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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일 09시 37분 등록
구식이와 기동이는 거지였다. 그러나 거지라는 말은 내가 편의상 붙인 이름이고 이 두사람을 거지라고 불러 본 기억은 없다. 어디까지나 기동이고 구식이었다. 어린시절의 기억이나 판단은 때로 믿을 것이 못되지만 내 나이 열 살 무렵 당시, 구식이는 콧수염이 희긋희긋했으니까 아무래도 쉰은 가까이 되었나보다. 기동이는 구식이보다는 한 참 아래였다. 우선 외양이 그랬다. 새까만 머리에다 얼굴도 팽팽하고 불그스럼했다. 그리고 노래할 때면 목소리가 마을 골짜기를 타고 산아래까지 내려 꽂히기도 했으니까.

구식이와 기동이가 마을에 나타나면 제일 즐거운 것은 아이들이었다. 두 거지의 뒤를 따르며 그들을 쉼없이 불러대는 것이 그랬고 기동이의 구수한 노랫가락을 듣는 것이 그랬다.
기동이는 노래를 잘도 불렀다. 자작곡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나 멜로디는 지극히 평범했고 가사엔 애수를 담고 있었다. 땟자국이 번들거리는 검정색 양복을 입고 등엔 봇짐을 잔뜩 짊어진 채 목젖이 보이도록 불러대는 그의 노래는 마을의 유희고 오락이었다. 노래가 끝나면 우리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어른들은 맛난 것을 기동이에게 주었다. 보답이였고 그도 우리 마을의 구성원이라는 표시였다. 그러면 기동이는 또 다시 한 곡조를 뽑는다. 그가 ‘앵콜’이라는 것을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늘 그렇게 덤으로 한 곡씩을 더 불러주곧 했다.
기동이가 노래를 했던 것은 그가 밥을 얻어먹기 위한 방편이었든 즐거움을 수반한 그만의 놀이였든, 그것은 기동이만 알 일이다. 분명한 사실은 노래의 답례로 받은 음식을 비롯한 옷이며 담요등 여러 가지 생활도구를 소홀히 하는 것 하나 없이 등짐에 모조리 넣어 지고 다녔다는 것이다.
구식이는 기동이와는 달랐다. 외양에서도 그러하거니와 행동거지 면에 있어서도 확연했다. 우선 그는 노래하는 것에 있어서는 철저한 방관자였다. 부르지도 않거니와 기동이가 노래를 아무리 감질나게 불러도, 어린 관객들이 열광을 하고 답례로 그를 유혹해도 그는 그저 무덤덤한 청중일 따름이었다. 박수도 보내지 않고 그렇다고 방해자도 아니였다. 그냥 기동이를 묵묵히 지켜 볼 따름이었다. 소유하는 것에서도 기동이와는 확실히 달랐다. 기동이가 넝마주의형의 거지라면 구식이는 초탈형 거지였다. 먹는것에 욕심을 부리지도 않았고 나중을 위해 음식을 싸가지고 가거나 옷가지를 챙겨 넣은 일은 더더구나 없었다. 마을 어른들이 염려스러워 걸방을 만들어 주면 언제나 거절이였다.
“괜찮십니더”
“ 안가져갑니더”
그런 구식이를 보고 어른들은 한마디씩 던지셨다.
“꼴에 자존심은 있어가지고, 걱정마라. 지(구식이)야 얼어죽든 말든”

마을 어른들의 염려와는 달리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들면 마을 어귀엔 어김없이 구식이와 기동이가 나타났다. 걸친 옷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구식이나 온갖 것을 주렁주렁 매달고 다니는 기동이나 살아서 마을을 찾기는 매한가지였다. 단지 다른점이 있다면 마을 어른들의 구식이와 기동이에 대한 반응이었다. 봄이 무르익어도 구식이가 나타나지 않으면 서로 건네는 말씀이 이러하시다.
“ 구식이 그 놈 그만 어디서 얼어죽었나 보다. 지난 겨울이 어지간 했어야지.”
“그러게 말일세, 아무리 강단있는 구식이라지만 추위앞에는 할 수 없지”
기동이에게 보내는 관심은 구식이와는 다를 수 밖에 없었다..
“기동이는 얼어죽지는 안하였을꺼고, 어디 넝마패거리에게는 끌려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맞는 말일세, 그 한량끼가 그놈을 그냥 두었을까”

기동이는 수재였다고 한다. 영리하고 똑똑했으며 장래는 보장된거나 마찬가지였단다. 그러나 영리함이 지나쳐 우리가 흔이 일컫는 ‘바보’가 된것이였다. 아주 쉽게 말한다면 머리가 돌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소문이었다.
기동이는 내가 중학생이 되기 전부터 마을에 나타나지 않았다. 봄이 마을을 온통 감싸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기동이를 기다렸지만 우리의 바람으로 끝났다. 우리는 그의 감칠맛 나는 노래를 그리함을 넘어서 그의 존재 자체를 그리워한 것이였다. 그러나 우리의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몸쓸 전염병에 걸려 세상을 떴다는 것이다. 단지 우리에게 위안이 된 것이 있다면 구식이의 존재였다. 긴 겨울을 어디서 보내는지는 알 수 없지만 봄이 되면 어김없이 우리 마을에 나타났다. 기동이가 떠나고 난 뒤 몇 해를 더 그렇게 구식이는 우리곁에 머물렀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를 다닐 그 어느 해 구식이가 이승을 하직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짐작컨대 당시의 평균 수명만큼은 살았나보다.

가을이 나의 예민한 감성의 촉수를 건드려 잠못이루는 이 밤, 왜 갑자기 기동이와 구식이가 생각나는 것일까? 특히 구식이의 그 단순하고 무지한 삶의 한 켠이 클로즈업되어서 나에게 다가오는 연유는 과연 무엇인가.

나의 일상을 되돌아 본다.
늘 생각이 많다. 온전한 내가 그립다. 일들이 복잡하게 얽혀 안개에 덮힌 상태로 보이고 일상은 쫒긴다. 내가 정말 좋아하고 갈망하는 일은 주머니속에 웅크리고 있다.
어린시절에는 기동이가 구식이보다는 괜찮은 거지라고 생각했다. 넝마적 준비성이 그랬고 노랫가락의 유혹이 그랬다. 구식이의 그 일관된 단순함은 그를 확실한 바보로 판단하게 했고 어쩔수 없는 거지라고 판단하게 했다.
그러나 지금, 구식이의 그 단순함이 나에게 그리움으로 찾아든다. 미련스럽게 일관된 그 우직함이 선인의 지혜로 다가온다.
짐 콜린스가 보여준 ‘좋은 기업에서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 기업 분석’에서 구식이에 대한 나의 그리움의 해답을 찾는다.

[194]좋은 회사에서 위대한 회사로 도약한 기업들은 ‘한가지 큰 것’만 알고 그것에 집착하는 고슴도치에 가깝다.

우리가 바보라고 생각했던 구식이는 짐 콜린스가 수년에 걸쳐 찾아낸 위대함으로 나가는 방법을 진작에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의 지독한 단순함은 철학적 깨달음에 연유했다고 판단함은 나의 지나침일까.

오늘 낮, 지인의 결혼식에 참여한 후 들른 뷔페식당의 음식들이 혼란스럽게 다가선다. 뱃속이 웅얼거리고 속이 편치 않다. 온갖 음식들이 뒤엉켜 있다. 된장찌개 한그릇에 현미밥 한 공기면 만족해하는 내 위장에 위선이였다. 詩語 가 그리운 연유도 이러함인가.


IP *.86.177.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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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10.02 10:45:57 *.249.162.56
정희 누님, 잘 지내시죠^^ 제 친구 중에 신식이는 있는데..

구식이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가 연상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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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7.10.03 09:24:21 *.128.229.81
구식이가 나오니 내 이름 같아 한 마디 하고 싶어 졌다.

실밥 - 김왕노

니까노르 빠라도
나를 가봉하고 재단하여 짤라낸 자투리거나 실밥이었다
가브리엘라 마르께스, 루신, 가와바다 야스나리, 입센,
테드 휴즈도 세이머스 히니도, 토마스 하디도 귄터 그라스도
서머셋 모음도 내 청춘을 만들고 난 실밥이었다
숙,영,민 그 이름도 내 젊은 날을 만들고 난 실밥이었다
뒷문 가에 봄비처럼 서성이며 울다 간
이름이었고 실밥이었다
흐린 날 걷던 소나무 숲도 내 가슴 안 쪽에서 은하수로 흘러간
그리움도 실밥이었고 자투리였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의 실밥이었다
먼 훗날 나마저도 우주를 가봉하고 재단하며 버린
실밥이라는 걸 깨닫기 전 까지
나를 스쳐간 모든 것들을 나는 실밥이라 명명하는 것이다

구식이는 일찌기 자신이 자투리고 실밥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 보다.
모든 사람들이 막판에 가서야 알게 되는 사실을 구식이는 아주 일찍 알았나 보다. 거지였기 때문에 그렇게 빨리 알게 되었을까 ? 아니면 그걸 너무 일찍 알아서 거지가 된것일까 ? 세상에는 참 알 수 없는 일들이 많다. 우제는 어쩌다가 된장찌게 한그릇과 현미밥 한 공기로 만족해 하는 위장을 가지게 되었을까 ? 나는 밥이 너무 맛있어서 배가 줄질 않는데. 그렇다고 기동이는 아니야. 노래를 못하잖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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