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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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이라는 것을 치르고 방금 돌아왔습니다.
뉴질랜드 출신 신인 여류감독 제인 캠피온의 칸느영화제 수상작‘피아노’의 음악을 들으면서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가져봅니다. 7월에 이어 8월 한달 동안 소진된 심신이 쉽게 회복될 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반복적인 리듬이 황량한 미개척지의 뉴질랜드를 연상케 해주네요.
고사장인 인근 중학교 운동장은 차량과 학부모들로 발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대입 고사장 같았지요. 학교 정문앞에는 어학원에서 나온 홍보 요원들로 분주했고 커피 파는 아주머니도 번잡함에 한몫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분하게 시험 잘 치고 나오라는 부모들의 당부들이 이어지고 입실이 시작되었습니다. 감독관이 앞에 서고 저는 제 수험번호가 있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왠지 자리가 뒤바뀐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탁자앞에 서야 할 것 같았지요. 앞 뒤를 보아도 자녀 또래의 학생들 뿐이었습니다.그러나 두리번 거리고 한가이 분위기를 즐길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듣기 평가는 집중을 요했습니다.생각 여행을 자주하는 저에게는 단연 취약한 부분이었지요. 짧은 단문듣기는 단 1초만 놓쳐도 답을 찾기 어렵습니다.단서는 이삼초 안에 실려 있기때문입니다. 장문듣기는 오히려 수월합니다. 두 번 들려주기도 하거니와 유추의 여지도 있으니까요.
2시간 몇 십 분 동안의 시험을 마치고 운동장을 나오니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왠지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리고 싶어서 고개를 푹숙이고 뛰어보았습니다. 자유로와졌습니다. 내 점수가 어떻게 되었던 크게 염려할 바도 못되었거니와 구속뒤에 오는 그 홀가분함은 짜릿한 것이니까요.
8월의 습기품은 날씨에 아파트의 맨 위층에서의 생활은 인내심 시험장 같은 곳입니다.
에어컨 두 대가 거실과 방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식용에 불가한 것입니다.적어도 우리가족에게는 말이지요. 땀이 번벅되어 책상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안스러워 몇 해 전에 설치한 것이지만 그들은 좀 체 켜지를 않습니다. 에어컨 한대가 선풍기 몇 대 분량의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을 그들은 잘 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더위가 가슴팍까지 차오르면 차라리 은행 심부름을 하겠다네요.
지난 여름 8월 한달은 저도 땀 속에 젖어 있었습니다. 영어 공부라는 것을 대입수험생처럼 했었지요. 내 몸 속에 그렇게 많은 땀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땀은 물 흐르듯 흘렸고 시작은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30분을 넘어서면 그 고통은 짜릿한 기쁨으로 변했지요. 몸과 습기는 하나가 되고 머리는 청명해졌습니다.
공부는 재미를 넘어선 넘치는 희열이었습니다. 문장은 통째로 전두엽에 박히고 숨어 있던 단어는 부르면 ‘네’하고 달려 나왔더랬습니다.하루에도 한권의 책을 쉽게 소화해 내는 큰 딸 아이의 유쾌한 농담도 기쁨을 더했습니다.
“ 맘, 잘되가유? 힘 내슈”
그렇습니다. 힘이났습니다. 저녁 때 상가에서 찬거리를 살 때도 우리말보다 영어가 앞섰습니다. 더위가 뒷걸음 친 것과는 달리 그들이 앞장선 셈이지요.
束帶發狂欲大叫
두보가 화주(華州)에 부임한 직후인 양력 8월 15일경에 쓴 글이니 내가 책상머리에 서너 시간을 앉아 있었던 시기와 비슷하겠네요. 물론 나야 속대(束帶)는 아니하였기에 차이는 있겠지만 짐작하건데 속대 후 반시간을 넘기지 못한 상태에서 이 시를 쓰지 않았나 하는 짐작을 해 봄직합니다. 속대가 얼마만큼의 구속력이 있는지가 변수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사냐. 단순하게 살아라.즐기면서 살아”
지인들과의 만남이 있을 때 자주 듣는 말입니다. 사서 고생한다는 뜻일겝니다.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할 일도 아닌데 괜한 일에 빠져 있는 저가 한심도 할 터이지요. 사실 저도 얼마전 에는 아주 단순하게 살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니까요.일탈이 진하게 그리웠습니다.
속대(束帶)를 벗어 던지고 훨훨 날고 싶었습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웃고 싶을때 목젖이 보이도록 웃으며 자고 싶을 때 자고 싶었습니다.누가 뭐라고 하든 타인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유로와 지고 싶었습니다.오직 내가 나의 중심이 되고 싶었지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아는 이 아무도 없는 고장을 향해 달리는 기차였습니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괜한 객기도 부려보고 싶었습니다. 노래도 흥얼거려보고 옆자리에 앉은 낯선 이들에게도 말을 걸었습니다.즐겁고 유쾌해졌으며 자유로워졌습니다.내가 원하는 기차역에서 내렸으며 걷고 싶으면 걸었고 주저앉고 싶으면 앉아서 쉬었습니다. 프르른 들판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진 평야의 한없음에 울적한 마음이 되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저물며서 생각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하더군요. 뭔가 그리웠습니다. 누군가 그립고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함께 웃는 웃음이 그리웠고 땀흘리며 공부라는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맛있게 먹어주는 가족을 위해 저녁상을 차리고 싶었고 깨어있는 새벽이 그리웠습니다. 돌아오는 막차에 뛰어올랐습니다. 저물어 가는 저녁 들판이 한없는 푸근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삶은 결국 긴 호흡과 영혼으로 승부하는것임을 안철수는 말했습니다. 그가 나와 비슷한 시대를 걸어왔기에 그가 던지는 말은 나에게 더 깊숙이 다가옵니다.치열함 속에 냉철함이 있었고 대중 속에서 함께 숨쉴 때, 오롯이 그 혼자만의 그가 되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자지 않고 깨어 있을 때 그는 한가함 속에 있었고 전력 질주 하여야 할 때 그는 멈추어 설 줄 알았습니다. 나이가 철들게 하는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면 한심하지요.그러나 한심하게도 그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안철수를 통해서 말입니다.
혹시나 안철수 그가 내가 다니던 이웃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봅니다. 그 때는 모두가 같아 보였습니다. 물론 복장에서도 그랬지만 남자 고등학생들이란 모두 그저 그렇게 보였습니다.생각의 바구니는 우리들 것보다 작고 내용물들은 빈약하며 유치하다는 결론이었지요. 미안한 생각입니다.나의 그릇이 아직 그 때의 것에 머물고 있다면 그 남학생들이란 사람들은 그동안 깨어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안철수도 그렇게 깨어 있기를 지속한 그 옛날의 남학생 중의 한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는 작은 그릇, 빈약한 내용물을 지닌 그 옛날의 대청동이나 남포동을 오가던 남학생에 머물기를 거부한 사람이 분명합니다. 내가 다른이 보다 일찍 깨어 있었다는 그 자부심에 빠져있을 때 그는 쉼없이 새벽을 깨웠을 것이 분명합니다.
영화속의 에이다는 아직도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베인즈가 만들어 준 철로된 손가락으로 연주하는것인지 알 수 없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쉼없이 연주하고 있다는것만은 사실입니다. 감미로움은 전율로 다가옵니다.
IP *.86.177.103
뉴질랜드 출신 신인 여류감독 제인 캠피온의 칸느영화제 수상작‘피아노’의 음악을 들으면서 잠시 마음의 여유를 가져봅니다. 7월에 이어 8월 한달 동안 소진된 심신이 쉽게 회복될 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 반복적인 리듬이 황량한 미개척지의 뉴질랜드를 연상케 해주네요.
고사장인 인근 중학교 운동장은 차량과 학부모들로 발디딜 틈도 없었습니다. 대입 고사장 같았지요. 학교 정문앞에는 어학원에서 나온 홍보 요원들로 분주했고 커피 파는 아주머니도 번잡함에 한몫을 하고 있었습니다. 차분하게 시험 잘 치고 나오라는 부모들의 당부들이 이어지고 입실이 시작되었습니다. 감독관이 앞에 서고 저는 제 수험번호가 있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왠지 자리가 뒤바뀐 느낌이었습니다. 제가 탁자앞에 서야 할 것 같았지요. 앞 뒤를 보아도 자녀 또래의 학생들 뿐이었습니다.그러나 두리번 거리고 한가이 분위기를 즐길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듣기 평가는 집중을 요했습니다.생각 여행을 자주하는 저에게는 단연 취약한 부분이었지요. 짧은 단문듣기는 단 1초만 놓쳐도 답을 찾기 어렵습니다.단서는 이삼초 안에 실려 있기때문입니다. 장문듣기는 오히려 수월합니다. 두 번 들려주기도 하거니와 유추의 여지도 있으니까요.
2시간 몇 십 분 동안의 시험을 마치고 운동장을 나오니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왠지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리고 싶어서 고개를 푹숙이고 뛰어보았습니다. 자유로와졌습니다. 내 점수가 어떻게 되었던 크게 염려할 바도 못되었거니와 구속뒤에 오는 그 홀가분함은 짜릿한 것이니까요.
8월의 습기품은 날씨에 아파트의 맨 위층에서의 생활은 인내심 시험장 같은 곳입니다.
에어컨 두 대가 거실과 방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장식용에 불가한 것입니다.적어도 우리가족에게는 말이지요. 땀이 번벅되어 책상앞에 앉아있는 아이들이 안스러워 몇 해 전에 설치한 것이지만 그들은 좀 체 켜지를 않습니다. 에어컨 한대가 선풍기 몇 대 분량의 에너지를 소비한다는 것을 그들은 잘 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더위가 가슴팍까지 차오르면 차라리 은행 심부름을 하겠다네요.
지난 여름 8월 한달은 저도 땀 속에 젖어 있었습니다. 영어 공부라는 것을 대입수험생처럼 했었지요. 내 몸 속에 그렇게 많은 땀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땀은 물 흐르듯 흘렸고 시작은 고통이었습니다. 그러나 30분을 넘어서면 그 고통은 짜릿한 기쁨으로 변했지요. 몸과 습기는 하나가 되고 머리는 청명해졌습니다.
공부는 재미를 넘어선 넘치는 희열이었습니다. 문장은 통째로 전두엽에 박히고 숨어 있던 단어는 부르면 ‘네’하고 달려 나왔더랬습니다.하루에도 한권의 책을 쉽게 소화해 내는 큰 딸 아이의 유쾌한 농담도 기쁨을 더했습니다.
“ 맘, 잘되가유? 힘 내슈”
그렇습니다. 힘이났습니다. 저녁 때 상가에서 찬거리를 살 때도 우리말보다 영어가 앞섰습니다. 더위가 뒷걸음 친 것과는 달리 그들이 앞장선 셈이지요.
束帶發狂欲大叫
두보가 화주(華州)에 부임한 직후인 양력 8월 15일경에 쓴 글이니 내가 책상머리에 서너 시간을 앉아 있었던 시기와 비슷하겠네요. 물론 나야 속대(束帶)는 아니하였기에 차이는 있겠지만 짐작하건데 속대 후 반시간을 넘기지 못한 상태에서 이 시를 쓰지 않았나 하는 짐작을 해 봄직합니다. 속대가 얼마만큼의 구속력이 있는지가 변수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사냐. 단순하게 살아라.즐기면서 살아”
지인들과의 만남이 있을 때 자주 듣는 말입니다. 사서 고생한다는 뜻일겝니다. 하지 않아도 누가 뭐라할 일도 아닌데 괜한 일에 빠져 있는 저가 한심도 할 터이지요. 사실 저도 얼마전 에는 아주 단순하게 살고 싶은 충동을 느꼈으니까요.일탈이 진하게 그리웠습니다.
속대(束帶)를 벗어 던지고 훨훨 날고 싶었습니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웃고 싶을때 목젖이 보이도록 웃으며 자고 싶을 때 자고 싶었습니다.누가 뭐라고 하든 타인에게 누를 끼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자유로와 지고 싶었습니다.오직 내가 나의 중심이 되고 싶었지요.
기차에 몸을 실었습니다.아는 이 아무도 없는 고장을 향해 달리는 기차였습니다.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고 괜한 객기도 부려보고 싶었습니다. 노래도 흥얼거려보고 옆자리에 앉은 낯선 이들에게도 말을 걸었습니다.즐겁고 유쾌해졌으며 자유로워졌습니다.내가 원하는 기차역에서 내렸으며 걷고 싶으면 걸었고 주저앉고 싶으면 앉아서 쉬었습니다. 프르른 들판을 카메라에 담기도 하고 끝없이 펼쳐진 평야의 한없음에 울적한 마음이 되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저물며서 생각이 서서히 달라지기 시작하더군요. 뭔가 그리웠습니다. 누군가 그립고 돌아가고 싶었습니다. 함께 웃는 웃음이 그리웠고 땀흘리며 공부라는 것을 하고 싶었습니다.맛있게 먹어주는 가족을 위해 저녁상을 차리고 싶었고 깨어있는 새벽이 그리웠습니다. 돌아오는 막차에 뛰어올랐습니다. 저물어 가는 저녁 들판이 한없는 푸근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삶은 결국 긴 호흡과 영혼으로 승부하는것임을 안철수는 말했습니다. 그가 나와 비슷한 시대를 걸어왔기에 그가 던지는 말은 나에게 더 깊숙이 다가옵니다.치열함 속에 냉철함이 있었고 대중 속에서 함께 숨쉴 때, 오롯이 그 혼자만의 그가 되어 우뚝 서 있었습니다. 자지 않고 깨어 있을 때 그는 한가함 속에 있었고 전력 질주 하여야 할 때 그는 멈추어 설 줄 알았습니다. 나이가 철들게 하는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면 한심하지요.그러나 한심하게도 그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안철수를 통해서 말입니다.
혹시나 안철수 그가 내가 다니던 이웃학교에서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봅니다. 그 때는 모두가 같아 보였습니다. 물론 복장에서도 그랬지만 남자 고등학생들이란 모두 그저 그렇게 보였습니다.생각의 바구니는 우리들 것보다 작고 내용물들은 빈약하며 유치하다는 결론이었지요. 미안한 생각입니다.나의 그릇이 아직 그 때의 것에 머물고 있다면 그 남학생들이란 사람들은 그동안 깨어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안철수도 그렇게 깨어 있기를 지속한 그 옛날의 남학생 중의 한 사람이 분명합니다. 그는 작은 그릇, 빈약한 내용물을 지닌 그 옛날의 대청동이나 남포동을 오가던 남학생에 머물기를 거부한 사람이 분명합니다. 내가 다른이 보다 일찍 깨어 있었다는 그 자부심에 빠져있을 때 그는 쉼없이 새벽을 깨웠을 것이 분명합니다.
영화속의 에이다는 아직도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습니다. 베인즈가 만들어 준 철로된 손가락으로 연주하는것인지 알 수 없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쉼없이 연주하고 있다는것만은 사실입니다. 감미로움은 전율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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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근
샬롬!
문자를 받고 깜짝 놀랐었답니다.
통화를 하면서는 너무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었답니다.
다시 보내주신 문자에 응답도 못해 버렸습니다.
제가 말도 좀 하고, 문자메세지도 좀 보내는데....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 그지 없습니다.
책을 사기 위해 집사람께 이야기 할려던 참이었습니다.(교사들은 뭐 되는게 있다고 해서...)
그런데 귀한 선물까지 주신다니....
글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이 느끼고 공감하고 있습니다.
귀한 문구들은 새겨서 저에게도 다른이들에게도 써 먹을 것입니다.
가을입니다.
사물들이 결실을 맺기 위해 영그는 시기인만큼, 계획하셨고, 또 소원하시는 일들이 영글어지는 귀한 시간들이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문자를 받고 깜짝 놀랐었답니다.
통화를 하면서는 너무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었답니다.
다시 보내주신 문자에 응답도 못해 버렸습니다.
제가 말도 좀 하고, 문자메세지도 좀 보내는데....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 그지 없습니다.
책을 사기 위해 집사람께 이야기 할려던 참이었습니다.(교사들은 뭐 되는게 있다고 해서...)
그런데 귀한 선물까지 주신다니....
글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이 느끼고 공감하고 있습니다.
귀한 문구들은 새겨서 저에게도 다른이들에게도 써 먹을 것입니다.
가을입니다.
사물들이 결실을 맺기 위해 영그는 시기인만큼, 계획하셨고, 또 소원하시는 일들이 영글어지는 귀한 시간들이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VR Lef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