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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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스민 문학] 마음편지의 무거움
안녕하세요? 마음편지 여러분.
지난주에 저는 미국 워싱턴 DC로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사실 지난 주 마음편지도 출장 중에 보낸 것인데, 출장 중에 계속 들어오는 이메일에 잠시 놀랐습니다. 다름 아닌, 지난주 제가 띄웠던 마음편지 내용에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지난주에 저는 ‘반디’라는 필명을 쓰고 있는 북한 작가의 소설집 <고발>에 대한 내용을 담았습니다.제목은 ‘남북정상회담의 무거움’이었고요. 어떤 분께서는 남북정상회담의 긍정적인 반응에 비해 지나치게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책을 굳이 지금 소개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분께서는 북한의 참상을 알려주는 내용이 ‘남북정상회담’으로 인해서 그 책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그저 ‘정치적’으로 이용당할 수 있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한 분은 문학을 이야기하는 칼럼에서 왜 굳이 ‘정치’를 이야기하느냐고 강하게 꾸짖으시기도 하셨답니다. 어쨌거나, 대부분 보내주신 편지의 내용은 이 책의 무거운 내용을 소개하는 것이 부적절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런 열화(?) 같은 반응에 지난주에 보낸 편지를 다시 읽어보니 조금 불편하게 읽으실 부분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제목부터가 ‘남북정상회담의 무거움’ 이라 남북정상회담에 제가 반대하는 입장인 것으로 생각하신 분들이 계셨고요. 관심을 가져주신 마음편지 가족 여러분들께 일차적으로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으면서도, 음음- 그렇다고 이렇게 심하게 말씀하실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연일 터지는 핵실험 소식에 ‘이러다 전쟁 나는 것 아냐?’ 라는 생각이 든 것이 바로 1년 전인데, 갑자기 ‘평화’의 모드로 전환된 남북정상회담에 찬물을 끼얹듯이 그저 ‘제가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북한 작가를 연결시킨 것이 무리였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문학과 삶을 연결시키려는 저의 작은 노력이 더 없이 덧없게 느껴지기도 하고, 더 잘 쓸 순 없었을까, 라는 자책도 해보았습니다. 더군다나 13시간이 넘게 걸리는 지구 반대편까지 가는 내내 기내에서 불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서 마음편지를 그만 쓸까, 라는 생각도 잠시 해보았습니다.
공식 일정을 다 마치고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던 백악관을 보러가니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습니다.핸드폰으로 신문 기사를 보니 한미정상회담 일정과 북미정상회담 일시 조율로 막판까지 미국과 북한이 정신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이런 내용을 담는 것인지, 방송기자들이 백악관을 배경으로 뉴스를 찍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돌아가는 정치 일번지의 일들이 제가 방문한 바로 이곳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이참에 소설 <고발>을 다시 읽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복잡한 심정으로 이메일을 열어보고, 백악관 근처를 걸어보고, 핸드폰의 기사를 검색해 보았습니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긴박감과 짧은 호흡의 뉴스가 실시간으로 오가는 외교 무대와, 긴 호흡으로 여운을 남기는 문학은 과연 공존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오는 비행기내에서도 저는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가지고 간 몇 권의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삶을 예술로 색칠하는 저의 노력들이 오히려 여러분에게 불편함을 준 것은 아닌가 자꾸 회의감이 들었습니다. 이 편지를 쓰기 위해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확인하니 또 한 통이 와 있었습니다. 저는 무거운 마음으로 이메일을 열어 보았습니다. 내용은 이랬습니다.
“안녕하세요? 평소에 북한 작가들을 만나볼 기회가 없었는데, 보내주신 마음편지로 인해 북한 작가를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편지를 받은 날 <고발>을 바로 주문을 하고, 며칠 놓아두었다가 그저께 읽기 시작해서 어제 다 읽었습니다. 저는 북한을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편지에서 언급하신 영문판도 주문했답니다. 얼마나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한번 도전해보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이런 반전이! 시간도 절묘하게 마음편지를 쓰기 바로 직전에 받다니요. 보내주시는 편지 한통에 웃다가 울다가 하는 저의 모습을 보며, 다시한번 미소를 지어봅니다. 저는 다음 주에도 기운 펄펄나는 모습으로 뵙겠습니다!
정재엽 (j.chung@hanmail.net)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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