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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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스민 문학]
고개를 들어 당당하게 하늘을 보라
-샬롯 브론테 <제인에어>
지난 한 달 동안 저에게는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미리 계획했던 일을 앞두고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여러 군데서 발생했고, 결국엔 그 작은 일들의 일탈이 모여 계획했던 일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어찌 보면, 작은 일이라 미뤄놓았던 일들이 한꺼번에 자기를 봐달라고 소리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들을 접하는 과정에서 저에게 무엇이 의미가 있는 일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계획했던 일들이 제대로 풀리지 않은 지난 몇 주간, 제 손을 떠나지 않았던 책이 있습니다. 샬롯 브론테의 <제인에어>입니다. 제인에어. 이야기만 보면 꼭 ‘하이틴 로맨스’류의 성장 소설 같다고 치부해 버릴 수 있지만, 한번 잡으면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마력의 책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습니다.
어려서 부모 없이 외숙부 집에 맡겨진 제인에어. 이런 비련의 주인공은 남다르게 아름다운 외모여야 하지만, 제인에어는 그렇지 않습니다. 얼굴도 못생기고 성격도 모났습니다. 뾰족한 성격에 외숙모와 사촌들로부터 온갖 학대를 당하지만, 결코 고분고분한 아이는 아닙니다. 소위 말하는 ‘여전사’ 포스가 풍기는 그런 아이. 그러던 어느 날, 사촌의 시비로 시작된 몸싸움에 그녀는 붉은 방에 갇히게 됩니다. 그 일을 계기로 제인에어는 외숙부 집에서 쫓겨나 고아 소녀들을 위한 로우드 자선학교로 보내집니다. 여기서의 에피소드는 잠시 뒤로하죠. 세월은 흘러, 학교를 졸업하고, 제인은 모교 교사가 됩니다. 2년간 자신을 돌보아준 학교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독립을 결정합니다. 손필드 가(家)의 가정교사를 자청합니다. 이곳에서 집 주인인 로체스터를 만납니다. 괴팍하고, 미남도 아니고, 나이 차이도 20살 넘게 나는 이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결혼을 결심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혼 당일, 제인은 로체스터가 정신병에 걸린 아내를 저택 안에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아주 사이다 같은 전개에 손이 떠나지 않는 장면입니다.
한 남자의 정부(情婦)로 살기를 거부하고 그 저택을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채 도망칩니다. 길거리를 헤매다 한 목사에게 발견된 그녀는, 겨우 그의 집에서 몸을 의지하고 살다가 1년 후에 그 목사로부터 청혼을 받습니다. 하지만, 종교와 가정, 그리고 해외 선교를 둘러싼 사랑 사이의 신념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겠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만나게 된 로체스터. 제인이 집을 떠난 이후에 로체스터의 숨겨둔 부인은 집에 불을 지르고 자살했으며, 화재 사건으로 인해 한 쪽 눈과 팔을 잃은 채 나타난 것입니다. 초라해진 로체스터를 본 제인의 마음은 어떠했을 까요? 그리고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개성이 강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여주인공 제인에어는 여러 가지로 통쾌함을 던져줍니다. 그녀는 이야기합니다.
“저는 새가 아닙니다. 그러니 어떤 그물로도 나를 잡을 수는 없어요. 나는 독립적인 의지를 지닌 자유로운 인간이니까요.”
<제인에어>에는 다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두 언니 또한 학교 기숙사에서 잃은 작가 샬롯 브론테의 삶이 투영되어있습니다. 그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좌절했고, 19세기 영국 사회의 억압으로 여성은 제대로 된 소설을 발표할 수 없음에 괴로워했습니다. 그러나 샬롯 브론테는 ‘고아’라는 사회적 편견과, ‘그런 신분의 사람은 절대로 전문직을 가질 수 없다’는 당시의 인습에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쟁취하는 ‘제인에어’를 창조합니다. 그녀는 이야기합니다.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나쁜 마음을 품거나 지나치게 속상해 하면서 세월을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나도 짧다.”고.
지난 몇 주간 제가 느낀 조그만 차별과 멸시, 그리고 그 존재를 충분히 느끼게 만들었던 비정한 사회를 살아가는 저에게 제인에어는 말합니다. 당신은 얼마나 당당하게 당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고 있냐고. 저 또한 저만의 방식으로 당당하게 저에게 주어진 일들을 개척해 나가야겠습니다.
샬롯 브론테의 다른 작품 <교수>를 얼른 읽어봐야겠습니다.
정재엽 (j.chung@hanmail.net)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