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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0월 1일 09시 19분 등록
나는 지금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글을 쓰기 위해서 자리에 앉았는데, 거의 한 시간 째 여기 저기 다른 책을 들추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머리 속에는 아직 형태가 채 갖춰지지 않은 두, 세 개의 이야기가 이리 저리 굴러다니고 있다. 확실한 시작의 실마리 하나를 찾아보려 하지만 실타래의 끝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곧장 글 속으로 뛰어들기로 한다. 한 편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1. 원스(Once)



지난 주, 대학로에서 '원스(once)'란 영화를 보았다. '찰스 핸디' 할아버지가 태어난 아일랜드의 우중충한 도시, 더블린을 배경으로 진행되는 '음악' 영화이다. 한 남자(the guy)와 한 여자(the girl)가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 음악을 매개로 서로를 이해하게 되고, 점점 더 마음이 연결되어가는 마법 같은 순간을 그리고 있는, 아주 단순한 줄거리의 소박한 영화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쾅거렸다.

이 영화는 '시작'에 대한 영화이다. 새로운 인생의 시작, 전혀 다른 변화의 시작, 가슴 뛰는 사랑의 시작, 그 '시작하는 순간의 떨림'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남자 주인공은 런던으로 떠난 옛 여자 친구를 그리워하면서 작곡을 하고, 가사를 쓰고, 거리에서 낡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평소에는 진공청소기를 수리하는 아버지를 돕는다. 그러다 체코에서 이민을 온 여자 주인공을 거리에서 만난다. 남자는 점심때 같이 들린 악기점에서 듣게 된 그녀의 피아노 연주에 빠져들게 되고, 이후 둘은 같이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하고, 곡을 만든다.



혼자서 어머니를 모시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거리에서 꽃을 팔고, 가정부 일을 하며 고단한 삶을 사는 그녀의 응원으로 차츰 용기를 얻어가는 주인공은 런던에서 오디션을 보기 위해 앨범을 녹음하기로 결심한다. 생전 처음 하는 녹음을 위해 거리에서 밴드를 모으고,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고, 스튜디오를 임대한다. 말 그대로 이리저리 맨 몸으로 부딪히면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드디어 첫 곡을 녹음하기 시작하는 그 순간, 작은 스튜디오 안에는 짜릿한 감동의 전율이 흐른다.

#2. '시작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처럼 일단 행동을 시작하면 변화는 시작된다. 이 글을 쓰기 전, 나 또한 '머리' 속의 관념과 '글'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일단 글을 쓰기 시작하자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마음 속의 파편들을 모아 하나의 형태로 엮어나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누구에게나 '시작'은 어렵다는 사실을…

시작이 어려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 듯 하다. 하나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다. '과연 내게 능력이 있을까'하는 재능에 대한 두려움, '과연 끝까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지 부족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내가 만들어 낸 무언가가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일까'하는 작품성에 대한 두려움 등을 포함해서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내면의 두려움은 끝도 없이 많다. 어쩌면 진정한 적은 자기 자신일는지도 모른다.

이 뿐만이 아니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 또한 우리를 가로막곤 한다. '과연 내가 만든 이 작품을 이해해 줄까' 혹은 '인정받을 수 있을까'하는 등의 두려움에서부터 '나를 미쳤다고 하지는 않을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거나, 친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하는 피해 의식에 대한 두려움까지 다른 사람에 대한 두려움 또한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시작해야 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출발해야 한다. 브레이크가 아닌 액셀레이터를 밟아야 한다. 텅 빈 원고지(혹은 컴퓨터 화면)에 글자를 채워 넣고, 하얀 캔버스에 선을 그리고, 오선지에 음표를 그려 넣어야 한다. 자신을 믿고 '불확실성'의 허공 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 쓰지 말고 자기 자신과의 진실한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서 창조의 마법이 시작된다.

#3. 한가지 확실한 것

무언가를 만들어내고자 할 때,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자 할 때, 유일한 방법이자 최선의 방법은 두려움 속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이다. 일단 맞부딪히는 것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실패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넘어지면 그 상처만큼 우리는 무언가를 배우게 된다. 그러나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얻을 수 없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또아리를 튼 뱀 앞의 작은 청개구리 한 마리를 생각해보자. 그 청개구리는 두 가지 선택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두려움에 몸을 맡긴 채 그대로 얼어붙는 것 한 가지, 아니면 비록 잡아 먹힐지도 모르지만 저 풀 숲으로 점프하는 것 또 한 가지. 다만 확실한 것은 움직이지 않으면 죽음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다는 것이다. 한 번이라도 움직일 때 살아남을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기업 혁신 전문가, 더그 홀(Doug Hall)은 말한다. "일단 첫걸음을 내디디게 되면, 당신은 새로운 용기를 찾게 된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해보려는 것은, 산등성이 너머의 무엇인가를 흘낏 보는 것과도 같다. 당신은 두려움에 대항할 있는 무기와도 같은 새로운 통찰력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인생은 실존 단계이지 꿈이 아니다. 그리고 인생에서의 일은 한 걸음에 한가지씩 나타난다."

결국 확실한 한가지는 바로 우리가 불확실함 속으로 몸을 던질 때, 무언가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확실함에도 우리는 왜 이렇게 주저하고 있는 것일까? 글 한 줄 쓰지 않고, 선 하나 긋지 않고, 셔터 한 번 누르지 않고 머뭇거리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시작하고, 또 시작해야 한다.

#4. 맺는 글

다시 영화 '원스'로 돌아가서, 주인공 두 명이 처음으로 같이 노래하고 연주하는 'Falling Slowly'란 곡을 들어보자. 그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 그저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 뿐이다. 그 가난한 마음 하나 만으로도 세상을 움직일 수 있다. 팍팍한 현실을 탓하지 말자. 무언가를 가지지 못했음을 핑계대지 말자. 우리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것을, 지금 바로 시작하자.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 We've still got time /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ve a choice / You've made it now"

(가라앉고 있는 배를 붙잡아 집으로 향하게 하렴 /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있으니 / 네가 선택한 희망의 목소리를 높이렴 / 네가 지금 결심한)



IP *.249.16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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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2007.10.01 11:12:34 *.231.50.64
꺅~~~~~^0^ 도윤아,
나 이영화 벌써 두번이나 봤어. 음악도 귀가 아프게 들었다우. 앗,, 나도 칼럼을 하나 써볼까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도도다다다.. 그래도 도윤의 글과 사진을 빌어 영화를 다시 만나니 이렇게 멋지게 다시 탄생하는구나. 내 사전에 사진은 커녕 동영상을 올리는 일은 없을것이야~~ 땡큐~~

다시한번 볼 예정인데.. 나는 시작에 대한 이야기보다 순간의 깊이에 대해서 써볼까 해.. 크크크.. 과연 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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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10.01 11:24:55 *.232.147.79
와..와하하.. 소름끼친다.
이 영화 좋다고 추천해준 한 매니아가 있어서 방금 전에 인터넷에서 예매했는데, 형 글을 딱 봤어요. 으~~무셔라. 오들오들~ ㅎㅎ
영화 보고 다시 한번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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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10.01 14:08:44 *.244.218.10
봐야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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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곤
2007.10.01 15:37:39 *.92.16.25
이 영화 본 사람 한번 모여야겠군. 리뷰 한판하자구. 옹박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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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윤
2007.10.02 11:39:37 *.249.162.56
안 그래도 옹박이랑 술 한잔 해야 하는데, 언제 한번 모이죠^^

승오,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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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10.04 05:26:22 *.232.147.39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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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화
2007.10.07 23:19:07 *.72.153.12
두려움이란거를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은 특별한 게 없는가 보다.

화실에 다시 등록했다.
연필소묘... 그렇게 그리는 공식을 배워도 그리는 데 내부 검열자가 스멀스멀 기어나와서 나를 덮어버리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 그것을 마치고도 잘 그리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 네가 소개하려고 했던 좋은 화실은 내 두려움을 막는데 도움이 될것 같지가 않았다. 두려움은 다른 곳에 있었으니까.

... 그냥 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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