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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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해드리건대, 당신이 배운 것을 끊임없이 실천함으로써 성장을 계속하십시오.
훗날 당신이 이 시간을 당신의 경력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으로 회고하게……”
그가 말을 잇지 못하고 힘겹게 얼굴을 일그러뜨립니다.
걸쭉한 부산 사투리와 거침없고 당당한 표정, 훤칠한 키와 우람한 체격의 그는 누가 보아도 전형적인 부산 싸나이입니다. 그런 그가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강의장 앞쪽에는 열두명의 수강생들이 앉아 있습니다. 뒤에는 카네기의 강사 후보생들이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때로 속으로 뜨겁게 울며 서 있습니다. 느닷없이 연출된 상황에 어느새 저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모두가 힘들었습니다. 우리 모두 대견합니다.
지난 2년을 이 순간을 위해 준비했습니다. 결코 순탄치 않은 과정이었지요. 오늘은 두달간의 강사과정이 마무리되는, 우리의 첫 수강생이 수료를 하는 시간입니다. 마지막 글, '창립자의 맺음말' 을 읽는 순간 가슴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내리누릅니다. 그가 울리고, 강사들은 울고, 수강생은 영문을 모른채 당황하면서도 왠지 모를 눈물이 고입니다.
모두가 빛나는 순간입니다.

그대들이 여행을 떠나고 홀로 남겨진 곳에서, 저는 다른 이들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속에는 쉰이 넘은 골프장 사장님도 있었고, 서른을 갓 넘긴 신문 기자 출신의 카네기의 직원도 있었습니다. 대구의 한 병원에서 CS 팀을 이끄는 여성 팀장도 있었습니다. 그래요. 이 여성이 짧은 여행 내내 제 눈에 띄었습니다.
앳되어 보이는 그녀는 이제 갓 스물 일곱입니다. 한창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쇼핑을 하고, 사랑을 하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실 나이에 그녀는 치열하게 살고 있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큰 병원의 고객만족팀 팀장입니다. 나이 많은 열명 남짓의 팀원들을 교육하는 것이 그녀의 업무입니다. 그녀는 열성을 다해 가르쳤고 결과로 그 병원의 고객만족 사례는 대구 시내 모든 병원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었습니다. 덕분에 그녀는 신문에 칼럼을 내고, 기업체에서 특강을 하는 명강사가 되었습니다. 참 대단한 사람입니다.
허나 저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그녀의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힘들어했던 카네기 강사과정동안 그녀는 사람들을 엮어주는 튼튼한 다리가 되었습니다. 어려운 사람은 발벗고 나서서 챙기고, 잘하는 사람은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습니다. 두달동안 그녀의 얼굴을 찌푸리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늘 환한 미소가 눈과 입에 머금어져 있었지요. 저를 감동시킨 것은 그녀의 따스한 배려였습니다.
처음에는 CS강사 출신들의 못말리는 직업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부담스럽게 환환 미소와 지나친 친절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그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수료하는 날에 수강생들 개개인에게 아주 재미있고 통찰력있는 문구로 가득한 상장을 만들었습니다. 예쁜 액자에 담아 한사람 한사람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힘든 과정을 마쳤지만 그 흔한 수료증 하나 없는 우리를 위한 그녀의 특별한 배려입니다.

저의 상장에는 ‘바늘과 골무상’이라고 적혀 있군요. 바늘처럼 날카로운 통찰력과 골무처럼 포근히 안아주는 따뜻함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랍니다. 언제나 제가 듣고 싶어했던 말이었습니다. 이 한마디의 말이 또한 제 인생을 바꾸겠군요.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녀를 몰래 관찰하며 저는 묘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오해는 마세요. 연애 감정은 아니에요. 다만 그 기분이 어떤 것인지 묘사하기 어렵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매 순간에 만나는 누구에게나 충실하려는 그녀의 삶의 태도가 제 모습을 돌아보게 했고, 그래서 부끄러웠습니다. 다른 강사 후보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에 대한 부러움도 있었고, 저보다 나이 어린 친구의 훌륭한 모습에 대한 질투와 시기도 있었을 것입니다.
질투. 참 오랜만에 느끼는 감정입니다. ‘나이 어린 친구가 대견하다’는 말은 늘 제가 듣던 평이었지요. 달콤한 말들은 제가 확신있게 앞으로 달려나가는데 큰 힘이 되었지요. 그러나 제 그릇의 부족함 때문에 저는 우쭐해졌고, 그것이 주변 사람을 둘러보는 여유를 잃어버리게 했나봅니다. 어느새 저는 ‘저를 좀 보세요, 저 참 잘하죠?’ 라고 스스로를 뽐내는데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습니다.
안철수님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 것이 많은 지를 절감하게 된다. 세상에는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얼마나 많고,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살고 있으며, 또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변하는지를 느끼게 된다’
이 말을 깊이 이해하겠습니다.
그녀를 만나 참 다행입니다. 다시금 새로운 마음이 싹텄으니까요. 사람을 순수하게 사랑하며 사는 애틋한 마음입니다. 그것은 건강한 질투심이고, 행복한 부끄러움입니다. 감사함과 감탄에 겨워 눈을 감습니다. 이번에도 하느님은 최선의 시기에 최적의 사람을 이끌어 주었습니다. 여행에서의 뜻하지 않은 한 만남이 제가 잃어버린 소중한 마음 하나를 찾게 해 주었습니다.
‘사람을 그리워하며 살겠습니다. 반갑게 인사하고, 관심있게 물어봐주며, 들어주고 맞장구를 쳐 주며, 솔직한 칭찬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무엇보다 함께 성장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기꺼이 하겠습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몽고에 있던 그대들이 그리워졌습니다. 함박 웃음을 지으며 아이처럼 초롱한 눈으로 초원을 달리는 그대들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밤하늘 별에게 친근히 속삭이다가 재잘거리며 잠이 드는 그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천천히 그리고 힘차게 약동하는 해의 아침 숨결이 내 소중한 친구들을 포근히 간지럽히는 상상도 해 봅니다.
순수한 영혼들이 한데 섞여 빛나는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을 생각하니 살짝 배가 아팠지만 기분이 아주 좋았습니다. 그 어울림 속에 제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속상했지만 이미 저는 그 가장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대들이 다시 같은 하늘 아래 있어 든든합니다. 감사한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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