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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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스민 문학] - 남북정상회담의 무거움
- 반디, <고발>
지난 주에 있었던 일 중에 한 가지를 꼽으라면 당연히 ‘남북정상회담’을 꼽을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굳이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인상적인 장면을 많이 남긴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두 지도자가 악수를 한 뒤, 두 손을 맞잡고 잠시 남한 경계선을 넘고, 북한 경계선을 넘는 장면, 그리고 파란색 다리 위에서 마이크 없이 단 두 명만이 공개된 밀담(?)을 나누는 장면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런 연출이 가능했던 것은 통역이 필요 없는 ‘같은 언어’를 쓰는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찡해졌습니다. 서로 약간의 악센트가 다르더라도 같은 문자를 쓰고, 같은 말을 하는 민족과 언제든 이야기 할 수 있기에 그 감동은 두 배가 되었습니다.
얼마 전 저는 ‘반디’라는 필명을 쓰는 북한 작가의 소설집 <고발>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책은 2014년에 발간 되었을 당시에는 별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영문으로 번역한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을 한 작품이 영국의 <PEN> 번역상을 받으면서 다시 주목을 받게 된 작품입니다. 영국을 중심으로 프랑스에서는 더 주목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인터넷 기사를 찾아보니, 프랑스어판 출간 이후 프랑스 언론들은 “북한의 솔제니친이 등장했다”며 집중 조명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 작품은 솔제니친이 처했던 상황과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자국의 정치체제에 반대했고, 국내 출간을 할 수 없어서 외국으로 원고를 내보내는 상황이 그렇습니다. 이 작품을 쓴 ‘반디’는 현재 북한에 거주하는 1950년생 남성이고, 조선작가동맹 소속 작가라고 합니다. 이 책을 읽어보면 실제로 그의 작품 속에 외부 세계에 대한 지식이 상당히 많이 담겨져 있는 것에 놀라게 됩니다. 아마도 작가라서 북한 외부의 책을 많이 읽은 듯합니다. 그는 원래 북한의 체제에 충실한 사람이었다가 1990년대 대기근을 보고 북한 체제에 혐오를 느낀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작가의 사촌이 탈북한 뒤 중국인 친구에게 부탁해 북한 들어가는 길에 원고를 받아오도록 해서 겨우 우리나라에서 출간이 되었다고 합니다.
실제로 그의 작품들이 직선적인 반체제 작품이 아닌 것에 놀라게 됩니다. 매우 문학적입니다. 작품 속에는 연좌제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가족, 여행의 자유가 없어 어머니 임종도 못하는 아들, 마르크스와 김정일 초상화를 보고 경기를 일으키는 세 살배기 아기 때문에 추방당하는 엄마 등이 등장합니다. <고발> 속 7편의 단편 하나하나가 북한 주민들의 현실을 절실하게 보여주는데, 상당히 정교하게 짜여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무엇보다 현재 북한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참 귀중한 책입니다. 거대한 행사를 대하는 한 개인의 마음이 어떤지, 누구에게나 보편화된 가난에 한 개인은 어떻게 느끼는지, 자유를 억압당하는 사회에서도 본인이 자유를 향해 숨 쉴 구멍을 만드는 일, 한 사회가 개인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지,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이 책의 마지막을 읽고 나면 도대체 상상할 수 없는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삶을 이끌어나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목숨 걸고 세계에 전한 용감한 반디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남북이 하나 되는 이 시대에 조금 무거운 책을 읽게 되어 마음이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문학을 통해 북한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친 것은 하나의 성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발>이라는 책은 북한 사람들의 아우성을 온몸으로 전하는 작품이었습니다. 자- 이번 주에 북한 작가가 쓴 <고발> 한번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정재엽 (j.chung@hanmail.net)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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