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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3일 11시 40분 등록
#0. 프롤로그



저녁이다. 차들이 달려가는 8차선 고속도로는 해가 지는 서쪽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있다. 날씨가 흐렸던 탓에 온 세상을 선명하게 물들이는 새빨간 노을은 아니지만, 채도가 낮은 색깔들로 칠해진 제법 분위기 있는 저녁 노을과 함께 어둠이 내리고 있다. 주황색 가로등이 길을 밝히고, 나는 차창 밖으로 손을 살짝 내밀어 어느덧 서늘해진 바람 결을 느껴본다. 며칠 새, 갑자기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처럼 어딘가 쓸쓸한 저녁 풍경을 스쳐 지나가며,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는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AE'란 직업과 '광고 기획'이란 현재의 업무에 대한 생각, 내가 지금 서 있는 곳과 향해 가고 있는 길에 대한 생각들이 두서 없이 떠올랐다 흩어져갔다.

그 길 위의 단상(斷想)들을 '브랜딩, 커뮤니케이션, 기획, 전략'이란 4가지 키워드로 묶어서 기록해본다.

#1. 브랜딩 (Branding)



나는 늘 고민한다. '넌 대체 누구니?'

브랜딩이란 사물의 본질과 사람의 영혼에 대한 고민이다. 나와는 전혀 관계없는 수많은 일상품들과 스쳐 지나가는 서비스들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일이다. 다른 존재들과는 차별화되는, '자신만의 존재 가치'를 찾아 주는 작업이다.

누군가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묻는 것은 단순한 듯 보이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그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던지면 더욱 힘들어진다. 어쩌면 잘 산다는 것은 이 단순한 질문에 자신 있게 대답해 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진정한 영혼을 찾아내는 일, 최선을 다해 살면서 아름다운 꽃 한 송이를 오롯이 피워내는 일, 그것이 바로 브랜딩이다.

브랜딩과 마케팅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접근 방법에 대한 패러다임이 다를 뿐이다. 마케팅이 고객들과 수요를 향한 '다가가기'라면, 브랜딩은 자신에게 '끌어들이기'이다. '총'과 '꽃'의 비유로 생각해보면 쉽다. 마케팅이 사냥할 목표물를 찾고, 그 타겟을 향해 총을 쏘는 행위라면, 브랜딩은 정원을 가꾸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 향기로 유혹하는 행위이다.

위대한 브랜드는 매력적인 영혼, 그리고 진실한 커뮤니케이션에서 시작된다.

#2. 커뮤니케이션 (Communication)



커뮤니케이션이란 A에서 B로 향하는 일방적인 행위가 아니다. A와 B 사이, 접점을 찾아내고, 서로의 공통점에서 시작해서 점차 이해의 범위를 넓혀 나가는 과정이다. 어린 왕자와 사막 여우가 매일 오후 4시에 만나 서로에게 길들여져 가듯이, 그렇게 조금씩 스며들어가는 것이다.

아무리 내가 그에게 주고 싶은 것이 많다 하여도, 그가 갖고 있지도, 갖고 싶지도 않은 생각을 억지로 집어넣을 수는 없다. 커뮤니케이션의 시작은 공감이다. 그 미묘한 접점을 찾아내어야 다른 사람의 마음 속으로 무찔러 들어갈 수 있다.

손을 잡고 걷는다. 손을 잡을 수 없을 만큼 앞서거나, 뒤서지 않고, 손을 꼭 잡고 걷는다.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완전히 서로를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서로의 손과 손이 맞닿아 있는 따뜻한 그 곳, 그 접점에서 모든 이야기는 시작된다. 잔잔한 수면에 빗방울이 떨어지듯, 작은 물결이 퍼져 나가듯, 서로의 진동과 진동이 한데 어울려 새로운 파동을 만들어 내 듯…

그런데 아직 아마추어인 내겐 미묘한 그 지점을 찾아내는 일이 참 어렵다. 처음으로 손을 잡는 그 순간처럼, 어찌 보면 흐르는 강물에 돌멩이를 던지는 하나 툭 던지는 일일 뿐인, 바로 그 마법 같은 순간을 찾아내는 일.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은 말한다. “결정적 순간을 찾는다는 것은 너무 이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제때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에 안셀 아담스는 격언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러나 “완벽은 선의 적이다.”

#3. 기획 (Planning)



기획이란 단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의미 없는 풍경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일이다. 죽어 있는 것을 파닥파닥 살아 움직이게 하는 일이다. 초점 없는 마음에 한 줄기 빛을 비추어 주는 일이다. 기획이란 이미 놓여 있지만 보이지 않는 헝클어진 마음 속의 그 길을 찾는 일이다.

미셸 공드리의 ‘이터널 선샤인’이란 영화가 생각난다. 쓸쓸한 풍경 속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에 빠지고, 영원과 같은 행복한 순간을 함께 하지만, 다투고, 헤어지고, 아파하다, 상처를 잊기 위해 자신의 기억을 몽땅 지워보지만, 또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되는 영원한 사랑, 혹은 단순한 결론에 대한 이야기.

어찌 보면 산다는 것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처럼 그렇게 단순한 일인데, 그 단순한 길이 가끔 참 아득해 보일 때가 있다. 어렵게 보일 때가 있다. 안개 속을 걷는 막막한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을 믿는 것이다. 자신을 믿고, 허공 속에 첫 발을 내딛는 것이다. 길은 바로 그 곳에 있다. “꿈꾸고, 창조하고, 탐색하고, 발명하고, 도전하고, 상상해라.” 끊임없이 실행하고, 또 다시 시작해라.

기획이란 핵심을 파악하고, 서로 다른 것을 연결하고, 실행하는 행위이다. 무엇보다, 사람과 브랜드의 영혼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4. 전략 (Strategy)



전략은 결코 복잡한 것이 아니다. 전략은 내가 원하는 그 곳으로 가기 위해 어떤 방법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미래를 위해 그 순간의 최선의 길을 선택하는 어찌 보면 아주 단순한 문제이다.

그렇게 단순한 일인데, 다른 사람과의 경쟁을 생각하다 보면, 이런 저런 여러 가지의 변수들을 고려하다 보면,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을 생각하게 되고, 지금 이 순간의 과정이 아닌 나중의 결과를 생각하게 되면서 차츰 ‘핵심’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게 된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된다.

그러나 잭 웰치의 말처럼 전략은 "자원 배분"의 문제일 뿐이다. ‘경쟁하는 방법에 대한 분명한 선택을 내리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라. 자신의 강점을 찾아, 그것에 집중해라. 완벽에 가까워질 때까지 갈고 다듬어라.

가장 훌륭한 전략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다. 일반적인 경쟁의 범위을 뛰어넘어, 어랏, 하는 사이에 이미 상대방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 꼼짝달싹 못하게 묶어 놓는 것, 하염없이 먼 산을 바라보게 하는 것, 그것이 멋진 전략이다.

그러기 위해선 그 누구도 아닌, 자신 자신만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목표를 향해 가야 한다.

#5. 에필로그



내가 하는 일은 그리 복잡한 게 아니다. 아주 단순한 일이다. 결국, 모든 것은 ‘인간의 영혼’에 관한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서로의 영혼과 영혼이 만나는 아름다운 순간을 창조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선 우선 자신의 영혼을 구해야 한다. 내 자신을 찾아야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있다.

이제 어둠이 짙게 내린 길 위에서 나는 내게 묻는다. “만일 행함이 없다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민들이 대체 무슨 소용인가?”

“너는 다른 사람들을 유혹할 수 있는 자신만의 향기를 품고 있느냐? 그들에게 네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따뜻한 손을 가지고 있느냐?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한 길을 보게 해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기획을 하고 있느냐? 그 누구도 아닌 자신만이, 잘 할 수 있는 그 길을 가고 있느냐? 무엇보다 온 힘을 다해,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고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게 묻는다. “내 영혼은 아직 나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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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
2007.09.03 11:31:14 *.128.229.230
도윤아, 너는 다른 사람을 유혹할 수 있는 '찢어진 셔츠 사이의 등판'을 가지고 있다. 유혹이 네 등을 생각나게 하는구나. 유혹은 곧 파격의 노출이다. 그것은 불현듯 코 속으로 스미는 향기며, 물결치는 음율이며, 눈부신 자태다. 속의 것이 밖으로 터져 나올 때만 가능한 것이다. 등판을 가리고 있던 셔츠가 찢어져 그 사이로 속살이 보여야 문득 깨닫게 되는 무찌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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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yon
2007.09.03 11:53:33 *.225.9.56
그림이 밀려들어와, 글을 다시 보았습니다.
공감과 새로운 시각은 항상 마음을 설레이게 합니다.
차가운 공기를 느끼며 콩닥콩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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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9.03 13:06:34 *.244.218.10
도윤이 그린 건가..

그림과 함께 다시 음미해 볼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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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09.03 14:51:16 *.249.162.56
리욘님, 그리고 호정 누나, 그림이 아니라 낙서라서... 음미하기에는 많이 부끄럽습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게 나을 것 같아서..^^

사부님의 말씀은 좀 더 깊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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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09.03 16:01:19 *.73.2.44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을 생각하게 되고, 지금 이 순간의 과정이 아닌 나중의 결과를 생각하게 되면서 차츰 ‘핵심’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많게 된다.'

순간 움찔 했어.
전에 나의글에 가슴이 철렁해서 답글을 못달았다는게 이런거였을까? 너의 글은 나한테 참 의미가 깊다. 왜그런지 나중에 알려줄께..ㅋㅋ..
낙서라고 하기엔 너무나 투명한 그림도 나의 향수를 자극해..

벌써 가을인가 싶은 날씨에
딱 어울리는 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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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9.03 16:32:29 *.218.203.243
형은 개념적 사고에 강하구나. 이런 형이상학적이고 감성이 묻어나는 경영 서적을 써도 참 좋겠다. 놀랬습니다. 이렇게 풀어낼 수 있다니.
그나저나 저 그림들은 형이 그린 거에요? 만약 그렇다면.. 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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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09.04 08:08:40 *.72.153.12
조용한 예술가,나 너의 팬이야. 네가 만들어 내는 세계가 좋아.
너의 세계가 어쩌면 도윤이란 사람보다 더 좋은지도.... 아직은 잘 모르겠어. 네가 그 속에 있기 때문에 그 세계가 좋은 건지...

너의 영혼이 계속 너의 것이고,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의 것이 되고,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세계의 것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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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건재
2007.09.05 10:17:58 *.211.252.178
글과 그림 모두 마음을 사로잡네요.
그림에 더 마음이 갑니다. 기분이 상큼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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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09.05 10:59:31 *.249.162.56
소라누나, 홈페이지 첫머리를 너무 자주 장식하는 거 아닌감? 축하^^
의미가 깊은 이유는 오늘 알려주는건가~

승오야, 웬 오두방정이냐^^ 나는 네가 훨씬 대단해보이는구만!

정화누나, 이러다 우리 모두 서로의 팬이 되는 건 아닌지... 책을 쓰면 우리끼리 돌려보고 마는지도 모르겠네^^ 땡큐!

유건재님, 저는 글에 훨씬 많은 노력을 들였는데.. 시간으로 본다면 한 90:10 정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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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6 14:55:28 *.37.251.50
아주 멋지네요!

쓰신 글과 그림을 '영혼과 아름다움'에 대한 테마로 읽었는데,
공연히......... 제 젊은 날의 기억과 오늘의 방황과 연결됩니다. T.T

집으로 가는 길,,,,그 길가에 서있거나 걷고 있는 사람들은 언제나 불안하며 혼돈입니다. 지도를 보며 걸어도 충만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내 영혼의 집을 향한 발걸음을 중단하지 않으며 순간순간 관찰하고 기록합니다. 스스로의 기억을 잊지 않기 위해서.

늘 떠나는 사람들의 영혼은 아직 집을 짓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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