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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27일 13시 16분 등록
원주로 향하는 국도(國道)는 한산하다. 간간이 스쳐지나가는 길가의 코스모스가 우리가 서울을 벗어났음을 알린다. 이대로 길 따라만 간다면 남편과 나와의 ‘일상 탈출’은 완벽한 셈이다. 그러나 원주를 24킬로미터 전방에 두고 핸들을 우측으로 돌린다. 영동고속도로에 진입을 시작함이다. 추석명절이라지만 고속도로는 제 기능을 다하고 있다. 대부분의 차들은 고속 질주를 한다. 우리도 달린다. 출발하기 전 아이들이 전해준 토끼 그림이 있는 작은 담요가 자동차 뒷좌석에 그대로 놓여있다. 생각하건데 저 작은 아기 담요는 우리가 부산에 도착을 할 때까지 그대로 얌전하게 있을 것이다. 날이 채 저물기 전에 우리는 목적지에 도착하리라는 것은 서울을 떠나기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들이 안고 있는 부산 고향을 찾는 그 기분을 그대로 간직해 두고자 내가 기꺼이 저 담요를 받아든 것임을 남편은 알고 있다.

1994년,
인천에서 부산을 향하여 출발한 시각은 오후 2시였다. 경부고속도로에 접어들기도 전에 차는 기어가지도 못했다. 그냥 도로 위에 서있었다. ‘고속도로는 거대한 주차장 이었다.’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당시 두 아이들은 7살이 채 못 되었고, 좁은 자동차 안은 귀향길이 반가고 즐거운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었다. 수원에서 차는 움직일 줄을 몰랐다. 밤이 이슥해지고 고속도로위의 자동차들은 한 대 두 대 갓길로 나가기 시작했다. 노곤함을 달래고 언제 풀릴지 모르는 정체를 그렇게 기다리고자 함이다. 10월의 밤공기는 싸늘했다. 언제 외갓집에 도착하느냐는 그 수많은 물음에 지쳤음인지 아니면 돌아가는 상황을 읽었음인지 두 아이는 잠을 청했다. 분홍색에 커다란 토끼 두 마리가 놀고 있는 아기 담요를 덮어주자 그들은 집에서의 편안함 그대로 깊은 잠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에야 고향집에 도착할 수 있었고 마을 입구 개울물에서 세수도 하고 잠깐의 물놀이도 즐겼다.

그 후, 우리 가족의 명절 고향 방문길은 여행길이 되었다. 되돌아 보건데 그것은 남편과 나와의 최상의 결정이었고 경탄의 아이디어였다. 돗자리는 물론이고 텐트를 준비하고 여행에 필요한 모든 도구는 차 트렁크 속에 넣었다. 여행길이 되었기에 굳이 고속도로를 따라갈 필요도 없었다. 전라도지방을 돌아서 진주를 거쳐 부산에 도착하기도 했고 동해안을 따라 포항, 감포를 거쳐 울산에 이르기도 했다. 남편과 나에게는 물론이거니와 아이들에게도 즐거운 여행이었다. 준비한 도시락에 컵라면을 먹는 재미와 스쳐지나가는 계절의 풍경은 그들에게 결코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것’ 이상이 되었다. 아이들은 그 속에 꿈을 실었고 유년의 뜰을 만들어 나갔다. 부산은 그들에게 ‘환대받음’과 ‘사랑받음’으로 기억되고 울산 할머니댁은 시골스러움이 주는 향긋함을 가슴 저 밑바닥에 심어 두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그들의 심층부에서 자란 유년의 싹은 그들에게 마음의 온기가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의 초점이 되어갔다.

우리 아이들만 즐거운 귀향길이었으랴. 나도 즐거웠으며 남편도 행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산길에서 알밤을 줍는 맛하며 낙엽을 밟고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갔다 내려가는 재미는 아이들것 못지않았다. 특히 설날의 귀향길에서 맛보는 그 쌩쌩 거리며 달리는 겨울바람의 싸한 모습은 잊을 수 없는 묘한 향기로 남아있다.

길은 사방으로 뚫리었다.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서해안 고속도로, 중앙, 중부내륙고속도로가 표현대로 하자면 ‘시원스럽게’ 뚫렸다. 아무리 정체가 심하다 해도 7시간 정도면 부산에 도착한다. 아이들도 자라서 더 이상 고향 길에 동승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름대로 할 일이 생겼고 또 다른 즐거운 일들이 생겼다. 우리는 단지 그들이 귀향길에 가졌던 그 따뜻한 기억들이 색을 바래지 않고 아이들의 가슴에 살포시 머무르고 있음에 감사해야함을 알고 있다. 남편과 나의 고향방문길에 잊지 않고 전해주는 그 토끼그림의 담요 속에
두 아이의 꿈이 녹아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길은 예부터 있었고 또 있을 것이다. 그 형태도 다양할 것이며 그것이 품고 있는 의미 또한 다양할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꿈으로 나타날 것이고 또 어떤 이 에게는 소통이라는 것으로 다가설 수 도 있을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는 Asia expressway 로 표기되고 KTX가 달리는 철도는 ‘일일생활권’이라는 용어로 대체된다. 그러나 내가 품고 있는 ‘길’은 향수를 품고 있고 따뜻함을 품고 있고 그리움을 안고 있다. 굽이쳐 돌아 흐르는 강을 따라 끝없이 나 있는 강둑길로 기억되고 있으며 조그만 아기 담요로 기억되고 있다.

2007년 추석의 귀향길은 ‘고속도로 정체’ 라는 것이 없었다. 동시에 ‘길’이 주는 아련함도 없었다. 다만 남편과 나와의 소곤거림이 잊지 않고 찾아주었음에 위안을 삼는다.
IP *.54.1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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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9.28 11:35:26 *.145.231.231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는 기분을 느끼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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