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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영혼은 독립을 이루었느냐? “아니, 이 밤에 어인 일이냐?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 밝은 달에 마음을 빼앗겨 잠을 이루지 못하고 대청에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던 백범은 어느새 다가와 옆자리에 앉아 있는 미옥에게 물었다. “선생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제 깜냥으로는 어림도 할 수가 없어 답답해하던 중 마침 선생님께서 앉아 계시는 것을 뵈니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올라왔습니다.” “그래, 무엇이 그리도 궁금하더냐?” “『백범일지』를 읽었습니다. 솔직히 전엔 그저 훌륭한 분이신가보다 했었는데, 일지를 읽으며 우리 근현대사를 몸소 체험하며 역사를 이끌어 오신 선생님의 삶에 압도당했습니다. 그런데, 개인으로서의 삶을 포기하신 채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투신하신 선생님께 존경의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 어떻게 저럴 수 있었을까 의아하기도 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도 마음을 지킬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이셨습니까?” “허..그게 그리도 궁금했더냐. 달도 밝고 술도 한잔 걸쳤으니 내 글로는 풀어내지 못했던 심정을 허심탄회하게 들려주도록 하마. 자..그럼 이야기가 길터이니 너도 한잔 받거라” “예~” 미옥은 마음과 눈과 두 손을 모아 술을 받아 살짝 입술을 축였다. 백범도 술잔을 비우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숨을 고르더니 마치 시조를 읊듯 말문을 열었다. “솔직히 인간 김창암으로 돌아가면 나는 견딜 수가 없었다. 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감옥에 獄苦를 치룰 때 뿐만이 아니었지. 잠시라도 짬이 생겨 내 삶을 돌아보면 뭐하나 이룬 것 없는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또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참기가 어려웠지. 하지만 김구를 버리고 김창암으로 돌아간다 한들 단란한 가정의 가장으로 식구들과 정을 나누는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세상이 나를 위해 마련해놓은 자리는 내가 눕기엔 너무도 좁고 누추한 자리였지. 내가 이 자리를 버리고 그 시절 사회가 허락했던 나의 가정으로 돌아가 식구들과 함께 먹고 자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해도 내 아이들이 자라서 亡國奴의 멍에를 지고 살아갈 것을 알고 있는 내가 한 순간인들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겠느냐? 오히려 그런 비극을 손 놓고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괴롭지 않겠느냐?" “하지만 그 시절에도 집안을 보전하며 아이들 훌륭하게 교육시킨 사람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런 사람들의 자식들이 지금까지 선생님께서 모든 것을 걸고 찾아온 나라의 수혜자가 되어있지 않습니까? 가장이 자기 자존심을 좀 죽여서 사랑하는 가족들을 지킬 수 있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더 훌륭한 것 아닙니까? 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던데..가정을 제물로 평정한 천하는 대체 무슨 가치가 있는 겁니까? 결국 자신의 공명심을 위해 가족을 희생시킨 것뿐이지 않습니까?” “녀석, 이 밤중에 나에게 그걸 따져 물으려고 잠도 안자고 기웃거린 것이냐? 허허..이 녀석이 아주 작심을 했구나! 속이 다 타는구나. 술이나 한잔 더 따라라” “아니..그런 것은 아니오나..실은 그것이 지금 제가 안고 있는 문제...” “되었다. 내 어찌 모르겠느냐? 있는 대로 말해줄 터이니 걱정 말거라. 실은 내겐 그런 저울질을 할 만한 기회조차 없었다. 가난한 상민의 자식으로 태어나 단지 양반이 아니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사람대접도 받지 못하며 자랐다. 처음엔 科擧에 급제하면 사람답게 살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기를 쓰고 공부를 했지만, 막상 과거 시험장 모양새를 보니 헛된 꿈이었음을 알았지. ‘미관말직까지 돈으로 사고파는 세상에 벼슬 살 돈이 없는 내게 글공부는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했던 것이다. 그렇게 좌절해 있다가 이런 세상에서 내가 팔자를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상묘를 잘 쓰거나 귀인을 만나 대박을 터트리는 길 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관상학을 공부해 보기도 했지. 그런데 짧은 지식으로 아무리 뜯어봐도 나는 그런 대박을 맞을 관상이 아니지 않느냐. 힘이 빠져 그것도 더는 계속할 수가 없었다. 그 무렵 만난 것이 동학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접주’가 되어 동학운동에까지 휘말리게 되었지만 내 마음을 움직였던 것은 순전히 ‘동학이 추구하는 평등 세상이 이루어지면 양반 아닌 나도 사람대접 받으며 살 수 있겠구나’하는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더구나. 오히려 어중이떠중이 모인 동학교도들의 사회는 더 어지럽기만 했다. 동학도 내가 꿈꾸는 세상을 여는 열쇠가 아니었던 것이지. 그러다 고능선 선생님을 만났다. 스승께 세상이치를 배우면서 왜놈들이 우리나라를 넘보고 있으며 왜놈의 속국이 되면 지금보다 더 못한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스무 살 혈기의 내게 왜놈은 그렇지 않아도 비참한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괴물’같은 존재였지. 치하포에서 왜놈을 죽일 때도 무슨 큰 뜻이 있었다기 보다는 나를 못살게 구는 괴물을 처단한다는 심정이었을 거야. ‘사람답게 살아 보겠다’ 이 얼마나 소박한 소망이냐. 물론 그때만 해도 이 소박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이리 파란만장한 길을 걷게 될지는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미옥이 빈잔에 술을 채우자 백범은 달을 안주삼아 한잔을 들이키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는 다른 누구를 위해 살지 않았다. 그저 매 순간 내게 주어진 선택지 가운데 최선을 택했고, 그 선택의 결과가 나의 인생이 되었던 것뿐이지. 어쩌면 내 인생엔 가족과의 단란한 삶이라는 선택지 자체가 없는지도 모르겠구나.” “..............” “물론 딸아이 셋을 어려서 읽고, 큰 아들마저 잃게 되었을 때는 나도 흔들렸다. 아들 인이는 나를 도와 독립운동을 하다 해방을 몇 달 앞둔 1945년 3월 중경에서 폐병으로 죽었지. 페니실린만 맞으면 회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다른 동지들도 맞지 못한 비싼 주사를 내 아들이라고 해서 맞힐 수는 없었다. 아들을 살리고 모든 것을 버리고 싶은 생각으로 내 머릿속은 터져버릴 것 같았지. 하지만 생각해보아라. 가진 것 없는 상놈의 자식이었던 내가 자식을 위해 귀하디 귀한 페니실린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나와 남의 분별없이 마음을 다해 민족을 위해 일한 대가 아니겠느냐? 만일 그 마음을 계속 지키지 못했다면 어차피 내게는 주어지지도 않았을 선택지였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다스려지더구나. 게다가 만일 페니실린으로 아들을 살릴 수 있었다 치자. 그렇게 목숨을 건진 내 아들이 아버지 덕분에 살았다며 아버지로서의 내 사랑에 의지하여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느냐? 나는 그리 생각지 않는다.” “그럼 선생님은 대의명분을 위해 내 자신과 가족의 희생은 불가피했다고 생각하신다는 건가요?” “아직 모르겠느냐? 나는 한 번도 누구를 위해 대신 희생한다고 생각한 적 없다. 그것은 내 가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나는 하루를 살아도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고, 불행히도 내 시대에는 누구도 대신해서 나를 살맛나게 만들어줄 사람이 없었을 뿐이다. 내가 원한다면 내 손으로 쟁취했어야만 했지. 영혼을 저당잡히고 호의호식을 한다 한들 그것이 사는 것이라 할 수 있겠느냐? 나는 아직도 믿고 있다. 내가 내 가족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봉사는 그들에게 영혼을 찾아주는 것, 다시 말해 노예의 삶을 면하게 해주는 것이라고.” 2010.6 『백범김구』북리뷰 중에서 |
‘너의 영혼은 독립을 이루었느냐?’ 라는 백범의 질문은 유효했다. ‘영혼의 독립’이라니. 당시의 나로선 그게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만 가슴에 품은 사무치는 그리움과 깊은 관계가 있는 상태라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백범에게 ‘나라의 독립’이 그토록 열망하던 사람다운 삶을 위한 기본 조건이었듯 ‘영혼의 독립’은 ‘사는 것처럼 살기’ 위해 반드시 성취해야 할 그 것, 다시 말해 내 존재를 이루는 근본적인 욕망과 연결된 키워드였다. 아직은 너무나 희미해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그 불확실함조차 일상의 안온에 함몰되어 근본에 태만한 스스로를 합리화해주지 못했다.
이미 그 ‘근본’을 구하는 길 위에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길 위의 시간들이 더 할 나위없는 뜨거움으로 채워진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영혼의 독립’의 실체와 그에 이를 수 있는 방법들이 가시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떠난 여행.
에게해와 나눈 이야기 에게해에 처음 몸을 담그던 밤이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각,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을 가르며 굳이 에게해로 들어갔던 것은 일종의 신고의식이었다. 「이렇게 온전히 나를 내어줄게. 너를 드러내기를 주저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내일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라도 좋겠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너를 느끼고 싶은 거야. 그래서 이렇게 온 거야」 나의 메시지를 알아듣기라도 했다는 듯 바다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 따뜻한 수온으로, 그 미묘한 파동으로. 처음만난 내게 응당 가져야 할 어떤 조심도 경계도 없이 자연스레 조근조근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나 쉽게 너를 내주는 거니? 너는 아직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잖니? 미안해. 나는 조금 더 준비가 필요한 것 같아. 하지만 꼭 다시 올게. 준비가 끝나면 너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다 끝나면..그 때 와서 너의 이야기를 들을게」 서둘러 어두운 바다를 빠져 나왔다. 미안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준비가 된 것은 머리뿐이었다. 아무런 의심도 없이 그 넓은 품을 선뜻 내어주는 에게해를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건 머리가 아니었던 것이다. 속이 상했다. ‘박미옥, 너 뭐하는 거니? 늘 이런 식이잖아. 떠미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너 스스로 결정한 일이면서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니. 그렇게 겁이 난다면 뭐 하러 굳이 그리스까지 찾아 온 거니’ 다음날이었다. 크루즈는 그리스의 미코노스에 나를 내려 놓았다. 우리 일행에게 주어진 시간은 3시간 남짓, 기대되는 활동은 이 낭만적인 하얀섬에서 가벼운 산책을 즐기다 바다와 태양이 협연하는 장대한 일몰공연을 감상하는 것 정도. 굳이 바다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는 편안함 때문이었는지 오히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바다와 육지가 맞닿은 곳이었다. 사람하나 누울 만큼도 안 되는 좁은 모래사장을 발견하자마자 나는 얼른 운동화를 벗어들었다. 「어제는 미안했어. 그냥 좀 겁이 났던 것 뿐이야. 너의 이야기를 들으면 너를 떠날 수 없을 것만 같았거든.」 발바닥까지 밀려왔다 밀려가기를 되풀이하던 파도가 갑자기 무릎까지 높아졌다. 발목까지밖에 거둬두지 않았던 바지가 다 젖어 버렸다. 이런. 「알았어. 화난 거 알아. 그치만 넌 참 시원하구나. 그렇게나 그리워하던 바로 그 느낌.」 그렇게 밀려간 파도는 짧은 해변이 다 끝나가도록 다시 와주지 않았다. 「화난 거 맞구나. 그럴 만도 하지.」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행과 함께 펠리칸도 찾았고 피자도 먹었고 맥주도 마셨다. 물론 멋진 일몰도 놓치지 않고 챙겨 보았다. 에베소서의 배경이 되었다는 에페소 유적과 요한이 묵시록을 썼었다는 동굴 등을 둘러본 그 다음날은 정말 더웠다. 타는 듯한 태양아래서 숨 쉬는 것조차 버거울 정도였다. 올라가는 체온에 아직도 집에 가려면 6일이나 더 버텨야 한다는 막막함이 겹쳐 하루 일정을 마치고 크루즈로 돌아올 즈음엔 얼른 씻고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바다라면 이동 중인 크루즈에서 질리도록 봤으니까. 에게해를 직접 느낄 수는 없었지만 갑판위에서 바람이나 갈매기가 전해주는 이야기를 듣는 걸로도 충분하잖아. 그의 체온이 그립기는 하지만 어차피 나는 돌아가야 하는 걸.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긴 했지만 어차피 나랑 한 약속 따위는 다 잊어 버렸을 텐데 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겠어? 그러니까..나만 괜찮으면 되는 거야. 나만. 그치?’ 아마도 그들이 아니었다면 내가 에게해를 다시 만날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나와 에게해의 재회는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는 에너지를 가진 그들을 여행의 동반자로 받아들였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나의 앞날을 예고하고 있었는지도 모르니까. 그날 밧모스의 해변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유혹적이었다. 그 순간 머릿속은, 아니 온 몸은 그저 바다를 향한 그리움뿐이었다. 그렇게 다시 에게해에 몸을 담그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온몸의 힘을 풀고 그에게 완전히 몸을 맡길 수 있었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는 그 자체로 바다는 물론이고 그에 맞닿은 하늘에 대지까지 내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처음부터 이 파도의 일부였던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었다. 바람따라 물결따라 나도 함께 밀려갔다 밀려왔다. ‘아~! 이대로..이대로 세상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 나만 눈을 감아버리면 되는 거다. 나만.’ 얼마나 그렇게 떠다니고 있었을까? 멀리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너무 멀리가면 위험해요!!」 갈등이었다. 하지만 이내 몸을 일으켜 일행들이 있는 쪽으로 헤엄쳐 갔다. 그리고 또 그들과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을 나누는 그 특별한 의식은 어느새 나의 에너지 게이지를 풀로 채워 주었던 것이다. 그날 이후, 에게해는 더 이상 이전의 그 바다가 아니었다. 나의 에게해로 새로 태어난 것이다. 나의 에게해가 아니었더라면 나머지 6일을 과연 버텨낼 수나 있었을까? 지금 여기는 서울이다. 사랑스런 나의 에게해에게 돌아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로 12시간을 꼬박 날아가야 한다. 하지만 슬퍼하지 않는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고 있다면 12시간쯤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돌아오는 비행기표 없이 그를 향하게 될 날이 오리라는 걸 믿으니까. 그러니까 그날이 올 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살아 있어야 하는 거구나! 살아남기 위하여 어떻게 하면 되는 거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하나다. 당신만의 에게해를 가져보라고. 2010.8 ‘연구원 칼럼, 그리스 여행기’ 중에서 |
그랬다. 내 열망의 근원은 ‘사랑’이었다. 경계를 허물고 존재를 나누고 싶은 욕망. 그 충만한 나눔을 통해 누리는 기쁨은 내 오랜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그 기쁨이야말로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제이자 존재가 제 모습 그대로 성장해나갈 수 있는 양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그리도 분명하다면서 나는 왜 그리도 황급히 도망쳐왔던 걸까? 대체 무엇이 준비되어야 그 ‘언젠가’를 현재로 초대할 용기를 낼 수 있게 되는 걸까?
You do something to me 한 남자의 정숙한 아내 두 아이의 지혜로운 엄마 성실한 생활인 현실에서 소화하려고 애쓰는 나의 배역들이다. 주어진 역할들을 얼마나 훌륭히 소화하느냐에 따라 배우로서의 나의 가치가 결정된다. 그렇다면 이 모든 역할들을 수행함으로써 최종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내 존재의 본 모습은 무엇일까? 언젠가부터 '스스로의 기쁨으로 세상을 기쁘게 하라'를 삶의 모토로 삼고 있지만 실제로 일상의 역할들 속에서 나는 얼마나 나답게 기능하고 있는 걸까? 여행은 기회였다. 이번 여행에서 나는 그동안 생활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스스로 정한 수많은 터부를 넘어보는 방식으로 나의 현재를 진단해보기로 했다. 나를 떠나 마셨고,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피웠으며, 스스로에게 조차 감추고 싶었던 상처와 속살을 기어코 헤집어 내놓았다. 해방감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흉내내는 것과 몸을 던지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경험이었다. 현실감이 결여된 꿈이기에 '로망'이라 불리던 일탈, '로망'이라 불렸기에 한없이 목마르기만 했던 신기루 중 대부분은 가짜였지만, 그 중 몇은 진짜 나에게로 연결된 깊은 오아시스라는 느낌이 들었다. 일상에서 풀지 못한 모든 문제의 답을 내기에 열흘은 턱없이 짧았지만 가짜 로망을 솎아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여기에서 멈출 수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여행에서 맛본 일탈의 샘물이 달콤할수록 두 가지 종류의 이율배반적인 질문의 세트가 집요하게도 나를 공격해왔다.
이것이 다였다면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여행 전과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정반대 방향에서 치고 들어오는 또 한 세트 질문목록의 기세 또한 만만치 않았다.
여행에서 돌아온 지도 사흘이 넘었지만 나의 의식은 아직도 일상에 착지하지 못하고 지중해와 서울 사이를 배회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질문세트를 해결하지 않고는 무엇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아 아직도 풀지 못한 짐과 어지러운 집을 남겨두고 카페를 찾았다. 카페에 앉아서도 한참을 커피만 축내다 드디어 마음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다. 충분히 마셔보지 않았던 것도, 피워보지 않았던 것도, 마음껏 나눠보지 않았던 것도 아니잖아. 하려고 들었다면 선택권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그것들을 현실에서 밀어냈던 이유는 무엇이었니? 결국 불쾌한 여운을 남기는 것들을 하나둘씩 제거한 결과가 지금의 현실을 구성하고 있는 거잖아. 누리는 기쁨보다는 치르는 고통이 더 크다고 판단해 기꺼이 물리쳤던 자유였잖아. 그래서 좋았잖아. 흡족했잖아. 이번 여행을 통해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믿고 싶었던 것들 중에 어떤 것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구? 그래? 그렇다면 기회는 얼마든지 줄께. 자신있다면 도전해 보렴. 단,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 자유에는 언제나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는 맥빠지게 평범하지만 뼈져리게 아픈 변함없는 진실. 하지만 너무 겁먹을 것도 없어. 어차피 네가 연기하는 일상 속 역할들도 결국은 모두 진짜 네가 되어가는 과정일 뿐이잖아? 기쁘게 누리고 또 당당히 치러 내는 것도 네가 그토록 그리워하는 ‘너’를 만나기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수련일 테니까. 2010.8 ‘연구원 칼럼, 그리스 여행기’ 중에서 |
이 글을 쓰고서야 여행으로 흔들리던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일상에서 소화하고 있던 그 모든 역할들 역시 그토록 열망하던 ‘사랑’의 다른 이름들이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이 버겁게 느껴지는 것은 내 사랑의 근육이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받아들인 덕분이었다. 나의 에게해를 만나기 위해 굳이 12시간이나 비행기를 타야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우쳤던 거다.
‘지금 내게 주어진 현장에 몸을 던져보자. 삐죽거리며 발끝만 담궈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 주어진 상황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밧모스의 바다를 받아들였듯이 거부하지 말고 힘을 빼고 몸을 담궈보는 거야! 그러다보면 네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딱 좋은 시점에서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문을 만나게 될 테니까.’
그러고 보니 그 여름 이후 나는 그 바다를 한 번도 떠난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일상의 사랑을 껴안으면서도, 그렇게 밀려가고 때론 뒷걸음질 쳐오면서도 조금씩 조금씩 그리운 지중해에 가까이 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8년치의 사랑근육을 얻은 덕분일까?
이제는 조금은 더 용감하게 에게해와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는 나도 그 바다를 힘껏 안아줄 준비가 된 것 같다. 그동안 조금씩 다듬어오던 영혼의 독립 선언서를 발표할 때가 머지 않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