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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25일 00시 17분 등록
일은, 직장에서 돈을 받고 하는 일만이 진정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실수였다. 찰스 핸디의 말처럼 이런 생각은 다른 종류의 일에 열심인 사람들을 모독하는 것이다. 지금은 가정 일도 아주 가치로운 일임을 진심으로 믿는다. 자원 봉사를 자처하는 분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만족감을 나 역시 느끼기에, 자원 봉사 역시 내 일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또한 공부하는 것과 운동하는 것까지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들 중에는 의식적으로 잘 처리하려고 신경 써야 하는 일들도 있었다. 반면에, 아주 자연스럽게, 미루지 않고, 즐겁게 해 내는 일들도 있었다. 전자는 일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후자는 일보다는 놀이에 가까웠다. 내 삶의 영역을 이루는 2가지의 일과 2가지의 놀이에 대하여 얘기하고 싶다.

2가지의 일 : 가정 일, 운동

1. 가정 일

나는 장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설거지를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진다. 마트에서 카트를 끌며 장을 보는 것과 설거지를 끝낸 뒤의 개운함을 좋아하긴 하지만, 가정 일이 ‘놀이’가 아닌 ‘일’의 범주에 속하게 된 것은 내가 매일 매일 가정 일을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2~3일 미뤄두었다가 한꺼번에 해내는 편인데, 이것으로 보아 놀이만큼 신나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나의 긍정성 때문에 일을 할 때마다 귀찮아하지 않고 즐겁게 해내는 것이다.

나에게는 여성스러운 면이 있다. 남의 얘기를 잘 듣는 편이고, 아기자기한 예쁜 물건들이 많은 팬시점 둘러보는 것이 즐겁다. 그 곳에서 예쁜 노트나 작은 장식용품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쁜 그릇을 구입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casamia에서 귀여운 자명종 시계를 하나 샀다. 이런 팬시점에 가면 그간 무심했던 가정 일에 대한 열정(?)이 싹트는 것 같아서 좋다. 가정 일에 충실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보상은 생각보다 컸다. 이를 테면, 하루의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 느낄 수 있는 안정적인 소속감이나 ‘혼란스러운 세계 속의 아늑한 섬’에서 누릴만한 행복감이다.

이런 감정은 집안이 잘 정돈되고 미뤄진 설거지가 없을 때 더욱 진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가정 일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질 때쯤엔 코엑스의 팬시점에 들르곤 한다. 가정 일은 굉장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종종 다른 일들 때문에 가정 일에 소홀해지곤 하기 때문이다. 팬시점 쇼핑은 일종의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찰스 핸디의 말을 진실로 믿는다. “가정 일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들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아내와 아이가 생겨날 때에는 지금보다 가정 일이 훨씬 중요해질 것이다. 나는 가정적인 남자가 되고 싶고, 가정 일에서도 아내와 현명하게 협력하고 싶다. 지금부터 그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면 즐겁다. 중요한 것은 내가 즐거워하든 그렇지 않든 가정 일은 내가 하는 여러 가지 일 중의 중요한 한 가지라는 점이다.

2. 운동

운동은 보다 멀리 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의 하나도 운동이다. 운동이 신체적인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정신적인 건강과 만족감에도 큰 도움이 된다. 나는 매주 월요일마다 회사 동료, 선배들과 2시간 정도 농구시합을 하는데, 농구를 하고 돌아오는 길, 몸은 개운하고 마음은 상쾌하다. 행복감이 높아지는 순간들 중에 하나다. 기상 희망시각인 새벽 5시에 일어나면 체조를 하고 동네 5바퀴를 뛰는데 이 역시 아주 유쾌해지는 순간이다.

중요한 일인 줄 알면서도 긴급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미루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어리석음이다. 규칙적인 운동은 내 삶에 자연스러운 모양이 아니다. 그래서 운동은 나에게 ‘놀이’이기보다는 ‘일’에 가깝다. 하지만 운동을 하면 삶에 활력이 생기고 기분이 상쾌해지며 건강이 나아지리라는 것을 안다. 나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기에 시간을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운동은 유난히도 다른 영역의 놀이와 일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하루 빨리 규칙적인 운동습관을 만들어 보다 활기찬 삶을 만들어가야 할 일이다. 10월부터는 수영장 등록을 해야겠다.

2가지의 놀이 : 자원봉사, 학습

이제 2가지의 신나는 놀이에 대해 말해야겠다. 이 2가지는 내 삶에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모양이 되었다. 이 말은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더라도 나는 이 2가지의 일을 한다는 뜻이다. 또한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더라도 이런 일들을 기꺼이 한다는 말이다.

1. 자원봉사

“내가 잘하지도 못하는 것을 통해 기여하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내가 가장 잘하는 몇 가지를 무상으로 지원해 주는 편이 더 낫겠다고 생각했다.” - 찰스 핸디

나는 한 달에 한 번 씩은 돈을 받지 않고, 강의를 한다. 일 년에 12번은 하겠다는 목표를 세워두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강연을 ‘봉사특강’이라고 이름 붙였고, 2년 전부터 이런 시도를 해 왔다.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은 내게 일어난 두 가지 경험 때문이다. 첫 번째는 군대에 있을 때, 사당역 근처의 상록보육원에 자원봉사를 나갔던 적이 있는데, 그 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런 곳에서도 양질의 교육이 진행될 수 있으면 좋겠다. 장차 내가 훌륭한 강사가 되어 이런 곳에 와서 강연을 해야지.’

두 번째는 4~5년 전, <아름다운가게>의 관계자로부터 기부의 형태에 대하여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든 이야기를 들었던 일이다. 이랜드의 한 재무전문가가 가끔씩 와서 <아름다운가게>의 재무컨설팅 기부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분은 ‘기부’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 전까지는 나는 일정액의 돈을 기부하는 것이 기부의 전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돈 뿐만 전문지식, 노동력 등도 기부의 형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 일들을 통해 돈을 기부하는 것 이외의 다른 형태의 기부가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고, 나는 강연을 통하여 기부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나는 보수를 받지 않고 일을 하는 것의 기쁨을 발견하였다. 사람들은 이런 형태의 일을 가장 만족스럽게 여긴다. 다른 사람들의 강요나 금전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이 일이 좋아서 하기 때문이다. 9월에는 3번의 봉사특강을 했고 그 때마다 무척이나 기뻤음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그 중에 한 번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었는데, 어느 학생이 메일을 보내왔다. 장문의 메일이었고,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되었다.
“그날 정말 열정적인 강연을 해주신 점, 그렇게 좋은 강연을 무료로 해주신 점, 그리고 언제든 다시 한 번 강연을 해주시겠다고 말씀해주신 점, 저를 이렇게 변화시켜주신 점, 모두 감사드립니다.”
이런 말을 듣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한데, 이렇게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를 정성스럽게 보내오는 것도 좋다. ‘보너스 행복’이니 기쁨 두 배, 감동 두 배이다.

2. 학습

“독립적인 벼룩은 기댈 곳이 자기 자신밖에 없다. 돈 버는 일의 미래를 확보하려면 공부하는 일이 본질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 - 찰스 핸디

공부하는 것은 놀이다. 그것도 아주 즐거운 놀이다. 배움에는 분명 기쁨이 있다. 새로운 것을 깨닫는 지적 발견은 완벽한 유희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배우려는 의지가 있다면 누구나 이 놀이에 참여할 수 있다. 배움에는 ‘용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이 필요하다. 우리 집 옆옆옆집에는 31년생의 할머니가 사신다. 그 분은 가수다. 정식 앨범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노래 교실 15년 경력의 아주 베테랑 가수다. TV에도 두 번 출연하셨으니 그 쪽에서는 꽤나 유명하신 분이다. 31년생이시면 올해 나이가 77이시다. 그런데 아주 정정하시고 젊으시다. 늘 웃으신다. 경상도가 고향인 그 분과 90분 동안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계속 “인생 참 즐겁대이. 행복하대이”라는 말을 하신다. 그러면서, “총각 항상 배우래이.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 대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분은 노래하는 것이 참 행복하단다. 그 분이 하시는 노래는 의외로 젊다. 그것도 아주 젊은 곡들이다. 이루의 노래를 즐겨 부르신단다. 아마도 요즘에는 FT 아일랜드의 노래를 부르실 것 같다. 트로트는 이런 발라드보다 부르기도 쉽고 그래서 재미도 덜하단다. 어려운 노래를 마스터하고 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고 하신다. 하지만, 어려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는 32분 음표 같은 어려운 이론적 공부를 해야 했다고 한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는 조금 힘들었지만 일단 부지런히 공부하여 배움을 깨치고 나면, 새로운 세계로 발을 내딛게 된다고 하셨다. 그 때,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더 큰 즐거움을 경험하게 된다는 말씀을 하셨다. 트로트의 8분 음표가 결코 줄 수 없는 감동과 기쁨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할머니의 들뜬 얼굴이 떠오른다.

이 때, 배움을 향한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말이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이 필요하다. ‘내가 지금까지는 이것을 잘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으로 도전하는 태도 말이다. ‘에이.. 난 학창시절 때부터 영어를 잘 못했기 때.문.에. 지금도 어쩔 수 없어’라는 생각과 ‘난 학창시절 때부터 영어를 잘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한 번 도전해 볼 테야’라는 생각은 그 생각만큼이나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나는 ‘용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정신으로 20대를 살아온 것 같다. 10대의 ‘이희석’은 공부도 형편없고 정신력도 나약한 학생이었다. 그랬던 내가 20대의 10년 동안 참 많이도 변했다. 가장 크게 변한 것은 나의 사고방식이었다. 달라진 생각과 새로운 정신으로 도전한 영역이 바로 ‘학습’이다. 지금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강연을 준비하는 것은 내 삶에서 큰 영역을 차지한다. 탐구심이 많은 나에게 공부하는 것은 곧 노는 것이다. 이것은 전혀 귀찮거나 싫거나 부담스럽지 않다. 강연 전에 가끔 느껴지는 약간의 긴장감은 부담감이라기보다는 짜릿함이다. 나는 학습이 좋다. 배움이 가져오는 만족할만한 결과도 좋지만, 배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나에게 학습이 ‘일’이 아닌 ‘놀이’인 까닭이다. 나는 이 놀이를 나의 직업으로 연결 짓고 싶다.

*

사실, 놀이에는 ‘직업적 일’이라는 것이 하나 더 추가되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직업적 일’을 보다 깊게 성찰해 보고 싶었다. 가장 즐거운 놀이이기도 하고 가장 복잡하게 이뤄지고 있기도 해서다. 찰스 핸디의 『코끼리와 벼룩』을 읽고서 내 일의 구획짓기를 끝내고 나니, 정말 은퇴하여 여생을 즐기는 사람들이 왜 그다지도 바쁜지 이해하게 됐다. 나 역시도 회사 일이 좀 줄어들더라도 다른 일들이 왜 이리도 많은지 알게 되었다. 돈 버는 일을 나머지 일들과 바꾸어도 아주 보람 찬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보다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인생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 나 자신을 보다 잘 알게 된다는 것, 이것은 값진 깨달음이다. 이런 깨달음이 있는 하루는 알차다. 저자에게 감사하게 되는 밤, 그런 밤을 맞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IP *.135.205.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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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이
2007.09.26 09:27:12 *.75.15.205
쿠빌라이 희석, 바빴구나. 늦어지길레 누야가 걱정을 쬐까 했더랬다.

추석 명절은 잘 쇠었느냐. 할머님과 외삼촌 댁에는 다녀왔겠지?
너의 20대를 강건하게 지켜준 그분의 은총과 사랑, 할머님의 헌신과 가족들의 따뜻한 보살핌이 오늘의 그대라는 것을 생각해 보게 돼.

별 나라의 부모님께서도 아주 만족하실 거야. 누나가 보증할 수 있는 그런 믿음직하고 성숙한 모습 계속 이어가길 바랄께.

그리고 말야, 언제 기회가 되면 너의 <꿈의 공개강연> 한 번 듣고 싶구나. 재능을 꽃피우며 나눔과 도움을 실천해 가는 너의 성실한 삶이 아주 자랑스러워. 너무 좋아~ 그리고 너로 인해 네 주변의 모든 분들께 감사하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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