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재엽
- 조회 수 121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일상에 스민 문학]
- 아이스킬로스,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혹시 희곡을 읽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희곡은 읽기 전 무대만 머릿속에 그리면 그 다음부터는 휙휙- 하고 읽게 되는 마법을 부립니다. 연극 연출을 전공하는 제 친구를 얼마 전에 만났습니다. 오랜만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그리스 비극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이스킬로스’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아니. 없는데.”
저의 대답은 초라했지만, 정작 연극을 전공한 자신도 최근에 읽었다며 이야기했습니다.
“정말 굉장한 작품이야. 꼭 한번 읽어봐.”
저는 그 길로 바로 도서관에 들러서 도서관 검색 컴퓨터에 아.이.스.킬.로.스를 찍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딱 한 권이 있었습니다. 책 제목은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 저는 딱 10분만 집중하자, 며 무대 위를 상상해 보았습니다.
이 책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예지의 신(神)’ 인 프로메테우스가 주인공입니다. 그는 최고의 신인 제우스가 아버지를 내쫒고 신들의 제왕이 되는 데 일조합니다. 제우스가 올림포스의 권력을 차지하게 될 것을 미리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결국, 인간을 모두 없애라는 제우스의 계획에 반기를 들게 되고,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달합니다. 그러나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가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는 프로메테우스를 카우카소스 산 절벾에 묶어두고는 독수리에게 매일 간을 파 먹히는 형벌을 내립니다. 독수리는 그의 간을 쪼아먹지만, 밤만 되면 그의 간은 다시 자라나게 되는 벌입니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프로메테우스와 제우스 간의 권력 싸움이 아닙니다. 바로, 부당한 권력 앞에서 당당히 싸우는 용감함입니다. 희곡 전반에 걸쳐 제우스가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의 입을 통해 제우스는 곧 폭군의 상징으로 그려집니다. 신들의 입장에서 보면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친 것이지만, 반대로 인간들의 입장에서 보면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전달해 준, 진정한 혁명가로 그려지는 것입니다.
기원전 5세기에 그려진, 신화 속 주인공을 ‘혁명가’로 떠올리는 것은 가진 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려는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사슬에 묶인 프로메테우스>는 단순히 제우스에게 벌을 받는 프로메테우스가 아닌 정치적 이해와 폭군의 상징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이 작품을 통해 프로메테우스의 용맹함에 매료를 느낄 수 있지만, 저는 제우스의 잔인함에 더 매료되었습니다. 현실 속에 펼쳐지는 잔인한 게임을 훔쳐보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라고나 할까요?
그리스 신화 속에서는프로메테우스는 흙을 강물에 반죽해 인간을 창조합니다. 그는 인간이 서서 걸을 수 있는 능력을 불어 넣어주었고, 제우스가 감추어 둔 불을 전해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그 불을 이용해 문명의 시대를 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친 인류의 스승이며 수호자입니다. 이렇듯 인간을 사랑하고 제우스의 권력에 항거한 프로메테우스는 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베토벤은 <프로메테우스의 창조물> 서곡을 작곡했습니다. 구스타프 모로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신화의 작품을 모티브로 해서 명화들을 남겼습니다. 까뮈는 <시시포스의 신화>에서 부조리에 항거하는 모습으로 그리기도 하였습니다.
작가 아이스킬로스는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절대 권력을 항한 저항과 자유를 위한 도전, 그리고 새로운 시대를 향한 열망을 그려냅니다. 그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 안의 프로메테우스는 혹시 잠자고 있지 않은가요? 라고.
저는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겁니다. 그리고 물어봅니다.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인,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그리고 에우리피데스의 작품들을 시간 날 때마다 함께 읽어보는 건 어떠냐고요.
정재엽 (j.chung@hanmail.net)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