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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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스민 문학] 통증의 미학 |
밤이 되면 그 친구는 나타납니다. 낮에는 어디엔가 숨어 있다가 호시탐탐 나설 기회를 보는 것이지요. 밤이 되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신기한 친구. 그의 이름은 ‘통증’입니다. 처음에는 감기 증세로 나타나더니 등 주위에 어스름한 기포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취제 없는 연약한 등짝에 바늘을 꽂아놓고 마구 휘갈기는 것 같은 아픔. 그런데 희한한 것은 낮에는 그 친구의 모습을 전혀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증상이 전혀 없는 것이죠. 밤이 오는 것이 두렵습니다. 으슥- 으슥- 하는 감각이 등 뒤에서 신호를 보내면, 싸악- 싸악- 하는 감각들이 기포 모양의 상처 주위로 모여듭니다.
제약회사를 운영하던 시절, 저는 이 증상을 치료하는 약들을 판매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판매하던 약들은 대부분이 복제약이었기 때문에 영업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했습니다. 이 약을 복용했을 때의 증상과는 상관없이 그저 보험수가가 얼마로 책정이 되었는지, 환자가 이 약을 복용하고 재진료를 하게 될 시간은 얼마나 걸릴지를 치밀하게 계산했습니다. 그러나 막상 제가 그 판매의 대상자인 환자의 입장이 되고나니 약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증상에 충실해야 한다는, 본질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보험수가가 얼마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약을 복용했을 때 환자들에게 얼마만큼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지를, 약 이외에도 빨리 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떠한 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더 고민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밤이면 피어나는 통증으로 인해 미리 잡았던 몇 몇의 약속들은 지키지 못했음에도, 이 병을 앓아 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은 따뜻한 말씀으로 저를 위로해주셨습니다. 처음에 감기 증세로 병원에 찾아갔을 때, 원장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 증상은 대부분 스트레스가 원인입니다. 일종의 마음의 병입니다.”
기업회생으로 삶의 극단을 경험했다고 생각했던 때도 이 병을 앓지 않았던 제게, 새로 들어온 조직의 개편으로 인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삶의 고통을 조용히, 그리고 부드럽게 수용해야겠습니다. 조용함을 거부하고 하얗게 밤을 지새게 만드는 고약한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더라도, 낮에는 더 열심히 웃고, 더 땀 흘리며 팔 걷어붙이고 기운 펄펄 나게 일해야겠습니다. 마치 밤에 언제 아팠냐는 듯이 말이지요. 그럼 또 모르죠. 정말 감쪽같이 통증이라는 친구가 어디론가 사라져버릴지도요.
하루쯤 앓게 되면
육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한 열흘쯤 앓게 되면
목숨의 존귀함을 깨닫게 되고
한 달포쯤 앓게 되면
이 세상 삼라만상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깨닫게 된다.
앓아 본 적이 없는 자여,
어찌 삶의 깊은 맛을 짐작할 수 있으리
- 병력(病歷) 전문, 임보 (1940-)
정재엽 (j.chung@hanmail.net)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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