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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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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4일 09시 13분 등록

딱 3가지만 적어봐.


"언제, 어떻게 결혼을 결심하셨어요?”


“결혼은 해야겠는데, 지금 이 사람이 맞는지 확신이 안 들어요.”


가끔 결혼과 애인에 대한 조언을 할 일이 생긴다. 결혼해서 잘 살고 있는 선배로 보인 결과라 생각하면 자화자찬일 터이고 어느새 결혼한 지 십년이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아직 임자를 만나지 못해 외로워하는 그들에게 내가 물어보는 것은 주로 한 가지이다.“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어?”어떤 이는 정말 수도 없는 조건을 주워 담는다. 우리가 흔히 듣고 보는 ‘리스트’이다. 키, 외모, 직업, 성격, 부모형제... 나는 다 듣지도 않고 한마디로 다시 묻는다.


“너무 많지 않아? 딱 세 가지만 말해봐”


한번은 원하는 배우자에 대한 50가지 목록을 놓고 기도했더니 정말 딱 맞는 사람을 보내주셨다는 사람을 만나적도 있기는 하다. 뭐, 대단하다고 할 수 밖에. 그는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의 사람이다. 반대로 평범한 사람이면 좋겠다는 평범한 대답도 있다. 가끔은 그냥 나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대답도 있었다. 내 대답은 동일하다.


“배우자에게 원하는 딱 세 가지만 정해. 그러면 놀랍게도 그에 딱 맞는 사람이 나타나. 보증할게.”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랑 결혼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도 거의 비슷한 대답이다.


“네가 결혼할 배우자한테 정말 원하는 세 가지를 먼저 적어봐. 그리고 솔직하게 그 사람의 장점 세 가지를 적어봐. 몇 가지가 겹쳐?”


구체적인 증거를 대기는 어렵지만 꽤 많은 인연들을 엮어주기도 했던 상당히 신뢰성 높은 방법이다.   



왠지 시시해 보였던 초등학교 선생님 형부


첫 번째 사례는 바로 나였다. 내가 대학생 때, 언니는 돌연 같은 선생님과 결혼하겠다고 선언했다. 지금이야 생각이 많이 달라지셨지만 큰 딸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던 엄마는 절대 안 된다며 언니와 말도 하지 않으셨다. 언니를 가장 속상하게 했던 엄마의 반대는 큰 딸이 시집을 잘 가야 동생들도 잘된다는 말이었다. 평소 온화하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편이었으나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의외로 강단이 있었던 언니는 결혼에 대해서는 아주 완강했다. 물론 힘든 세상을 살아오신 엄마도 절대 지지 않으셨다. 난 두 사람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엄마의 생각에 더 동의했다. 나의 기준이 없이 세상의 잣대를 따르던 그 때, 초등학교 선생님인 형부는 왠지 시시해 보였던 것이다.


엄마와 언니의 냉전이 지속되던 어느 날 밤, 언니와 나란히 누운 나는 정말 궁금해서 물었다. 왜 형부와 결혼하고 싶으냐고, 또 결혼 후에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언니는 자신이 꿈꾸는 내일의 모습을 이야기했다. 사회적 성공도, 출세도 싫고, 가족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과 시간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살고 싶다고 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날 밤 이불 속에서 아마 우리 자매는 철들고 최고로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때로는 울면서, 때로는 웃으며 어린 시절 싸웠던 기억부터 아버지와 엄마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러면서 나는 언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또 언니가 그리는 가정의 모습, 만들고 싶은 가족의 모습도 아주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막연하게 그리던 배우자와 결혼이 언니에게는 다른 의미와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인정하게 되었다.


그날부터 나는 언니 편이 되었다. 시간이 좀 필요했지만 자매의 설득에 결국 엄마는 결혼을 승낙하셨다. 지금도 언니는 스스로 이야기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며 주위를 작은 행복으로 채우며 살고 있다. 언니의 파란만장했던 결혼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결혼하지 않겠다고 장담하던 아주 짧은 세월을 보내고 곧 결혼과 배우자에 대해 꽤 심도 있는 고민을 시작했는데 차츰 내 배우자가 될 사람이 '최소한’ 갖추어야 하는 자격요건의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



나를 들여다보면 이상형이 보인다


신기한 것은 내가 시작한 질문은 ‘어떤 배우자를 원하는가?’였는데, 내가 점차 알게 된 것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그리고 ‘내가 중요시하는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이었다. 성실하지만 답답하지 않고 꾸준하지만 융통성이 있으며 자신의 신념이 있지만 동시에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 내가 배우자에게 바라던 이런 모습은 바로 내가 되고 싶은, 나의 부족함을 십분 반영한 나의 바람이었다.


지적이면서도 편협하지 않고 나이 들어서도 함께 이야기할 사람을 원하는, 약간은 허영심도 섞였던 기대는, 평생 배우고 알아가는 기쁨을 함께 누리며 서로의 성장을 나누고 싶다는 바람이 담겨 있었다. 돈이 많을 필요도 없고 기댈 곳이 없어도 좋지만 돈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 그러나 돈보다 소중한 것이 있는 사람, 돈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많음을 알지만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것이 더 많음을 아는 사람을 원한 내 조건은 그렇게 살고 싶다는 내 바람과 내 생각의 표현일 뿐이었다. 또한 이런 나의 생각과 기대들은 어느 날 뜬금없이 생겨난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과 환경 속에서 내 안에 품었던 세월과 나 자신의 기질이 섞이며 오랫동안 뿌리내린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난 결혼을 생각하면서 나를 알아갔고 또 내가 꿈꾸는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내 생각과 기대가 정리되면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내 눈과 마음에 들어오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이, 새로 만나는 많은 남자들 중에서 갑자기 새롭게 알게 되는 사람이 생겼고, 더 알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내 안경을 닦고서야 내 사람을 알아본 것이다. 이 사람은 이래서 좋고, 저 사람은 저래서 좋던, 때로는 이 사람은 이래서 싫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던 변덕스럽던 마음이 하나로 모이고, 단 한 명의 사람만을 보게 된 것이다. 가끔 둘 중 누가 먼저 좋아했냐는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사람 앞에서는 왠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말이지만, 사실은 내가 그를 먼저 알아보고 열심히 꽃향기를 날려 보낸 것이 아닐까 혼자 생각한다.


하긴 내 주변에는 만난 지 하루 만에 결혼을 결정해서 아주 잘살고 있는 용감한 처자도 있다. 이들은 직관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채고 또 타인에게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탁월한 촉수를 가진 사람들이니 다만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니 이렇게 이것저것 따지고 살펴보는 방법은 나처럼 소심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방법일 것이다.



내가 남편을 선택한 세 가지 이유


난 아직도 내가 남편을 선택한 세 가지 이유를 기억하고 있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 건강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어서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교에 다녔지만 돈 앞에서 위축되지 않았다. 새벽청과물시장에서 수박을 나르고 지방 공장에서 페인트칠을 하면서도 아름다운 꽃 한 송이에 감탄할 정서가 있었고 따르는 후배들에게 시장에서나마 밥을 사줄 마음의 여유가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술자리에서는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고정멤버였지만 술 취한 선후배들을 챙겨줄 절제가 있었다. 힘든 자격증 공부를 하며 도서관에 붙어살면서도 매일매일 자판기 아르바이트를 책임질 만큼 인내와 책임감이 있었다. 


2년이 넘는 연애기간 동안 뜨거운 열정도 있었지만 다툼도 있었고 정체기도 있었다. 눈에 콩깍지를 쓰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가 마냥 좋았던 기간에도 나는 사랑과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에게 나의 이상형과 사랑과 결혼에 대한 나의 꿈을 투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챈 순간, 사랑의 미혹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이상형으로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그 사람을 바라보려 노력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나는 그의 진가를 알아볼 만큼 성숙해 있었다. 그와 그리는 사랑과 결혼과 가정의 모습이 나와 많은 부분 일치하는 것을 알게 되면서 우리가 현실적으로 훌륭한 팀이 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동시에 나는 그 앞에서 더 멋지고 성숙한 인간이 되고 싶은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를 존경하고 싶은 만큼 그에게서 존경을 받고 싶었고 나의 모든 것을 이해받고 싶은 만큼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이해하고 싶었다. 평생 동안 배우자를 알아가며 존경하고 사랑하고 싶은 것이 결혼에 대한 나의 가장 큰 소망이라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다. 나는 사랑에 빠져 있었지만 동시에 진짜 성숙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와의 결혼을 결정했다.


가끔 그가 턱없이 나를 분노케 하는 경우, 또는 그를 둘러싼 구구절절한 상황들이 나를 기막히게 하는 경우 가만히 내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내가 결혼을 결정했던 그 이유를 다시 떠올려 본다. 참으로 다행인 것이 그의 본질은 바뀌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그의 모습이 나를 미치게 할 때도 난 그것이 내가 그를 선택한 첫 번째 이유임을 떠올린다. 그래서 다시 예쁜 아내로 돌아갈 힘을 얻는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데이빗 비스콧(David Viscott)의 말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방법은 제대로 된 사람과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이 자신이 누군지 정확히 알 때까지는 제대로 맞는 사람과 시작할 수 없다. 당신 자신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갖기 전에는 자신의 정체성이나 인생의 선택에 대한 완벽한 신뢰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당신은 자기평가의 결여를 보충하기 위해 관계를 이용하게 된다. 당신은 기분 좋으려고 관계에 의존하게 되고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면 그것에 덜 의존하게 된다. 자신을 발견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자신의 인생을 맡기지 않는다.”



                                                                   2012년 1월 28일


                                                     --  이선형(변화경영연구소 6기 연구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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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주로 읽는 아름다운 동화 이야기의 끝은 거의 동일합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더군다나 정말 어렵사리 자신의 이상형을 만났다 할지라도, 그래서 우여곡절 끝에 결혼에 골인했다 할지라도 평생 함께해야 하는 결혼생활은 녹록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자신을 잘 모른다는 것, 그래서 제대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상대를 사랑하기도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에 대한 여유와 이해, 존경과 배려가 저절로 배어져 나와야 하는데, 이는 스스로를 사랑하는 힘에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저지르게 되는 실수 중에 하나가 '당신이 나를 위해 이러저러한 것을 해 줄 때'에야 비로소 상대가 나를 사랑한다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조건이 붙는 거죠. 이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저 관계일 뿐입니다. 조건이 빠지게 되면 아무 것도 남는 게 없기 때문이죠.


결혼은 두 사람이 함께 인생이란 긴 여정을 걷는 일입니다. 힘들면 서로 부축해주고, 다독여줘야 합니다. 자신이 더 힘들다고 무조건 자신만 돌봐달라 요구하게 되면 여정은 엉망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먼저 스스로를 돌볼 힘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에 대한 믿음, 사랑이 충만할 때야 비로소 우리는 상대에게 어깨를, 손을, 등을 내밀 수 있는 겁니다. 두 사람이 이런 같은 생각을 가지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을 때, 오랫동안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며 걸어갈 수 있는 아름다운 인생 여정이 될 것입니다. 





차칸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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