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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일연, 고운기, 현암사)
1. ‘저자에 대하여’
◆ 저자를 위대함에 이르게 한 7가지의 길
1. 우연이 운명이 되다 (터닝포인트)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은 우리가 되어야 한다
최충헌을 비롯한 무신의 무리가 반란을 일으키고 정권을 잡은 것이 100년이 다 되어 가고 있다. 또한 송나라가 멸망하고 원이 들어섰다. 하늘의 자손이라며 그렇게 당당하던 한족이 변방의 오랑캐들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영원한 것은 어디에도 없음을 깨닫는 순간 퍼뜩 감은 눈을 떴다. '우리도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저 변방에 말 타고, 말을 키우던 무리들도 세상에 중심에 우뚝 섰는데 우리라고 안 될게 무엇이 있겠는가? 또한 그처럼 당당하다던 한족의 시조가 신이 했는데, 우리 삼국의 시조가 신이한 데서 출발했음이 무엇이 괴이한 일이랴?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내가 앞으로 쓰게 될 우리가 주인공인 이야기는 필히 후대의 귀감이 될 것이다. 그렇게 마음 속의 울림을 따라 나는 <삼국유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2. 재능이 감응할 때 결코 망설이지 않는다 (천복)
시인, 내 안에 또 다른 나 그리고 기록의 힘
나는 승려다. 구름이나 강물처럼 머물러 살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존재, 운수행각이다. 오랫동안 여러 군데 옮겨 다니는 생활 속에서 나는 남다른 일 하나를 했다. 내가 머문 지역에 전해오는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빠뜨리지 않고 모았다. 나는 내가 중이라 해서 불교적인 데에만 머물지 않았다.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한 것은 시였다. 특히 향가는 천지간 귀신이 감동하기를 한두 번이 아니었을 정도로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한시와 민요도 모두 이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적은 이야기의 맥락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다. 사람살이의 고통이 무엇이며 역사의 바른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 고민했다. 그것은 뜻밖에도 내가 쓴 찬이나, 인용해 놓은 다른 시와 민요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삼국유사>야 말로 이러한 시로 인해 완성되었다. 내가 일찍이 포산에 머물며 그 분들의 남기신 아름다움을 적어 놓았었다. 이제 여기 함께 적는다. 나는 아직 젊은 시절부터, 내가 머문 곳에서 보고 들은 것을 꼼꼼히 기록해 두었다. 이것이 <삼국유사> 찬술의 주재료가 되었다. 그러므로 나의 <삼국유사>는 내가 곳곳에서 머물 때마다 써 둔 기록들의 집합이다.
3. 내가 그린 삶에 대한 뱃심, 결코 물러설 수 없다 (용기)
새로운 질서를 찾아서
새로운 시대상을 창출한다는 명제 앞에서 다른 산문의 경전을 해석하는 일이나 다른 산문의 고승을 스승으로 삼는 일이 무엇이 대수이겠는가. 오히려 거기에 가르침의 본질이 있다면 가서 배워야 하고, 그 업적을 널리 현창 하여야 하는 일이다. 새롭게 서야 할 질서, 그것을 나는 불교 안에서부터 보았다. 혁신적 과업이 눈앞에 보이는 현실에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방편에 불과할 뿐 본질은 아니다. 본질의 문제, 그 앞에서 나는 기존의 방편을 부수었다.
이름마저 바꾸다
나의 개명에는 놀랍고도 중요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내 처음 이름이 견명이었고 불교 이름을 희연이라고 지어 밝음과 어둠을 대조시켰다. 옛 사람들이 이름 다음에 자를 지을 때 흔히 하는 방법이다. 그러다가 만년에는 이 둘 곧 밝음과 어둠을 하나로 보겠다는 뜻에서 새로운 이름에 일자를 넣었다. 밝음이 어둠이요 어둠이 곧 밝음이며, 어둠과 밝음은 종국에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가, 나의 개명 과정에는 숨어 있다.
4. 침묵의 시간, 일만 시간의 레이스를 통과해야 한다 (수련)
깨달음을 향한 길
내 나이 아홉에 어머니 손에 이끌려 광주 무량사로 들어가게 되었고, 열 네 살에 설악산 아래 진전사(陳田寺)로 가서 출가를 했다. 초발심이 곧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고 했던가? 그렇게 정진을 시작한지 여덟 해가 지난 스물 둘 나이에 나는 선과에 급제할 수 있었다. 나는 여러 사찰을 돌며 공부했는데 명성이 대단했다. 같은 도반들은 내가 구산사선의 우두머리가 되리라 예상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영광을 뒤로 하고 비슬산의 보당암으로 자리를 옮겨 마음을 가다듬고 참선에만 몰두하였다.
그로부터 아홉 해가 지난 서른 한 살 때 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 때 나는 원의 지배에 따른 백성들의 고통과 참담한 사회상을 목격했고, 백성들에게 구원과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이 산 속에 들어가 면벽수행을 통해 홀로 깨달음을 얻는 것보다 시급한 문제임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그렇게 산과 세상을 오가며 십 삼 년을 보낸 후인 마흔 네 살에 나의 실천적 정진을 보고 감명을 받은 당시 무신정권 최고 권력자인 최항의 매제인 정안이 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를 정림사의 주지로 추대하였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인 쉰 넷에 나는 대 선사가 되었고, 남해 길상암으로 거처를 옮겨 <중편조동오위>를 저술했다.
그 후 세상을 떠도는 운수행각을 거듭 반복하며 가는 곳마다 백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것을 즐거움 삼아 홀로 정진을 계속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 내 나 일흔 여덟의 어느 날 왕께서 총애하는 장군을 보내와 국사가 되어달라 청하였다. 한사코 사양했지만 왕의 극진함에 감복하여 궁으로 들어가 국존이 되어 왕과 백성을 위로하였다.
5.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존재를 지킬 수 없다 (철학)
어머니 , 나의 어머니
열 아홉 살 아직 꽃 피지 않을 나이에 나 하나를 낳고, 아흔 살 넘어 세상을 마칠 때까지 평생을 혼자 살아오신 어머니, 나의 어머니. <삼국유사> 나오는 홀연히 사라진 아들을 찾고자, 애끓는 마음을 부처님 앞에 가 빌고 비는 어머니는, 다름 아닌 나와 나의 어머니의 대역들이다. 나의 삶이 깊어질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어머니다. 어머니에 대한 나의 향념은 신앙 그 자체였다. 참된 효도가 무엇이겠냐는 나의 질문을 담고 있는 진정의 이야기는, 여덟 살에 어머니 곁을 떠나, 그 어머니가 70년을 홀로 사시도록 이 세상에서는 외롭게만 해 드렸던 내 삶에 대한 답변이었다. 진정은 주먹밥 일곱 덩이 싸주며 호통치듯 자신을 떠나 보낸 어머니의 임종도 보지 못하였다. 진정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소식이 전해오자, 진정은 가부좌한 채 7일 동안 입정하더니 일어났다. 세속의 인연을 가르기란 그렇게도 질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진정처럼 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왕께 지병을 핑계로 군위 인각사로 내려가 평생 그리던 어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6. 스승, 그 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스승)
원효, 우연히 스치는 듯한 만남
세상에는 너무 커서 들리지 않는 것과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내게 있어 원효는 너무 커서 보이지 않는 인물이다. 내게 있어 원효는 학승만으로 폐쇄적인 선승만으로 아닌 모두의 승려, 무엇에도 얽매지 않았던 인간 그 자체였다. 나는 원효와 같은 원융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을 뿐만 아니라, 바로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삶의 모습으로 보였다.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거기서 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이다. 다만 끝내 그 정체를 모르고 지나쳐버리는 경우와 어느 순간 깨닫는 경우로 갈라질 뿐. 무릎을 칠 일, 거기서 애석해 하는 원효, 원효는 내게 그렇게 인간이 되라고 손짓한다.
7. 나 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 (깨달음)
세상에서 가장 고약한 도둑
세상에 제일 가장 고약한 도둑은 바로 자기 몸 안에 있는 여섯 가지 도둑일세
눈 도둑은 보이는 것마다 가지려고 성화를 하지
귀 도둑은 그저 듣기 좋은 소리만 들으려 하네
콧구멍 도둑은 좋은 냄새는 제가 맡으려 하고
혓바닥 도둑은 온갖 거짓말에다 맛난 것만 먹으려 하지
제일 큰 도둑은 훔치고 못된 짓 골라하는 몸뚱이 도둑
마지막 도둑은 생각 도둑
이 놈은 싫다 저놈은 없애야 한다
혼자 화내고 떠들며 난리를 치지
그대들 복 받기를 바라거든
우선 이 여섯 가지 도둑부터 잡으시게나
- <고승열전> 중에서
생계불감(生界不減) 불계부증(佛界不增)
나는 이 가르침을 깨우침으로써 새로운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생계불감(生界不減)'이란 ‘죽는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부처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삶의 세계는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는 뜻이다. '불계부증(佛界不增)'는 ‘부처의 세계는 돌아오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행한 일에 따라 다음 세상에 다시 태어나므로 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삶의 세계나 부처의 세계는 돌고 돌아 어느 쪽이든 줄거나 늘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깨우치자, 세상의 온갖 일이 조금도 꺼릴 것이 없게 되었다.
◆ 저자를 위대함에 이르게 한 7가지의 길
1. 우연이 운명이 되다 (터닝포인트)
일연의 시 한 편 , 첫 눈에 반하다
압록강 봄 깊어 풀 빛 고웁고,
백사장 갈매기 한가히 조는데
홀연히 들리는 노 젖는 솔,
깜짝 놀라 멀리 나네.
어느 곳 고깃배인지,
안개 속에 이른 손님
372년 전진의 승려 순도가, 374년 진의 승려 아도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이야기를 적고 나서 일연이 쓴 찬. 시는 순도가 고구려에 불교를 전하려 어느 철에 어디를 통해서 왔는지를 상상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나는 시인이다. 내 눈에 처음 들어온 일연은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삼국유사 >의 저자 일연이 아닌 시인 일연이었다. 1988 년 여름 이 시 한편으로 나는 그에 대한 열병을 앓기 시작했다. 그의 삶의 종점이 되었던 군위에 있는 인각사를 출발점으로 그를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2. 재능이 감응할 때 결코 망설이지 않는다 (천복)
내 학문은 이 책에서 시작해 이 책으로 끝날 것이다
왜 나는 <삼국사기 >의 저자와 <삼국유사 >의 저자가 나오는 시험에서 늘 틀렸을까? 또 왜 나는 <삼국사기 >의 '사'는 '史'이고 <삼국유사 >의 '사'는 '事'를 구분하는 문제에서 늘 틀렸던 것일까? 이 문제가 비단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내 온 몸이 전율하기 시작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삼 국유사 >에 대하여 많은 말을 쏟아내었지만 제대로 쏟아낸 말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삼국유사 >가 마치 밭에서 갓 딴 채소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 ! 바로 여기가 내가 가야 할 곳이구나! <삼국유사>에 대한 제대로 된 말을 쏟아내는 것, 이 싱싱한 재료를 가지고 제대로 된 요리를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일이다. 자 ! 내 학문은 <삼국유사 >에서 시작해 <삼국유사 >로 끝날 것이다.
3. 내가 그린 삶에 대한 뱃심, 결코 물러설 수 없다 (용기)
시인이 역사를 알아?
수 많은 역사학자들이 내가 쓴 논문과 저서를 두고 '야매 '라고 이야기 했다. 역사를 전공하지도 않은 녀석이 우리나라의 유일한 고대사를 담은 사료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지껄이고 있으니 말이다. 개의치 않았다. 나는 시인이고, 역사가 일연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시인 일연을 사랑해서 떠나온 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이 뭐라 하던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저 나는 내 기쁨을 따라 일연이 걸었던 행적을 따라 여행을 떠났다. 그가 머물렀을 법한 지점에 서서 그가 보았을 법한 것들을 떠올렸다. 그 순간 나는 내가 아니고 일연이 되었다. 내가 <삼국유사 >에 천착한 이유는 역사가가 되기 위함이 아닌 일연 당신이 그랬던 것처럼, 옛 이야기를 시적 언어로 승화시켜보기 위함이었다.
4. 침묵의 시간, 일만 시간의 레이스를 통과해야 한다 (수련)
<삼국유사 > 언저리에서 맴돈 20년
네이버를 검색해 보라. <일연 >에 대한 네이버 캐스트를 작성한 사람이 누구인지. <삼국유사>를 검색해보라. 누구의 기사가 가장 많이 뜨는지. 지난 20년 간 쉬지 않고 <삼국유사>와 <일연>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래서 이들은 이제 내 정체성이 되었다. <고운기 =삼국유사> 라는 등식이 생겼다 . <삼국유사 > 3 형제를 세상에 내 놓았고 , 이와 더불어 <삼국사기>와 <일본고대사 비교연구 >라는 성과물도 쏟아냈다 . 나는 한 우물만 팠다 . 아주 깊고 깊게 팠다. 그래서 나는 '야매 ' 역사가에서, 최고의 <삼국유사 >전문가 시인으로 거듭났다.
5.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존재를 지킬 수 없다 (철학)
혁명가의 화두가 보이기 시작하다
내게 도 닥쳤던 안위와 감고의 세월을 곱씹는 동안 세상 보는 눈이 조금 열렸고, 그 때문에 내 혁명가의 화두 또한 보이기 시작했기에 그렇다. 혁명가는, 그 스스로 안위와 거친 세월 속에서, 도리어 피와 살이 되는 어떤 기제를 찾아 뒷사람에게 남겨주었던 것 같다. 아마 그 혁명가의 화두가 시와 글로 표현되는 저 의식의 뒤 안에서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갈 길이 멀다.
6. 스승, 그 분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스승)
원효 - 일연 - 나
일연은 원효를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기술했다. 그 자신이 원효 스타일의 원융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삶의 모습으로 보였을 터다. 일연이 원효를 바라보는 시선은 내가 일연을 바라보는 시선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러므로 우리 셋은 하나의 공통점으로 관통되었다. 일연이 발견한 원효, 내가 발견한 일연, 고고한 학승만으로 폐쇄적인 선승만으로 아닌 모두의 승려, 무엇에도 얽매지 않았던 인간 원효를 가장 잘 바라본 이는 아마도 일연이 처음 아니었을까? 나 또한 탁상공론만 일삼는 폐쇄적인 학자가 아닌 틀에 얽매이지 않고 모두를 위해 발 벗고 나서 '야매 역사 '를 서술하는 '열린 학자 '가 되고 싶었다. 그것이 바로 원효가 되고 싶었던 일연 , 일연이 되고 싶었던 나를 하나로 꿰는 무엇이 아니었을까?
7. 나를 넘어서는 더 커다란 것 (신념)
혁명가의 書
편안함이나 위험이 어떤 날에는 서로 기대는 친구가 되고
즐거움이나 고통이 닥치거든 두루 맛보아야 하는 것
- 손문
나에게 일연은 시인이자 곧 혁명가였다. 이것이 나의 책 첫 머리에 혁명가 손문의 글귀를 인용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시인이다. 직설적으로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은유적이고 시어적인 표현하고 싶었다. 무엇을? 나 또한 일연과 손문과 같은 혁명가로 살아가고 싶다는 것을.
너희는 누구냐 ?
세계화가 진행되면 될수록, 한국이 커지면 커질수록 세계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누구냐’는 질문을 더 자주 던지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린 이런 사람이다’라고 얘기해줘야 하는데 우리가 누구인지를 아는 데 삼국유사만한 텍스트가 없다. 얼마 전 가진 인터뷰에서 내가 한 말이다. 그렇다. 이제는 내가 천착한 <삼국유사>가 내 일신의 호기심을 넘어 우리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길임을 깨닫는다.
2014. 5 ‘조현연’의 리뷰 중에서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r_review&search_keyword=%EC%82%BC%EA%B5%AD&search_target=title&page=1&division=-843508&document_srl=636668 )
2011. 5 ‘김경인’의 리뷰 중에서
고운기의 일연 VS 박미옥의 구본형
<삼국유사>라는 하나의 텍스트에, 일연이라는 한 분의 스승에 온 생애를 다 바치리라 결심하고 실천해나가고 있는 사람. 고운기를 다시 만나며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다. 그래. 그럴 수도 있는 거구나. 그러니까 일연이 고운기의 삶을 여는 열쇠가 되어 주었듯 구본형은 박미옥을 열어갈 길로서 작용하고 있는 거구나. 이상한 거 아니구나. 이럴 수도 있는 거구나.
알면 알수록 그 깊이와 너비를 가늠할 수 없는 스승의 세계에 놀라곤 한다. 이런 내가 여기를 떠나서 어디로 갈 수 있단 말인가? 기왕에 시작한 일이니 적어도 생전에 그가 구축해놓은 그 세계만은 다 경험해보고 싶다. 비록 한참 모자라는 재능이나 알뜰히 몸과 마음을 돌보면서 시간을 벌어볼 수 있다면 아주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라는 희망을 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 어쩌고 싶다는 거까지는 아직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발끝으로 또 한 뼘 열리는 그 공간에 반대쪽 발을 옮겨 놓는 것 뿐.
어쩌면 언젠가 나는 ‘구본형’ 연구자로 불리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다보면 스승의 뒤를 이어 ‘변화경영전문가’라는 정체성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름이 무엇인들 그게 무슨 대수일까?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다. 사람들이 나를 무엇으로 라벨링하는지와 상관없이 나는 나를 <나를 이끄는 ‘희열’의 손을 한 번도 놓치지 않은 사람>으로 사랑하게 될 테니까.
‘부처를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는다’는 말은 평범 속의 비범이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삼국유사』476면
내 안의 뜨거움이 나를 평범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임을 믿을 수 있게 된 이후. ‘그래서 결국 도달할 곳이 어디인가?’하는 질문은 더 이상 나를 두렵게 만들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어디에 이르게 되는 걸까?’라는 질문을 떠올리면 나도 모르게 차오르는 연두빛 설레임이 참 좋다. 사랑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2. ‘내가 저자라면’
■ 이 책의 목차 및 전체적 뼈대
머리말/들어가며 | |
기이(紀異) | 이 땅의 첫나라 고구려와 북방계 신라와 남방계 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밤에 찾아오는 손님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권력의 끝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첫 성전환증 환자 왕이 되는 자 나라가 망하는 징조 지는 해 뜨는 해 백제와 일본, 그 근친의 거리 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까 견훤, 비운의 영웅 신비의 왕조, 가야 |
흥법(興法) | 불교로 보는 역사 순교의 흰 꽃 이차돈 |
탑상(塔像) |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낙산사의 힘 |
의해(義解) | 운문사 이야기 원효, 해동 불교의 자랑 의상, 화엄의 마루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
신주(神呪) | 밀교의 한 자락 |
감통(感通) | 평범한 사람들의 감동적인 이야기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
피은(避隱) | 숨어사는 이의 멋 |
효선(孝善) | 불교가 보는 효도 |
|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일연, 혼미 속의 출구 |
사진찍기는 참 재미있다./ 양진 찾아보기 |
여기서는 『삼국유사』원작의 구성 보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의 구성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저자 고운기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유념한 몇 가지 점을 미리 밝혀둔다.
첫째, 본문을 읽어나가며 설명하는 방식이다. 『삼국유사』를 읽으려해도 앞뒤 배경을 모르니 그다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그 배경을 설명해 주되, ‘내가 만일 『삼국유사』를 썼다면 이런 식으로 했을 것’이라는 기분으로, 어디까지나 본문의 이해와 전달을 위주로 하였다.
둘째,『삼국유사』에 실린 전체 조목 수는 약 140여 개, 그것을 『삼국유사』의 순서대로 40개의 제목으로 분류하여 기술했다. 앞의 20개는 전반부 「기이」편을 중심으로, 뒤의 20개는 후반부 곧 「흥법」쳔 이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 그 순서대로 진행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성질의 것끼리 묶느라고 순서를 무시한 부분도 많다.
셋째, 배경을 설명하면서 『삼국사기』와 면밀히 비교해 보았고, 뒤는 승전 등을 많이 참고하였다. 그동안 『삼국유사』를 연구한 여러 선학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는 한편, 중국과 일본의 역사서서를 많이 참고했거니와, 여기에는 일본에서 정리해 놓은 여러 자료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넷째, 『삼국유사』는 1290년경 일연에 의해 쓰여졌고, 곧이어 그의 제자들에 의해 출판된 것으로 보인다. 저자인 일연이 이 책에 들인 애정은 특별한 것이어서, 그의 생애와 저술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삼국유사』를 이해하는 데 요긴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그의 생애와 관련 된 사실을 군데군데 설명하였다.
저자 고운기는 <들어가며>에서 밝힌 공약을 충실히 이행했다. 훌륭한 실천이었다.
일연을 만나기 위해 먼저 친해져야할 두 사람 고운기, 양진.
5년 전 남편과 함께 일본에 머물던 시절, 일본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국내패키지 여행을 즐겨했었다. 아무리 봐도 별 것 없어 보이는 자연과 유물에도 그럴 듯한 해석을 붙여서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본인들의 상술과 절대로 입을 쉬지 않고 그 의미를 고객에게 전달하려고 애쓰는 가이드들의 철저한 프로의식에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가 알아야할 삼국유사>를 읽으면서 내내 일본여행사의 패키지 투어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감탄하면서도 살짝은 과한 느낌말이다. 실은 책을 읽으면서 좀 방해받는다는 생각이 들어 <삼국유사> 본문에 충실한 번역본(최호 해석, 홍신문화사)을 한권 더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니 책 안에 녹아있는 고운기와 양진의 열정과 노력을 이해하면서 점점 <삼국유사>를 찾는 빈도가 적어지면서 후반부에는 온전히 고운기와 양진의 가이드에 의존해 삼국유사를 여행하게 되었다.
나는 지금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 패키지 여행이 좋았었는지 아니었는지..마찬가지로 고운기와 양진의 시도가 좋은 건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의 시도는 나에게 선택의 기회를 제공했다. 만일 그들이 땀과 열정으로 만들어 낸 친절한 패키지 상품이 없었다면 나는 순전히 나만의 노력으로 여정을 연구하고 기획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야했다면 나는 과연 이 여행을 마칠 수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흔쾌히 '물론이지'를 말하지 못하는 걸 보면 도저히 그들에게 보내는 감사를 덜어낼 수가 없을 것 같다.
2010. 5 ‘박미옥’의 리뷰 중에서
그로부터 8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텍스트에 대한 느낌은 정확히 같다. 솔직히 이런 스타일의 해설 썩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접근법과 태도만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 감동적이었던 장절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
(223) 수로부인, 약간 ‘공주병’에 걸린 듯한 푼수 끼가 보이면서도 왠지 미워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강한 개성 때문이다 ★★★_마음에 쏙 들어오는 캐릭터다..마음에 든다..마음에 들어!! _ 여전히 마음에 든다.
(228) 너무 아름다운 여자와 살아도 억울하다. 아름다운 이의 자태는 언제나 ‘눈 도둑’들에게 노출되어 있어서, 훔쳐가도 잃은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감춰 놓고 있겠는가? 훔쳐간들 닳지 않는 것이라면 적선하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
(231) 수로부인은 얼마나 다른 여자인지 모른다. 속 태우고 있었을 남편은 아랑곳 않고, 용에게 받은 극진한 대접을 능청스럽게 늘어놓는 수로부인
(233) 어디인들 수로부인에게 이 여행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예쁜 꽃과 함께 노래를 선물 받았는가 하면, 용궁에 들어가 진기한 경험을 하고 나왔다. 수로부인처럼 아름답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거기서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_읽었더라면 ‘수로부인’을 내 신화로 삼았을텐데..^^
(479) 박박의 교조적 외통수와 부득의 현실적 융통성이라고나 할까? ★★★★★ _ ‘현실적 융통성’ 마음에 든다!!! ♥
수로부인과 부득이 보여준 ‘현실적 융통성’을 그리워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부족함을 알기에 어떻게든 내 것으로 만들어보고 싶은 성분이 바로 이 것이구나. 알아차리게 한 대목.
■ 보완점
보완점이라기 다는 이 안의 소재들의 전혀 다른 방법으로 재구성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1. 단군신화,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존재를 위한 성장 매뉴얼
곰(짐승*) 한 마리와 호랑이 한 마리가 같은 굴속에 살고 있었는데, 항상 환웅에게 기원하기를, 사람** 되게 해달라고 하였다. 이때 환웅이 신령스런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말하기를, ‘너희는 이것을 먹되 햇빛을 백일 동안 보지 않으면 사람의 형상이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곰과 호랑이는 그걸 얻어먹으면서 삼칠일 동안 금기하여, 곰은 여자의 몸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호랑이는 제대로 금기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람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가 혼인할 상대가 없었기 때문에 매양 신단수 아래에서 잉태하기를 빌자, 환웅은 이에 잠깐 사람으로 변신하여 그녀와 혼인(아내***)하고 아들을 낳으니(어미****), 단군왕검이라고 불렀다. * 짐승 : 감각적 욕망에 충실한 생명체 ** 사람 : 자신이 받은 생명을 최적화하려는 내면의 욕구를 감지하고, 이를 충족하기 위한 자신만의 솔루션을 갖고 있는 상태 *** 아내 : 다른 생명체와의 관계 속에 상생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구현해 낼 줄 아는 상태 **** 어미 : 성숙한 존재로 새 생명을 짓고, 키워 냄으로써 세상에 공헌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고, 이를 위해 헌신하는 상태 |
2. → 사람 : 욱면의 종
경덕왕 대에 강주의 선사 수십 명이 서방정토를 구하여 주 경계에 미타사를 창건하고 1만 일을 기약하여 계를 하였다. 그때 아간 귀진의 집에 욱면이라는 여종이 있었는데, 그의 주인을 따라서 절에 도착하여 뜰 가운데 서서 승려를 따라 염불을 하였다. 그런데 주인은 그가 일을 잘하지 않는다고 미워하여 매일 곡식 2석씩을 주어서 하루 저녁에 찧게 하였다. 그러면 여종이 1경에 찧기를 마치고 절로 돌아와서 염불하기를 아침저녁으로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녀는 뜰 좌우에 긴 말뚝을 단단히 세우고 두 손바닥을 뚫어서 새끼줄로 꿴 다음 말뚝 위에서 매달아서 합장하고 좌우로 흔들며 격려하였다. 이때 하늘에서 외치기를, “욱면랑은 법당으로 들어가서 염불하라.”고 하였다. 절 사람들이 듣고 여종을 권하여 법당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예에 따라 정진하도록 하였다. 얼마 후 서쪽 하늘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오자 여종이 솟아올라 지붕을 뚫고 나가 서쪽의 교외에 이르러서 육신을 버리고 진신을 드러내더니 연대에 앉아서 광명을 내며 천천히 가는데, 공중에서는 음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 법당에는 지금도 뚫고 나간 구멍이 있다고 한다. |
3. → 아내 : 내 쉴 곳은 언제나 그대 품안, 수로부인
신라 성덕왕(702~737) 시대 순정공이 강릉태수로 부임하여 가는 길에 바닷가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옆에 바위가 있어 마치 병풍처럼 바다를 둘러쳐져 있었는데, 높이가 천 길이고 위에 철쭉이 만개해 있었다. 공의 부인 수로가 이를 보고 좌우에게 말하기를, “누가 저 꽃을 꺾어 바치겠는가?”라고 하였으나, “사람이 오를 곳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며 누구하나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이 때 옆에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이 말을 듣고 그 꽃을 꺾고 노래를 지어 바쳤는데, 그 노인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 이틀 째 길을 가니 또 바닷가에 정자가 있어 점심을 먹는데, 바다의 용이 갑자기 부인을 나꿔 채 바닷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이 아닌가. 공이 넘어지며 발을 굴렀으나 어찌 할 줄을 몰랐다. 이 때 또 한 노인이 나타나 여러 사람이 모여 노래로 기원하면 부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알려주었는데, 그 말을 따르니 과연 용이 부인을 받들어 바다에서 나와 바쳤다. 공이 부인에게 바닷속의 일을 물으니, 말하기를 “칠보의 궁전에 음식맛이 달고 매끄러우며 향기롭고 깨끗하여 인간세상의 음식이 아니었다.”라고 하였고, 부인의 옷에도 색다른 향기가 스며 있었는데 세상에서 맡아보지 못한 것이었다. |
4. → 어미 1 : 존재를 다 바친 간절한 정성, 희명
무릎이 헐도록 두 손바닥 모아 천수관음 앞에 빌고 빌어 두노라 일천 개 손 일천 개 눈 하나를 놓아 하나를 덜어 둘 없는 내라 한 개사 적이 헐어 주시려는가 아, 나에게 끼치신다면 어디에 쓸 자비라고 큰고 |
희명이라는 여자의 딸아이는 눈이 멀어 앞을 못 보았다. 차라리 자신이 당한 일이라면 참고 말겠지만, 여섯 살 한창 재롱을 부릴 딸아이가 갑자기 눈이 멀자, 어머니는 천지가 무너지는 슬픔에 한없이 떨어야 했다.
어머니는 눈 먼 딸을 데리고 분황사 좌측 전각 북쪽에 그린 천수관음 앞으로갔다. 이 보 사에게 빌면 모든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어머니에게는 있었다. 어머니는 노래를 지어 아이와 간절히 불렀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뜨게 되었다. 이만한 정성 앞에 감동하지 않는다면 어디 부처님이랴
5. → 어미 2 : 때가 되면 놓을 줄 아는 모정, 진정의 어미
“불법은 만나기가 어렵고 인생은 너무 빨리 지나간다. 그런데 효를 다하고 간다면 너무 늦지 않겠느냐? 그것이 어찌 내가 죽기 전에 네가 가서 도를 들었다는 말을 듣는 것만 하겠느냐? 머뭇거리지 말고 속히 가야 한다.” “아, 내가 너의 출가에 방해가 된다고 하면 나를 지옥에 빠뜨리는 것이니, 비록 살아서 진수성찬으로 봉양한 들 어찌 효도가 되겠느냐? 나는 남의 문전에서 의식을 구걸하더라도 타고난 명을 누릴 수가 있다. 나에게 효도를 하고자 하거든 그러한 말을 하지 말라.” 진정이 눈물을 삼키면서 굳이 사양하기를, “어머니를 버리고 출가하는 것은 아들된 자로서 차마 하지 못 할 일입니다. 더군다나 얼마 남지 않은 간장과 며칠분의 양식을 다 싸가지고 가면 천지가 저를 어떻다고 하겠습니까?”라고 하며 세 번 사양하니 어머니가 세 번 권하였다. 강론이 끝나자 진정의 어머니가 꿈에 나타나서 말하기를, “나는 이미 하늘에 태어났다.”라고 하였다 |
6. → 어미 3 : 행복한 맘 CEO의 전형, 지소태후
제24대 진흥왕(540~576)은 즉위 때의 나이가 15세였으므로 태후가 섭정을 하였다. 태후는 바로 법흥왕(514~540)의 딸이며 입종 갈문왕의 비로서 임종 즈음에 삭발하고 법의를 입고 서거하였다 |
진흥왕. 그는 한반도 역사상 단연 두각을 드러낸 뛰어난 왕으로 손꼽힌다. 즉위 10년만에 불교중흥을 꾀하고 국사를 편찬해 사상적 기반을 확립군사력을 장악했을 뿐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왕권강화를 이끌었다. 또 백고좌법회와 팔관회 개최, 황룡사 등 사찰 불사, 화랑제도 도입 등을 통해 신라 특유의 문화·사상적 기반을 정비했으며, 한강유역과 대가야 정벌 등 영토확장을 통해 삼국통일의 토대를 닦는 등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남겼다.
주목할 만한 점은 진흥왕이 7세라는 어린 나이에 즉위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어린나이에 즉위한 왕이 왕권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정치를 펼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대부분 정권을 장악하려는 아귀다툼에 희생되거나, 중도 폐위 혹은 권력정치의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만다. 신라 후대, 만월부인의 섭정을 받다 16년만에 시해된 혜공왕,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긴 애장왕과 조선의 단종을 비롯해 을사사화 등으로 숱한 고난을 겪은 조선 명종이 대표적이다. 이 비극적 사례들은 나이 어린 국왕의 즉위가 왕권 약화의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음을 뒷받침한다.
그럼에도 진흥왕은 이러한 역사적 흐름과 노선을 달리하며 역사에 유례없을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 요인은 어디에 있을까. 단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 제4 진흥왕대의 기록이 시작되는 첫 줄에서 찾을 수 있다. 바로 “왕태후의 섭정”이다. 여기서 왕태후란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태후를 뜻한다.
그녀는 신라역사에서 최초로 등장한 섭정자인 동시에, 왕이 성장한 후 안정적으로 정권을 넘겨준 이례적 인물이다. 다수의 학자들은 진흥왕이 신라 연호를 ‘개국(開國)’으로 바꾼 12년(552)에 이르러서야, 섭정이 끝나고 왕의 친정이 시작됐을 것으로 본다. 진흥왕 즉위 후 11년간 기록의 주체는 사실상 진흥왕이 아닌 지소태후라는 것이다. 후대 역사가들이 여성인 지소태후를 정치의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진흥왕의 기록으로 남기는 방법을 택했기에, 그녀의 업적도 역사의 이면으로 감춰진 셈이다.
지소태후는 진흥왕의 어머니이자 선대 법흥왕의 딸이며, 당시 최고의 전략가 이사부를 참모로 둔 권력의 정점이었다. 특히 정비였던 법흥왕비 보도부인의 유일한 자식으로 법흥왕의 적통을 잇는다는 사실은 그녀의 혈통적 우수성과 정치적 기반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배경이 됐다.
진흥왕이 선대왕의 친아들도 아니고 나이가 어려 역사상 최초로 섭정을 실시해야 한다는 큰 약점을 가지고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데는 어머니 지소태후의 출신과 정치력이 작용했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법흥왕의 아버지 지증왕 역시 내물왕 직계가 아닌 신분으로 왕위를 계승했기에, 이 같은 진흥왕의 약점은 당시 왕위를 노리는 다른 세력의 위협이나 반발 요인으로 작용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왕위계승자를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분명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혹여 왕위쟁탈전이라도 벌어진다면 힘없는 어린 태자의 목숨이 위태로울 것이 자명했다.
진흥왕이 즉위한 후에도 외부세력의 권력야욕은 시시각각 어린 왕의 안위를 위협하는 불안요소로 작용했다. 진흥왕 즉위 후 지소태후가 무엇보다 왕권의 안정을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녀가 섭정을 시작하고 가장 먼저 행한 일은 죄인을 사면하고 문무관료들을 한 계급 승진시키는 일이었다. 비록 나이는 어리지만 진흥왕이 선정을 베푸는 왕임을 알리고 그 왕위 계승을 만백성과 관료들에게 납득시켜 인정받고자 했던 것이다.
이후에도 지소태후가 어린 진흥왕을 보호하기 위해 발휘한 정치력은 사뭇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아들의 안위를 걱정하는 애끓는 모성이 향후 신라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다졌다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희대의 정치가이자 모성의 대명사 지소태후도 말년에는 어머니 보도부인이 출가했던 영흥사로 출가해 여생을 보냈다고 전해진다. 이미 진흥왕 11년 불교의 제반업무를 관장하는 부서와 승관제가 확립돼, 전국의 사찰과 승려를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고 있었기에 지소태후는 출가 후에도 비구니의 리더로서 여성불교를 이끌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지소태후는 한평생 아들에 대한 극진한 사랑으로 왕실과 나라의 평안을 발원하며 신라 호국불교를 이끈 주역이었던 셈이다.
7. 21세기 해피맘CEO를 위한 원광법사의 선물, 母性 5계
불교에는 보살계가 있고 거기에 열 가지 구별이 있지만 너희들이 남의 신하가 되어 있으니 감당하지 못할까 염려된다. 이제 세속오계가 있으니, 첫째는 충으로 임금을 섬기는 것이요, 둘째는 효로서 어버이를 섬기는 것이요, 셋째는 신으로써 벗과 사귀는 것이요, 넷째는 싸움터에 나가서는 물러남이 없어야 하고, 다섯째는 살생을 가려서 해야 하니(꼭 소용되는 양만큼만 하고 많이 죽이지 말라) 너희는 행하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
불교에는 보살계가 있고 거기에는 열 가지 구별이 있지만 너희들이 남의 어미가 되어 있으니 감당하지 못할까 염려된다. 이제 모성 5계가 있으니 다음과 같다.
첫째는 자신의 재능을 갈고 닦아 세상을 이롭게 하는데 성실해야 하며
둘째는 은혜를 입으면 반드시 갚을 줄 알아야 하며
셋째는 신의로 부부간의 예를 다하는 것이요.
넷째는 나와 남을 막론하고 약속을 지킴에 물러남이 없어야 하고,
다섯째는 이익을 구하되 꼭 소용되는 만큼만 해야하니
너희는 행하는데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3.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머리말
<삼국유사>는 시대마다 좋은 요리사를 만나 좋은 요리가 만들어지기를 기다리는 재료인지 모른다.
내게도 닥쳤던 안위와 감고의 세월을 곱씹는 동안 세상 보는 눈이 조금 열렸고 , 그 때문에 내 혁명가의 화두 또한 보이기 시작했기에 그렇다. 혁명가는, 그 스스로 안위와 감고의 거친 세월 속에서, 도리어 피와 살이 되는 어떤 기제를 찾아 뒷사람에게 남겨 주었던 것 같다_★★★
들어가며
(2) 오히려 <삼국유사>에 대한 가치 부여와 중요성 제고와는 달리, 우리가 이 책을 실제대로 올바로 알고 있는지, 그 세계에 한번쯤은 깊이 빠져 본 경험이 있는지, 문제는 거기에 있다.
(3) 문자에 대한 자신감, 이는 저술을 감발시키는 촉진제다.
(4) 무신정권이후, 새로운 분위기란 다름 아닌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이다.
(5) 1206년에 태어나 13세기를 온전히 살다 간 일연은 바라처럼 휘몰아치는 시대의 변화를 겪었던 사람이다.
(5) <삼국유사>는 이 시기에 우리 역사를 주체적으로 바라보고자 했던 지식인들의 일련의 작업 속에 놓여 있는 것이다.
(6) 한 왕대에 여러 가지 복잡한 사건이 얽혀 있다고는 하여도, 그것을 특징적인 사건 어느 하나로 집약하여 정리해 주는 이 방식에서 일목요연한 흐름을 짚어보게 되고, 저자의 분명한 역사관 또한 찾아볼 수 있으니 매우 흥미롭다.
(8)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삼국사기> 같은 역사서로만, <고성전>과 같은 불교서로만 만족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것들이 어우러지면서 우리 고대사를 입체적으로 조망해 볼 어떤 틀을 만들어 냈다고 보아야 옳지 않을까?
(9) 앞뒤 배경을 모르니 그다지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10) 일연의 생애와 저술 의도를 이해하는 것이 <삼국유사> 본체를 이해하는 데 요긴하다
이 땅의 첫 나라
(11) ‘개천절 노래’의 첫구절 “우리가 물이라면 샘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뿌리가 있다”고 쓴 이는 20세기에 들어 위당 정인보 선생이다.
(12) 글을 쓰는 것이 목숨과 바꿀 무게로 쳐지는 시대에서 단 한글자도 허투루 적을 수 없다.
(12)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면서도 문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사실의 기록만이 아닌 상징이 자리 잡는다
(12) 사실을 그대로 써서 저촉되는 것을 상징으로 포장해 놓으면 규범이 만든 규제의 그물망을 벗어난다. _ 차용하고 싶은 포장법! ♥
(16)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
(16) 우리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세요
(17) 환웅이 먹는 것, 생활하는 것 등에서 어떤 의식을 정해놓고 그것의 준수를 요구했는데, 곰은 묵묵히 이행한 데 반해 호랑이는 그렇지 못했다_여자를 위한 모험의 양식? _ 자기다운 삶을 열기 위한 견딤의 과정!
(18) 곰은 여자가 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았다. 최후의 주인공 단군의 출생까지 커다란 각본이 마련디어 있었고, 그것을 움직여 나가 주체는 바로 어머니 곰이다 _ 마음에 든다!
(21) 책의 처음을 시작할 때 거기에 책 전체의 집필 의도를 함축할 어떤 상징적인 것을 내세우고 싶어한다
(22) <삼국사기>는 한반도에 살았던 지식인층이 중국으로부터 문자와 그와 관련된 여러 문화를 전수받은 다음, 이제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했음을 보여주는 책이다
(23) 모방이 창조의 원동력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치면 부작용이 따른다
(23) 세련된 장식으로 우리 역사를 볼품있게 세워 놓았지만 이로 인해 본질을 놓친 것, 부작용이란 다름 아닌 ‘우리의 실종’이었다★★★ _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닌가? 늘 깨어있어야 하는 지점이다. ♥
(23) 어쨌든 <삼국사기>가 외면한 이 책의 단군조선 부분을 일연이 관심 가진 것은 오직 여기서만 조선이 온전히 보였기 때문이다
(25) 이 같은 분위기가 일연으로 하여금 우리 역사의 더 먼 곳에 관심을 갖게 했고, 거기서 단군이 발견되었음은 당연하다. 단군의 발견과 그 기록은 일연이 지닌 선각적 혜안만으로 이루어질 성질의 일은 아니었다
(29) 일연은 같은 민족이라는 전제 아래, 위만 조선을 단군조선의 후계로 여겼으리라 생각한다
고구려와 북방계
신라와 남방계
(66) 지리산 성모천왕♠의 이야기다. 갑자기 산 개울이 비도 오지 않는데 넘쳐 흘렀다. 한 스님이 이상히 여겨 천왕봉 꼭대기에 올라가 보자, 그 곳에 키가 크고 힘센 여인이 있었다. 여인은 스스로 성모천왕이라 했다. 인간 세상에 내려와 짝이 될 인연을 만나려 오줌을 눈 것이었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되고 딸 여덟명을 낳았는데, 그들은 전국 팔도에 흩어져 무당이 되었다
(67) 오르는 길과 내려오는 길이 다르지 않지만 산에서 내려올 때 꽃이 더 잘 보이는 이유는 뭘까?_여유 있잖아요. 그러니 눈도 맘도 더 크게 깨어있을 수 있는 거겠죠? ^^
탈해왕을 둘러싼 갈등
(70) 탈해는 무척 복잡하고 신비한 인간이다. 그 출생 과정부터 한 남자의 생애는 파란만정을 예고하고도 남았다. 물론 밑바닥에서 시작한 인생이 평탄할 수만 있겠는가?
(85) _이런 풍경..↑으로 올려다 본 하늘..넘 좋다. 시선을 바꾸면 이리도 다른 세상이 우리 앞에 펼쳐지는 것이다.
연오랑 세오녀, 첫 설화의 주인공
(91) 히미코가 한반도에서 건너가 가야 지방의 미오야마국을 이어 일본에 야마일국을 세운 여왕이라고 설명
(91) 오래도록 남성에 복종하며 살아온 일본의 여성들이 자신의 일을 찾고 자기의 삶을 추구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는데, 그들이 내세우는 상징적인 인물이 여왕 히미코♠라는 것이다
(91) 즐거운 상상력에 민족적 쇼비니즘이 끼어들면 곤란하다
(94) 일본에 가서 자리잡은 세오녀♠는 히미코가 되어, 금의환향하듯 자랑스레 본국에 사람을 보냈다고 추정할 만하다
(98) 본다는 것은 그 정령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신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은 해와 달이 아니라 해와 달을 해와 달로 볼 수 있는 그 정령이었다 ★
(99) 연오와 세오는 해와 달의 정령이었다. 그들이 일본으로 가서 왕이 되었다는 것을 정치적 의미로만 풀어서는 곤란하다 _ 관점을 수출했다고 보는 편이 자연스럽다.
(100) 정령을 잃은 사람은 눈 뜬 소경과 같다. 사회도 그렇다. 일연이 강조한 것은 거기에 있지 않았을까? ★★★_우리가 하고 있는 작업이 바로 ‘자신의 정령을 찾는 것’이 아닐까? 그리하여 비로소 소경의 상태를 벗어 나는 것말이다.
(101) 정령의 의인화야말로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를 아름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여기 해와 달의 정령을 사람으로 설정한데서 아름다움은 극치를 달린다★_내가 앞으로 잘 써먹어야할 플롯 ^^ _ 상징을 다루는 연습,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
(102) 그 정령은 먼 다른 나라로 갔다. 그런데 정령의 존재를 알고 서둘러 따라온 신라 사람들을 우리의 아리따운 정령들은 맨손 쥐어 돌려보내지 않았다. 이런 것이 우리 설화의 기본적인 구조다. 그리고 그것은 누천년을 이 땅에 자리잡고 살아온 우리네 사람들의 심성이기도 하다
신라는 왜 일본과 앙숙일까
(112) 저는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보고, 임금이 욕을 보면 신하는 죽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쉽고 어려움을 따진 다음에 행한다면 충성을 다한다 하지 못할 것이요. 죽고 사는 것을 가린 다음에 움직인다면 용맹스럽지 못하다 할 것입니다. 저는 비록 불초한 몸이오나 명령을 받들면 행하겠습니다★_그보다 더 그가 될 수 있는 마음..이것이 바로 ‘사랑’인가 보다.
밤에 찾아오는 손님
(120) 승려의 신분을 벗어난 파격적인 내용으로 삼국시대 그 밑바닥의 정서를 전해준 점. 우리는 지금 <삼국유사>의 편찬자 일연에게 크게 감사하고 있다. 무릇 큰 강은 어느 지류도 마다 않고 받아들여 함께 흐르고, 그러기에 거꾸로 생각하면 큰 강이 된 것과 다르지 않게 사람도 큰 사람이 있는 법이고, 큰사람이 이룬 일에 대대로 많은 이들이 도움을 받는다★
(120) 껄끄러운 이야기다. 스것을 스스럼없이 해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일연의 그릇을 헤아려 보는 것이지만 말이다.
(121) 복사꽃처럼 어여쁜 여자
(125) 봄꽃이라면 뭐든 아름답다 하나 복사꽃을 따를 만할까? 희다면 희고 붉다면 붉은 꽃, 그 두 가지 빛이 어우러져 먼 데서 보면 뽀죡(ㅋㅋ)하게 이제 막 피어나는 소녀의 맑고 붉은 볼을 연상시키는 꽃이다_훔치고 싶은 표현!
(130) 이 불행한 천명의 사나이는 반은 사람이니 낮에는 사람처럼 살고, 반은 귀신이니 밤에는 귀신처럼 살았다
(133) 귀신은 사람을 돕는 존재이면서, 그것을 어겼을 경우 엄정한 벌을 받는다
(134) 여기까지 읽어보면, 정치에 무능하고 음란에 빠져 왕의 자리에서 쫓겨났다는 진지왕의 초상이 조금은 색다르게 그려진다. 마치 진지왕이라는, 현실에서는 실패한 왕을 다른 역할로 복권시켜주고 있는 느낌이 든다. 불명예스럽게 왕의 자리에서 쫓겨난 진지왕을 데려다 그 혼의 힘으로 특이한 아들을 낳게 하고, 이렇게 해서 그가 세상에 사는 동안 못다 이룬 일을 보상하게 했던 것일까? 몸으로 못하면 혼으로라도 말이다_내가 해야할 일인지도 모른다 _ 고운기, 말이 많아도 넘 많다. 살짝 피곤하다...--;;
(134) 세상에서 무서운 것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어떤 조화다. 조화를 부리는 것은 귀신이다. 그러므로 귀신을 마음대로 부릴 수만 있다면 공포는 사라진다. 어쩌면 귀신의 세계를 한손에 움켜쥐고 있는 듯한 이 이야기가 역설적으로 귀신에 대한 두려움을 말하는 듯하다_여기서 귀신은 무의식, 제2의 자아, 내면아이 이런 것과 같은 말이겠지? _ 그랬구나. 귀신은 무의식, 욕망이자 두려움을 일컫는 말일거야.
(135) 커다란 지렁이와 연못의 용 _ 상현오빠가 생각난다. ㅋㅋ
(137) 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보통 손님이 아니다. 아무에게나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것은 적어도 왕의 권위를 가지고, 더 크게는 신탁의 임무를 띠고 나타나, 구물구물 살아가는 이 땅의 중생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간다_만약 도화녀가..또 다른 여인들이 당시의 도덕율에 매며 야래자를 받아들이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선물을 주고 싶어도 인간에게 전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다 살게 되어있다고 하셨다. 겁내지 말자 _ 미지의 것에 대한 두려움을 다룰 수 있어야 지금 여기를 구할 수 있는, 그러나 이 시공에서는 얻을 수 없는 보물을 취할 수 있다. 진리다. ♥
신라가 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
(147) 보고도 보지 못하는, 눈에 씌운 아상은 그토록 완고한 법이다.
(149) 힌트는 어디선가 주어져 있는 법이다. 그것을 찾고 못 찾고는 지혜의 눈을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달렸다 ★
(149) 어떤 점에서 진지왕은 영민한 사람이다. 비록 행실이 나빠 왕위에서 쫓겨났다고는 하나, 비형랑을 낳는 일에서도 보듯이, 타고난 바 영성이 특이한 사람이다.
(153) 시련 속에서 연단되는 것일까, 그같이 불리한 조건이었기에 살아나갈 보다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 몸부림쳤는지도 모르겠다
문희, 그 아름다운 여자의 이름
(159) 주인공 여자배우의 포근한 듯 우수에 찬 듯 여린 얼굴은 오래도록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 배우의 이름이 문희였던가? 영화의 내용에 상관없이 분명 내게 아름다운 여성의 근원은 거기서 만들어졌다 _ 음...뭔가 사족.
(166) 오줌을 누는 꿈 이아기가 왜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이야기는 사실 여기에만 실린 독점물이 아니다.
(167) 옅은 화장과 가벼운 옷단장에, 빛나는 아름다움은 보는 이를 눈부시게 하였다
(169) 여기서 최재서의 친일을 따질 겨를은 없다
(175) 물론 이 여인은 문희다. 화려한 것을 받쳐줘야 하기에 속으로 인고하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다
(177) 일은 제가 벌여놓고 길길이 날뛰는 유신의 노한 목소리에 묻혀 한 여자의 여린 일생이 가려있다_이런 시선,,,현상의 뒷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이런 시선이 신선하다. ^^
만파식적 만만파파식적
(189) 대나무라는 물건도 오므라진 다음에야 소리가 나지요
(189) 그것이 믿을 수 없는 괴이한 일인들 어떠랴. 당대의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그런 믿음 위에서 마음을 하나로 하여 살아가는 일 자체가 중요할 뿐이다 ★
(195) 신령스런 피리를 일컬어서는 만만파파식적이라했다. 벼슬이 높아져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으면 한 글자씩 덧붙이는 신라의 관습이 있다. 만파식적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더할 데 없는 보배이나, 거기에 공을 더 세우니 글자를 하나씩 더 붙여 주었던 것이다
권력의 끝
(196) 權不十年이라, 거기서 예외가 될 사람 또한 없다. 최소한 그 권력을 좋아하고, 함께 쫓아다닌 사람이라면 어느 순간 사냥개 신세로 바뀔지 아무도 모른다
(205) 최근 학계에서 『화랑세기』라는 책의 진위 여부와 그 역사적 가치를 두고 많은 논쟁이 있었다. 이 책이 전해주는 화랑의 모습이 부분적으로나마 우리를 당혹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라 통일 후의 화랑들이 걸어갔던 비참한 말로인데, 세간을 떠나 승려가 되려는 경우는 차라리 점잖은 은거이기에 무상한 세상의 인정을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었거니와, 한편에서는 그들이 지닌 재주를 파는 광대에 버금갈 예인이나, 급기야 귀족 부인들의 노리개감으로 전락한 남창이 되었다는 데에서, 우리들의 눈은 실상 당혹을 넘어 경악에 어지럽다. ★
(210) 한낱 종이호랑이로 변해 버린 화랑 출신들의 쓸쓸한 노년이 숨어 있다_아~! 화랑도 늙었겠구나..이 당연한 사실은 어찌 한번도 떠올리지 못했을까? 이..단세포적인 두뇌구조여!
(212) 모죽지랑가는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인 동시에 삼국통일 후 당해야 했던 화랑 출신들의 비극을 떠올리게 한다
수로부인, 미시족의 원조 ★★★
(223) 수로부인, 약간 ‘공주병’에 걸린 듯한 푼수 끼가 보이면서도 왠지 미워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강한 개성 때문이다 ★★★_마음에 쏙 들어오는 캐릭터다..마음에 든다..마음에 들어!! _ 여전히 마음에 든다.
(224) 수로부인의 자태와 얼굴이 너무도 뛰어나, 매번 깊은 산과 큰 연못을 지날 때면, 여러 차례 神物들에게 끌려갔다.
(226) 자줏빛 바위 가에 잡은 손 암소를 놓게 하시고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신다면 꽃을 꺽어 바치오리다..모름지기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 바꾸는 사랑이라면 최고의 가치를 지니지 않겠는가?
(228) 너무 아름다운 여자와 살아도 억울하다. 아름다운 이의 자태는 언제나 ‘눈 도둑’들에게 노출되어 있어서, 훔쳐가도 잃은 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감춰 놓고 있겠는가? 훔쳐간들 닳지 않는 것이라면 적선하는 마음으로 살아야지 ★
(231) 수로부인은 얼마나 다른 여자인지 모른다. 속 태우고 있었을 남편은 아랑곳 않고, 용에게 받은 극진한 대접을 능청스럽게 늘어놓는 수로부인
(232) 꽃을 사랑하는 여자 수로부인, 그리고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천연덕그럽게 요구하던 여자 수로부인, 그가 잡혀 들어간 바다 속은 바닷가에 남아 있던 사람들이 아우성치며 발을 굴러야 할 위험한 곳이 아니었다. 아니 정반대였다. 용이 데리고 나오지 않았으면 부인이 자원해서 살겠다고도 했을 법하다
(233) 어디인들 수로부인에게 이 여행은 아름다운 것이었다. 예쁜 꽃과 함께 노래를 선물 받았는가 하면, 용궁에 들어가 진기한 경험을 하고 나왔다. 수로부인처럼 아름답고 천연덕스럽게 살아가는, 거기서 세상의 지혜를 터득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산과 바다는 그런 곳이다_읽었더라면 ‘수로부인’을 내 신화로 삼았을텐데..^^
첫 성전환증 환자
(249) 장성하자 음악과 여색에 빠져들어, 돌아다니는 것을 절제하지 않았다
왕이 되는 자
나라가 망하는 징조
(273) 권력다툼 속에 인재는 죽고
(281) 내가 그대의 처를 탐내서 지금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런데도 그대가 화를 내지 않으시니, 감복하고 탄복할 일입니다. 맹서컨대, 지금부터 이후로는 그대의 얼굴 모습을 그린 것만 보아도, 그 문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지는 해 뜨는 해
(287) 오히려 일연의 붓끝은 담담하면서도 상징적이다
(287) 신라의 멸망 원인 가운데 무엇이 선두에 설까? 나는 무엇보다 ‘골품제의 동맥경화 현상’을 내세우고 싶다 ★
백제와 일본, 그 근친의 거리
(307) 일연이 삼국의 다른 두 축을 이루는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에 어찌 그다지 인색했는가다
서동은 정말 선화공주♠를 꾀었을까
(327) 맹랑한 눈에 맹랑한 자가 보인다..맹랑하기 그지없는 자가 새로운 역사를 만든다 ★★★ _ 영웅의 전형!
(331) 서동으로서는 공주가 천애고아나 다름없게 된 후에야 자신 있었다. 그 때는 인물 하나 보고 따라올 것이 아닌가?
(332) 서동은 비범한 재주를 타고난 사람이지만 귀하고 중요한 것의 가치를 아직 모른다. 공주를 꾀어내는 꾀도 까 선천적으로 타고난 동물적 감각에서 나왔을 것이다. 후천적 교육의 중요성은 여기서 발휘된다. 공주는 가치를 발견하는 눈을 키워주었다. 그런 면에서 두 사람의 결합은 완전한 어떤 것을 지향하고 있다. 거기에 제3의 조력자로 지명법사가 등장한다. 그의 도움은 서동과 공주 두 사람만의 조화에서 공주의 부모까지 아우르는 화해로 확대되고, 왕이 되었다는 마지막 대목은 이런 것들이 조화가 빚어내는 당연한 결과다. 우리는 여기서 등장 인물을 적절하게 배역시킨 한 편의 완벽한 드라마를 볼 수 있다. ★★★_ 완벽한 플롯!! ♥
(335) 바리데기 설화, 선화공주가 공주의 신분으로 쫓겨난다는 점에서 <바리데기 설화>의 바리공주와 비슷하다. 버림받은 처지였건만 바리공주는 병든 어버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약을 구해온다. 선화공주가 좋은 남편을 만나 그에게서 많은 보물을 받고, 그것을 친정 어버이에게 보낸다는 이야기도 모티브에서는 닮았다. 박대 받았던 자식이 오히려 어버이를 더 챙긴다는 말은 요즈음도 하지 않는가?
(343) 미래불이 오시는 다음 세계
견훤, 비운의 영웅
신비의 왕조, 가야
(373) 여자는 거기서 입고 있던 비단 바지를 벗어 산신령께 예물로 드렸다
(381) 기울지도 치우치지도 않고 오직 한결같이 정밀했네_적절함에 대한 탁월한 묘사
불교로 보는 역사
순교의 흰 꽃 이차돈
(404 옛 사람들은 나무꾼에게도 대책을 물었다 합니다
(405) 난새와 봉새의 새끼는 어려서도 하늘을 솟구칠 마음을 가지고, 기러기와 고니의 새끼는 나면서도 파도를 헤쳐 나갈 기세를 품는다 했지 ★★
신라의 중심 세계의 중심, 황룡사
문수 신앙의 근거지, 오대산
(438) 오대산의 월정사, 일연이 깨달음을 경험한 때를, 비문은 1236년 그의 나이 31세였다고 알려주고 있다. 그 한 해 전 가을, 일연은 마침 대대적으로 침공해 들어와 전국을 유린하는 몽고군의 말발굽을 피해 경상도 달성군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다. 그 피해가 가장 컸다는 몽고의 3차 침입시기였다. 일연은 문수 신앙의 수행법의 하나인 문수오자주를 염송하며 감응이 있기를 기다렸는데, 과연 벽 사이에서 문수보살이 나타나 피난처를 알려주었다. 문수보살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여 깨달음을 얻기는 다음 해 여름이었다. 우리는 이와 같은 기록을 통해, 일연의 불교 사상이 문수 신앙으로부터 시작한 것은 아닌가, 잠정적인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
(440) 문수보살을 흔히 출가의 보살이라고 한다....누구든 수행의 첫 길은 문수보살로부터 시작한다. ★★★ _영웅 여정의 전령사 역할을 하는 것이 문수보살인가 보다.
(448) 문수보살은 매일 아침 서른여섯 가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작은 절들에 서린 삶의 애환
(458) 찢어진 마음이 찾아가 덧없음을 깨닫고 아름답게 치료받을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_우리에겐 여기가 그런 곳이 아닐까..우리는 참 행복한 사람들이다_ 그런 곳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지켜내고 싶다!♥
(464) 재주가 화를 부른다고 했던가_그러나 그것이 ‘화’라고 판단하는 마음이 맞다는 것은 어찌 가릴 수 있단 말인가?
노힐부득과 달달박박
(476)‘부처를 배우면 마땅히 부처가 되어야 하고, 진리를 닦으면 반드시 진리를 찾는다’는 말은 평범 속의 비범이다. ★
(478) 태허와 한 몸이니 어디 오고감이 있나요? 다만 현명하신 스님께서 뜻이 매우 깊고 덕행이 높다하여 보리를 이루는데 돕고자 합니다. ★
(478) 자고 가기를 바라는 것은 길을 잃어서만 아니요
스님께 계율을 일러 주려 함이네
내 청을 들어만 주실 뿐
어떤 사람인가는 묻지 마오
(478) 이 곳은 여자가 와서 더럽힐 곳은 아니오. 그러나 중생을 따르는 것도 보살행의 하나이지요. 깊은 산골에 날마저 저물었으니 어떻게 소홀히 대하리오 ★
(479) 박박의 교조적 외통수와 부득의 현실적 융통성이라고나 할까? ★★★★★ _ ‘현실적 융통성’ 마음에 든다!!! ♥
(480) 일연이 결론 부분에서 “여자는 부녀자의 몸으로 나타난 섭화자(조력자?)라 할 만하다. 『화엄경』에서 ‘마야부인 선지식이 열 한 군데에 살면서 부처를 낳아 해탈문을 완성했다’는 것과 같다. 이 이야기에서 여자가 아이를 낳은 숨은 뜻이 여기에 있다”고 말한 데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자비롭고 희생적인 어머니의 정성과 같은 성격을 가진 이가 관음보살이다. ★★★
(481) 중생의 뜻을 따르자고 박절히 내쫓지 못한 것, 맑은 마음을 지키며 벽을 바라보고 부지런히 염불을 외운 것, 아이를 낳으려는 여자 옆에 애처로운 마음으로 가만히 등불을 피워놓은 것, 두려운 마음 한편 가득했으나 새로 물을 끓여 산후의 여인을 씻긴 것 등 부득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우리는 비록 관음보살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이미 도를 이룬 자의 마음씀을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그의 행동 하나하나 그 자체가 관음보살의 현신인지도 모른다.
(485) 참 보살행이란 중생의 곤고한 처지에 동참한다는 것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는다. ‘수순衆生(중생의 마음으로 수순 근기에 따라 순응함으로 싫어함이 없는 마음으로 두려움이 없는 마음으로)’의 뜻을 저버리지 않은 부득의 행위는 이 같은 참 보살행의 소치임이 분명하다...그러나 굴절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여자를 외딴 암자에 들인 부득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부동심만의 그것은 아니었으리라. 자꾸만 갈라지는 생각과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염불소리는 밤 깊을수록 높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문득, 곤한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고 있을 가련한 여자를 생각하니, 염불도 한낱 시끄러운 소리에 불과함을 깨닫는다. 염불로 공덕을 쌓는다고는 하나, 이럴 때의 염불은 손님의 곤한 잠만 방해할 뿐인 것이다. ★ _ 아! 그런 거였구나! ♥
(496) 그런 뜻밖의 만남이 곧 보살과의 만남임을 영원히 모르고 지났다면 사정은 다르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 나중에 알게 되는 이 우연의 메커니즘, 사실 우리들이 만남은 대부분 이렇다.
(497) 도의 경지는 참으로 높은 데에만 있지 않고, 우리들의 일상 곳곳에 숨어들어 있음 또한 사실이다. 거기서 우연히 스치는 수많은 만남이야말로 우리들이 흔히 경험하는 바다.
낙산사의 힘
(504) 밥이 끊는 솥단지 앞에서 따듯한 불을 쬐다 잠깐 잠이 든 사이, 온갖 영화와 패배를 맛보는 꿈을 꾸고 깨어보니 밥이 되어 있었다는데, 한 세상사는 온갖 영고성쇠가 한솥밥 끓는 사이에 불과하더라는 이 절묘한 비유
(505) 조신은 승려이긴 하지만 수행을 본업으로 삼는 이판승이 아니라 행정적인 업무를 보는 사판승으로 보인다. 그가 강릉 쪽에 부임했을 때의 일이다. 마침 강릉 태수의 딸을 보고 조신은 한눈에 반하고 만다. 여러 번 낙산사의 부처님 앞에 나아가 은근히 빌었건만, 야속히도 태수의 딸은 배필을 정하고 말았다. 어쩌면 그 딸은 조신이 자신을 사모하는지, 아니 그런 존재가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을지 모른다. 어쨌거나 상심한 마음에 다시 낙산사의 부처님 앞에서 눈물을 흘리다 저물 무렵이 되었는데, 언뜻 선잠이 들었다. 거기서부터 뜻밖에 나타난 꿈은 시작된다.
꿈에도 그리던 아가씨는 진정 꿈으로 왔다. 일찍이 그대를 훔쳐보며 사모했노라고, 부모가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가게 하자 도망을 나왔노라고. 어쩌면 그렇게 마음으로 바라는 말만 하는지, 황홀한 기분이 되어 사판승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 40여년을 살았다. 인간으로 누릴 행복은 그 정도면 충분했으리라.
그러나 그들의 말년은 비참하게 다가왔다. 식구는 불어 자식만 다섯인데 살림은 갈수록 궁해지고, 드디어는 이 마을 저 마을 떠돌며 구걸이나 하는 신세가 되었다. 명주의 게고개를 넘다 열다섯살 짜리 큰 아이는 굶주리다 못해 죽어 길가에 묻었고, 구걸 나갔던 열 살 짜리 딸은 마을에서 개에게 물려 고통을 호소했다. 부모는 그저 눈물만 줄줄 흘렸다.
부인이 눈물을 뿌리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났을 때에는 꽃다운 나이였고, 의복도 좋은 것이 많았으며,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당신과 나누고, 얼마 아 되더라도 따뜻한 옷이면 당신과 함께 입었지요. 이렇게 살아온 지 50년, 정들어 가까워졌으며 사랑하기 그지없어 도타운 인연이라 할 만 했습니다.
하지만 요 몇 년 사이, 쇠약하고 병들기 해마다 심하고, 춥고 배고프기 날마다 팍팍하기만 합니다. 결방에 장종지 하나 구걸하자 해도 사람들은 받아들여 주지 않고, 집집마다 돌며 부끄러움의 무게가 산과 언덕만큼이나 되었습니다. 아이들은 얼어 죽고 굶어 죽으니 살아나갈 겨를도 없는데, 부부간에 사랑이며 즐거운 마음이 들기나 하겠습니까?
고운 얼굴 아름다운 미소도 풀 위의 이슬이요, 지란 같은 약속도 바람에 날리는 버드나무꼴입니다. 당신은 내가 있어 걸림돌이 되고 나는 당신 때문에 근심만 쌓일 뿐, 지난 날의 기쁨능 적이 근심과 고통으로 자리를 내주었군요. 당신이나 나나 어찌 이다지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단 말입니까? 뭇 새가 함께 주리기 보다 차라리 외짝 난새가 마주볼 거울을 가지는 게 낫겠지요.
별 볼일 없으면 버리고 됐다 싶으면 들러붙는 것이 사람 마음으로 감당 못할 일, 그러나 가고 말고 사람의 뜻대로 안 될 일이요. 헤어짐과 만남 또한 운수가 있으니 청컨대 이쯤에서 헤어지자 합니다.”
조신이 듣고 기뻐서 각기 아이를 둘씩 나누어서 데리고 떠나려고 하는데 여인이 말하기를, “저는 고향으로 향할 터이니 당신은 남쪽으로 가십시오.”라고 하였다. 바야흐로 이별하고 길을 가다가 꿈에서 깨어났는데 희미한 등불은 가물거리고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아침이 되자 머리털이 모두 세어 있었다. 조신은 아주 세상에 살 뜻이 없어지고 이미 괴롭게 사는 것에 싫증이 났으며, 마치 백 년 동안 괴로움을 맛본 것 같아 세속을 탐하는 마음이 시원스레 얼음처럼 녹아서 없어졌다. 이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부처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깊이 참회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해현에 가서 아이를 묻었던 곳을 파보니 곧 돌미륵이었으므로 물로 깨끗이 씻어 이웃 절에 봉안하였다. 그리고 경사로 돌아와서 장사의 직임을 사임하고 사재를 털어 정토사를 짓고 백업을 부지런히 닦았는데, 후에는 그 종적을 알 수 없었다.
좋은 시간 금세, 마음은 어느새 시들고
근심은 슬며시 늙은 얼굴에 가득
이제 다시 메조 밥 짓다 깨닫던 이야기 들추지 않아도
수고로운 인생 일순간 꿈인 걸 알겠네 ★★★★ _ 그러니 무엇을 위해 애쓰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세상사가 모두 허망하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욕심나는 것도, 하고 싶은 일도 없어져버린 시간을 보내보고야 알았다. 시간이 의미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의미 있는 것만을 하겠다는 욕심으로 돌보지 않은 시간들이야말로 ‘지옥’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 설사 모두 헛되다 하더라도 그렇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 자체로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
‘인생은 무상하다. 그러니 모두 원하는 바를 위해 힘껏 애쓰거라’라는 부조리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던 붓다의 마지막 유언이 조금은 이해가 될 것도 같다. 의미 유무, 쓸모 여부, 좁디좁은 소견으로 판단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 에너지로 그냥 그 삶에 온 마음으로 참여하자. 어쩌면 그 과정에서 알게 될지도 모른다. 의미없는 순간이 한 순간도 없고, 쓸모없는 시간이 한 순간도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삶은 온전히 껴안을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
운문사 이야기
(537) 화엄경, 모든 것에 거침없는 사람은 한 가지 길로 나고 죽는다. ★
(537) 원효 아닌 원효는 무애의 원효였다. 무애의 원효가 지향하는 바는 관념이나 치장으로서의 불교가 아닌 현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불교였다.
(543) 원효는 대체로 낮은 자리에 사는 사람들의 친구였고, 우리는 이런 장면들에서 바보 같은 원효가 진정 바보가 이님을 확인하는 것이다. ★
의상, 화엄의 마루
순례자를 위해 부르는 노래
(543) 천축 길 하늘 너머 만첩 산인데
가련타 순례자들이 힘써 오르네
외로운 배 달빛 타고 몇 번이나 떠나갔건만
이제껏 구름 따라 한 석장 돌아옴을 보지 못했네
스승에서 제자로 이어지는 어떤 것
밀교의 한 자락
평범한 사람들이 감동적인 이야기
(629) 남편이 나와 함께 10여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저녁이면 같은 침상에 눕지 않았지요. 하물며 몸을 섞었겠습니까? 다만 밤마다 몸을 단정히 바로 앉아, 한 소리로 아미타불을 부르며 염불했지요...이와 같았으니 비로 서방정토에 가고자 아니 해도 어디를 가겠습니까
호랑이 처녀와의 사랑
(650) 호랑이는 결국 호랑이 굴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하룻밤 풋사랑도 아니고, 제 몸으로 낳은 자식까지 버려두고 돌아간 건 ‘사람 아닌 동물이기에 그러려니’하고 말기에는 못내 뒷맛이 쓰다. 어쩌면 슬프기로야 김현의 호랑이보다 이쪽이 더하지 않나 싶다
무엇이 진정한 믿음인가
숨어 사는 이의 멋
(674) 헛된 명성을 만들어서라도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자 하는 것이 세상인심이다
불교가 보는 효도
(693) 돌 종이라는 상징물이 주는 은은한 효과를 생각하며 읽을 필요가 있다
“부처님의 법을 만나기는 어렵고 인생은 짧은데, 효도를 마친 다음이라니? 그건 너무 늦다. 내가 죽기 전에 도를 듣고 깨우쳤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 같지 못하구나.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가거라.”
“어머님은 많이 늙으셔서 오직 제가 옆에서 지켜야 합니다. 이 일을 놓고 출가라니요. 어찌 차마 그러겠어요?”
“아니다. 나를 위한다고 출가를 못하다니. 그건 나를 지옥 구덩이에 빠뜨리는 일이야. 비록 살아서 삼뢰칠정으로 나를 모신들 어찌 효도라 하겠느냐? 나는 남의 집 문 앞에서 옷과 밥을 빌어도 천수를 누릴 수 있다. 정말 내게 효도를 하려거든 그런 말은 하지 말아라.” ★★★
진정의 어머니가 그의 꿈에 나타났다. “나는 이미 하늘나라에서 태어났구나.”
향가, 가장 고귀한 것의 정화
일연, 혼미 속의 출구
(728) 밝음이 어둠이요 어둠이 곧 밝음이며, 어둠과 밝음은 종국에 둘이 아닌 하나라는 불교의 깊은 진리가, 일연의 개명 과정에는 숨어 있다
(729) 일연은, 쉰하나 되던 해 윤산 길상암에 주석하여 한가한 시간을 얻자, 평소 꿈꾸어 오던 일을 했다고 적고 있다. 책은 그로부터 5년 후인 일연의 나이 쉰다섯 살에 완성되었다...일연이 한가한 시간을 얻었다고 말한 이면에는 이 사건과 결부되어 주지직을 내놓고 작은 암자로 옮겼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평소 꿈꾸어 오던 일’이라는 구절이 의미심장하다. 비록 선종사의 중요한 일면을 차지한다고 한들 자신의 산문과 상관없는 책을 편찬하고자 꿈꾼 그의 뜻은 무엇일까?
(741) 13세기 혼미한 사회를 살다 간 일연은 종교와 문확 등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출구를 찾으려 한 혁신적인 승려였다. 그가 <삼국유사> 원효를 특별한 애정으로 기술하고 있음은 누여겨 볼 대목이다. 그 자신이 원효 스타일의 원융적이면서도 혁신적인 삶을 살아가기를 바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시대가 필요로 하는 삶의 모습으로 보였을 터다
사진 찍기는 참 재미있다
(742) 고운기 선배의 제안으로 시작된 <삼국유사> 사진찍기는 어느덧 십년을 넘겼다. 돌아보니 우린 아이를 둘씩 둔 아빠가 되어 있고 비슷하게 맞닥뜨린 고난의 세월과 온몸으로 맞서면서도 <삼국유사>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누가 부탁한 일도 아니었고, 돈이 되는 일은 더욱 아니었지만, 우리에게 <삼국유사>는 깊은 밤 외딴 산길 멀리서 흔들리는 불빛같은 그런 존재였다
(743) 마음이 동하면 그 날로 길을 떠나 혼자 참 많이 다녔다. 다시 읽는 <삼국유사>에서 찾아낸 소중한 한 가지, ‘사랑’을 담아내고 싶었다
(744) 아이들과 아내는 내가 사진에 담으려고 했던 그 어떤 사랑보다도 더 큰 사랑으로 나를 반겨 주었다
(744) 지금 나는 사진찍기와는 조금 떨어진 일을 하며 지낸다. 그래도 사진 찍기는 참 재미있다. 내가 즐기는 것 가운데 가장 신나는 놀이이다....‘솥 안의 국맛’을 책임지는 특별한 ‘한 점 고기’ 같은 사진 만들기. 희망사항이다..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날보다 카메라 가방 매고 쏘다니는 시간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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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 #11. 열정과 기질 | 불씨 | 2018.05.22 | 1707 |
85 | 11. 역사 속의 영웅들 | 해피맘CEO | 2018.05.22 | 1729 |
84 | 사람에게서 구하라/ 구본형 | 박혜홍 | 2018.05.27 | 1706 |
83 | 5월 북리뷰 [열정과 기질] 정승훈 | 정승훈 | 2018.05.27 | 1689 |
82 | #12 익숙한 것과의 결별 | 불씨 | 2018.05.27 | 1670 |
81 | 12. 익숙한 것과의 결별 [1] | 해피맘CEO | 2018.05.28 | 1690 |
80 | #13. 난중일기 | 불씨 | 2018.06.03 | 1693 |
79 | 난중일기 | 박혜홍 | 2018.06.03 | 1702 |
78 | 13. 백범일지(김구, 돌베개) | 해피맘CEO | 2018.06.04 | 2333 |
77 | #14. 기억 꿈 사상 | 불씨 | 2018.06.10 | 1707 |
76 | 리더란 무엇인가 | 박혜홍 | 2018.06.11 | 1710 |
75 | 14. 리더란 무엇인가(조셉 자보르스키) | 해피맘CEO | 2018.06.11 | 2090 |
74 | #15 영혼의 자서전 | 불씨 | 2018.06.17 | 1779 |
73 | 영혼의 자서전 | 박혜홍 | 2018.06.19 | 17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