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박승오
  • 조회 수 3060
  • 댓글 수 6
  • 추천 수 0
2007년 9월 17일 13시 38분 등록


‘유감입니다만, 저희 대학에서는 귀하의…’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한 군데도 아닌, 지원했던 8개 대학 모두에서 거절당한 주인공 ‘바틀비’.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부모님의 눈을 바라보는 것은 슬픈 일이었다. 불합격 소식을 차마 알릴 수 없었다. 대학을 가지 않고 직업을 가짐으로써 4년간의 대학 학비보다 무려 8만불이나 많은 돈을 벌수 있다는 통계치를 들어 부모를 설득하려 해보지만 그들의 충고는 따끔하다.

“아들, 그만해. 사회는 분명한 규칙이 있어. 그 첫번째 규칙은 대학을 가는 것이지.
성공적이고 행복한 인생을 원해? 그럼 대학부터 가.”

그는 발칙한 반란을 시도한다. 인터넷에 가상의 대학교를 만들어 자신을 합격시킨 것이다. 명문 ‘Harmon’ 대학의 로고를 편집하여 가짜 합격증과 합격 편지를 위조하고, 컴퓨터의 달인인 그의 친구를 꼬드겨 그럴듯한 가짜 학교 웹사이트를 꾸미면 끝. 그는 더 이상 거부당하지 않기로 결심한 것이다. 터무니없고 정당치 못한 일이었다. 허나 그 마음만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지 않은가?



‘Harmon대학의 자매학교인것처럼 South Harmon이라고 지을까?
아니야. 그건 너무 진부해 보여. 차라리 공과대학으로 만들면 어떨까? 그래.
South Harmon Institute of Technology. 좋아. 발음도 그럴 듯 한데!’
(그러나 흥분한 그는 모르고 있었다. 학교의 이니셜을 붙이면 S.H.I.T.(똥) 이라는 것을…)

“내 아들이 자랑스럽구나!! 축하한다!”

위조 합격증을 받아 본 부모는 펄쩍 뛰며 기뻐한다. 대학이란 아들이 아들로 불릴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곳, 본래 그런 곳이 아니던가. "아무도 좋은 교육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좋은 학위를 원할 뿐이다" 는 루돌프의 말처럼 말이다. 어쨌든 그는 기뻤다. 이제 해결의 물꼬가 틔어가는 것이다. 게다가 아빠가 등록금으로 준 1만달러 짜리 수표까지 손에 들려있지 않은가.

“아빠는 입학식에 너를 태우고 갈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대는구나~”

젠장. 바늘도둑이 소도둑으로, 작은 눈속임이 대형 사기극으로 번졌다. 일은 점점 꼬여가고 있었다. 결국 그는 대학을 함께 떨어진 친구들과 등록금을 합쳐 건물을 임대해야 했다. Harmon 대학 옆의 폐쇄된 정신병원 건물이었다. 색칠하고, 문지르고, 때빼고, 광을 내었다. 입학식에는 외국 유학생에게 압력을 가하여(?) 학생들을 채워넣고 부모님을 보기좋게 속여 넘겼다. 휴우~ 이제 끝났구나. 한 학기동안 무엇을 하고 놀까? 그런데 이게 왠 날벼락인가.

“똑똑똑”
“누구십니까?”



“여기가 S.H.I.T.이죠? 웹사이트에서 오리엔테이션을 확인하고 왔어요!!”

맙소사! 문 밖에 서있는 전국의 대표 꼴통들.
합격한 대학이 없어 이곳저곳의 홈페이지를 기웃거리다 우연히 S.H.I.T.의 홈페이지에 들어간 학생들이었다. 바틀비의 실수로 '입학 지원' 버튼을 클릭한 모두가 ‘Accepted’ 통지를 받은 것이었다.

짐작했겠지만, 그들은 바틀비처럼 모든 학교에서 거부(rejected)당한 자들이었고, 상처받은 영혼들이었다. 그렇기에 이 학교에 합격했다 했을 때 그들의 부모님은 생전 처음으로 그들에게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그런 그들을 어찌 매몰차게 내 좇을수 있겠는가?



그들은 공통점이 거의 없었다. 초능력으로 물건을 폭파시키고 싶어하는 멀대, 락앤롤에 미치고 싶은 피자배달부, 의상 공부를 위해 팬티속 꼬깃꼬깃한 팁을 모아야했던 웨이트리스, 모험에 살고, 도전에 죽는 반항적인 스케이트보더들. 공통점이 있다면 모두가 사회가 만들어 둔 기준에 합당하지 못하는 부적응자들이었다. 바틀비는 그들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거부당하는 쓴맛을 여덟번이나 보지 않았던가. 수업료를 이미 납부한 그들을 내쫒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바로 그가 대학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그가 제일 처음 한 것은 옆의 Harmon 대학으로 달려간 것이었다. 그는 대학이 어떤 곳인지부터 알아야했다. 대학에서는 무엇을 가르치고, 어떤 사람들이, 왜 그곳에 있는지 알아야했다. 그러나 그가 본 것은 악몽이었다. 지루한 수업속에 잠을 설치며 암기하는 학생들, 사진 전공이 아니라서 수업에서 쫒겨나아햐는 사진사의 꿈을 가진 여학생. 요상한 코스튬을 입은 채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신입생. 왜 분주한지 모른채 쫒기듯 바쁘게 스쳐가는 학생들. 그는 그들이 결코 부럽지 않았다. 그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가장 단순한 것으로부터 출발하기로 결심한다. 비즈니스의 핵심은 고객과 그들의 필요가 아니던가. 적어도 이 학생들은 무언가 중요한 ‘경험’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 무엇을 배우고 싶어?”
“내가 무엇을 배우고 싶냐고? 그건 왜 묻는데?”

그들은 처음엔 질문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도 그들에게 그렇게 묻지 않았으니까. 허나 그들은 곧 이해하기 시작했다.

“무엇을 배우고 싶니?”
(한무더기의 남자들) “그야 당연히.. 여자!”

“뭘 배우고 싶어?”
“뭘하고 싶냐고? 그냥 가만히 있고 싶어. 명상 따위나 하면서”
“내 초능력으로 이것저것 폭파시키고 싶어”
“난 색다른 팬케익과, , 그리고 레모네이드를 만들고 싶어”
"그야 당연히, 미치도록 락앤롤~~ 으아~~~~!!!"

“그래? (화이트보드를 가리키며) 그럼, 그걸 여기에 적어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화이트보드에 적힌 작은 문구 하나는 가르치기를 원하는 학생들과 배우기를 원하는 학생들의 명단으로 빼곡히 채워졌다. 『산책하며 명상하기(201호)』에서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난 환경속에서 인생을 계획하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자신에게 귀 기울이기(202호)』는 각자의 개인 경험을 돌아보며, 우리의 숨은 소질이 말하도록 하는 미술 수업이었다.『스케이드보드(234호)』에서는 경사로를 지을 때 공학과 항공역학, 물리를 동원했다.『미치도록 락앤롤(222호)』는 방황하는 세대의 음악과 가사속 불안감을 감상했다. 그리고 미치도록 락을 불렀다.

학생들은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다. 그들은 둘을 배우면 하나를 가르치고 싶어했고, 자신이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하여 교수의 숫자는 늘 넘쳐났다. 그렇게 그들은 친구이자 스승으로 새롭게 만났다. S.H.I.T.은 창의성과 가능성이 넘치는 뜨거운 장이 되었다. (꿈벗들 생각이 난다구요? 저도 공감합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욱 좋았습니다.)

이렇게만 영화가 '잘' 나갔을까? (그렇다면 영화가 아니겠지.)
물론 문제가 있었다. 이웃의 Harmon 대학 총장이 이들을 못마땅히 여겨 교육부에 고발해버린 것이었다. 정식 인가가 없는 학교에 대한 명문학교의 시기심이었다.

"교육의 현장에서 흔히 일어나는 것은, 자만하고, 잡일에 치인, 요령 부득이며, 지적으로 마비된 교수들에 의해 사람들이 타고난 능력을 모두 잃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은 이 상실을 성숙이라고 부른다"
- 풀러(R. Buckminster Fuller)


결국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모든 사실은 들통나고, 바틀비는 사기꾼이 되었고, 학생들은 하나 둘 학교를 떠난다. 그리고 교육부의 인정 심사가 있던 날, 그들은 다시 한 자리에 모인다.




이것은 아마도 지나친 과장일 것이다. 영화란 본래 비현실성에 기반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 저변에 흐르는 메시지는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 현재의 학교는 문제가 많다. 특히 한국에선 더욱 그렇다.

한국의 부모들은 세계적인 교육광들이다. 굶어도 애들은 학교에 보낸다. 집과 논을 팔아서라도 아이들은 교육을 시킨다. 이것이 바로 한국의 광적인 교육열이며, 곧 우리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힘이고 에너지이다. 한국이 앞으로 지식 사회에서 세계적인 리더십을 가질 가능성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힘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제대로된 교육 체계가 필요하다. 교육은 만들어 놓은 커리큘럼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쏟아 붓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 특성과 재능을 발굴하고 계발시켜주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찰스 핸디는 말했다.

“나는 학교가 인생을 미리 실험하는 안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재능-우리 모두는 시험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재능을 갖고 있다- 을 발견하는 곳, 자기의 과제와 다른 사람에 대한 책임을 배우는 곳, 우리가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언제 필요한지를 깨닫는 곳, 인생과 사회에 대한 우리의 가치와 신념을 탐구하는 곳, 이런 곳이 되어야 하다고 확신한다. 내가 볼 때 그런 것들이 지식 위주의 교과과정보다 더욱 매력적인 교과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학생들 모두에게 황금의 씨앗을 주어야 한다.”

사부님이 말씀하신것 처럼 "미래는 창의적의고 상상력이 뛰어난 문제아들의 세기"이다. 그들에게 황금의 씨앗을 나누어 주려면 억지로 구겨넣는 것이 아닌 스스로 배우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들이 자신을 ‘세상의 경이로움’ 임을 깨닫게 해 주려면, 학교 교육 과정이 그들 '스스로의 교육 과정'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정말 알아야 할 것은 남이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IP *.232.147.138

프로필 이미지
옹박
2007.09.17 12:55:41 *.232.147.138
언젠가 이 영화 리뷰로 컬럼 한편을 꼭 쓰고 싶었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메세지가 살아있는 좋은 영화입니다. 영화를 보실 분은 되도록 제가 올려놓은 동영상 클릭하지 마시고, 인터넷에서 구해서 보세요. (한국 개봉은 안된 영화라 비디오, DVD는 없습니다) 필요하신 연구원은 제가 다음 모임에서 CD로 구워 드릴께요.
프로필 이미지
기원
2007.09.17 13:13:08 *.176.140.60
찡한 감동이 지금도 가슴떨리게합니다.
감동적인 학교를 옹박님이 만들어 주시면 어떨까요?
제가 기꺼이 돕는 역을 맡아주고싶어요.
참 좋은 영화입니다.
학교는 원래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배울 수있는 곳이면 어디나 학교인것이 분명한것인데.. 요즘은 선생님들을 위한 학교가되어버린 곳이 많치요
우리들은 이미 좋은 학교에 다니고있지요?
변경대학^*^
좋은 생각할 수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프로필 이미지
우제
2007.09.17 13:13:29 *.114.56.245
커가는 모습이 눈으로 보인다. 어찌 이런 멋진 생각을. 다음에 내가 학교를 세우면 너를 기획실에 배치하마. 나는 간섭하지 않는다. 단 너의 교육철학을 좀 더 들은 후다.
프로필 이미지
지혜
2007.09.17 21:14:00 *.187.233.124
글을 읽고 너무 흥미로워서 바로 전편을 봐 버렸습니다.
아주 재밌고 통쾌하네요.
주인공이 들이닥친 신입생들 앞에서
급작스런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말한 게 인상깊네요.

We say YES to your hopes,
we say YES to your dreams,
we say YES to your flaws!

꿈과 희망, 그리고 약점까지도 수용해주는 교육.
정말 꿈만 같네요. 앞으로 우리가 변화시켜갈 일이지요 ^^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프로필 이미지
한정화
2007.09.18 06:17:00 *.72.153.12
한번 봐야겠다.
옹박, 난 CD 부탁해.
프로필 이미지
자로
2007.09.19 09:41:53 *.152.82.31
나도 봤다.
디게 재밌네.
근데 나이가 많아서인지 좀더 현실적인 눈으로 보게 되더라.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르는 기분이었더.
고마워.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872 Samll society- Dream come ture. [1] 최정희 2007.09.11 2889
4871 (23) Drawing lines, Dreaming ways. file [4] 時田 김도윤 2007.09.13 2777
4870 Wow를 조각하는 예술가~! file [3] [1] 현운 이희석 2007.09.17 3031
4869 [칼럼 24] 꼬마 디자이너들 [2] 海瀞 오윤 2007.09.17 2333
4868 (24) 잊고 있던 도시, 그 곳 [3] 香仁 이은남 2007.09.17 2181
4867 나를 찾아가는 길 [4] 한정화 2007.09.17 2675
4866 [칼럼24]신공항을 성공적으로 개항하라. [1] 素田최영훈 2007.09.17 2159
4865 (24) 변화의 원(The Circle of Change) [4] 時田 김도윤 2007.09.17 2617
» (24) 억셉티드(Accepted) [6] 박승오 2007.09.17 3060
4863 [24] 머리카락으로 웃겨주기 전설 [4] 써니 2007.09.18 2797
4862 새벽- 은빛으로 퍼덕거리는 언어를 잡아올리다. [3] 최정희 2007.09.18 2534
4861 (25) 공간 이동 [2] 香仁 이은남 2007.09.23 2305
4860 [칼럼 25] 나같은 사람도 있어줘야 [2] 海瀞 오윤 2007.09.24 2543
4859 [칼럼 25] 미스터 초밥왕 [2] 余海 송창용 2007.09.24 3352
4858 [25] 한가위 글쓰기의 해프닝 [2] 써니 2007.09.24 2540
4857 [칼럼022] 뉴욕, 젊은 열정을 말하다. [3] 香山 신종윤 2007.09.24 2504
4856 [25] 같은 것에서 다른 것을 만들어 낸 날 [3] 교정 한정화 2007.09.24 2588
4855 [칼럼25]베짱이의 화려한 부활 [3] 素田최영훈 2007.09.24 2485
4854 -->[re] 정화의 글 속에 나오는 사례를 반드시 볼 것 [2] 부지깽이 2007.09.24 2726
4853 2가지의 일과 2가지의 놀이 [1] 현운 이희석 2007.09.25 2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