하며 엄마가 끝까지 읽도록 응원했습니다.

주인공 피터는 시간여행자 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부터 현대 이라크전쟁까지 피터는 13살 소년의 모습으로 기나긴 역사를 살아갑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니 피터 말고도 피에트로, 페트로스, 피에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즐겁거나 유쾌한 타임머신 이야기를 상상하시면 안됩니다. 피터는 고되고 힘든 싸움의 역사 현장 한복판에서 온몸으로 시대와 공감하고 끊임없이 질문합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는 인류 최초의 성문법이 생겨난 곳입니다. 이 법에는 노예제도를 통해 사람이 사람을 부려먹고 죽일 수도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피터는 다른 나라의 침략을 당해 노예로 잡혔다가 자유를 찾아 가까스로 도망칩니다. 도망친 피터는 마음이 괴롭습니다. 저들은 왜 우리 마을을 침략한 건지, 사람이 사람을 지배하는 게 당연한 건지, 신이 있다면 지배자들에게 더 가까운 존재인지 등등의 질문들이 끊이지 않고 마음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질문의 답을 찾아 세상을 여행하기로 마음먹습니다. 이렇게 하여 피터의 기나긴 역사 여행은 시작됩니다.

피터는 고대 그리스에서 지혜로운 노예 이솝(아이소포스)을 만납니다.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는 이스라엘에서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만납니다. 자메이카 섬에서 콜럼버스 일행에게 몰살당하는 아라와크 인디언을 만납니다. 이탈리아 피렌체 근처에서 지동설을 논증하는 갈릴레이의 책을 만납니다. 바스티유 감옥을 무너뜨리고 삼색기를 흔들며 루이16세를 사로잡는 프랑스 대혁명을 만납니다. 산업혁명기에 공장에서 방적기를 돌리는 올리버 트위스트를 만납니다. 폴란드에서 독일군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를 만납니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반전시위를 펼칩니다.

 

가족토론을 시작하면서 식탁에 둘러 앉았습니다. 식탁 가운데는 촛불을 2개 켰습니다.

아빠) 책을 선정한 큰 딸 수민이에게 묻겠습니다. 이 책의 어떤 점이 재미있었는지요?

수민)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 교과서는 큰 사건만을 알려 해줍니다. 그러나 이 책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고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세상에 알려진 사건 뒤로 감춰졌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아빠) 이번에는 수린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이야기를 해주십시오.

수린) 히스토리아(History)는 남자들의(His) 이야기(Story)라는 뜻이라면서요? 아주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수민) 히스토리아(History)라는 말 대신 남녀 모두의 이야기라는 의미가 담긴 휴스토리(Huestory)라고 하면 좋겠습니다.

수린) 2158쪽부터 메어리라는 여자 주인공이 역사시간에 선생님에게 대항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부분을 읽어보겠습니다. (수린이는 메어리, 수민이는 역사선생님의 대사를 소리 내어 읽었고 이내 두 딸 모두 주먹을 움켜쥐며 헐크로 변해 갔다)

  • 메어리) 왜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온통 남자들뿐인 거죠? 역사는 남자들이 주인공인 기나긴 이야기 같아요. 알렉산더, 시저, 콜롬버스, 나폴레옹…… 역사는 마치 남자들의 전쟁놀이 같아요. 그 긴 세월 동안 여자들은 대체 뭘 한 거죠? 여자들의 이야기는 어디 있나요? 
  • 역사선생) 뭘 그리 대단치도 않은 문제로 소리까지 지르고 그러나, 헤일스 양.
  • 메어리) 대단치도 않다니요. 이 세상 절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데도요?
  • 역사선생) 남자들의 전쟁놀이라…… 재밌는 얘기군. 하지만 전쟁이 비극적이긴 해도 여러 집단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투는 것은 당연한 거야. 그 싸움의 중심에 남자들이 있었다는 것도 당연한 거고…… 왜냐하면그건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부분에 대해 잠깐 설명을 하면 인종차별과 남성우월주의가 득세하던 1960년대 미국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지배자는 우월하고 피지배자는 열등하다는 그때 당시의 주류 가치관을 보여주는 에피소드입니다)

아빠) ~ 두 따님들은 잠시 분노를 가라앉히겠습니다. 이번에는 엄마 차례 입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이 무엇이었는지요?

엄마) 이 책을 읽으며 저는 두 딸들에게 지금 이 시대의 참혹한 모습도 숨기지 말고 이야기도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실 끔찍하거나 참혹한 뉴스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거나 설명해 주고 싶지 않습니다. 최근에 수민이가 최저임금이 얼마나 되냐고 물었습니다. 시간당 7천원 정도 한다고 설명해 주었죠. (2018년 현재 시간당 최저임금은 7,530원 입니다) 그랬더니 수민이가 그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순간 당황했습니다. 있는 그대로 설명해주는게 맞는지 말입니다. 그 때 책에서 읽은 장면들이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갔습니다. 산업혁명 당시 방직공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어린이들 이야기, 이전에 읽었던 만화 태일이 (전태일의 삶을 최호철 만화가가 그린 작품)도 모두 두 딸과 함께 읽었는데 지금 이시대 최저임금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최저시급을 받는 노동자는 월 100만원을 받아 가기 사실상 어렵습니다. 또한 월 100만원으로는 일상생활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도 설명해 주었습니다. 다시 말해 참혹한 현실도 아이들에게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 책에서 배웠습니다.

아빠) 저는 이 책에서 13살 피터가 또다른 모습의 피터를 만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또다른 모습의 피터는 나이가 아주 많이 든 할아버지의 모습입니다. 할아버지 피터는 수많은 역사 여행을 통해 역사에서 자신을 자유롭게 놓아주려고 세상을 등지고 살기로 마음먹고 세상을 피해 외딴 동굴에서 홀로 생활합니다. 그러나 13살 피터는 할아버지 피터의 삶의 방식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13살 피터는 세상속으로 돌아갑니다. 세상속에 살아있는 수많은 나를 만나기 위해서 말입니다.

엄마) 최근 신문에서 어느 세월호 생존자분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세월호 사건에서 살아남았지만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었기에 트라우마로 고통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세월호 생존자들의 모임을 만들고 매년 세월호를 기억하는 활동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그동안은 잊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제는 세월호 사건을 자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죽는 날까지 함께 하겠다는 결심으로 읽혀졌습니다. 바로 이런 결심이 두 모습의 피터 중에서 13살 피터의 모습이 아닐까 합니다.

수민) 해외여행을 하면 마음이 편해지지만 한국에 있으면 마음이 불편해지는 이유를 알았어요. 해외여행을 하는 사람은 그 지역이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오지 삶의 터전으로 다가오지는 않아요. 잠시 머물렀다 떠날 곳일 뿐이에요. 그러니 마음이 편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나 자신이 발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곳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생존의 어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어요. 우리가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오면 다시 마음이 불편해지게 너무나 당연해요.

아빠) 오늘 역사 토론을 정리해보겠습니다. 역사를 읽는다는 것은 그 시간과 장소에서 나를 찾는 일이다. 역사의 현장에서 그들이 곧 나라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이렇게 정리하는데 동의하시는지요?

수린, 수민, 엄마) 동의합니다. (전원 박수)

아빠) 마무리 하면서 돌아가면서 이 질문에 대답을 부탁드립니다. 역사의 현장으로 가본다면 어느 장면으로 가보고 싶으신지요? 책에 나온 장면이어도 좋고 다른 역사의 순간이어도 좋습니다.

수린) 예수님 만나보고 싶어요.

수민) 1970년으로 가서 태일이를 만나보고 싶어요.

엄마) 마음에 드는 역사의 순간이 하나도 없어요.

아빠) 에덴동산으로 가서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 먹지 못하게 하고 싶어요.

엄마) 그러고 보니 히피들의 마을에서 머리에 꽃을 꼽고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빠) 그러면 아빠도 엄마 만나러 히피들 마을로 가겠어요.

수민, 수린) (온 몸을 비틀며) ! 아빠!

 

이상으로 정리를 마치겠습니다. 정리한 내용 이외에도 가족 모두 고대 그리스의 이솝(아이소포스) 이 가장 매력적이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목숨보다 소중한 자유를 지키기 위해 다시 노예로 사느니 차라리 절벽으로 뛰어내리는 이솝이기 때문입니다.

책 선정 순서도 정했습니다. 그동안은 주로 엄마가 책을 골랐는데 이제부터는 온 가족 돌아가면서 책을 선정하기로 했고 다음 책은 수린이가 선정하기로 했습니다.

이상으로 파주 인문학 가족의 자유학기제 독서토론 첫번째 정리를 마치겠습니다. 시간이 허락하는 데로 가족토론 내용을 꾸준하게 정리해 보내드리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형선 드림 (morningstar.yoo@gmail.com)

IP *.202.11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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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6 12:45:02 *.130.115.78

자유학년제 가족독서! 완전 멋진걸요.


저희집에도 자유학년제 맞는 중딩 한분 계신데..


우리 조만간 조인트 가족독서회 한번 열어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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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16:18:06 *.191.189.181

댓글 감사합니다. 중학교 자녀 두셨군요. 


사실 조인트 가족독서회는 현실상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두 딸 모두 주말마다 자기만의 일정이 있어서

온 가족 함께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일요일 저녁시간만 가능하더라고요.

그래도 변경연에 비슷한 고민 하는 분이 계시니 왠지 마음이 편해집니다.

어쨌거나 가족독서 정리를 계속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고민 있으시다면 함께 나누면 더욱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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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08:49:18 *.111.12.225

자유학기제를 참으로 알차게 보내시고 계시네요.

작년이 저희집 큰딸 자유학기제였는데 저는 그렇게 못 해줘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좋은 기회의 일년이었는데,,ㅠ ㅠ

그렇지만 오늘 선생님이 올려주신 글 보고 저도 하나하나씩 실천해야 할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같이 있어주고 이야기해주고 맛난것 만들어주는것 정도만 했었는데,

함께 하는 독서를 어떻게 진행할지 고민해봐야 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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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17 16:20:27 *.191.189.181

책 선정하고 일정 만들어내기까지 한 참 걸렸습니다.

그리고 막상 스케줄 정해도 이야기를 어떻게 나누는게 맞는지 역시 쉽지 않습니다

자칫하면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또하나의 강의장이 되기 십상이더라고요.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는 말 요즘 또한번 경험했습니다. 일단 시작하시면 저절로 방향은 찾아가게 됩니다.

빠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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