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海瀞 오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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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눈을 감아주는 버릇
몽골 다녀온 지도 이제 딱 2주가 지나, 어느덧 우리는 휴대폰 벨 소리에 또다시 익숙해지고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져 나오는 물로 아무렇지도 않게 샤워를 하고 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기에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일진대, 나의 체취의 일부였던 몽골의 초원내음이 전부 다 씻겨 내려가고 없어지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 아닌 걱정도 든다. 숱하게 많은 찬란한 기억들이 그저 하나의 어렴풋한 느낌만으로 가슴에 남아 있는 그 기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이번에는 사진으로 그 증거를 남겼건만, 그것도 내가 다시 꺼내보지 않으면 그만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걱정을 하다 보면 참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언젠가는 꼭 해결책을 찾게 되고 만다는 것. 그것도 한참 동떨어진 곳에서 무심코 발견하게 되는 무엇으로부터.
얼마 전 다녀 온 ‘어둠 속의 대화’ (Dialogue in the Dark)라는 전시회에서 나는 또다시 몽골을 여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들의 일상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이 전시회는 ‘익숙하지만 낯선 것들에 대한 재발견’이자 ‘나와 너의 가장 솔직한 대화’였다.
전시회실로 입장하기 전, 우리 손에는 케인(cane; 지팡이)이 쥐어졌고 다소 긴장된 마음을 부여잡은 채 어둠 속으로 세 개의 발을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누군가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창문이 열린다’ (When the door is closed, somewhere opens a window)고 했던가. ‘눈’을 닫으니, ‘코’가 열렸고. ‘눈’을 닫으니 ‘귀’가 열렸다. 눈을 껌벅거려도 보이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새까만 도화지만이 나를 엄습해 오고 있었다.
이 눈 껌벅거림의 본능이 완전히 무의미해지는 순간, 이 순간이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서 봤더라? 마치 데자뷰(Déjà vu)의 한 장면이라도 찾듯 그렇게 나의 기억체계는 몽골의 고요함을 다시금 불러내고 있었다.
전시회실 내부에 작은 공원을 만들어 놓았기에 우리는 어둠 속 공원 벤치에 앉아 고개를 젖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긋이 감은 두 눈으로 우리가 본 것은 다름 아닌 몽골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이었다. 내 소원을 담아 떨어트려 보냈던 바로 그 별똥별이 또다시 보인다. 그리고는 속으로 살며시 말을 걸어 본다.
“그래, 내 소원은 이루어질 것 같니?” 라고.
전시회 홍보물에 적힌 문구를 잠깐 인용해 본다.
“사람은 기억으로도 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새까만 공간 속에서…… 오늘에서야 난 진정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가끔씩 눈을 감아주는 버릇. 눈을 감으면 몽골의 고요함이 들리고, 몽골의 고요한 내음이 맡아지고, 몽골의 거친 땅이 만져지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나의 기억체계나 사진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아예 몽골을 내 몸의 일부로 가져와 내 마음대로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게 된 셈이니까.
우리는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에 신경을 쓰고, 너무 많은 것에 연연해 한다. 하루에 한 번씩 눈을 감고 이 세상이 살아 숨쉬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다. 어쩌면 우리에게 들리는 소리들은 아파 죽겠다며 신음하는 소리일 수도 있겠고, 숨통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인 처절한 외침일 수도 있겠다.
아마도 아니타 로딕은 세상이 끙끙 앓는 소리를 들어 본 사람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시장에서 소비자로서의 우리들은 완성된 제품을 앞에 놓고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며 어떤 유익을 주는지에만 관심을 집중시키지만, 그녀는 그 상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보이지 않는 과정을 해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달콤한 쵸코릿을 먹으며 쵸코릿의 원료가 되는 코코아를 추출해 내기 위해 사용되는 노동력이 제3세계의 아동 착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았기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에 대한 자각이 누구보다 남달랐던 그녀이다. 우리도 보이는 것 그 이상을 볼 줄 아는 연습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싶다.
새로운 버릇 하나쯤 만드는 것도 변화경영의 일부일테니까.
IP *.6.5.224
몽골 다녀온 지도 이제 딱 2주가 지나, 어느덧 우리는 휴대폰 벨 소리에 또다시 익숙해지고 수도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져 나오는 물로 아무렇지도 않게 샤워를 하고 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했기에 어쩌면 지극히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현상일진대, 나의 체취의 일부였던 몽골의 초원내음이 전부 다 씻겨 내려가고 없어지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 아닌 걱정도 든다. 숱하게 많은 찬란한 기억들이 그저 하나의 어렴풋한 느낌만으로 가슴에 남아 있는 그 기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이번에는 사진으로 그 증거를 남겼건만, 그것도 내가 다시 꺼내보지 않으면 그만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사람이 걱정을 하다 보면 참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언젠가는 꼭 해결책을 찾게 되고 만다는 것. 그것도 한참 동떨어진 곳에서 무심코 발견하게 되는 무엇으로부터.
얼마 전 다녀 온 ‘어둠 속의 대화’ (Dialogue in the Dark)라는 전시회에서 나는 또다시 몽골을 여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들의 일상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이 전시회는 ‘익숙하지만 낯선 것들에 대한 재발견’이자 ‘나와 너의 가장 솔직한 대화’였다.
전시회실로 입장하기 전, 우리 손에는 케인(cane; 지팡이)이 쥐어졌고 다소 긴장된 마음을 부여잡은 채 어둠 속으로 세 개의 발을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누군가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창문이 열린다’ (When the door is closed, somewhere opens a window)고 했던가. ‘눈’을 닫으니, ‘코’가 열렸고. ‘눈’을 닫으니 ‘귀’가 열렸다. 눈을 껌벅거려도 보이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새까만 도화지만이 나를 엄습해 오고 있었다.
이 눈 껌벅거림의 본능이 완전히 무의미해지는 순간, 이 순간이 낯설지가 않았다. 어디서 봤더라? 마치 데자뷰(Déjà vu)의 한 장면이라도 찾듯 그렇게 나의 기억체계는 몽골의 고요함을 다시금 불러내고 있었다.
전시회실 내부에 작은 공원을 만들어 놓았기에 우리는 어둠 속 공원 벤치에 앉아 고개를 젖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긋이 감은 두 눈으로 우리가 본 것은 다름 아닌 몽골 밤하늘의 쏟아지는 별들이었다. 내 소원을 담아 떨어트려 보냈던 바로 그 별똥별이 또다시 보인다. 그리고는 속으로 살며시 말을 걸어 본다.
“그래, 내 소원은 이루어질 것 같니?” 라고.
전시회 홍보물에 적힌 문구를 잠깐 인용해 본다.
“사람은 기억으로도 상상으로도 볼 수 있다.
새까만 공간 속에서…… 오늘에서야 난 진정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나에게는 새로운 버릇이 생겼다. 가끔씩 눈을 감아주는 버릇. 눈을 감으면 몽골의 고요함이 들리고, 몽골의 고요한 내음이 맡아지고, 몽골의 거친 땅이 만져지기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나의 기억체계나 사진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아예 몽골을 내 몸의 일부로 가져와 내 마음대로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게 된 셈이니까.
우리는 살면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너무 많은 것에 신경을 쓰고, 너무 많은 것에 연연해 한다. 하루에 한 번씩 눈을 감고 이 세상이 살아 숨쉬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싶다. 어쩌면 우리에게 들리는 소리들은 아파 죽겠다며 신음하는 소리일 수도 있겠고, 숨통이 끊어지기 일보 직전인 처절한 외침일 수도 있겠다.
아마도 아니타 로딕은 세상이 끙끙 앓는 소리를 들어 본 사람 중 한 명이 아니었을까. 시장에서 소비자로서의 우리들은 완성된 제품을 앞에 놓고 그것이 어떤 기능을 하며 어떤 유익을 주는지에만 관심을 집중시키지만, 그녀는 그 상품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보이지 않는 과정을 해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통은 달콤한 쵸코릿을 먹으며 쵸코릿의 원료가 되는 코코아를 추출해 내기 위해 사용되는 노동력이 제3세계의 아동 착취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줄 알았기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에 대한 자각이 누구보다 남달랐던 그녀이다. 우리도 보이는 것 그 이상을 볼 줄 아는 연습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듯 싶다.
새로운 버릇 하나쯤 만드는 것도 변화경영의 일부일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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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여해 오라버니... 걱정해주셔서 고마워요. 요즘 신경 쓸 일들이 부쩍
늘어나는 바람에 제 페이스 찾기 위한 적응 기간이랍니다 ^^;;
Deadline 때문에 질 낮은 글 올리기보단 그냥 시간을 충분히 갖되
제대로 된 글을 올리자 싶어서 그랬죠. 조금 지나면 다시 제 페이스
되찾을거에요 ^^
현운오빠... 내가 또 비빔밥을 엄청 좋아하잖아? 양푼이 비빔밥
먹으러 낼 북한산도 가고 싶은데 과연 이번주를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살짝 걱정되어 가겠다는 확플을 못 달고 있음 ㅜ.ㅜ
그리고 기회 되면 그 전시회 꼭 가봐~ 많은 생각을 하게 함^^
늘어나는 바람에 제 페이스 찾기 위한 적응 기간이랍니다 ^^;;
Deadline 때문에 질 낮은 글 올리기보단 그냥 시간을 충분히 갖되
제대로 된 글을 올리자 싶어서 그랬죠. 조금 지나면 다시 제 페이스
되찾을거에요 ^^
현운오빠... 내가 또 비빔밥을 엄청 좋아하잖아? 양푼이 비빔밥
먹으러 낼 북한산도 가고 싶은데 과연 이번주를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살짝 걱정되어 가겠다는 확플을 못 달고 있음 ㅜ.ㅜ
그리고 기회 되면 그 전시회 꼭 가봐~ 많은 생각을 하게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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