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혜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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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이름을 ‘수’라 할 수 없는 이유
나는 여고도, 여대도 미션스쿨을 졸업했다.
그렇지만 믿음이 뭔지는 몰랐다. 예배시간에는 졸기 일쑤였고 교목님 설교는 따분했다.
대학 때의 채플시간에 지루한 기도시간이 오면 나는 눈을 뜨고 여기저기 돌아보거나,
오늘 일을 계획하는 등 기도가 누구에게 하는 줄도 몰랐다.
출석 체크 때문에 할 수 없이 모이라는 곳에 모였을 뿐이었다.
이런 모습이 골수 기독교인들에게는 안쓰럽게 보였을까, 내게 전도하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나는 얄팍한 지식으로 그들을 요리조리 피했다.
진지하게 대화를 하고자 하는 친구들이 다가올수록 나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 수위도 점점 높아졌다.
알았으니 혼자 천국가라, 내가 무슨 죄를 졌나 , 그저 띨띨한 것이 죄라면 죄다 라며 좀 재미있는 얘기를 할 수 없냐고
그들을 한심해 했다.
나는 아예 불교학생회에 가입하여 방학때 마다 절에 가서 도를 닦았다. 면벽 수련을 했다.
송광사에서는 법정스님과 타 대학생들도 함께 했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지치지 않고 내게 전도해왔고 나도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지 반격을 가하였다.
어느 해 찬란한 5월이 되어 여대인 우리학교의 축제일이 다가왔다.
남자형제 사이에 커서인지 남자를 그저 성이 다른 인간으로만 봐 온 나에게 축제 때 함께 갈 이성파트너가 없었다.
친구들은 육사생도와 함께 온다, Y대의 학생과 온다하며 모두들 들떠 있었다.
어디서 멋진 남자 인간을 구하나 고심하던 차, 그간 줄기차게 나를 전도해 온 친구가 다정하게 내게 말을 걸어왔다.
파트너가 없으면 자기가 소개해 주겠노라며, 아주 멋진 사람이니 너도 좋아할 것이라는 것이다.
‘호오~ 어떤 사람인데? 몇 학년이야?’ 물어보자 미끼를 물은 물고기를 끌어올리는 낚시꾼의 신난 표정을 하며 저기 조용한 곳에 가서 얘기를 하자며 날 이끌었다. 처음으로 예수 얘기가 아닌 남자 얘기에 홀려서 나는 따라갔다.
‘어떤 남자니?’ 쫓아가며 묻는 나에게 친구는 획 돌아서 말하기를 ‘그 분은 바로 예수님이셔’ 하는 것이 아닌가! 아악~~
도대체 이 끝없는 질김은 무엇인가? 나는 친구에게 진저리를 치면서 ‘너, 나한테 예수의 예 자도 말하지마!’ 일갈하고 그녀에게서
아예 달아나 버렸다. 속이 무척 후련했다.
대학 졸업 전부터 엄마는 내게 살다간 흔적을 남겨야 한다며 결혼을 권했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나는 엄마가 권하는 대로 선을 보았다.
나는 누군가를 찼고, 누군가는 나를 찼다.
그러다가 친구가 결혼하는 날 부케를 받고 선보러 나갔다가 무뚝뚝한 오빠들과는 다른 부드러운 모습과 이름까지 문학적인 그 남자에 반했다.
그 남자가 나의 무엇에 반했는지는 몰랐지만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만난지 한 달 반 만인 26살에 결혼했다.
29세까지 아들 딸을 낳으며 학교를 다녔다.
학교에서도 일명 예수쟁이 교사들이 내게 전도를 해왔다. 목사님과 함께 기도하는 내 꿈을 꿨다는 둥, 성경공부를 같이 하자는 둥,
그들에게 걸릴까봐 퇴근 시간에는 몸을 낮추어 후다닥 달아나기까지 했다.
집에서 안도의 숨을 쉬고 있는데 문득 생각 났다. 남편은 듣도 보도 못한 성씨, 예씨였다......
하나님도 참!!!! 절 아주...! 집에서도 예예예
시댁에 가면 가수 혜은이의 노래가 생각났다. 예예예 예예예예예예 모두 예씨 였다.
말 함부로 하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