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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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고등학교 들어와 다양한 알바를 했다. 식당 주방보조(설거지)부터 초밥집 홀서빙, 햄버거 가게 등 주로 식당이었다. 중3때 요리하고 싶다고 했고 지인을 통해 주방보조를 한 달간 무보수로 일한 경험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알바는 중3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친구 5명과 목포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부터 했다. 아이들끼리 여행을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있었고 아들에게 말했다. “같이 가고 싶은 친구들 모아봐. 어디를 갈 건지, 며칠 갈 건지.” 같이 가고 싶은 아이들이 모아지고, 엄마들에게도 이야기를 했다. 모두 찬성했다. 갑자기 정해진 여행이고 아이들끼리만 보내는 처음 여행이라 우선 경비는 부모가 주기로 했다.
장소는 친구 외할머니가 계시는 목포로 정했다. 엄마 중 한분도 지인이 있는 곳이라고 했다. 지인이 하는 식당이 있어 미리 연락해 놓기로 하고, 숙소도 예약해줬다. 출발은 자전거로 서울역까지 가서 기차를 타고 간다고 했다. 중간 중간 사진을 보내왔다. 건강하게 즐겁게 보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집으로 서울역에 있는 자전거를 타고 오다 한 명의 자전거가 고장이 났단다. 결국 택시를 타고 왔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 서울역까지 간다고 할 때, “멋지다. 그런데 힘들 텐데... 좋은 생각이 아니야.” 했다. 하지만 본인들이 정했으니 끝까지 말리지는 않았다. 집에 와서 하는 말 “정말 자전거 버리고 오고 싶었어.” 했다. 남편과 나는 이야기를 들으며 웃었다. 훗날 이것 또한 추억이 될 것을 알기에.
아들은 여행을 다녀오고 너무 좋아했다. 그 이후 방학이면 처음 같이 간 그 친구들과 여행을 간다.
하지만 남편은 여행에 대한 아쉬움을 나에게 말했다. 여행을 보내자고 먼저 제안한 사람이 남편이었다. “아니 숙소 다 잡아주고 식당도 아는 식당가서 먹고 경비도 주고 그게 무슨 여행이냐. 관광이지.” 했다. “시골 가서 마을회관에서 자고 밥도 얻어먹고 그래야지.” 내가 듣기에도 남편의 여행 모습이 그 나이 때 할 수 있는 진정한 여행 같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달랐다.
그래서 결국 여행은 아이들에게 맡기지만 경비에 대해서는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 아빠가 모든 경비를 대줄 수는 없어. 그러니 경비를 벌어서 가.”했다. 아들은 알바를 시작했다. 학기 중엔 학교를 다니면 시간이 없고, 방학에 하라고 했다. 방학엔 여행을 가니 알바를 오래하지 못했다. 아들은 알바를 하면 최소 한 달이상은 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더라. 가게에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어차피 안 하는 공부, 결국 학교 다니며 알바를 했다.
알바를 하고 돈을 받으면 여행 경비로 가장 많은 지출을 한다. 고등학교 여름방학 때는 해외로 갔다. 아이들이 알아서 비행기 예매도 하고 숙소도 예약했다. 물론 모든 아이들이 알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따라만 가는 아이도 있다. 고1 때는 오사카를, 고2 때는 싱가포르를 갔다. 겨울방학은 스키장이나 워터 파크를 갔다.
알바비용이 여행 전에 딱 맞춰서 나오지 않을 때는 내가 먼저 주고 알바비 받으면 갚았다. 받으면서 왠지 미안한 생각도 살짝 들었다. 아들을 제외한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집에서 경비를 받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를 갈 때는 비행기 티켓값이 만만치 않았다. 성수기라 갈아타는 것으로 했는데도 비쌌다. 그래서 여행경비 중 비행기와 숙소비용은 처음으로 대주었다. “다른 아이들은 집에서 경비 받아서 가는데 너만 벌어서 가니 좀 그렇지? 이번 여행은 엄마가 일부 줄게.” 했더니 “맞아. 고마워 엄마.” 했다.
고3 올라와서도 알바는 계속 했다. 알바해서 번 돈으로 자기가 갖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씩 샀다. 신발, 지갑, 벨트, 가방 등이다. 모두 명품이다. 처음엔 비싼 비용에 반대도 했지만, 하나를 제대로 사고 싶어 하는 아들의 소비 성향도 인정했다, 본인이 찜해놓은 물건을 봐달라고 해 아들과 함께 명품관에도 갔다. 손님도 별로 없고 왠지 나는 불편했다. 하지만 아들은 기분이 좋단다. 물건 하나를 보여줘도 장갑을 끼고 아주 귀하게 다룬다. 이런 소비 성향이 스타일리스트 진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아들이 얼마 전에 알바를 그만뒀다.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은데 막상 자격증 공부해보니 자기가 생각한 것도 다르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 스타일을 보고 그 사람에게 어울리게 추천하는 것이 좋았는데, 스타일리스트는 이미지 만들어 놓고 스타일링하는 거더라고.” 패션분야의 다른 영역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했다. 지인의 언니가 샾마스터라고 해서 만나봤다. MD(merchandiser)도 만나고 싶어 했는데 결국 만나지는 못했다. 샾마스터는 판매직부터 시작하며 굳이 학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스타일리스트나 MD는 채용도 별로 없고 대학은 필히 나와야 한단다. MD는 영어 또한 잘해야 한다고 했다.
학기 초 스타일리스트 학과를 가겠다고 했던 진학에 맞춰 수능준비를 해야겠다고 했다. 수능을 보고 원서는 다른 과를 지원해도 되니 우선 공부를 해야 한다며 알바를 그만뒀다.
마지막 알바는 치킨 집이었다. 젊은 사장(28살)과 잘 맞았다. 원래 미성년자는 안 쓰는데 주방보조도 하고 경험이 많아 채용했다고 했다. 누구보다 잘한다며 주방일도 가르쳐주고 사장 예비군 훈련일 때는 오픈, 클로징을 맡기기도 했다. 아들이 사장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했다. 다른 곳에 가게를 열려고 하는데 아들을 매니저로 채용하고 싶다고도 했다. 마지막 날 같이 저녁을 먹었고, 서로 안 좋았다고 했다. 월급날인 5월 5일 날 알바비도 주지 않았다. 결국 5월 9일에 받았다고 했다. 아들은 사장에 대해 많이 실망한 눈치였다. 어버이날은 “알바비 받아서 엄마, 아빠 선물하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못해 드려서 죄송해요.” 했다. 사실 우리 부부는 알바를 그만둬서 좋았다. 젊은 사장이라 인생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본인 입장만 생각했다. 학교가야 하는 걸 뻔히 알면서 일요일에도 늦게까지 일을 시켰다. 아들은 사장편에서 “주방아주머니도 안 나와서 바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했다.
여하튼 사람은 서서히 좋아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나이기에 너무 처음부터 좋다고 하는 것이 오래갈까 싶긴 했었다. 다행인 것은 사장과 화해를 했고 사장도 “피해 다니지 말고 예전처럼 들려.”라고 했고 아들도 한 동안 뜸했지만 가게에 들려 사먹기도 한다.
알바를 하면서 사람에 대해서 배웠다. 자신과 맞지 않는 사람이 상사일 때 가장 힘들어했다. 일보다 사람이 힘들면 견디기 어렵다는 것도 배웠을 것이다. 학교 공부는 안 했지만 알바를 하며 인생공부, 사람공부를 했다. 더불어 여행을 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물건도 샀다. 가족에게 선물을 하는 즐거움까지. 아들이 입시공부를 위해 진짜 삶의 공부를 그만두었지만 입시공부를 하며 또 다른 배움이 있더라.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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