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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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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13일 07시 57분 등록

 

[일상에 스민 문학] 우리모두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

 

지난 4월에 수녀님을 뵐 기회를 놓쳤기에 이번에는 반드시 뵈리라 마음먹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날은 현충일. TV에서 현충일 기념행사를 보고 있는데, 추도시를 낭독하는 데 수녀님의 시<우리 모두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가 울려 퍼졌습니다. 낭독을 맡은 배우 한지민이 5분이 넘는 긴 시를 완벽히 암기하며 관객들과 눈을 맞추며 정성스레 낭독하는 모습은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오늘 저녁에 수녀님을 뵌다는 설레임과 TV에서 수녀님의 시를 만났다는 기쁨이 겹쳐져 저는 온 종일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우리 성당에서는 현충일에 특별히 수녀님을 초청해 책과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10여 년 전 에도 한번 저희 성당에 오셔서 강연을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음악과 함께 소녀와도 같은 멋진 율동을 곁들여주신 기억이 새록새록 합니다. 이번에도 기타와 노래로 시를 쓰시는 형제님과 함께 오셔서 멋진 시의 향연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저는 수녀님께 카톡을 보냅니다.

 

수녀님. 오늘 저희 본당에서 강연 있으시죠?

오늘 현충일 추모 헌시- 너무 가슴을 울렸습니다.”

 

수녀님께서는 저에게 답변을 주셨습니다.

 

오시거든 인사도 해주셔요.”

 

그날은 제가 전에 마음편지 식구들께도 한번 말씀드렸던 책, <고운 말은 꽃이 되고 고운 말은 빛이 되고>라는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말씀해주셨습니다. 고운 말을 쓰는데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말씀, 고운 말은 곧 사람을 키우게 된다는 말씀은 가슴깊이 새겨 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외국어를 조기에 배우고, TV와 컴퓨터 게임에 익숙해져서 우리말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던 차에, 말을 통해서 인격이 형성이 되고, 다시 올곧은 인격은 아름다운 말을 만들어내는 순환이 이루어진다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강연의 하이라이트는 수녀님의 시를 참여한 모든 이들이 함께 낭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음악을 맡아주신 형제님께서 자연스럽게 참여를 유도해서 더 열띤 호응을 얻었습니다. 처음에는

오늘 생일을 맞으신 분 손 들어주세요.”

하시며, 생일과 관련된 수녀님의 시를 낭독을 한다거나, “오늘 결혼기념일을 맞이하신 분을 불러내어 여기저기서 손을 드신 부부를 강연장 앞으로 모셔서 부부에 관한 시를 함께 나누어 낭독하는 모습은 따스함을 전달했습니다. 또한 이제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신부가 함께 읽는 시는 풋풋함을 전달해주었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여기 혹시,

 

정재엽 레오나르도라는 분 있으시죠? 앞으로 나오세요.”

 

라고 하셔서 화들짝 놀랐습니다. 수녀님께서는 간단하게 제 소개와 더불어 시를 낭송해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말씀부터 드려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저 수녀님과 인연을 맺게 된 말씀을 간단하게 드리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고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수녀님과는 얼마 전에 출간 된 제 책 <파산수업>의 추천사를 써주신 것을 인연으로, 오늘 같이 TV에서 수녀님의 시가 나오는 날에는 어머~~ 수녀님! 시가 TV에 나와요라고 마음 편하게 카톡을 보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제 책에 수녀님 시를 인용하는 과정에서 허락을 구하고자 제 원고를 수녀원으로 아무 기대 없이 송부하였는데, 얼마 후 제 문자로 원고 잘 읽었습니다. 혹시 원하시면 제가 책의 표사글이라도 좀 써드릴까요?’라고 먼저 다가와 주셔서 너무 놀라기도 하였습니다. 그 후로 때론 누나처럼, 때론 어머니처럼, 그리고 친구처럼, 동생처럼 늘 소녀와도 같은 맑은 감성으로 저를 토닥거려주십니다. 늘 수녀님께서 건강하시기 기도드리겠습니다.”

 

라며 사회자께서 준비하신 시를 낭송하였습니다.

 

낭송이 끝나고 약 200여명의 참석자들이 모인 가운데 한 권 한 권 마다 색연필과 싸인펜으로, 꽃과 별무늬 스티커로 한편의 그림을 그리듯이 꼼꼼하게 싸인을 해주시는 수녀님의 모습에 다시 한번 놀라고 말았습니다. 싸인회 일정까지 마치자 시간은 거의 자정이 다 된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수녀님께 다가가 인사를 드리고, 성당을 떠나실 때 까지 바라보았습니다. 시를 잊은 우리 세대에, 아직까지 시의 향기가 짙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어 너무나도 행복했습니다. 조만간 수녀원에 한번 찾아뵙고 인사드려야겠습니다.

수녀님! 늘 건강하시고 감사합니다.

 

제가 강연회에서 낭독한 시를 함께 해 봅니다.

 

<슬픈 사람들에겐>

이해인

 

슬픔 사람들에겐

너무 큰 소리로 말하지 말아요

마음의 말을 은은한 빛깔로 만들어

눈으로 전하고

가끔은 손잡아주고

들키지 않게 꾸준히 기도해주세요

 

슬픈 사람들은

슬픔의 집 속에만

숨어 있길 좋아해도

너무 나무라지 말아요

훈계하거나 가르치려 들지 말고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도 위로입니다

그가 잠시 웃으면 같이 웃어주고

대책 없이 울면 같이 울어주는 것도

위로입니다

위로에도 인내와 겸손이 필요하다는 걸

우리 함께 배워가기로 해요

 

정재엽 (j.chung@hanmail.net) 드림 

IP *.210.11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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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3 08:27:42 *.202.114.135

https://www.youtube.com/watch?v=Fx9oPj9Egg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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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3 08:29:25 *.202.114.135

우리 모두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


이해인



민족 위해 목숨 바친 
수많은 님들을 기억하며 
우리 마음의 뜰에도 
장미와 찔레꽃이 피어나는 계절 
경건히 두 손 모아 향을 피워 올리고 
못다한 이야기를 기도로 바치는 오늘은 6월6일 
몸으로 죽었으나 혼으로 살아있는 님들과 
우리가 더욱 사랑으로 하나 되는 날입니다  
 
바쁜 것을 핑계로 더러는 무심하고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 속에도 
님들의 고귀한 희생으로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결코 잊은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순하게 태어났고 
언젠가는 묻혀야 할 어머니 땅 
작지만 정겹고 아름다운 이 땅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어떻게 사랑해야 하겠습니까 
침묵의 소리로 말씀하여 주십시오  
 
깊고 간절한 그리움 끝에 
하늘과 땅을 잇는 바람으로 오시렵니까 
오랜 기다림 끝에 남과 북을 이어주는 
평화의 빛으로 오시렵니까 
설악산과 금강산이 마주보며 웃고 
한강과 대동강이 사이좋게 흐르는 
한반도의 봄을 꿈꾸는 우리와 함께 
이미 죽어서도 아직 살아있는 
님들의 환한 미소가 태극기 속에 펄럭입니다 
뜨거운 눈물이 차가운 비석을 적시는 감동을 
님들과 함께 나누는 오늘입니다  
 
피 보다 진한 그리움으로 다시 불러보는 이름 
세월이 가도 시들지 않는 사랑으로 
겨레의 가슴 속에 푸른 별로 뜨는 님들이여 
우리의 영원한 기다림이시여 
힘들 때 힘이 되는 위로자시여  
 
우리가 잘했을 땐 함께 웃어주고 
잘 못 했을 땐 눈물 흘리며 
잠든 혼을 흔들어 깨우는 
지혜로운 스승이시여 
미움을 사랑으로 녹이는 
불이 되라 하십니까. 우리에게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노래가 되라 하십니까. 우리에게  
 
새로운 역사의 길 위에서 이제 우리는 
다시 사랑하고 다시 희망하며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이 되겠습니다 
'모두가 당신 덕분입니다'라고 
서로 먼저 고백하고 
서로 먼저 배려하는 
사랑의 사람이 되겠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아름다운 이 땅에서 
내가 먼저 길이 되는 지혜로 
내가 먼저 문이 되는 겸손으로 
깨어 사는 애국자가 되겠습니다 
누군가를 위한 디딤돌이 되겠습니다 
인내와 용기가 필요한 일상의 싸움터에서도 
끝까지 견뎌내는 승리의 용사가 되겠습니다  
 
분단과 분열의 어둠을 걷어내고 
조금씩 더 희망으로 물들어가는 이 초록빛 나라에서 
우리 모두 존재 자체로 초록빛 평화가 되게 하소서 
선이 승리하는 기쁨을 맛보며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어제처럼 오늘도 오늘처럼 내일도 
늘 우리 곁에 함께 계셔주십시오 
새롭게 사랑합니다 
새롭게 존경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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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7 17:24:01 *.166.55.19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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