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써니
  • 조회 수 2759
  • 댓글 수 5
  • 추천 수 0
2007년 9월 3일 16시 17분 등록
* 말 타기 첫째 날

연구원 몽골하계연수에서 이국의 몽골 땅과 몽골리안들과 어울리게 되면서 알게 된 기억에 남는 몇 사람들 가운데 ‘바트르’라는 사람이 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몽골의 뭉근머리트지역에 도착한 둘째 날부터 말 타기를 하게 되면서 이다.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말 타기 첫날 처음 오전엔 ‘나야’라고 하는 재치 있게 보이는 한 어린 말몰이꾼 악동이 내가 탄 말의 주인이었다. 그가 그래 뵈도 말을 탄 경력이 10년이나 되는 소년이라고 하며, 한 열댓 살 먹었다고 하는데, 그곳의 사람들은 대부분 키가 그리 크지 않아 언뜻 보면 아주 어린 아이 같았다. 그러나 그의 말이 너무 작고, 따라서 안장에 올라타니 다리가 짧게 매어져서 나는 무릎을 상당히 접은 채 엉거주춤하게 억지로 오전시간 말 타기를 하여야만 했다. 그러니까 얼결에 소년 나야에게 손목이 잡혀 아무 말에나 이끄는 대로 올라가 집어탔다가 무릎을 상당히 접고 타는 바람에 몹시 무릎이 아팠다. 게다가 난생처음으로 탄 말이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정신도 못 차린 채 남들이 하는 대로 우선 올라타고 본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말 타기 전 주의사항을 듣는 시간에 늦게 도착하여 설명도 제대로 꼼꼼히 챙겨듣지 못하고 대충 타고만 것이 그만 화근이라면 화근이었다. 어쨌든 오전에는 1시간 반 가량을 가볍게 타는 것이었으나, 처음 말을 타보니 몸과 말이 따로 놀면서 말이 움직이는 대로 내 몸이 균형을 잡지 못하고 흔들려 어지럽기까지 했다. 왜 그리 높이 올라간 것 같은 착각이 들던지 말이다. 게다가 두려움에 중심을 못 잡고 말이 움직이는 대로 출렁이니 곧 현기증이 일기도 하였다. 이내 마음을 진정해 보려 했지만 꽥꽥 돼지 멱따는 소리를 해가며 오들오들 떨면서 억지로 타고 앉아, 이대로 말을 제대로 못타면 어쩌나 걱정을 하며 급하게 가이더 간조르그를 불러댔다.

다행이 처음에 몽골의 울란바토르 공항에서부터 뭉근머리트지역으로 이동하여 도착하기까지 예닐곱 시간 가량을 우리 팀이 지은 일명 관광봉고라 불리우는 드라이버 간수끄가 모는 차량에 가이드로 탄 간조르그와 익살스레 안면을 익혀온 터라 그를 만만하게 불러 졸라댈 수 있었다. 가이더 간조르그는 항시 우리들과 같이 있게 되어 그가 내 옆에서 나를 보살펴줄 수 있어서 그나마 안정을 찾고 말 타기를 할 수 있었다. 처음 초원으로 나갈 때에는 두려움과 걱정이 많았으나 돌아오는 길은 제법 편하게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중간에 발 길이를 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잘 맞지 않아 말 타기의 중심을 익히지 못한 채로 그냥 마구잡이로 타고 돌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말 등에 내가 타고 있는 것만으로도 신기하고 즐거웠다. 그것도 한 시간 반 동안이나 말이다.

오후에 점심을 먹고 나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말 타기를 하러 다시 초원으로 나갔다. 이때 바트르가 나에게로 와서 자기 말을 타라는 시늉을 했다. 키가 훌쭉하니 큰 반듯한 자세의 빨간 조끼를 걸친 사내가 약간 씽긋 웃는 듯 다가와 주춤주춤 말고삐를 쥐어주는 동작을 취했다. 그의 입을 보면 양치를 안 하는 것인지 잇몸에서 피가 나는 것인지 늘 앞니가 누렇게 변색 되가지고 약간의 피가 엉겨 붙어 떡이 져서 눌어붙어 있는 것 같았다. 자세히 들여다 볼 틈도 없이 그의 동작은 제법 민첩하게 움직여지곤 하였다. 나는 또 엉겁결에 손목이 잡혀 끌려가면서도 왠지 오전의 나야보다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힘 있게 받쳐주는 그의 육중한 어깨를 의지 삼으며 말안장에 올라타고 내리는 것만도 한결 수월하고 편안하게 안도감이 들었다.

이번의 말은 다소 커서 말안장에 올라타니 발길이가 대충 맞는 듯하며 아까보다 훨씬 편하게 뻗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발길이를 나에게 맞게 조절을 하고 제법 의젓하게 앉아 허리를 펴본다. 오전에 말을 탔으니 오후에는 좀 잘 타보고 싶어졌다. 조금 달려볼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말 위에 올라탔을 때 녀석은 마치 내게 달릴 준비가 되었냐고 묻는 것 같았고, 나도 웬만하면 그래보려고 한다고 속으로 응수를 한 것 같다. 느낌에 녀석은 달리기를 좋아하는 말 같았다. 필경 바트르를 보더라도 주인을 닮았다면 달리기를 좋아하는 말 일거라는 생각이 언뜻 스쳤다. 내심 기분이 좋아지면서 약간 흥분감이 돌았다. ‘음, 이번엔 잘 탈 수 있는 말인 것 같군. 제대로 말을 타봐야겠어. 어디 잘해보자.’ 하고 말과 탐색전을 펴며 잠시 협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조금 움직여 보니 이번에는 안장이 무척 불편하다. 말도 크고 높은데다가 안장도 넓으며 오전과 달리 안정감이 없고 미끄러웠다. 사방을 둘러보니 말에 따라 안장에 차이가 많이 났다. 이 안장은 조금만 움직이면 금방이라도 미끄러져 내리거나 쏟아질 것 같아 이번엔 또 다른 어려움으로 움찔하며 아까보다 더 어질어질 하였다.

다리만 편하면 잘 탈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오전의 그 말의 안장을 떼다가 붙여서 타고 싶었으나 그럴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적응하여 보려 애쓰며, 말을 타는 것인지 말에 끌려가는 것인지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절절매며 타는 모습이 가관이었으리라. 또 새로이 처음으로 돌아간 기분으로 말 타기를 시작하였다. 오전의 말 타기가 모두 수포水泡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어쩔 수 없다 싶었지만 속으로는 징징대며, 이러다가 나만 말을 못 타면 어쩌나 또 근심걱정이 서려 애를 써본다.

순간 이런 생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몽골까지 왔는데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말을 타볼 수 있겠어. 지금 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영 기회를 잃고 말지도 몰라. 내 나이가 몇인가. 하루라도 젊은 지금 해야 해. 조금만 참고 두려움을 떨치어 애써 몽골까지 온 값을 해야지. 다시 또 이곳까지 오기란 결코 쉽지 않을 거야. 어떻게 해서라도 따라해 보자. 한국에 가면 더 비싸고 이만한 기회를 좀처럼 누리기 힘들 거야. 그럴 겨를도 시간도 능력도 없어. 그러니까 여기 온 김에 하는 거야. 네 친구 아줌마들은 못해도 너는 할 수 있어. 추운 겨울 영하 의 날씨에 눈바람을 맞으며 혼자서 스키를 타러 갔던 적도 있잖아? 그래서 제법 탈 수 있게 되었잖아. 이곳은 사람이 많고 안전해. 선이야, 겁먹지 말고 차근차근 따라해 보렴. 침착하게 무서워하지 말고 천천히..."
잠깐 동안이지만 다짐하듯 온갖 생각이 스치면서 아쉬움을 남기지 않는 몽골여행이 되기 위해 나는 스스로를 마치 염불처럼 암송하며 독려하고 있었다. 오~땅 오~땅(천천히 천천히)을 애걸복걸하듯 연발하며...

실상 누구와 말을 하며 탈 수도 없었다. 제 각각 말을 타는데다가 내 말 주인 바트르는 말고삐를 길게 늘어뜨리고는 나에게는 관심도 없다는 듯 연신 제 동료와 이야기를 끊임없이 지껄이며 가거나, 또 그러다가 옆 사람이나 소년들에게 말고삐를 넘겨주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그는 빠른 동작으로 우리 일행을 벗어나 오가는 길목에 자신의 게르를 살짝살짝 다녀오곤 하거나, 노상방뇨를 하기 위해 뛰어다니거나 하여튼 바빴다. 불안한 나는 말고삐에 매달리다시피 하며, 힘을 꽉 주고 있어 아마 손에 쥐가 날 지경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온몸에 긴장을 하고 손목에는 힘도 별로 없어 남들이 잡는 대로 하면 금방 고삐를 놓칠 것만 같아 요상하게 부여 쥐고, 어쩔 줄을 모른 채 그래도 기어이 말을 타는 폼이란, 아마 보기만 해도 우스울 지경이었을 것이다. 우리 일행은 오후에는 오전보다 훨씬 먼 거리를 말을 타고 다녔다.

말몰이꾼 바트르

바트르는 곰살맞거나 부드러운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게다가 그는 갑갑증이 있는 사람처럼 무리와 별로 어울려 가지 않았다. 하기야 그는 자유로운 이미지의 남성미가 풍기는 저돌적이거나 다소 전투적으로 보이는 인물이었다. 그는 웬만한 것은 그냥 못들은 척하고 제 멋대로 하는 사람 같기도 하고, ‘그렇게 저렇게 네가 알아서 적응해나가라’고 하는 사람처럼 무심해 보였다. 그러나 모르긴 해도 그는 말의 성질을 잘 알고 말을 잘 부리는 사람 같았다. 그는 말에게도 어느 정도 자유를 허용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다른 사람과 달리 말고삐를 바싹 조이지 않고 길게 늘어뜨려 앞장서 갔다. 그래서 그는 앞서고 나는 뒤에서 쫒아가는 모습이 되었다.

그는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동료들과 수다를 떨면서 말몰이를 하곤 했는데 그러면서도 항상 주위를 살피는 버릇이 있었다. 그는 제법 자우로 고개를 바꿔 뒤를 돌아다보곤 하였다. 그럴 때면 마치 초원 저 너머 지평선까지를 바라보듯 멀리 내다보는 듯한 모습이 느껴졌다. 벌레의 움직임도 관찰하는 것처럼 그의 눈은 다른 사람들과 달랐다. 초원에서 일어나는 일체一切의 모든 일을 도맡아 챙기듯 믿음직스런 모습이었다.
우리 일행 중 누구든지 그가 뒤를 돌아다보는 이런 모습을 자세히 본 사람이 있다면 나의 이 말에 공감하리라. 또한 그가 뒤를 돌아다보며 지평선 너머까지를 바라보듯 가늘게 눈을 뜨며 주위를 살피는 모습을 보았다면, 가히 감동에 가까운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었을지 모른다. 내가 그의 그런 눈을 잘 살펴 볼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말고삐를 다른 말몰이꾼들보다 항시 길게 늘어뜨리고 수시로 뒤를 돌아다보며 일행들을 유심히 살피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여 그를 믿고 나름 재미있고 편하게 말 타기를 체험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그런 행동에서 신뢰감이 느껴져 우선은 안도감이 들고 안정된 말 타기를 하게 된 것 같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이렇듯 행동으로 보여주면 간단한 것을. 그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역할을 찾아 다 해내는 멋진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내 말몰이꾼 바트르에게 아무런 불만도 없었다. 있다면 좀 더 눈썰미가 있거나 눈치 빠르게 행동하면 좋으련만. 그는 그러한 본능적 야성에 가까우면서도 책임감 강하게 일은 처리해도, 그 천성적으로 재발라 보이지는 않았으며, 또한 그럴 필요도 별반 느끼지 않은 채 무던히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사람 같았다. 이를 테면 그곳이 관광지인 만큼 약간의 영어를 한다든가 그리 한국 관광객이 많이 간다는데, 한국어를 조금 익혀두면 더 좋으련만, 그는 그러한 생각을 하지는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사실 그곳 뭉근머리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원주민이며,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한 의식이 깨어있지 않아 별로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산다고, 총괄 가이드를 맡은 박과장은 이야기 해 주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어떤 표현을 했을 때 마치 알아들은 양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실상은 아무것도 못 느끼고 그냥 지나치거나 했던 것이다.

처음에 그런 그의 행동에 약간 의아해 하기도 했다. 저 사람이 알고 저러나 모르고 저러나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해가 가면 곧 행동으로 옮겨 의사표현을 확실히 해왔다. 결국 그는 말귀를 못 알아 챈 것이었다. 그들과 점점 더 많은 시간을 같이 하다 보니 불편함보다 오히려 이 사람들이 이토록 순박하구나 하고 감사함과 고마움이 더 느껴지거나, 그들의 행동에 진솔함이 묻어나며 담담히 생활하는 그들의 모습과 일상이 한결 편하고 좋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생활이 때로는 안쓰러울 때도 더러 있었다.
몇 시간 말을 타고 서로 낯이 익게 되자 바트르는 이내 친근감을 표시해 오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의 모자를 살짝살짝 건드려가며 장난기 어린 모습으로 딴엔 친하게 지내보자는 인사를 트거나, 가까이 지내고 싶다는 의사표시를 전달해 오기도 하였다. 약간 귀찮다 싶을 때도 있었지만 그도 천성이 밝고 명랑한 사람 같았다.

입으로 신나게 달리는 말

어떻게 적응을 하게 되었는지 돌아오는 길에는 제법 말과 호흡을 맞추며 ‘말~달리자~’를 외치며 말을 탈 정도가 되었다. 나중에 보니 아마 이때 있는 힘을 다해 말을 타는 관계로 그 치명적인부분에(?) 물집이 잡히고만 것 같다. 좀 자연스럽게 말을 타게 되다보니 저절로 힘이 주어지는 부분과 어디에 힘을 주어야 할지 알게 되었다. 오전에 사부님께서 다리에 힘을 주라고 했을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통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다리를 펼 수 없었기 때문에 도통 다리에 힘이 실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무릎이 심하게 구부러진 상태에서 말을 타니 무릎이 어찌나 아프고 다리안쪽 허벅지에 힘을 주어 말과 밀착시키려고 하면 말과 안정된 자세가 되지 않아 꼭 앞으로 고꾸라질 듯이 불안정했던 것이다. 해서 엉거주춤 불안정한 자세로 애꿎은 곳에 힘을 주거나 버티어 타다보니 그리 피하려던 일이 결국 발생하고야 말았다. 그런 상처를 가지게 된 사람들이 몇이나 있었지만 우린 그래도 대부분 시침을 때가며 아주 열심히 말을 타곤 했다. 이만하면 이를 일컬어 영광의 상처를 남겼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오후에는 발 길이가 맞으니까 저절로 이런 문제들이 해소 되었다. 또한 나의 상태를 얼핏얼핏 보아가며 말몰이꾼 바트르가 강약을 조절하여 말을 이끌어 가매 그가 이끄는 대로 그에게 적응하다보니 자연스레 몸에 힘을 빼고 편하게 타는 방법을 절로 터득하게 되었다. 그는 약간 빨리 달렸다 서서히 달리기를 조절하며 자연스럽게 말과 몸에 중심을 잡아 나가도록 이끌었다. 그러다보니 완전하게 안정된 자세가 아니었음에도 말과 내 몸이 최대한 자연스러워지는 느낌을 조금씩 터득하게 되었던 것이리라. 하여 나중에 게르로 돌아올 때에는 제법 바트르를 따라 말에 적응하게 되었다. 물론 잘 탄 것은 아니지만 신이나기 시작했다.

나는 초원의 망아지처럼 악을 쓰다시피 ‘말 달리자’를 외쳐대며 온 벌판을 향해 마구 고함을 질러댔다. 어쩌면 말은 제대로 타지 못 하면서도 입으로 온 초원을 누비며 말을 멋지게 달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그런 나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지 아니면 배꼽 빠지게 우스웠던지, 그날 이후 뭉근머리트지역 말 타기에서 현지 몽골 말몰이꾼들을 평정하던 여장부 가이더 잉케는 나만 보면 이름대신 깔깔대며 ‘말~ 달리자~’를 연발해 댔다. 그녀는 다음 한국 방문객이 오면 아마 ‘말 달리자’를 요긴하게 써먹을 성 싶었다.

내 말몰이꾼 바트르는 여러 말몰이꾼 가운데 가장 민첩한 행동을 보이며 부지런했다. 처음에 나는 우리 말몰이꾼 가운데 바트르가 있는 줄도 몰랐다. 그가 어디서 보았는지는 몰라도 오히려 나를 먼저 보고 반겼다. 그는 약간 겸연쩍은 듯 고개를 살짝 내려 깔고 사람의 눈을 맞추며 입을 약간 벌린 상태에서 어정쩡하게 웃는 표정을 짓곤 했다. 그것이 쑥스러운 표정쯤에 해당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럴 때 문득 눈에 뜨이는 것이 그의 치아이다. 그의 치아는 작고 짤막하게 틀리처럼 나란했는데, 그것이 그의 훌쭉한 키나 기다란 몸매와 사각의 갸름한 얼굴하고는 덜 조화로웠는지 하여간 내 눈에 들어왔다. 어쩌면 그러한 모양이 전형적인 몽골리안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이마는 납작하게 편편한 듯 했고 코는 잘 기억에 나지 않으나 그의 눈만은 기억에 생생하다. 얼굴은 전체적으로 평편했던 것 같고 광대뼈도 도드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 그가 왜 나를 자기 말에 낙점 시켰는지는 모르겠으나 나중에 내가 말을 타는 것을 보고는 그때서야 ‘에그, 잘못 골랐다’고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튼 날에 이르러 결과적으로는 그가 나를 잘못 고른 것은 아닌 셈이 되긴 했다.

* 말 타기 두 번째 날

몽골식 유목 가옥 게르

우리가 머문 뭉근머리트 숙소는 게르가옥이 30여 동에 통나무집의 방이 20여개 있는 보기 드물게 비교적 넓고 깨끗하며 한적한 곳이었다. 흙먼지를 날리며 봉고를 달릴 때 보았고, 또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릴 때도 대강 살펴보았지만, 우리 숙소만한 곳을 찾아보기란 힘들었다. 아마 그 곳에서는 가장 크고 좋은 숙소가 아니었나 싶다. 양식 통나무집도 있었지만 우리는 모두 게르가옥을 사용하였다. 몽골의 정취를 물씬 느껴보기 위해 아마도 이 부분은 애시에 사부님께서 고집하셨던 것 같다. 더러 비가 새는 곳도 있었고, 그래서 숙소 배정시 3번 게르를 바꾸어, 싣고 간 물품을 저장하는 창고겸 본부 초소로 활용하여 잠은 자지 않고, 주로 저녁시간 이후에 행해지는 우리들의 수업과 토론의 장으로 활용하기도 했지만, 게르는 아주 훌륭하고 재미있는 몽골만의 특성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가옥으로 기억의 한 장면을 채우기에 가히 흡족했다.

그러나 솔직히 게르는 편한 곳은 아니었다. 화장실을 가려고해도 신발을 신고 나와 공중변소를 향하여 한참을 걸어가야 했고, 샤워장은 설치되어있었으나 마치 그림의 떡처럼 물을 편하게 사용할 수도 없었으며, 물이 귀하거나 끌어다 사용하기 힘들어서 그런지 늘 물 부족 사태를 느끼며 생활해야만 했다. 물론 우리는 이러한 불편을 체험하며 원시적 삶을 누려보려는 듯 기꺼이 즐겁게 받아드렸고, 문명을 떠난 이러한 생활들이 나름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했으며, 나중에 일정을 마치고 테를지나 울란바토르시내의 호텔에 가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오히려 그곳 뭉근머리트가 더 그리울 만큼 중독현상을 일으키기도 했다. 고작 사나흘에 불과했지만 태고적 원시림과 별로 인공이 가미되지 않은 드넓은 초원이 하늘과 맞닿는 지평선으로 이어짐을 바라보며, 그곳 창공의 투명함과 밤하늘의 우수수 낮게 깔린 별들과 얕게 흐르는 강줄기와 하얀 구름들을 바라보며 지낸 며칠간이, 마치 우리에게 어머니의 자궁 속으로의 회기처럼 예상치 않은 편안한 휴식을 안겨주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던 것이다.

그곳 뭉근머리트 초원의 게르가옥에 흩어져 방목하여 가축을 기르며 말을 타고 살아가는 대부분의 원주민들은, 우리가 묵었던 숙소에 일이 있을 때마다 모여 돕고는, 저녁이면 말을 타고 돌아가곤 하며 지내는 사람들이었다. 내 말몰이를 한 바트르도 그런 사람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 가운데 한 명 이기도 했다.
새삼 그를 또 대단하게 본 사건이 있는데, 그가 말몰이꾼들이 모여서 하는 씨름대회에서 가장 잘 싸우는 사람 가운데 하나란 사실 이외에도 그의 활약은 자못 컸다.

양 잡기의 달인 바트르

숙소에서 묶은 둘째 날 인가에는 몽골관광 볼거리 가운데 하나인 양 잡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그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며 자랑할 만하게 거행되는 바로 양 잡는 기술이었다. 몽골에서는 양을 잡을 때에 정말 피 한 방울 안 흘리고 조용하게 양을 저세상으로 보낸다.
이 부분 가이더의 설명에 의하면 이러한 방법이 가장 순식간에 고통을 최소화 하여 잡는 방법으로 알려져 있으며 몽골의 오랜 전통적 방식이라고 하였다.
양을 잡을 때에 복부를 순식간에 칼로 베어 복강으로 시술자의 손을 집어넣어 양의 숨통을 재빨리 부여잡고 끊어버리는 것인데, 그러면 믿을 수 없을 만큼 고요하게 양은 제가 온 곳을 향해 차분하게 가게 된다. 그 시간이 10여분이라고 하는데 그 시간동안이면 양이 네 다리를 쭉 뻗으며 완전이 숨통이 끊어져 고요하고 평화로운 모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왜 굳이 이 광경을 두고 고요하고 평화롭다고 하느냐면, 복부를 찔린 양이 순식간에 칼잡이가 그의 숨통을 움켜쥐는 순간, 생과 사를 찰나에 담고는 모든 것이 일시에 그대로 정지되어 멈춘 듯, 눈을 뜬 채 전혀 미동도 하지 않고, 생과 사에 아무러한 미련이나 추호의 연민도 없는 듯, 일체의 아쉬움조차 남기지 않고서 순간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는, 사후강직이 풀릴 때까지 처연하게 죽어가기 때문이다. 양은 숨통이 끊어진 이후에도 그의 눈을 감지 않는데, 그 눈이 너무 맑고 투명하게 느껴진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신음 한 번 토하지 않은 채 숨을 거두어가는 그 순간까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며, 마치 그 상태 그대로 영원히 정지되어 머무는 듯한 착각이 들만큼 차분하게 죽음을 맞이하며 떠나간다. 어느 시인은 이 광경을 지켜보며 몽골의 양들은 늘 멀리 지평선만 바라보며 끝도 없이 펼쳐지는 광활한 초원만 뛰놀고 살다가, 비로소 최후를 맞이하여 하늘을 마음껏 쳐다보며 죽어간다고 묘사하였다. 내가 본 양의 죽음도 그러하였다. 생명의 막바지에 이르러 순명하는 자연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과 같이 엄숙하고도 장엄하며, 탄생과 다르지 않은 신비로운 경이로움이 감돌아 차라리 감동적이기에 충분한 죽음의 한 장면이었다.

그날 양은 바로 내 말몰이꾼 바트르가 잡았다. 그는 양이 숨을 멎자 마지막 순간까지 정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양의 털을 고스란히 벗겨냈다. 그 광경은 가히 예술에 가까웠고 경이로운 연출이었다. 신생아의 출산을 받아내듯 그는 숨죽여 땀을 뻘뻘 흘렸고, 순식간에 그 모든 작업을 훌륭하게 완수하여, 양의 최후까지 아름답고 깨끗하게 마무리하여 주웠다. 차라리 죽은 양에게도 이러한 바트르의 후속 작업까지 이어짐이 더욱 양의 생을 대견하게 마무리하는, 정말이지 아무 미련도 남기지 않고 “후련하게 살다가 홀연히 떠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아 숙연해 지기까지 했다. 가슴 미어지는 감격과 감동이 밀려왔다. 양의 삶과 죽음이 전혀 불쌍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오히려 저렇게 오롯이 살다가 다 나누어주고 갈 수 있는 것이 생명이구나 하는 경외감을 느끼며, 생명의 무한한 자비와 경건함이 느껴졌다면 억측일까.

나는 한 마리 양의 죽음을 보면서 인간의 삶을 투영해 보았다. ‘나의 삶은 어떤가,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살다 가야할까’를 막연함을 떨쳐 구체화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의 생도 나만의 강점과 재능을 적극 실현하여 서로를 돕고 나누며, 후련히 살다가 홀연히 떠날 수 있어야 하며, 그 구체적인 일상적 취향을 살아가야 하리라는 생각이 뇌리 깊게 박히도록 스스로에게 주문하며 가슴 뻐근하게 전해졌다. 참 귀한 시간이었고 그러한 광경을 빈틈없이 깔끔하고 진중하게 연출해 준 바트르의 일상도 위대해 보였다. 무엇보다 일상적 그의 성실한 삶의 자세가 부러웠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양의 가죽만 오롯이 들어내는 광경은 마치 양과 바트르가 합작해서 혼연일체된 모습으로 만들어내는 삶과 죽음의 경건한 예식, 혹은 몽골의 초원에서나 볼 수 있는 지평선 같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보여주는 것 같아 가슴 찡하게 다가왔다. 나의 말몰이꾼 바트르는 틀림없는 초원의 진정한 영웅이었다.

바트르의 상처로 깨우치는 일상의 모색

그런 그가 그 다음날 몽골 초원의 아직 여물지 않은, 젊음의 치기와 출렁이는 혈기와 청춘의 불볕 같은 뜨거움으로 인해 몸살이 나버려 미처 제어되지 않는, 약간의 불상사에 우연으로 밖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이유에 연루되어 복잡한 심경의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채, 바쁜 해거름에 서둘러 양을 잡다가 그만 손을 다치는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처음엔 그도 그의 상처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했으리라. 너무 어둡고 깜깜한데다가 이미 대강 처리를 한 상태에서 급작스레 불려간 터라, 나도 그 상처가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 수차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봉합을 해야 함을 강조했지만 그는 병원에 가지 않을 것 같았고, 하는 수 없이 당분간 손을 사용할 수 없도록 처치 후 단단히 붕대를 감아놓았지만, 그는 오히려 그 지지대에 의존해 수월하게 일을 계속 했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루가 지나고 다시 처치를 하며 살펴보니 그가 계속 손을 사용하는 바람에 그의 상처가 밀려 훤히 들어나게 되었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깊고 심한 상처여서 차마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었다. 바트르도 그때서야 제 상처를 보고는 놀라는 것 같았다. 밤새 눌어붙은 상처를 소독약을 뿌려 불려가며 겨우 떼어내는데, 미련한 것인지 참을성이 많은 것인지 꾹꾹 잘도 참는다. 영웅 바트르도 그 지경에 이르러서는 아아, 신음소리를 뱉으며 억지로 참아낸다. 그런 그의 모습이 더욱 애처로워 그를 치료하며 내 간이 더 먼저 졸아든다. 이런 열린 창상들은 속히 치료하여 상처가 감염되거나 더 곪기 전에, 철저히 소독하고 봉합을 해서 염증이 생겨나지 않게 하여야 한다. 아무리 말을 해도 통하지 않고 이해하려 들지 않으니 이 일을 어찌하랴. 너무 가슴이 아파서 내내 마음이 안쓰러워 아직까지도 편하지가 않다. 그날 누구의 차를 빌어서라도 타고 밤새도록이라도 시내로 나가 치료를 하고, 내 보는 앞에서 꿰매게 할 것을 하고 자꾸만 뇌리에 스친다.

그들은 그 상처가 아무리 깊어도 여간해서 병원을 찾지 않는다고 한다. 그 보다 더한 상처도 그들 나름의 민간요법이나 자연요법이 있는지, 여하튼 그렇게 치료하거나 그대로 살뿐 병원에 갈 엄두조차 내지 않는다고 한다. 그곳 사람들 모두는 느긋하다. 환자 자신도 스스로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다. 누구 하나 앞장서서 상처를 돌봐주고 예견을 하거나 처치를 일러주는 대장도 없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을 홀로 판단하고 이끌어 가야하며 그 많은 모든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무엇보다 맡겨진 일이 더 중요한 듯, 미처 다른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제 몸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그것이 더 큰 일을 하기위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지 못하여, 그 상처를 불리고 곪아서 썩게 만들지도 모른다. 슬며시 내 삶의 우둔함 역시 바트르의 상처 한 귀퉁이에 오버랩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나는 우리말이 통하는 여장부 가이더 잉케를 통해 수없이 강조하며 바트르에게 통역하라고 일렀건만, 바트르는 그런 내 마음을 단지 고마워할 뿐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이튼 날 다시 치료를 하면서 제 상처를 들여다본 바트르가 그때서야 겨우 제 상처를 심각하게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 후로도 그가 병원에 가서 제대로 상처를 꿰매지는 않았을 것 같아 내내 안쓰러운 마음 그지없다. 그는 더 먼저 마지막까지 제 임무를 완수하고 나서야 상처가 예사롭지 않음을 이해한 듯, 덜 써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그게 무슨 대수랴. 엄지손가락부분에 숟가락만한 크기의 상처가 아주 깊게도 패어, 마치 요거트나 계란찜을 한 스푼 푹 떴을 때처럼 깊게 덜렁이는 상처인데, 그것을 어찌 치료도 제대로 하지 않고 더군다나 꿰매지 않고 저절로 낫기를 바란단 말인가. 꿰매도 수십 바늘은 꿰매야 하고 빨리 봉합하면 그만큼 편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데도 그것을 못하고, 만약에 평생을 불구로 살게 된다면 얼마나 딱한 노릇이겠는가. 답답해서 속이타고 복장이 터져 죽을 노릇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해 보면 우리 내 삶도 이와 다르지 않은 것이 아닌가 싶어, 바트르의 경우에 견주어 이내 삶의 무모함과 속절없는 미흡함을 아울러 반성해 보게 된다.

내 말몰이꾼 바트르는 21세기 몽골을 지키는 살아있는 실체적 영웅이다. 그런데 그가 그의 왼손을 쓸 수 없게 된다면 큰일이다. 너무 안타까운 것이다. 나는 그에게 너는 이 초원을 지키는 최고요 가장 강한 1인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그는 제대로 알아듣는지 마는지 무턱대고 그 눈을 껌벅일 뿐, 내 앞에서 속 시원히 그의 상처가 해결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의 상처를 고작 두 번 이틀에 거쳐 치료해준 것 밖에는 없다. 그리고 그것으로서는 턱도 없다. 무엇보다 꿰매야 한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 일찍 테를지로 이동해야 했다. 몽골을 기억하게 하는 높푸른 창공과 드넓은 초원의 뭉근머리트 아버지 가슴 같은 자연을 떠나, 남은 일정의 또 다른 풍광과 새로운 경험과 만나게 될 것이었다.

* 마지막 날 드넓은 초원의 뭉근머리트를 떠나며

뭉근머리트를 떠나는 마지막 날 아침에 화장실에서 그의 아내를 만났다. 바트르는 27살의 쌍둥이 아빠였고 젊고 통통하며 예쁘장한 아내가 있었다. 그의 아내도 그곳에서 일하면서 숙소에 머무는 사람들을 도와 물도 잘 나오지 않는 화장실을 청소하거나, 더운 물을 날라다 주거나, 물통에 물을 채워놓거나 하는 등의 일을 하였다. 그들 부부는 그렇게 숙소의 온갖 허드렛일들을 도와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바트르의 아내에게 ‘우리 오늘 잠시 후에 떠나요. 그동안 고마웠어요.’ 하고 인사를 나눈 후에 ‘바트르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아마 나올 거라는 반응을 보인다. 말이 없고 뚜하게 생긴 그의 아내가 내가 그의 남편을 치료하는 것을 본 뒤로는 제법 상냥하게 얼굴을 폈다. 혹시나 만나지 못할까봐 나는 다시 한 번 바트르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꿰매야 한다고 전달을 해 보았으나, 어떻게 파악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연일 늦은 취침에다 차츰 피로감이 밀려 그날따라 늦게 일어난 탓에 고양이 세수를 하듯 물만 찍어 바르고 서둘러 세면실을 나왔다.

얼른 우리가 묵은 1번 게르로 가서 짐을 챙겨 나와 봉고를 타고 테를지로 이동해야 했다. 나는 뛰어가서 후다닥 짐을 싸가지고 우리 게르의 일행들과 봉고차에 오를 준비를 하였다. 부지런한 사람들이 벌써 다 채비하고 대기하여 있었고, 숙소에서 일하던 사람들도 모두 나와 마지막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아쉽게도 말몰이꾼들을 다 볼 수는 없었다. 물론 전날 우리는 인사를 나누기는 했다. 그래도 뭉근머리트를 떠난 다는 것은 왠지 즐겁지만은 않았다. 모두 사나흘 빡빡하고 쉴 사이 없이 움직였고, 무엇보다 있는 대로 열정을 쏟아내며 지낸 터라 웬만큼 지칠 대로 지쳐갔다. 그래도 우리의 열기는 거칠 줄을 몰랐고 생기발랄한 초원의 야생마들처럼 펄떡였다.

많은 사람들 가운데 빨간 조끼의 바트르가 보였다. 그를 보자마자 서둘러 남은 약품들을 그에게 챙겨주며 나머지 치료를 계속하라 단단히 일렀다. 그는 또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가 제 살을 치료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어서 약품을 건네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한편으로 염려가 되기도 했으나, 우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줄 수밖에는 없었기에 그렇게 하였다. 우리는 모두 모여 몽골 현지인들과 한데 어울려 마지막 기념 촬영을 하였다. 특별히 바트르와 나는 둘이서 사진 한 장을 찍었다. 일행 중에 연구원 3기 도윤이 즉석에서 재생을 해주니 그는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였다. 아쉬움과 고즈넉한 뭉근머리트를 기억하라는 가늘고 예쁜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관계로 파커통에 사진을 넣어주니, 그는 마치 보물인 냥 껴안으며 감격해 했다. 이윽고 작별의 시간이 돌아왔다. 몇 대로 나뉜 봉고가 시동을 걸자 바트르는 우리들의 영웅 사부님께 먼저 인사를 마치고, 그리고 내게도 달려와서 마지막 인사를 나누며 영웅의 기사도를 발휘했다. 그의 상처가 잘 아물어 모쪼록 아무 이상 없이 손을 사용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또한 그의 이름 바트르가 영웅이라는 뜻이 있는 것처럼 실제로 초원을 지키는 최고의 영웅이 되길 빌어마지 않는다.

서울에 돌아와서도 그의 상처가 마음에 쓰인다. 그의 상처를 본 일행 가운데 민선이도 많은 걱정을 한다. 더 잘 치료해주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 한켠에 남아 아리다. 어떻게 할 도리도 없다고 생각했던 것조차 후회가 될 만큼 애가 탄다. 몽골 초원의 진정한 영웅 바트르! 그의 역할에 기대가 되고 그의 가정에 행운을 빌며, 몽골 뭉근머리트 지역의 드넓은 초원과 높푸른 창공을 잘 지켜가는, 이 시대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 멋지게 남아주길 바란다. 언젠가 다시 건강한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츄우 츄우 호이땅 호이땅! 이랴, 달려라. 달려! 달리자 꿈!!!

IP *.70.72.121

프로필 이미지
한희주
2007.09.03 07:41:51 *.233.198.88
상처는 시간이 가면 아물게 됩니다. 단지 덧나는 일이 없어야겠지요.
바트르의 손에 난 상처가 쉬 치유되기를 빌어 주는 그 마음이 소중한 거지요.
그렇게도 끈적거리던 무더위가 이리 쉽게 물러나는 걸 보면, 자연의 섭리란 참으로 오묘하지요?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이즈음이 나는 참 좋아요.
긴 팔 옷을 꺼내 입고 날씨처럼 그윽한 생각을 하게 되어요.
소원했던 사람들을 떠올려보고 그들과 함께 했던 즐거운 단상들을 추억해보기도 하고요.
지난 주말에는 고향에 계시는 부모님 뵙고 왔어요. 얼마나 반가워하시던지요.
가능한한 자주 찾아 뵐려구요. 정말 이건 고쳐 못할 일이쟎아요.
프로필 이미지
호정
2007.09.03 08:31:41 *.244.218.10
그래... 언니에겐 바뜨르와 얽힌 장면이 많았겠구나.
프로필 이미지
최영훈
2007.09.04 14:26:30 *.99.242.60
써니누나 말을 끌고 잘 끌고 가던 바뜨르..
갑자기 내려서 어기적 거리는 모습에 왜 저러나? 했더니.
등뒤에 써니누나를 두고 시원하게 볼일을 보는 장면 압권..
프로필 이미지
써니
2007.09.05 01:31:00 *.70.72.121
희주언니야, 정말 참 잘하셨네요. 잘하셨어요.
목요일에 꼭 뵈어요. 나오세요.

호정, 우리 같이 목격 했거덩.
네 마음을 앗아간 그 때문에 덜 느꼈겠지. 생각은 많이 하면서 정작은 왜 조금 나누시나 들. 생각은 조금 하고 함께 많이 나누시길.

영훈아우님, 내가 못살아. 그 인간이 나중에 말고삐 잡아줄 사람이 없어 처지니깐 두루 별 짓을 다하지 뭔가? 그래도 말고삐 꼭 쥐고 당신들 보는 앞이라 덜 민망했다는 거 아니우. 도윤은 그걸 또 언제 찍었더라고. 별일이야~
프로필 이미지
소현
2007.09.05 12:26:27 *.231.50.64
바뜨르.. 바뜨르...
언니야, 상처는 다른이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게 분명해..그지?
자신이 인식하고 의지를 가질 때만이 치유가 가능한건가봐..
그런 사람이 언니가 아닐까.. 생각해 보아..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892 TEPS를 마치고 난 후의 단상 [8] 최정희 2007.09.02 2585
4891 (22) 실연 에너지 [8] 香仁 이은남 2007.09.03 2959
4890 [칼럼22]URI-com을 아시나요 [3] 素田최영훈 2007.09.03 2022
4889 [022] 서른, 직장 생활을 돌아보다! [6] 현운 이희석 2007.09.03 2658
4888 [칼럼021] 의자, 아니 원칙을 사수하라 [8] 香山 신종윤 2007.09.03 2558
4887 (22) 짓밟혀도 영혼은 나의 것이기에 [11] 박승오 2007.09.03 3300
4886 (22) 길 위의 단상 - 브랜딩, 커뮤니케이션, 기획, 전략 [10] 時田 김도윤 2007.09.03 2831
» [22] 몽골에서의 말 타기 추억과 진정한 영웅 바트르 [5] 써니 2007.09.03 2759
4884 [칼럼 22] 가끔씩 눈을 감아주는 버릇 [5] 海瀞 오윤 2007.09.05 3180
4883 -->[re]그대에게 주고싶은 글 [4] 다인 2007.09.05 2785
4882 [023] 꿈을 이루기 위한 전략과 Action Plan [1] 校瀞 한정화 2007.09.09 3711
4881 기질탐색 및 강점 찾기(몽골에서의 발표자료) file 한정화 2007.09.09 5813
4880 [23-1]몽골에서의 강점 발표와 10대 풍광 중에서 [4] 써니 2007.09.09 2572
4879 [23-2] 후련히 살다가 홀연히 사라지리라 [7] 써니 2007.09.09 2682
4878 [칼럼 23] 나를 즐겁게 하는 일들 file [2] 海瀞 오윤 2007.09.09 2832
4877 2010년, 옹박3는 어떻게 전개되나? (스포일러) [2] 박승오 2007.09.10 3437
4876 [칼럼 23] 한 놈만 팬다. file [1] 송창용 2007.09.10 2994
4875 (23) 있는 그대로 [2] 香仁 이은남 2007.09.10 2782
4874 풍광, 전략과 액션 - 멀지 않은 미래 [2] 호정 2007.09.11 2199
4873 [칼럼23]盡人事待天命 file [3] 素田최영훈 2007.09.11 20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