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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연구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 1875.7.26. ~ 1961.6.6)
C.G. 융은 스위스의 정신과 의사로서 분석심리학을 창안한 인물로 그의 집단무의식 이론은 현대 철학 및 인류학 등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조셉 캠벨을 비롯한 많은 학자 및 사상가들에게 있어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융의 인생은 <기억 꿈 사상> 이 책 한권에 수록되어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말했듯이 내면의 기록으로 이루어진 책 한권으로 그의 인생을 추적해보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럼 이제부터 그의 외면적 인생을 살펴 보자.
융은 1875년 스위스 시골마을 케스빌에서 개신교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융은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다른 생각으로 가득했으며, 자신이 두가지 인격의 소유자라는 생각에 사로잡힌채 유년기를 보냈다.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기독교 신앙에 대한 그의 고민은 유년기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줄곧 이어지게 된다. 융은 의과대학에 진학했고, 그가 어릴적부터 실타래를 놓지 않고 있었던 관심분야인 정신과로 그의 진로를 결정한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정신의학은 황무지와 다름없는 의학분야로서, 모두들 기피하는 분야였으나, 융은 정신의학을 통해 아직 풀어지지 않은 자신 속의 내면의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한다.
융은 1900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리히 의과대학 부설병원에 취업하여, 정신질환자들을 치료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기존의 '자유 연상' 기법을 개선한 '단어 연상'기법으로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얼마후 그는 엠마 라우센바흐와 결혼한다. 지적이었고, 막대한 유산을 가지고 있었던 엠마는 융에게 이상적인 배우자였다. 명성이 점점 높아지던 융은 1905년 그 인생에 있어 중요한 인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였다.
"실제로 칼 융을 이해하려면, 프로이트와 아들러를 거칠 때 훨씬 쉬울 수 있습니다. 이를 개인적으로는 변증법적 원리로 이해합니다. 프로이트를 정(正), 아들러를 반(反), 그리고 융을 합(合)으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치료상담연구소장 김충렬 박사의 이야기다. 프로이트는 융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였다. 프로이트가 쓴 <꿈의 해석>을 보고 감명을 받은 융과 프로이트 사이의 사제지간과 같은 우정은 한동안 계속된다. 프로이트는 융을 자신의 수제자로 여겼고, 처음 얼마동안 융은 실질적으로 그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세간에 잘못 알려진 통설과는 달리, 둘은 사제지간이라기보다는 학자 대 학자로서 교류하는 사이였고, 융은 프로이트의 이론에 대한 열렬한 동조자였다.
하지만 두 사람의 이론은 애초부터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어린 시절의 성적 외상에 유일한 의미를 부여했던 프로이트와 달리 융은 트라우마는 리비도의 한 형태일 뿐이고 리비도 자체는 에너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융은 프로이트의 성 이론 대신 아들러가 주장하는 권력의지 또한 리비도가 변환된 한 형태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아직 그들의 사상에 깊이있게 들어가보지는 못 했지만, 난 개인적으로 융의 생각에 동의하는 편이다. 둘은 함께 미국여행을 하기도 했지만, 프로이트와 융은 1913년에 이르러 마침내 결별하게 된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해방을 도모했다면, 융은 무의식과의 화해를 의도했다고 할 수 있다. 프로이트와 결별한 이후 융은 잠깐동안 심적 고립 상태를 겪지만, 이내 자신의 독창적인 학문세계를 구축해나가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그는 신비체험을 하기도 했으며, 중세의 연금술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기 시작한다. 융은 동양사상에 대응하는 서구사상의 원류로서 연금술을 연구하였고, 연금술을 물질의 변화가 아닌 영혼의 연성으로 해석하였고, 이는 꿈이나 환자에게서 채집할 수 있는 인간 무의식에서 나타는 상징들과 연결되어 사례 해석의 뒷받침이 되었다. 그는 동양학자 리하르트 빌헬름이 번역한 <황금 꽃의 비밀>을 읽고 연금술의 의미에 관해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었으며, 여러 차례 아프리카와 인도를 여행하면서 그의 사상은 더욱더 깊어지게 된다. 후반기의 융의 이론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너무 성적인 것에 치우쳐서 비난을 받는 것과 유사하게, 비과학적이라는 비판을 받게 된다. 신화와 종교, 영지주, 연금술, 만다라, UFO등을 연구한 글을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모호하였기에 온갖 해석과 오해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이에 대해서는 융 개인도 자신의 이론을 적절히 표현하지 못 했음을 인정한 바 있다.
1944년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했을 당시 그는 임사체험을 경험하기도 한다. 1948년에는 취리히에 C. G. 융 연구소가 설립되었으며, 욜란데 야코비(1890-1973)와 마리 루이제 폰 프란츠(1915-1990) 등의 제자를 길러냈다. 1955년 그의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났고, 융은 1961년 6월 6일 자택에서 숨을 거둔다.
당대의 갖은 비판과 논란에도 불구하고 융이 현대 정신의학 및 각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저서로는 기독교에 대한 분석으로 큰 논란을 일으킨 [아이온](1951)과 [욥에게 보내는 답](1952), UFO 현상을 집단무의식의 발현으로 해석한 [현대의 신화](1958), 융 사상의 입문서로 유명한 [인간과 상징](1961) 등이 있다. 그의 자서전인 <기억 꿈 사상>은 1957년부터 5년간 비서였던 A.아페를 통해 구술과 직접 집필등을 통해 쓰여지게 되었고, 그의 유언대로 그의 사후인 1961년 출판되었다.
내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
옮긴이 서문
p8
나는 종종 융에게 외적 사건들에 대해 물어보았으나 얻는 것이 없었다. 인생경험의 정신적인 정수만이 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었으며, 그것만이 애써서 말할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p9
나의 생애는 무의식의 자기 실현의 역사다
자기실현은 '자아'가 무의식 밑바닥 중심 부분에 있는 '자기'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그 소리를 듣고 그 지시를 받아 나가는 과정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원형 등 무수한 무의식 층이 겹겹히 가로막고 있어 '자기'의 소리가 '자아'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그리하여 '자기'는 '자아'에게 꿈의 상징과 종교의 상징들을 통하여 그 소리를 전하려고 한다.
> 자아실현보다 더욱 심오하고 근원적인 성취가 결국 자기실현이라는 것. 결국 자아실현과 자기실현이 하나가 되어야 진정한 지복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p10
나는 신을 압니다
> 책을 다 보았지만, 그가 말하는 신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융은 그의 무의식 안에서 그의 신을 찾은 듯 하다.
프롤로그
신화는 과학보다 정확하다
p11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외부로 나타나 사건이 되려 하고, 인격 역시 무의식의 조건에 따라 발달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서 체험하려고 한다. 나는 이와 같은 형성과정을 표현하기 위해 과학적인 용어를 사용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나 자신을 과학적인 문제로서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적 견지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이며, 영원의 관점에서는 인간이 어떤 존재로 보이는가는 오직 신화를 통해서만 표현할 수 있다. 신화는 훨씬 개인적이며, 과학보다 더욱 정확하게 삶을 말해준다. 과학은 평균 개념들을 가지고 연구하는 것으로, 그 개념들은 각 개인의 생애가 지니고 있는 주관적인 다양성을 제대로 다루기는 너무나 일반적이다
p12
그 이야기들이 사실 그대로인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문제는 그것이 '나의' 옛이야기, '나의' 진실인가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제어하지 않거나 부분적으로만 지배하는 일종의 심적과정이다
p14
내 생애의 외적 사실들에 대한 기억은 대부분 희미해졌거나 사라져버렸다. 하지만 다른 실체와의 만남, 즉 무의식과의 충돌은 나의 기억에 생생하게 새겨져 있다. 거기는 항상 충만하고 풍성하여 다른 모든 것은 그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나는 인생의 복잡한 문제에 관해 내부로부터 해답과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별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아주 일찍부터 깨달았다.
p15
나는 나 자신을 내적 사건들을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그것들이 내 생애의 특이성을 이루며, 나의 자서전은 그러한 내적 사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 - 유년시절
p26
'여성'이라는 말도 오랫동안 생래적인 불신감으로 다가왔다. '아버지'라는 말은 신뢰감을 주면서도 무력함을 뜻하기도 했다. 이것이 내가 인생을 출발하면서부터 함께 가져가야 하는 불리한 조건이었다
p50
돌과 함께 있었던 그 작은 나무인형은 아직 무의식적이며 유치하긴 했지만 그 비밀을 형상화하려는 최초의 시도였다
p51
전통을 거치지 않고도 개인의 마음속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 있는 영혼의 고태적 구성요소가 있다는 확신이 처음으로 나에게 생겼다.
> 집단적 무의식이자 세계의 신화가 개인의 무의식에 새겨져 있다
이제 반항아가 가까이 오도다 - 학창시절
p61
선생은 이해할 수 있는 수량을 소리로 바꾸는 이 기묘한 조작의 목적에 대해 나에게 설명해주려고 무진 애를 썻고 나는 그 수고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열정과 기질>에서 보았던 다중 지능의 측면에서 볼때 융에게는 수리적 지능이 모자랐다고 볼 수도 있고, 다른 지능이 너무 강해서 이 수리적 지능이 약화된 것일수도 있다
p62
나는 그때마다 문자가 있는 자리에 특정한 수치를 끼워넣고 구체적으로 검산하여 그 조작의 의미를 확인함으로써만 방정식을 이해할 수 있었다
> 내 학창 시절 수학공부하던 것과 비슷하다. 나 역시 숫자와 기호를 다루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공돌이로 살다보니 장구한 시간 반복학습에 의해 그와 같은 단점이 보완되기는 했다.
p63
수학수업은 나에게는 정말 무섭고 괴로운 시간이 되고 말았다. 다른 과목은 쉬웠다. 수학에서도 나의 우수한 시각기억 때문에 오랫동안 감쪽같이 속일 수 있었으므로 대개 좋은 점수를 딸 수 있었다
> 다른 강한 지능과 기질이 수학적 재능을 상대적으로 떨어뜨리는 경우가 맞는 것 같다
p66
모든 속임수는 끝이 났다! 여기서 나는 신경증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 융의 정신과 의사로서의 떡잎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p67
나를 다른 길로 유혹한 것은 혼자 있고 싶은 열망, 고독이 주는 황홀감이었다
p77
그런데도 그들은 하느님이 원치 않는 일을 행함으로써 최초의 죄를 범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하느님이 그들안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심어놓았기 때문에 그들이 죄를 지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 신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p80
나는 지옥의 불길 속으로 뛰어들려고 하는 것처럼 용기를 끌어모아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 하느님은 세상 저 위 높은 곳에서 황금보좌에 앉아 있고, 보좌 밑으로 거대한 똥덩어리 하나가 화려하게 채색된 새 지붕에 떨어져 지붕을 산산조각내고 대성당의 벽들을 모조리 부수고 있다.
바로 그것이었다!
> 고작 이런 생각을 한 것으로 크나큰 뭔가를 깨뜨린 것처럼 느끼다니...그래서 누군가로부터 씌여진 틀(집단무의식?)이라는 것은 무서운 법이다.
p87
아버지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아, 이런! 너는 항상 생각하려고만 하는구나. 사람은 생각해서는 안 되고 믿어야 해."
> 오로지 믿음만으로 일관하고 자기의 생각이 필요없지는 않을터, 생각이 먼저인가? 믿음이 먼저인가? 믿음을 생각하는 것조차 불경스러운 일인가? 믿음이 생각을 구속하지는 않는가? 그래서 융은 신을 믿는다라고 말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에게는 안다는 것이 믿는다는 말과 같았던 듯 하다. 덮어놓고 믿는 것에 대한 태생적 거부반응은 유년시절부터 있었던 것이다.
p91
나의 전생애에 걸친 제1의 인격과 제2의 인격 간의 대립은 일반적으로 의학에서 말하는 그런 분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와 반대로 그것은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종교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제2의 인격, 즉 '내적 인간'에 대해 말해왔다
> 아무리 융이 자신의 경우가 정신분열증과는 다르다고 이야기해도, 일반적으로 서로 대립되는 인격으로 인한 정신의 붕괴로 정신분열증이라는 딱지를 붙인채 입원중인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정도의 차이이자 수용가능여부의 차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서 제1의 인격은 의식를 얘기하는 것이고 제2의 인격은 무의식을 얘기하는 것.
p94
하느님에 대한 두려움은 물론 언급되었지만, 그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것으로 '유대적'이라 여겨졌고, 오래전에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에 관한 기독교 복음에 자리를 내주었다
p106
성찬식은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아 보였다. 나는 기념되는 인물의 엄청난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이런 관점에서는 그 축제가 놀랄 정도로 빈약하다고 느꼈다.
p108
그런데 빵과 포도주가 나오는 이 빈약한 추도식의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은 일종의 손실이었다. (...) 나에게 그것은 종교가 아니였고 거기에는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았다
p111
1869년에 간행된 비더만의 <기독교 교리>가 눈에 들어왔다
종교란 '인간이 하느님과 자립적인 관계를 맺는 영적인 행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p112
나는 나 자신의 자아와 유사하게 하느님을 상상하는 것에 대해 자못 심하게 반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직접적인 신성모독은 아닐지라도 지나친 오만이라고 여겨졌다.
> 그러니 하느님이 똥싸는 것을 상상하는 것에 얼마나 큰 해방감을 느꼈겠는가?
p113
유감스럽게도 자아는 덕과 재능이 많이 결여되어 있었다. (...)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하느님의 본질을 이런 자아와 유사하게 상상할 수 있단 말인가?
p114
그런데 하느님은 피조물을 시험할 욕심이 생겼다. 실험결과를 처음부터 알고 있었는데도 피조물을 시험대 위에 세웠다. 자, 그럼 이런 하느님의 성격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와 같이 행동하는 인간적인 인격은 무엇이란 말인가?
p115
하지만 하느님이 대극의 세계를 창조하여 하나가 다른 것을 잡아먹도록 하고 인생이 죽음으로 향한 탄생이 되도록 의도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코 무의미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p118
드디어 나는 악과 그 세계장악력을 알고 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을 어둠과 고통으로부터 구원하는 데 악이 맡은 신비로운 역할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고 여태껏 있어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런 면에서 괴테는 나에게 예언자라 할 만했다
p120
물론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예컨데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양모를 갉아먹는 옷좀나방이 다른 옷좀나방에게 오스트레일리아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는가?
> 옷좀나방을 무시하는 처사가 아닐까? 옷좀나방은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존재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신은 잘 모르고 옷좀나방에 대해서는 잘 안다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내가 생각할때 옺좀나방은 나름의 인식체계로 모든 것을 인지하고 있다. 그것이 오스트레일리아건, 아메리카건 나름의 관념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라는 것도 우리의 인식체계로 들어온 관념에 불과하니 말이다. 바닷속에 살고 있는 수중인간이 있다고 치자. 그에게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이 뭐겠는가? 증명이라는 것도 어찌 보면 진리가 아닌 우리의 가체체계에 부합하는 도구일 뿐이다. 말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없듯이, 가능하지 않은 일들은 널려 있다.
p124
왜 다른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왜 학식있는 책들 가운데 여기에 관한 것은 없단 말인가? 내가 그런 경험을 한 유일한 인간이란 말인가?
> 내가 과거에 하던 생각들과 똑같다. 내가 어떤 행동과 어떤 사고를 하더라도, 인류 역사상 그 누군가가 먼저 했을 행동과 사고였으리라 생각하고, 지금 내게 닥친 문제도 누군가에게 같은 상황에서 닥쳤을 문제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렇기에 책을 읽음으로써, 선각자들의 지혜를 미리 알아보고자 하는 것이리라. 하지만, 언어로 전달될 수 없는 것들이 전달될 수 있는 것보다 많다고 본다. 사는데 정답이 없는데, 책에 정답이 있겠는가? 모두 단지 레퍼런스일뿐이다.
p133
나에게는 그들이 코끼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소문으로 알고는 있지만 한번도 본적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p138
'신'은 나에게는 모든 것이었지, 단지 '교회적'인 것만은 아니였다.
p143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있을때에도 제2의 인격은 사라졌다.
그러나 혼자 집에 있거나 자연 속에 있을 때는 그 즉시 쇼펜하우어와 칸트가 강력하게 되살아나고, 그들과 함께 위대한 '신의 세계'도 되살아났다. 나의 자연과학적 지식도 그 속에 포함되어 그 위대한 그림을 색채와 형상으로 채웠다. 그러면 제 1의 인격과 직업선택에 대한 걱정들은 1890년대의 작은 삽화 정도로 여겨지면서 지평선 아래로 가라앉았다.
p151
그의 아내와 자식들은 성자인 남편과 아버지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아버지가 나에게 특히 사랑스럽게 여겨진 것은 바로 그의 결점과 부족함 때문이었는데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렇다. 어떻게 사람이 성자와 함께 살 수 있단 말인가?'
> 그래서 간디는 가족과 단절하다시피 살았던가. 나의 단점은 가족의 사랑을 가능케하는 매력포인트였단 말인가.
p153
이 만남은 외견상 전혀 무의미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내적으로는 너무나 중요한 일이여서, 이 만남은 며칠 동안 내 마음을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길가의 기념비처럼 영원히 내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 이성과 호르몬 앞에서 칼 융 당신도 사람이다.
아름다운 시간들 - 대학시절
p164
아버지가 무척 걱정하며 한번은 이렇게 말했다. "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고 있으나 자신이 무엇을 할지는 모르고 있어"
p168
제2의 인격은 도저히 정의를 내릴 수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투철한 생명력으로, 태어나고 살고 죽고, 하나이면서 온갖 것이요 인간성의 전체상이었다.
p174
어린아이는 어른들의 말보다는 주위 분위기의 헤아릴 수 없는 미묘한 것들에 대해 훨씬 더 잘 반응한다. 어린아이는 그 분위기에 무의식적으로 적응한다.
p180
지극히 이성적인 논의가 어떻게 그와 같은 정서적인 저항에 부딪히게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 결국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이성이나 논리가 아닌 감정이라는 것이다.
p193
이렇게도 저렇게도 들릴 수 있는 철학적인 사색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런 기묘한 관찰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p195
시간과 공간 그리고 인과관계의 한정된 범주를 넘어서는 사건이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전대미문의 일도 아니요 세상을 뒤흔들 만한 것도 아니였다.
p199
니체는 인생 후반, 그러니까 중년을 넘기고서야 제2의 인격을 비로소 발견했으나, 거기에 반해 나는 제 2의 인격을 이미 소년시절부터 알고 있었다.
p200
그는 제2의 인격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세상에다 그것을 거리낌없이 앞뒤 재지도 않고 밝혀버렸다
p202
철학자들은 온통 경험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만 말을 늘어놓고, 정작 사실들을 가지고 답변해야 할 때는 침묵해버리기 일쑤였다.
p207
그녀가 죽어가는 최후 몇 달 동안 그녀의 성격들이 하나하나 그녀로부터 분리되어 결국은 두 살짜리 어린아이 상태로 돌아가서 마지막 잠에 들었다는 것이었다
> 벤자민 버튼의 시계는 거꾸로 간다?
p213
정신의학은 아주 넓은 의미에서 병든 정신과 정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의사의 정신 간의 대화이며, 병든 인격과 치료자 인격간의 대결이다. 그런데 치료자 인격이라는 것도 병든 인격과 마찬가지로 원래 주관적인 것이다.
> 융의 절친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융은 그 자신이 걸어 다니는 정신병원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 병원의 최고 의사이기도 했다."
상처입은 자만이 다른 사람을 치유할 수 있다.
p241
환자를 연구함으로써 나는 피해망상과 환각이 일종의 의미의 핵을 내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나의 인격, 하나의 인생사, 하나의 희망과 욕망이 그 배후에 있었다.
p261
무의식에서 시간과 공간을 상태화함으로써 나는 전혀 다른 곳에서 실제로 일어난 어떤 일을 지각할 수 있었다. 집단 무의식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된 것으로, 고대에서 '만물의 공감'이라고 불렸던 것의 기초다. 이 사례에서는 나의 무의식이 내 환자의 상태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p264
나는 사람들이 인생문제들에 대해 불충분하거나 잘못된 해답으로 얼버무릴 때 신경증이 되는 경우를 자주 보아왔다. 사람들은 지위, 결혼, 명성, 외적인 성공, 재물을 추구한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조차 사람들은 여전히 불행하고 신경증을 앓는다. 그런 사람들은 대개 너무나 좁은 정신적인 한계에 갇혀 지낸다. 그들의 삶에는 흡족한 내용과 의미가 없다. 그들이 좀더 폭넓은 인격으로 발달할 수 있다면 신경증은 보통 사라진다
p270
문제는, 신화의 상실을 견디지 못하고, 외적인 것에 불과한 세계, 즉 자연과학의 세계상으로 향한 길을 찾을 수도 없고, 지혜와는 조금도 상관없는 언어의 지적인 즉흥연주로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 창조적 부적응자들, 생각만으로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사람들, 진정한 자아(자기)를 찾고 자신의 무의식과 화해하고 싶은 사람들
p271
여기서 심각한 탈선이 시작되는데, 그 첫 번째 탈선이 지적인 정복을 시도하는 것이다.
삶의 진실을 소위 명료한 개념들로 은폐하려고 한다. 개념적인 것으로 옮기는 것은 체험으로부터 실체를 빼앗고 그 대신 단지 이름들만 붙이는 셈이다. 이제는 진실의 자리에 이름들만 들어서게 된다.
프로이트와의 만남
p280
성욕이 일종의 누미노숨을 의미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p282
무의식적인 종교적 요인들이 프로이트를 엄습한다는 사실은 알아챘다. 그는 이러한 위협적인 무의식의 내용들에 대해 공동으로 방어할 사람으로 나를 끌어들이려고 했음이 분명했다
p285
이제 나는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니체의 권력원리의 우상화를 보상하는 정신사의 교묘한 책략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p300
나는 꿈을 배후에 그 의미를 숨기고 있는 '가면'으로 이해하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귀가 먹었기 때문에 듣지 못하는 것이지 귀가 우리를 속이는 것은 아니다
> 관점의 차이로 보일수도 있고, 결론적으로 그게 그거 아니냐라고 말할 수도 있는 부분인데, 그들에게는 크나큰 본질의 차이였던 셈이다
p310
나는 '희생' 장이 나 자신의 희생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통찰로 나는 다시 집필할 수 있게 되었다.
내안의 여인 아니마
p326
의식의 문턱 아래서는 모든 것이 펄펄 살아 있었다.
p336
그(필레몬)는 내게 설명하기를, 내가 나의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의 견해로는 그 생각들이 숲속의 짐승이나 방안에 있는 사람, 공중의 새처럼 자기만의 고유한 삶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 결국 생각은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기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p340
나는 나중에 내 안에 있는 여성상이 남성 무의식 속에 있는 전형적인, 또는 원형적인 형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를 '아니마(Anima)'라고 불렀다
> Animal에서 마지막 L만 뺀 것인데, 관련이 있나 모르겠다.확인결과 관련 없음!
p341
무엇보다도 문제가 되는 것은 의식과 무의식 내용을 구별하는 일이다.무의식 내용은 이를테면 격리를 시켜야 한다. 그것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우리가 그 내용을 인격화하여 의식으로 하여금 그 인격들과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이다
> 어떻게??
p346
니체는 내면의 사상세계 외에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았기 때문에 현실의 발판을 잃어버렸다. 사실 그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소유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내면세계가 그를 소유한 셈이었다. 그는 뿌리가 뽑혀 땅 위를 떠돌아다녔다. 그리하여 그는 과장하는 습성이 생기고 비현실성에 빠졌다
p347
그런 비현실성은 내가 가장 혐오하는 것이었다. 나는 저 세상이 아닌 이 세계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p350
내가 나 자신에게만 속해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이 명백해지기 시작했다. 그후로 내 인생은 보편성에 속하게 되었다.
p356
만다라가 참으로 무슨 의미인지 나는 차츰 깨달아갔다. 그것은 '형성, 변환, 영원한 마음의 영원한 재창조'였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 즉 인격의 전체성이었다. 모든 것이 잘돼가면 조화로우나 자기기만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 것이었다
연금술을 발견하다
p372
나는 곧 분석심리학이 연금술과 기묘하게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금술사들의 경험은 나의 경험이었고, 그들의 세계는 어떤 의미로는 나의 세계였다.
p377
리비도를 에너지로 본다면 일종의 통일된 관점을 갖게 된다. 그러면 리비도의 성질에 관한 논쟁적인 질문, 즉 그것이 성이냐 권력이냐 배고픔이냐, 그밖의 어떤 것이냐 하는 질문들은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된다
> 이 얘기대로라면 융은 프로이트나 아들러보다 더 깊은 본질에 다가선 셈이다
p387
나의 아버지를 회상하면 암포르타스의 상처로 고통받는 자, 그 상처가 잘 낫지 않은 '어부의 왕'이 생각난다
p395
쇼펜하우어의 의지의 부정은 이미 심상치 않게 가까이 다가온 미래의 문제를 예언적으로 알려주고 있다.그 꿈은 인간세계에 오래전부터 있어온 생각과 징후, 즉 피조물이 그의 창조주를 근소하지만 결정적으로 능가한다는 관념을 드러내고 있다.
p397
밑바닥에 도달한 그 순간, 나는 학문적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마지막 한계에 부딪혔다. 초월적인 것, 원형 그 자체의 본질에 관해서는 더이상 학문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 설명할 수 없지만, 그가 안다고 말할 수 있었던 신神
아, 내 가슴에 두 영혼이 살고 있다
p413
그들은 죽은 자의 영혼들로 보탄의 군대임이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내가 외로움으로 너무 예민해져서 그곳을 지나가는 '젤릭 뤼트'의 행렬을 감지했을 거라고 여길 수도 있다
중세시대에 바로 그러한 젊은이들의 행군이 시행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용병들로 대개 봄에 중부지역에서 로카르노를 향해 행군했다.
p423
우리가 보고 듣는 것이 너무 뚜렷하면 우리는 오늘을 시간에 제약을 받아 우리 조상들의 혼이 오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지, 다시 말해 무의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감지할 수가 없다.
여행
p430
그 사냥꾼은 다시 말해 시간의 신으로서 아직 영원을 연상케 하는 이들의 시간을 무자비하게 날과 시, 분과 초로 조각조각 잘게 쪼개게 될 것이었다.
p442
유럽인들과 말할 때는 오래전부터 알고는 있으나 이해하는 것이 전혀 없는 모래사장으로 들어선 느낌을 받았지만, 이 인디언과 말할 때는 마치 배가 낯설고 깊은 바다 위를 헤쳐나가는 것 같았다.
> 모래 사장과 바다의 차이만큼이나 큰 차이
p451
우리에게 어리석게 여겨지는 관념, 즉 제의적 행위가 태양에 마술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은 따져보면 역시 비합리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처음에 짐작했던 것보다는 훨씬 그럴듯해 보인다. 우리 기독교 신앙도 그밖의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특별한 행위나 그 행위의 특수한 형식이 하느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에 깊이 빠져 있다.
> 누가 합리와 비합리를 따질수 있겠는가
p457
연금술에서는 "자연이 불완전하게 둔 것을 예술이 완전하게 만든다"라고 말한다. 인간인 내가 보이지 않게 창조행위를 하고 있는 그 세계를 비로소 객관적 실제로 완성되도록 해주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행위를 창조주의 몫으로만 돌려왔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인생과 존재를 정확하게 계산된 기계, 즉 인간정신과 함께 예지되고 예정된 법칙에 따라 무의미하게 계속 가동되는 기계라고 여기고 있음을 생각하지 못한다.
p470
온갖 마귀의 어머니인 유럽과 나는 수천 킬로미터나 거리를 두고 있었다. 마귀들이 이곳까지는 미칠 수 없었다. 전보도, 전화도, 편지도, 방문도 없었다
> 그럼 현대는 온통 마귀들로 둘러싸여, 어디를 가도 헤어나올 수 없는 무간지옥이겠군
p476
일몰 후부터는 다른 세계, 즉 어둠의 세계, 아이크의 세계가 지배한다.
그러다가 일출과 함께 아무런 내적 모순 없이 낙관주의가 다시 돌아온다
> 이게 바로 우리가 세상을 사는 모습이 아닐까? 머리를 싸매고 그 의미를 고민하고 번민하다 잠이 들어도, 아침이 오면 그 고민의 실체는 사라진 채 우리는 또다시 생동하는 하루를 맞곤 한다.
p479
그러므로 아침마다 태양의 탄생은 흑인들을 압도하는 경험이 된다. 빛이 되는 순간, 그것은 신이다. 그 순간이 구원을 가져다준다. 그것은 순간의 원초적 체험이다. 우리가 태양이 신이라고 생각할 때 이미 그 체험은 상실되고 망각되는 것이다.
빛에 대한 동경은 의식에의 동경인 셈이다
p484
정신과 군의관들은 어떤 병사가 전쟁장면 꿈을 너무 많이 꾸면 그를 전선에서 떠나도록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왜냐하면 그는 외부의 인상들에 대한 정신적 저항력을 더이상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p488
반면에 나는 소위 '성자'라고 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모두 피했다. 내가 그들을 피한 것은 나 자신의 고유한 진리로 만족해야만 했기 때문이며, 나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것 이외의 다른 것들은 받아들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p489
그들을 개별적인 현상으로서 올바르게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예를 들면, 나는 그가 말하는 지혜가 하나의 고유한 깨달음인지, 수천 년 이래 저잣거리를 돌고돌던 격언인지 알지 못한다
> 흔한 의심이 아닐까
p496
부처는 역사적 인격체이므로 사람들에게 좀더 쉽게 이해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역사적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느님이므로 파악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
부처는 통찰에 따라 행동했다. 부처는 자신의 삶을 살다가 나이 들어 죽었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한 기간이 무척 짧은 것으로 여겨진다.
> 인간으로 인식하느냐, 신으로 인식하느냐의 차이
p497
부처는 모방의 대상인 모범상이 되었고, 그럼으로써 부처 자신의 이념은 약화되었다.(...) 그리스도도 유대인들에게 "당신들은 신들이다(요한복음 10:34)!"라고 외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소위 '기독교적' 서구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대신 세계파괴의 가능성으로 내닫고 있다.
> 자신을 닦아 부처가 되는 것보다, 부처나 신에게 의지하여 극락왕생을 비는 편이 범부중생에게는 편한 일이다
p500
낮이 잊어버린 신화를 밤이 계속 이야기하고, 의식이 평범하게 만들어버리고 우스꽝스럽고 하찮은 것으로 축소시켜버린 그 거대한 모습들을 시인이 다시금 일깨우고 선견지명으로 살려낸다.
p507
남자의 아니마는 현저히 역사적인 성격을 띤다. 아니마는 무의식의 인격화로 역사와 선사에 깊이 물들어있다. 아니마는 과거의 것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남성이 그의 선사에 관해 알아야 할 것들을 남성속에서 대신 보충해주고 있다. 남성 속에 아직도 살아있는 이미 있었던 모든 삶이 아니마다.
환상들
p521
여러주동안 나는 기묘한 생체리듬 속에서 살았다. 낮에는 대부분 우울했다. (...) 그리고는 잠에서 깨어나 한 시간가량 깨어있었는데, 이때는 전혀 다른 상태가 되었다. 나는 황홀경이나 엄청난 축복의 상태에 있는 듯 했다. 나는 우주공간을 떠다니며 우주의 성 안에서 보호를 받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거대한 허공이지만 가능한 모든 행복감으로 충만했다. 그것은 도저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영원한 지복이었다.
> 신비체험을 한 것인데, 찾아보니 이를 두고 여러가지 말들이 많다. 말년에 융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니였다느니, 마약을 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이다.
p525
나는 그 체험을 현재와 과거와 미래가 하나인 무시간적 상태의 지복이라고밖에 달리 일컬을 말이 없다
> 조셉 캠벨이 융의 사상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p527
존재하는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었다.
사후의 삶에 대해
p532
합리주의와 교조주의는 우리가 앓고 있는 시대병이다. 그것들은 모든 것을 아는 체한다.
p533
우리의 존재와 사고로써 이 세계와 관련을 맺는다
이성의 차원에서는 '신화화'야말로 쓸모없는 사변일 뿐이다. 하지만 감정의 차원에서는 치유를 가져오는 활동력이며 인간존재에 광채를 부여한다.
p558
신화적 상상에서 중간세계가 없다면 정신은 교조주의에 갇혀 경직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반대로 신화적인 내용을 고려하는 것이 피암시적인 약한 마음의 소유자들에게는 예감을 인식으로 여기고 환상을 실체화할 위험이 있다.
p560
서양인들은 정적이기만 한 세계의 무의미성을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세계의 의미를 전제해야 한다. 동양인은 이런 전제를 필요로 하지 않고 자신이 그 전제를 구현한다. 서양인이 세계의 의미를 완성하고자 하는 반면, 동양인은 인간 속에서 의미의 실현을 위해 노력하며 자신으로부터 세계나 존재를 벗어버린다. 이것이 바로 부처다.
p562
나의 존재의미는 인생이 나에게 물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나 자신이 세계를 향해 던지는 하나의 물음이며, 나는 거기에 대한 나의 대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단지 세계가 주는 대답에 의지할 뿐이다.
만년의 사상
p579
적나라한 악의 발현은 러시아민족에게서 영속적인 형태를 취하게 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강력한 최초의 발화는 독일민족에게서 일어났다
> 사회주의와 나치즘을 비판하고 있다. 융은 나치즘에 동조한다는 오해를 받곤 했다.
p609
정신에 관해서는 진부한 견해가 여전히 남아 있다. 정신은 원형적 전제를 가지고 있지 않은 백지상태라는 것이다.
p610
신체가 수백만 년의 해부학적 전사를 가진 것처럼, 정신체계도 그러하다. 그리고 현대인의 신체가 모든 부분에서 이러한 발달의 결과를 나타내고, 어느 부분에서나 현재가 있기 전의 단계를 내비치고 있는 것처럼, 정신도 또한 그러하다
> 정신적 원형, 집단 무의식의 실체를 인정하라고 융은 거듭 얘기한다. 신빙성 있는 얘기이다. 융이 명명하고 연구한 그 체계와 상관없이 그것이 어떤 이름으로 호칭이 되고 어떻게 분류되든지간에 그 존재는 인정해야 할 듯!
회고
p624
다른 대부분의 사람과 나의 차이점은 내게는 '칸막이벽'들이 투명하다는 것이다
> 그 차이가 큰 발견과 결과를 만들었다
편집자의 말
p642
나는 몰이해와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말하는 자가 빠져드는 그러한 고독을 겪을만큼 겪었습니다. 욥에 관한 책이 그토록 많은 몰이해에 부딪혔다면, 나의 회상은 더욱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p652
<자기실현의 과정>
페르소나(집단정신)에서 자아를 분리하는 단계가 선행되어야 하며, 그 다음 무의식의 의식화단계를 거쳐야 한다. 그동안 의식하지 못하고 있던 그림자(그늘)을 인식하고, 아니마, 아니무스를 의식하며 자기의 메시지를 렐리기오의 태도를 통해 듣고 자기 전체로서의 삶을 구현해나가야 한다. 이러할 때 진정한 개성화(자기실현)가 이루어진다. 그 과정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과 같은 깨어짐과 아픔이 따른다.
내가 저자라면
칼 융의 대표작들을 먼저 읽고, 그의 사상에 대해 어느 정도 배경 지식을 갖춘후 보는 것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된다. 융위 사상에 대해 더 연구를 해보고자 한다면, 융의 대표작인 <인간과 상징>과 함께 분석심리학에 대한 추가적인 독서를 하고, 다시 이 책을 본다면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리라 생각된다. 실제 이 두꺼운 책을 읽던 도중 이부영 교수의 <분석 심리학> 이야기를 보았던 것이 독서에 도움이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유년시절부터 정신과 의사가 되기까지 그의 내면적 성장과정을 융 자신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일생을 사로잡은 꿈부터 만년의 사상을 거쳐 회고까지 대학자의 사상과 그가 발견한 의식 너머의 넓은 바다가 이 책에 투사되어 있다.
내면의 자서전이라는 책의 성격은 다음주에 북리뷰할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의 성격과 일치한다. 유년 시절부터 이어온 신에 대한 탐색과 번민들이 온갖 사상들에 대한 섭렵과 외도를 거쳐 독자적인 체계로 구축되게 되고, 결국 그들은 신에 대한 최종적인 정의를 내린다. 안타까운 것은 그들이 내린 신에 대한 정의를 우리는 글로만 짐작할 뿐 그 근원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그 근원에 대한 탐구는 개인의 몫이다. 언젠가 나 역시 나만의 정의를 내리겠지만, 그 깊이가 얕을수록 나만의 정의는 쉽게 흔들리고, 어렵사리 내린 그 관념의 붕괴 또한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융과 같은 선각자의 내면의 기록을 참조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행운과도 같다.
개인적으로 꿈을 잘 기억하지 못 한다. 혹자는 꿈을 잘 기억하지 못 하는 이유를 의식과 감정이 메말라서 그렇다고 하던데, 실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융이 꿈을 그렇게 선명하게 꾸고(그는 천연색 - 올컬러로 꿈을 꾸는 것이 분명하다), 그것을 세세히 기억해낸다는 것이 경이로웠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나서 꿈을 더 자주 꾸게 되었다. 또한 꿈이 더 선명하게 기억되었다. 추정컨데 내 무의식이 내 의식의 변화를 눈치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꿈을 더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을 무의식이 알아차렸기 때문일 것이다
융의 책은 모호하고, 다루는 대상도 너무 광법위해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한다. 일반독자의 한명으로서 사후의 삶부터 마지막 부분까지는 글의 내용은 형이상학적이여서 잘 읽혀지지 않았다. 내면적 기록이라고는 하나, 인간은 외부적인 영향을 받는 바 유년시절을 제외하고는 그의 가족들, 즉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는 듯 하다. 그들이 중요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융은 그들을 의도적으로 자신의 내면에서 분리해낸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책 말미에는 분석 심리학 용어들에 대한 설명이 기재되어 있다. 객관적인 개념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되는 핵심적인 용어들에 대한 설명이므로, 책의 뒷부분보다는 앞부분에 위치시키는 것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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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 기억 꿈 사상 | 불씨 | 2018.06.10 | 17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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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 영혼의 자서전 | 박혜홍 | 2018.06.19 | 178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