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산
- 조회 수 809
- 댓글 수 0
- 추천 수 0
가족처방전 – 일곱 살 엄마와 화해하고 싶어요
저는 올해 마흔의 여성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엄마는 늘 일곱 살 어린 아이의 상태였습니다. 엄마가 왜 그렇게 된 건지 저는 모릅니다. 선천적인 장애인지 사고로 얻은 병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여태 엄마를 엄마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늘 원망스러웠습니다. 엄마가 싫어서 성인이 되자 마자 집을 나왔습니다.
얼마 전에 엄마 몸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뒤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처럼 순수했던 엄마의 미소만 떠오릅니다. 지금이라도 엄마를 찾아가도 될까요? 엄마가 저를 알아볼까요? 일곱 살 엄마와 화해하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사연을 받고 한참 동안 고민했습니다. 길에서 우연히 일곱 살 또래 여자아이를 만나면 보내주신 사연이 떠올랐습니다. 마흔이 훌쩍 넘어도 엄마라는 역할이 버겁기만 한데 일곱 살 엄마는 어땠을까, 일곱 살 엄마와 함께 해야 했던 딸의 삶은 또 어땠을까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모른 척 답장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권정생의 <사과나무 밭 달님>을 소개합니다. 필준이 어머니 안강댁은 ‘얼빠진’ 할머니입니다. 베개를 업고서 소꿉놀이를 하고 고기가 먹고 싶다 장 구경을 가고 싶다 하며 아들을 졸라 댑니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어머니 때문에 필준이는 국민학교도 3학년까지만 다니고 그만두었습니다. 열 두 살 때부터 거지 노릇을 하고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해서 겨우 먹고 살았습니다. 마흔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가고 어머니 때문에 사람들의 비웃음을 받았지만 필준이는 어머니를 탓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냅니다. 어머니와의 일상에서 행복을 찾습니다.
“필준아, 내가 나쁜 어미야…….”
안강댁은 정신이 좀 들면 하염없이 필준이를 건너다보며 말꼬리를 흐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왜 나쁘셔요?”
“내가, 내가 미친 사람이지 않니……”
필준이는 그만 목이 꽉 메었습니다. 온통 주름투성이 어머니의 얼굴이 너무도 애처로웠기 때문입니다.
‘불쌍한 어머니.’
<사과나무 밭 달님>를 읽고서 오랜만에 엄마를 뵀는데 엄마 모습에서 안강댁이 보였습니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 드문드문 빠진 이 때문에 움푹 페인 볼이 너무나 애처로웠습니다. 끝이 없는 기대로 부담주는 엄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엄마를 오해했던 것 같습니다. 내 삶이 내 맘대로 되지 않은 걸 엄마 탓을 했던 것 같습니다. 곁에 있어서, 살아 계셔서 눈물 나게 고마운 존재가 바로 엄마였습니다.
더 늦기 전에 엄마를 찾아가세요. 엄마를 뵙기 전에 <사과나무 밭 달님>을 읽어보세요. 일곱 살 엄마와의 만남에 필준이와 안강댁이 함께 해 줄 거예요. 저도 마음으로 함께 하겠습니다.
***
격주 월요일에 발송하는 마음을 나누는 편지 '가족처방전'은 필자와 독자가 함께 쓰는 편지입니다. 가족 관계가 맘대로 되지 않아 고민하고 계시다면 메일로 사연을 보내주세요. 마음을 다해 고민하고 작성한 가족처방전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김정은(toniek@naver.com) 드림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2996 | 혁명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 [2] | 부지깽이 | 2012.03.02 | 4629 |
2995 | 무엇이 슬픈가? [2] | 최우성 | 2012.03.05 | 4635 |
2994 |
동시성,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 ![]() | 승완 | 2012.03.06 | 5777 |
2993 | 인생의 로열젤리 [1] | 문요한 | 2012.03.07 | 5235 |
2992 | 오래 가기의 비밀 [4] | 김용규 | 2012.03.07 | 3679 |
2991 |
어떻게 ‘지나치지 않게’ 개혁에 성공할 수 있는가? ![]() | 부지깽이 | 2012.03.09 | 5243 |
2990 | 가장 소중한 존재 | 최우성 | 2012.03.12 | 5296 |
2989 |
신화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 ![]() | 승완 | 2012.03.13 | 3923 |
2988 | 세상의 모든 새는 둥지를 떠난다 [1] | 문요한 | 2012.03.14 | 6550 |
2987 | ‘지금 다음의 모습’을 통찰하라! [1] | 김용규 | 2012.03.14 | 4742 |
2986 |
마르시아스, 오만의 껍질을 벗고 ![]() | 부지깽이 | 2012.03.16 | 9435 |
2985 | 오래된 고마움 [1] | 최우성 | 2012.03.19 | 5202 |
2984 |
지복(bliss)의 길을 따르리 ![]() | 승완 | 2012.03.20 | 4491 |
2983 | 가장 중요한 깨달음 [1] | 문요한 | 2012.03.21 | 4534 |
2982 | 지금 다음의 모습을 통찰하라 2 | 김용규 | 2012.03.22 | 5015 |
2981 |
불행 속에 희망이 숨어 있는 이유에 대하여 ![]() | 부지깽이 | 2012.03.23 | 6078 |
2980 |
당신과의 인터뷰 ![]() | 최우성 | 2012.03.26 | 6265 |
2979 |
영혼을 위한 독서 ![]() | 승완 | 2012.03.27 | 4479 |
2978 | 천개의 문제, 하나의 해답 [2] | 문요한 | 2012.03.28 | 4290 |
2977 | 그렇게 보아야 한다. | 김용규 | 2012.03.29 | 50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