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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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예단에서 전화 상담을 작년 11월에 시작했으니 이제 6개월에 접어들었다. 11월엔 학기말이라는 시기여서 졸업을 앞두고 전학처분을 받고 황망해하는 어머니부터, 얼마 남지 않은 기간에 학폭위를 겪으며 학교에 교사도 없는 상황에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하다는 부모님까지 시기적인 특징을 볼 수 있었다.
방학 동안은 이렇게 상담전화가 없다면 정말 좋겠다. 그만큼 사건이 없는 것일 테니까. 신학기인 3월은 처음이고 서로에 대해 잘 모르니 간보는 시기다. 4월이 되니 상담이 많아진다. 학교 적응을 어려워하는 아이,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 아이들과 어울리다 받는 상처들. 학기 초라 학교나 교사의 반응도 ‘좀 더 지내보자’ 도 있다. 이런 교사의 반응에 아이도 부모도 답답하고 화까지 나타낸다. 교사의 안일함에 대해서, 혹은 우리 아이는 힘든데 몰라주니 믿음이 가지 않는다.
나는 말한다. “괴롭히는 아이들은 그냥 둔다고 나아지지 않아요. 저절로 사이가 좋아지는 것을 바라는 건 관계가 좋을 때죠. 지금처럼 힘의 우위에 의해 괴롭힘이 작용할 때 교사와 어른의 개입이 필요해요. 그러니 교사에게 내 아이의 고통을 제대로 이야기하고 그동안에 있었던 일들을 육하원칙에 의해 작성해두세요. 한두 번의 일로 그치지 않았다는 것도 인식할 수 있도록이요.” 많은 부모님이 내 아이가 피해를 입었어도 학폭위까지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학폭위 처분은 그저 처분일 뿐이다. 상대 아이가 처분을 받는다고 해서 내 아이의 고통이 없어지거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럴 때 해보길 권하는 것이 있다. 그냥 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점점 더 심해지는 것을 알기에 교사가 말로만 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래서 상대 부모에게 각서를 받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일이 한 번 더 있을 경우 학폭위를 개최한다.’는 내용으로 교사가 상대부모에게 받아두면 아이도 경각심을 갖게 되고 부모도 갑자기 가해자로 학폭위에 불려가는 당혹스러움을 겪지 않을 수 있다. 물론 긴급하거나 심각한 사안은 이렇게 할 수 없다.
전화 내담자인 부모에게 권하면 오히려 학폭위보다 좋다고 반가워한다. 이렇게 한 번 경고장처럼 예지를 할 수 있기에 다음에 학폭위를 열 때도 덜 힘들고, 무엇보다 학폭위를 열지 않아도 된다면 더 좋은 것이다.
6개월을 상담을 해보니 다양한 분들이 전화를 한다. 상담교사, 학폭위 전담교사에서부터 피해자, 가해자 어머니, 아버지까지. 울먹이며 전화하시는 분에서부터 화가 나서 전화하시는 분까지. 우리는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이다. 중간 중간 사실 관계만 확인하며 듣다가 꼭 물어본다. “우리 아이는 지금 어떤가요? 우리 아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물으면 아이가 바라는 것을 모르는 부모들도 있다. 아이보다 부모의 마음에 더 치중한 경우다. 그럴 땐 꼭 힘든 아이에게 힘이 되 줄 것과 아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라고 한다. 반면 힘들어하는 아이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처음엔 주저하며 말하지 않았던 것들을 이야기한다.
몇 십 분을 통화하면서 부모님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판단을 하게 된다. 특히 내 아이를 위해 내가 힘을 내야하고 버텨야하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아이의 잘못에 대해 학폭위 처분을 과하게 받았는데 집에서 아버지는 매일 반성문을 1페이지씩 쓰게 했다고 한다. 분명 아버지는 자녀의 억울함을 알고 안타까워하고 있었음에도. 그래서 지금 저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자녀에게도 말해주라고 했다. 반성문은 그만 쓰게 하라고 아이의 힘든 마음을 표현해주라고 했다. 사실 그 상담은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 상담이었는데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게 되어 너무 도움이 되었다며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상담을 끝냈다.
학폭위 경험자인 나는 잘 안다. 아이들 못지않게 부모도 위안 받고 싶어 한다는 것을. 누군가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한결 마음이 안정된다. 앞으로 힘들 때 전화하면 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면서 든든함도 느낄 것이다. 내가 특별히 상담을 잘 해서가 아니다. 상담의 기본이 들어주기라는 걸 이론으로 배웠지만 실제로 해보니 기본이 아니라 핵심이다. 내담자에게 힘을 실어주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까지 나아간다면 더할 나위없다.
이상 초보 상담가의 경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