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素田최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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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국제공항에 가면 늘 즐겁다. 지난번 몽골에 다녀오면서도 남다른 감회에 젖었다. 세계 어디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시원하고 수려한 여객터미널의 모습과 터미널의 구석구석과 남들이 보지 못한 곳까지 챙기면서 일을 하던 2000년도의 관세청 근무시절이 떠오른다. 2000년 1월에 대전에 있는 관세청으로 전입을 와서 맡은 첫 업무가 신공항 개항에 대비한 Task Force팀인 신공항 대책반이었다. 김포국제공항의 포화와 동북아 선도공항 건설과 항공화물 허브를 위한 새로운 국제공항건설 계획이 확정되었고 95년부터 영종도에 새로운 공항부지가 매립되어 한참 막바지 공사를 하는 시점이었다. 김포공항에서 새로운 신공항으로 이전에 따른 인력, 시설, 제도 등을 종합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신공항 대책반의 임무였다. 대부분 업무처리과정을 볼 때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을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하지만 먼 미래의 일을 조금씩 해놓지 않으면 정말 큰일이 된다. 바로 신공항 업무가 이런 식이었다. 우리청 내부에서도 신공항 개항이 2002년 초로 예정되어 있어 핵심 업무는 아니었고, 업무부서와 담당자가 자주 이전되었고 개항을1년 남짓 코앞에 두고서야 발등이 떨어진 급한 불처럼 갑자기 T/F팀을 긴급히 구성하게 되었다.
막상 T/F에 들어와 보니 해야 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근무인원 증원에서부터 청사 까지 확정되지 않았고, 세관의 감시에 필요한 X-RAY검색기 설치에 대한 지루한 공방만 오고 갔다. 세관에서는 지난 74년 육영수 여사의 저격 때 사용했던 권총이 공항으로 통하여 나왔다는 진술의 원죄와 남북 대치상황에서 입국장에 X-RAY검색기를 설치하고 있다. 신공항은 신속한 화물처리를 위하여 수하물 검색 시스템은 완성이 되었지만, 수하물 없이 비행기를 내려서 가는 휴대품 검색시스템은 도입하지 않았다. 공항에는 많은 기관들이 상주하고 있어 이들과의 업무협조도 쉽지 않았다. 여객에 대한 검사는 그렇다 치더라고 항공화물을 통관할 청사의 부지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 상태로 김포공항이 이전할 경우 업무의 혼란과 직원들의 고생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 되었다. 맨 막내로 들어간 나는 여기 저기 정신없이 매인 신세가 되어 정신없이 바빴다.
대책반의 팀장님은 그래도 지금이라도 대책반이 생겨서 다행이라고 하면서 이전에 따른 준비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대책반의 지상목표는 “성공적인 신공항 이전”이었다. 이전준비에 만전을 기하라는 청장님의 특별지시도 내려왔다. 업무를 분야별로 나누고 분야별로 그동안 진행상황을 정리하고 새롭게 추진할 과제를 선정하였다. 이런 큰 업무부터 자질구레한 업무까지 모두 망라하여 별도의 책을 한권 만들어 관련 부서와 담당자에게 배포하였다. 앞으로 업무 담당자들이 해야 할 일과 문제점, 그리고 담담 연락처 까지 모두 넘겨주었다. 이제 대략적인 업무를 인계하고 남은 일을 통관청사 부지 확보하고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었다. 아마 가장 어려웠던 일은 매일 현장을 보러 영종도 까지 출장을 다녔던 기억이다. 지금은 인천국제공항에 갈 때 편리하게 통행료를 주고 신공항 고속도로를 타고 갔으면 되었지만, 초창기에는 차를 몰고 인천 월미도에 가서 배를 타고 영종도에 들어갔다. 또 신공항내 여객터미널은 한번 왕복하면 대부분 10여 킬로미터 이상이다. 동편 터미널에서 시설을 한번 보고 서편 터미널로 가면 식사시간이 되고, 대리석을 걷는 관계로 다리도 천근만근이 된다. 또 장비가 많기 때문에 확인하는 시간도 많이 소요된다. 지친 몸을 끌고 운전을 하여 다시 대전에 오면 거의 밤 10시가 넘었다. 다음 날에는 다시 일찍 나가서 출장 결과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더욱 어려운 것은 업무처리가 천천히 진행된다는 것이다. 대부분 검색시스템과 건물은 설계도에 반영되어 있었고, 급하게 건축을 시행하는 입장에서 설계 당시에 꼼꼼하게 검토되지 않은 것이 큰 문제였다. 설계까지 바꾸는 작업은 전체 공정상 불가능한 일이였고, 다른 상주기관의 자리를 확보해야 하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공항 개항일이 다가오자, 다른 공항의 이전사례를 파악하기 위하여 일본 간사이 공항의 이전 매뉴얼을 확보하여 정신없이 이전계획을 수립하였다. 김포공항에도 실무대책반을 수립하여 실제 움직이는 부분을 직접 챙기게 하였고, 마지막으로 공항이 이전하였을 때를 대비하여 적응훈련을 실시하여 이전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 하였다.
드디어 2001년 3월 29일. 인천공항이 개항하였다. 이전대책과 적응훈련으로 몇 가지 소한 일은 있었지만, 세관업무와 관련된 큰 혼란은 없었다. 점차 공항이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고, 우리 대책반의 업무는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약 15개월이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았다. 내 생애에서 처음으로 T/F팀에 근무를 해보았고, 형식에 매달리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보았다.
톰 피터스는 이러한 Task Force를 각개격파라고 이름으로 명명을 했고 초우량 기업들이 생산성 향상 및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많은 활용하는 제도라고 하였다. Task Force팀의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정인력과 자발성과 창조성을 강조하였고 더 나아가서는 초일류 기업의 기업문화를 더욱 격상시키는 일을 한다고 하였다.
수많은 임기응변적인 행동을 찾아볼 수 있는 역동적 환경은 겉으로는 조직이 무질서한 혼란 상태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일 뿐이다. 형식이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저변에는 공동의 목적의식으로 충만해 있어 긴장과 갈등이 오히려 조직의 기업문화를 한층 더 견고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기능한다.(235p)
신공항 대책반은 자발적인 부분보다는 사명감과 창의성이 높았던 것 같다. 사명감과 창의성을 팀장님이 개념을 달았고, 우리는 현장위주로 철저히 문제점을 파악하고 개선책을 만들었다. 초창기의 정신없는 혼란상태였지만, 업무처리 절차라는 매뉴얼을 만들어서 난관을 타개했고 6명의 팀원들은 똘똘 뭉쳐서 문제를 해결했다. 초우량 기업에서 운용하는 T/F와 성격은 틀리지만, 바로 코앞에 있는 문제점들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처리하였다는 목적은 성공하였다. 인천국제공항은 늘 옛날의 추억과 T/F의 요결이 무엇인지 잊지 않게 해주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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